大智度論釋初品  四無畏義 第四十 卷二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0. 초품 중 사무외(四無畏)의 뜻을 풀이함 7

 

何等爲菩薩四無所畏?一者 一切聞持故 諸陁羅尼得故 憶念不忘故 在衆說法無所畏。

무엇이 보살의 4무소외인가!

첫째는 일체를 들어 지닌 문지(聞持)로서 일체 다라니(陀羅尼) 얻은 까닭에 잊지 않고 기억하 때문에 대중 앞에서 설법할 때 두려워함이 없음이요,

→ ① 능지무소외(能持無所畏)

 

二者 一切法中得解脫故 一切法藥分別知用故 知一切衆生根故 在大衆中隨應說法無所畏。

둘째는 일체 가운데서 해탈을 얻었으므로, 온갖 법약(法藥) 알아서 분별하여 쓰고온갖 중생의 근기를 알기 때문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 알맞게 설법함에 두려워함이 없으며,

→ ② 지근무소외(知根無所畏)

 

三者 菩薩常離一切衆畏 不作是念. “十方有來難我  我不能答" 不見是相 在大衆中說法無所畏。

셋째는 보살은 항상 일체의 두려움을 여의었으므로 시방에서 모두 나에게 와서 어려운 질문을 한다면 나는 대답할  없으리라 생각을 하지 않으며, 이러한 상(相) 보지 않기 때문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 설법함 두려워함이 없으며,

③ 결의무소외(決疑無所畏)

 

四者 恣一切人來問難者 一一皆答 能斷疑惑 在大衆中說法無所畏。是爲菩薩四無所畏。

넷째는 일체 사람들이 제멋대로 와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물을 물어도 낱낱이 모두 대답하여 의혹을 끊어 줄 수 있으므로 대중 앞에 설법할 때에 두려워함이 없으니,

→ ④ 답보무소외(答報無所畏)

이러한 것이 바로 보살의 4무소외이다. 

 

보살의 사무소애(菩薩四無所畏)

① 능지무소외(能持無所畏), 모든 다라니(陀羅尼)를 얻은 까닭에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설법할 때에 두려워함이 없음

② 지근무소외(知根無所畏), 온갖 중생의 근기를 알기 때문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 알맞게 설법함에 두려워함이 없음

③ 결의무소외(決疑無所畏), 대중 속에 있으면서 설법함에 두려워함이 없음

④ 답보무소외(答報無所畏), 어려운 질물을 물어도 낱낱이 모두 대답하여 의혹을 끊어 줄 수 있으므로 대중 앞에 설법할 때에 두려워함이 없음

 

의(義) 법(法) 사(辭) 요설(樂說)의 네 가지에 “통달하여 얽애이지 않고 막힘이 없는 보살의 사무애지(四無礙智)

①의무애지(義無礙智) ② 법무애지(法無礙智) ③ 사무애지(辭無礙智) ④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

 

“四無智”者, 義無智 法無智 辭無智 樂說無智。

사무애지(四無礙智)라 함은 의무애지(義無礙智)ㆍ법무애지(法無礙智)ㆍ사무애지(辭無礙智)ㆍ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이라.

 

“義無智”者 用名字 言語所說事 各各諸法相。所謂堅相 此中地堅相是“義” 地名字是“法” 以言語說地是“辭” 於三種智中樂說自在是“樂說”, 於此四事中通達無滯 是名“無智”。

의무애지(義無礙智)라 함이란, 문자와 언어로써 각각의 제법의 실상= 법상(法相)을 잘 설명하여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굳은 모습의 견상(堅相)이란 땅(지대)의 단단함이 그 의(義)이고, 땅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바로 법(法)이며, 언어로써 땅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사(辭)이다.

이러한 의(義) 법(法) 사(辭)의 세 가지의 지혜로써 “기분 좋고 시원하게 설명하여 줌에 자유자재한 것”이 바로 요설(樂說, pratibhāna. 보살이 가르침을 듣고 즐거워하고 다시 남을 위해 설해 주는 것)이니,

의(義) 법(法) 사(辭) 요설(樂說)의 네 가지에 “통달하여 얽애이지 않고 막힘이 없는 것”을 바로 무애지(無礙智)라 하는 것이다.

