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四無畏義 第四十 卷二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0. 초품 중 사무외(四無畏)의 뜻을 풀이함 6

 

問曰; 佛或時名法輪”, 或時名梵輪”, 有何等異?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간혹 법륜(法輪)이라 하기도 하고 범륜(梵輪)이라 하기도 하시는데, 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說梵輪 法輪無異。復次 有人言, 說梵輪者 現四無量心, 說法輪者 示四諦法"

답하나니, 법륜이나 범륜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범륜(梵輪)이라 말함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나타내는 것이고,

법륜(法輪)이라 말함은 사제(四諦)의 법(法)을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하며, 

 

復次 梵輪因四無量心得道是名梵輪”, 依餘法得道是名法輪。梵輪示四禪 法輪示三十七品。梵輪示修禪定聖道 法輪示修智慧聖道。如是等分別梵輪 法輪差別。

또 범륜은 사무량심으로 인하여 도를 얻게 되는 것이라 이름하여 범륜이라 하고,

그 밖의 도에 의거하여 법을 얻으면 법륜이라 이름하며,

범륜(梵輪)은 사선(四禪)을 나타내 보이고 법륜(法輪)”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나타내 보이며,

범륜은 선정을 닦는 거룩한 도임을 나타내 보이고 법륜은 지혜를 닦는 거룩한 도임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으로 범륜(梵輪)과 법륜(法輪)의 차별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問曰; 何法是無畏性?

묻나니, 어떠한 법이 곧 무외의 성품인 무외성(無畏性)입니까?

 

答曰; 佛初得道時 得一切佛法 十力 四無所畏等。此中未來世 得四無所畏智相應法 名無所畏。如布施時 心中思相應捨法生, 又如四無量心相應名慈法門。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셨을 때에 일체 부처님의 법과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 등을 얻으셨나니, 이 가운데에서 미래 세에 사무소외의 지혜와 상응하는 법을 얻게 되는 것을 무소외(無所畏)라 하는 것이다.

마치 보시를 할 때 마음속의 생각과 그에 상응하여 버리는 사법(捨法)이 생기는 것과 같으며,

또한 마치 사무량심에 상응하게 되면 자법(慈法)의 문(門)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問曰; 是四無所畏中 有何次第?

묻나니, 이 사무소외(四無所畏)에는 어떠한 차례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初無畏中 示人知一切法 知一切法故我漏盡 漏盡故知障漏盡法 斷是障法故說道。

답하나니, 첫 번째의 일체지무소외(一切智無所畏)는 사람들에게 “일체법을 다 안다” 함을 보이는 것이고,

일체법을 알기 때문에 “나는 번뇌가 다하였다”는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이며,

번뇌가 다하였기 때문에 “번뇌가 다함을 장애하는 법을 안다”는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이고,

장애가 되는 법을 끊었기 때문에 “도(道)를 말한다”는 설출도무소외(說出道無所畏)이다.

 

復次 初無畏 如示藥師一切藥草, 第二示一切病滅, 第三知禁忌, 第四示所應食。

또 첫 번째의 일체지무소외(一切智無所畏)는 마치 약사(藥師)가 온갖 약초를 보여 주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는 온갖 병이 낫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세 번째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는 금기(禁忌, vyādhikṣaya)하여야 할 사항을 일러 주는 것이며,

네 번째 설출도무소외(說出道無所畏)는 먹어야 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復次 初無畏中說一切種智, 第二無畏中說無一切煩惱習, 第三無畏中說法無謬失, 第四無畏中所說事辦得至涅槃。

또 첫 번째 일체지무소외(一切智無所畏)는 일체종지(一切種智)임을 말씀하시고,

두 번째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는 온갖 번뇌와 번뇌의 습기가 없음을 말씀하시며,

세 번째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는 법에는 그릇되거나 잘못됨이 없음을 말씀하시고,

네 번째 설출도무소외(說出道無所畏)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열반에 이르게 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問曰; 如般若波羅蜜中說五衆乃至十力 四無所畏 十八不共法皆空 今云何分別說其相?

묻나니, 마치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Prajñāpāramitā sūtra)에서의 말씀과 같이 5음(陰, 오온)에서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공(空)한 것이라 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그 상(相)을 분별하여 설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佛法中 不可得空 於諸法無所㝵, 因是不可得空 說一切佛法 十二部經。譬如虛空無所有 而一切物皆依以長成。

답하나니, 불법에서의 얻을 수 없는 불가득공(不可得空, anupalambhaśūnyatā)은 제법에서 장애가 없는 것이니, 이 불가득공으로 인하여 온갖 불법의 12부경(部經)을 설명하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온갖 만물이 모두 그 곳에 의거하여 자라고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며, 

 

復次 是十力 四無所畏 不以取相著心分別故 但爲度衆生 知衆生從是因緣得解脫。

譬如藥草 但爲差病 不爲求藥草相。如『中論』中說;

또 이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는 상(相)을 취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으로써 분별하지 않는 것이나, 다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 것이니, 중생은 이러한 인연을 좇아 해탈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약초는 다만 병을 낫게 하기 위한 것일 뿐 약초의 모양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과 같다.

마치 『중론(中論, Madhyamakaśāstra)』의 게송과 같으니;

 

若信諸法空 是則順於理, 若不信法空 一切皆違失。

만약 제법이 공(空)함을 믿으면, 이것은 곧 이치에 순응함이거니와

만약 제법이 공(空)함을 믿지 않으면, 온갖 것이 모두 틀리고 어긋나게 되는 것이라.