 

濕相水 熱相火 動相風 心思相 五衆無常相, 五受衆 無常 苦 空相, 一切法無我相。如是等摠相 別相 分別諸法亦如是 是名“義無智”。

젖은 것의 습상(濕相)은 물(수대)이요,

더운기운의 열상(熱相)은 불(화대)이며,

움직이는 동상(動相)은 바람(풍대)이요

마음으로 생각하는 심사상(心思相)과 오음(五衆, 오온)은 무상한 무상상(無常五)이며,

오수중(五受衆, 고수苦受 낙수樂受 희수喜受 우수憂受 사수捨受)의 무상 고 공상(無常 苦 空相)이며,

일체법의 나 없는 무아상(無我相)이라.

이와 같이 총괄적인 총상(總相)과 개별적인 모양의 별상(別相)으로 분별하였으니, 제법을 분별함도 역시 그와 같으니, 이러함을 의무애지(義無㝵智)라 하는 것이며, 

 

“法無智”者 知是義名字 堅相名爲地 如是等一切名字分別中無滯 是名爲“法無智”。所以者何?離名字 義不可得 知義必由於名 以是故次義有法。

법무애지(法無㝵智)라 함은, 그 의(義)와 이름의 명자(名字)로서 그 굳은 모양의 견상(堅相)을 땅(지대)라고 한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이와 같은 등의 온갖 이름을 분별하여 앎에 있어서 막힘이 없는 것을 법무애지라 하나니,

왜냐하면, 명자(名字, 이름)를 여의고는 그 뜻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그 뜻은 반드시 명자(名字, 이름)로 인하여 아는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의(義) 다음에 법(法)이 있는 것이다.

 

問曰; 義之與名爲合耶?爲離耶?若合名 說火時應燒口, 若離 說火時應得水!

묻나니, 의(義, artha)와 명자(名字, 이름, nāman)은 같이 합하여진 것입니까? 아니면 따로 분리된 것입니까?

만약  이름과 합하여서 된 것이라면 불을 말할 때에는 마땅히 입이 타야 할 것이고, 만일 분리된 것이라면 불을 말할 때에는 마땅히 물을 얻어야 할 것이다.

 

答曰; 亦不合 亦不離, 古人假爲立名以名諸法 後人因是名字識是事 如是各各有名字 是爲法。

답하나니, 합하여진 것도 아니고 또한 분리된 것도 아니다.

옛 사람들이 임시로 이름을 붙여서 제법에다 이름을 붙였으니 그것이 가명(假名)이며, 후세의 사람들은 이 이름(가명)으로 인하여 이러한 것들을 알게 되나니, 이와 같이 저마다 각각의 이름이 있는 것이 바로 법(法)이라.

 

是名字及義 云何令衆生得解?當以言辭分別莊嚴 能令人解 通達無滯 是名“辭無智”。

중생으로 하여금 이 명자(名字, 이름)와 의(義, 뜻)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면,

마땅히 말= 언사(言辭)로써 분별하고 장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고 통달할 수 있게 설명하되, 막힘이 없는 것을 사무애지(辭無㝵智, Niruktipratisaṁvid)라 하는 것이며, 

 

說有道理 開演無盡 亦於諸禪定中得自在無滯 是名“樂說無智”。

또 그러함을 도리에 맞게 열어서 설명하고 연설함에 끝이 없고, 또한 모든 선정에서도 자유자재하여 막힘이 없는 것을 바로 요설무애지(樂說無㝵智, Pratibhānapratisaṁvid)라 하는 것이다.

 

第一 第四無智 在九地中, 第二 第三無智 在欲界及梵天上。

첫째의 의무애지(義無礙智)와 넷째의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는 9지(九地)에 갈무리 되는 것이고,

둘째의 법무애지(法無礙智)와 셋째의 사무애지(辭無礙智)는 욕계(欲界) 및 범천(梵天)에 갈무리 되는 것이며,  

 

第二 第三無世智。第一 十智。第四 九智。

둘째의 법무애지(法無礙智)와 셋째의 사무애지(辭無礙智)는 세지(世智, saṁvṛti-jñāna)이고,

첫째의 의무애지(義無礙智)는 10지(十智, daśajñāna)이며,

넷째의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는 9지(九智)이다.

 

是無三種 上中下, 上諸佛 中大菩薩 下大阿羅漢。

이러한 무애지에는 상ㆍ중ㆍ하 세 가지가 있으니,

상(上)은 모든 부처님이시요, 중(中)은 큰 보살들이시며, 하(下)는 큰 아라한이시다.

 

問曰; 力 無所畏 無皆是智慧。內有力 外無所畏則具足 何以復說無

묻나니, 역(力, 힘) 무소외(無所畏) 무애(無㝵)는 모두 지혜로써, 안으로 힘이 있으면서 밖으로 두려워함이 없으면 곧 완전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다시 무애를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 力 無畏已分別。有人雖無所畏 在大衆中說法而有以是故說四無智。

得是無智莊嚴四無所畏 四無所畏莊嚴十力。

답하나니, 역(力, 힘) 무소외(無所畏)에 대해서는 이미 분별하였다.

어떤 사람이 비록 두려워함이 없더라도 대중 가운데서 설법할 때 막히는 일이 있으니, 이 때문에 사무애지(四無㝵智)를 말하는 것이다.

이 무애지를 얻어서 사무소외(四無所畏)를 장엄하고,

사무소외(四無所畏)로서 십력(十力)을 장엄하는 것이며, 

 

復次 說無所畏 或有疑者言, “云何一人於大衆中得無所畏?”

佛以前有十力 後有四無智 是故在大衆中說法無所畏。

如是等 分別四無智。

또한 무소외(無所畏)를 말함에 있어서,

어떤 이는 의심하여 말하기를 “어떻게 한 사람이 대중들 가운데서 두려워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도 하나,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십력(十力)을 갖추시고 뒤에 사무애지(四無㝵智)를 갖추신 까닭에 대중 속에 계시면서 설법하심에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등으로 사무애지(四無㝵智)를 분별한 것이다.

 

보살십력(菩薩十力)

① 일체 지혜의 마음을 일으키는 굳고 깊고 단단한, 견심뇌고력(堅深牢固力)

② 대자(大慈)를 구족하였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불사일체중생력(不捨一切衆生力)

③ 온갖 공양(供養)과 공경(恭敬)과 이양(利養)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갖추어진 구족대비력(具足大悲力)

④ 일체 부처님의 법을 믿고 일체 부처님 법을 구족하였으며, 마음에 싫어함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크게 정진하는 대정진력(大精進力)

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혜로운 행과 위의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정력(禪定力)

⑥ 일체의 생각과 분별과 쓸모없는 희론을 없앴기 때문에 지혜의 힘을 구족한 구족지혜력(具足智慧力)

⑦ 일체 세간은 마치 꿈과 같음을 알기 때문에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 불염생사력(不厭生死力)

⑧ 제법은 나오지도 않는 불출(不出)이고 생기지도 않는 불생(不生)임을 알기 때문에 생사가 없는 무생법인력(無生法忍力)

⑨ 공(空)하고 무상(無相)이며, 조작이 없는 무작(無作)의 해탈문에 들어서 관(觀)하는 때문에 성문과 벽지불의 해탈을 지견(知見)하기 때문에 얻은 해탈력(解脫力)

⑩ 깊은 법이 자재하고, 온갖 중생의 마음이 작용하여 나아가는 바를 알기 때문에 무애지력(無礙智力)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이세간품(離世間品)(39)에 설해지는 보살의 십력;

①직심력(直心力): 일체 세계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힘.

②심심력(深心力):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힘.

③방편력(方便力): 보살의 일체 행위를 완벽히 하기 때문에 생기는 힘.

④지혜력(智慧力): 일체 중생의 모든 마음 작용을 알기 때문에 생기는 힘.

⑤원력(願力): 일체 중생의 원()을 만족시켜서 생기는 힘.

⑥행력(行力): 일체 미래가 다하도록 보살행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힘.

⑦승력(乘力): 일체 모든 승()을 일으키면서도 대승(大乘)을 버리지 않아서 생기는 힘.

⑧유희신통력(遊戲神通力): 하나의 털끝에서 일체 청정한 세계를 나타내 보이고 그 세계에 일체 여래가 출현하게 하므로 생기는 힘.

⑨보리력(菩提力): 깨달음과 일체 중생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깨달아 생기는 힘.

⑩전법륜력(轉法輪力) : 한 구절의 법에서 일체 중생이 희망하는 법을 설하여 생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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