 

若以無是空 無所應造作, 未作已有業 不作有作者。

만약 아무것도 없는 것이 공(空)이라면, 마땅히 조작(造作)해야 할 것도 없으리니,

아직 짓지 않았는데 이미 업이 있고, 짓지 않았는데 짓는 이가 있는 것이니, 

 

如是諸法相 誰能思量者 唯有淨直心 所說無依止 離於有無見 心自然內滅。

이와 같이 제법의 상(相)을 누가 능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으랴.

오직 청정하고 곧은 마음이 있음으로 의지함이 없다고 말하며,

있다 없다 하는 소견을 여의게 되어 마음이 스스로 속에서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問曰; 聲聞法說十力 四無所畏如是 摩訶衍分別十力 四無所畏復云何?

묻나니, 성문의 법(가르침)에서는 십력과 사무소외를 이와 같이 설명하였으나, 마하연(摩訶衍, 대승)에서는 십력과 사무소외를 어떻게 분별하는 것입니까?

 

答曰; 是十力 四無所畏中 盡知遍知 是摩訶衍中說十力 四無所畏。

답하나니, 이 십력과 사무소외 가운데에서 모두 다 앎의 진지(盡知)와 두루 아는 편지(遍知)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마하연(대승)에서 말하는 십력과 사무소외이다.

 

問曰; 聲聞法中 亦說盡知遍知, 云何言摩訶衍中說 盡知遍知?

묻나니, 성문의 법에서도 역시 모두 다 앎의 진지(盡知)와 두루 아는 편지(遍知)라고 말씀하시었으나, 어찌하여 마하연에서도 진지(盡知)와 편지(遍知)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諸論議師說 佛盡知遍知 非佛自說, 今說摩訶衍中 十力 四無所畏故 佛自說, “我盡知 遍知"

답하나니, 여러 논의사(論議師, 논사)들이 “부처님께서는 진지(盡知)와 편지(遍知)이시다”고 말한 것이지, 부처님 스스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며,

이제 마하연에서의 십력과 사무소외를 설명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진지(盡知)와 편지(遍知)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復次 爲聲聞人 說十力 四無所畏 合說四諦 十二因緣等 諸聲聞法 皆爲到涅槃, 今說摩訶衍中十力 四無所畏 合大悲 諸法實相不生不滅說。

또 성문인을 위하여 십력과 사무소외를 설명하시면서 사제와 12인연(因緣) 등을 합하여 설명하셨으니, 모든 성문의 법으로 열반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제 마하연 가운데에서 십력과 사무소외를 설명하시는 것은 대비(大悲)와 함께 제법의 실상(實相, bhūtalakṣaṇa)은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요 없어지지도 않는 불멸(不滅)임을 말씀시는 것이다.

 

問曰; 佛有十力 四無所畏 菩薩有不?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십력과 사무소외를 지니셨지만 보살들도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答曰; 有。何者是?一者 發一切智心 堅深牢固力,

답하나니, 보살들도 가지고 있다. 어떠한 것인가 하면,

첫째는 일체 지혜의 마음을 일으키는 굳고 깊고 단단한 견심뇌고력(堅深牢固力)이요,

 

二者 具足大慈故 不捨一切衆生力,

둘째는 대자(大慈)를 구족하였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불사일체중생력(不捨一切衆生力)이요,

 

三者 不須一切供養恭敬利故 具足大悲力,

셋째는 온갖 공양(供養)과 공경(恭敬)과 이양(利養)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갖추어진 구족대비력(具足大悲力)이요,

 

四者 信一切佛法 具足生一切佛法 及心不厭故 大精進力,

넷째는 일체 부처님의 법을 믿고 일체 부처님 법을 구족하였으며, 마음에 싫어함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크게 정진하는 대정진력(大精進力)이요,

 

五者 一心惠行威儀不壞故 禪定力.

다섯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혜로운 행과 위의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정력(禪定力)이요,

 

六者 除二邊故 隨十二因緣行故 斷一切邪見故 滅一切憶想分別戲論故 具足智慧力,

여섯째는 두 가지의 치우침인 이변(二邊)을 제거한 까닭이고, 십이인연을 따라 행하는 까닭이며, 일체의 삿된 소견을 끊은 까닭이며, 일체의 생각과 분별과 쓸모없는 희론을 없앴기 때문에 지혜의 힘을 구족한 구족지혜력(具足智慧力)이요,

 

七者 成就一切衆生故 受無量生死故 集諸善根無厭足故 知一切世閒如夢故 不厭生死力;

일곱째는 일체 중생을 성취(만족)하였기 때문이며, 한량없는 생사를 받은 때문이며, 일체의 선근을 쌓음에 만족하지 않은 때문이고, 일체 세간은 마치 꿈과 같음을 알기 때문에 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 불염생사력(不厭生死力)이요.

 

八者 觀諸法實相故 知無吾我 無衆生故 信解諸法不出不生故 無生法忍力,

여덟째는 제법의 실상을 관찰하여서, '나'도 없고 '중생'도 없음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며, 제법은 나오지도 않는 불출(不出)이고 생기지도 않는 불생(不生)임을 알기 때문에 생사가 없는 무생법인력(無生法忍力)이요, 

 

九者 入空無相無作解脫門觀故 知見聲聞辟支佛解脫故 得解脫力,

아홉째는 ()하고 무상(無相)이며, 조작이 없는 무작(無作)의 해탈문에 들어서 ()하는 때문에 성문과 벽지불의 해탈을 지견(知見)하기 때문에 얻은 해탈력(解脫力)이요, 

 

十者 深法自在故 知一切衆生心行所趣故 具足無智力。是爲菩薩十力。

열째는 깊은 법이 자재하고, 온갖 중생의 마음이 작용하여 나아가는 바를 알기 때문에 무애지력(無礙智力)이니,

이러함이 보살이 지닌 보살십력(菩薩十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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