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四無畏義 第四十 卷二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0. 초품 중 사무외(四無畏)의 뜻을 풀이함 4

 

衆中師子吼者 衆名八衆, 沙門衆 婆羅門衆 剎利衆 天衆 四天王衆 三十三天衆 魔衆 梵衆。衆生於此八衆 悕望智慧 是故經中但說是八衆。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심의 중중사자후(衆中師子吼)라고 함이란,

대중이란 여덟 종류의 팔중(八衆)을 말하는 것으로 곧 사문(沙門)의 무리· 바라문(婆羅門)의 무리 · 찰리(刹利, ksatriya 왕족)의 무리· 하늘(天)의 무리· 사천왕(四天王, Cāturmahārājika)의 무리· 삼십삼천(三十三天, Trāyastriṁśa deva)의 무리 · 마(魔)의 무리 · 범천(梵天)의 무리이니, 중생들은 이러한 팔중(八衆)의 지혜를 희망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경에서는 다만 이 팔중(八衆)만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八衆(팔중)=찰제리ㆍ거사ㆍ사문ㆍ바라문ㆍ사천왕ㆍ도리천ㆍ마라ㆍ범천

 

此中佛師子吼 亦在一切衆中, 以是故 此經中言若復餘衆

何以故?聞佛音聲者 盡皆是衆。

이 무리 안에서 부처님께서는 사자후를 하셨을 뿐만 아니라, 역시 온갖 대중 속에 계셨나니, 이러한 까닭에 이렇게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그 밖의 다른 대중= 부여중(復餘衆)이라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이는 모두가 다 대중이 되기 때문이다.

 

復次 有人言, 佛獨屛處說法" 以是故說 在衆中作是至誠言, 我有十力 四無所畏" 是名衆中師子吼。屛 병풍 병, 물리칠 병

또 어떤 사람은 말씀하기를 “부처님께서는 혼자 외지고 눈에 띄이지 않는 곳에서 법을 말씀하시나니, 이 때문에 대중 안에 계실 때에는 지성(至誠)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는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가 있다’고 하셨다”고 하나니, 이를 바로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신다는 중중사자후(衆中師子吼)”라고 하는 것이며,

 

復次 佛示我是至誠言, 我爲一切世閒師 一切智人, 諸有疑 不信者悉來 我當解釋以是故言衆中師子吼。

至誠지성= 1. 지극한 정성, 2. 지극히 성실함

또한 부처님께서는 “나는 지성(至誠)으로 말한다”고 하셨으며, “나는 일체 세간의 스승이요, 일체지(一切智)를 지닌 사람이다. 의심이 많고 믿지 않은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라, 내가 해석하여 풀어 주리라”고 하셨나니, 이러한 까닭에 “중중사자후(衆中師子吼)”라고 하는 것이며, 

 

“師子吼”者 如師子王 淸淨種中生 深山 大谷中住 方頰大骨 身肉肥滿 頭大眼長 光澤明淨 眉高而廣 牙利白淨 口鼻方大 厚實堅滿 齒密齊利 吐赤白舌 雙耳高上 髦髮光潤 上身廣大 膚肉堅著 脩脊細腰 其腹不現 長尾利爪 其足安立。

사자후(師子吼)라는 것이란, 마치 사자의 왕이 청정한 종자에서 태어나 깊은 산의 큰 골짜기에 머무르며, 네모진 뺨과 큰 뼈에 몸에는 살이 통통하며, 머리는 크고 눈은 길면서 그 광택은 맑고 깨끗하고, 눈썹은 우뚝하고 넓게 벌어졌으며, 어금니는 날카롭고 깨끗하며, 입과 코는 크고 두꺼우면서 굳고 원만하며, 이빨은 촘촘하고 가지런하면서 날카로우며, 혀를 내밀면 바탕이 붉고도 희며, 양 귀는 위로 높이 치켜올랐으며, 갈기와 털은 윤기가 흐르고, 윗몸은 넓고 크며, 피부와 살은 단단하게 붙었으며, 등마루는 길고 허리는 가늘며, 배가 나오지 않았고 꼬리는 아주 길며,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발로 땅을 의젓하고 편안하게 딛고 서 있나니, 

 

사자가 깊은 산의 큰 골짜기에 머무르듯이 부처님도 거대한 산과 깊은 계곡에 머무신다는 것에서, 깊은 산, 심산(深山)은 고요한 열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고, 깊은 계곡의 대곡(大谷)은 선정을 뜻하는 것.

 

巨身大力 從住處出 偃脊頻伸 以口扣地 現大威勢, 食不過時 顯晨朝相, 表師子王力 以威獐鹿 熊羆 虎豹 野猪之屬, 覺諸久睡 降伏高强有力勢者 自開行路而大哮吼。

偃 누울 언, 脊 등마루 척, 頻 자주 빈

그 거대한 몸과 큰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등마루를 길게 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입으로는 땅을 치면서 큰 위세를 나타내며, 때를 맞춰 먹이를 먹고 이른 아침부터 모습을 나타내어 사자왕으로서의 힘을 과시하면서, 사슴ㆍ곰ㆍ범 및 멧돼지 족속들을 위압하며 늦게까지 잠자는 짐승들을 깨우고 힘이 세고 굳센 짐승들을 항복 받으며, 힘이 솟아나서 스스로의 갈 길을 헤치면서 크게 으르렁거리는 사자이니, 

 

如是吼時 其有聞者 或喜或怖, 穴處者隱縮 水居者深入 山藏者潛伏 象振鎖狂逸而去 鳥飛空中高翔遠逝。

이와 같이 으르렁거릴 때에 그 소리를 듣게 되는 짐승들은 혹 기뻐하기도 하고 혹은 두려워하기도 하나니, 구멍 속에 있던 짐승은 움츠려 숨고, 물에 사는 고기는 깊숙이 들어가며, 산에 있던 짐승들은 몰래 숨어 엎드리고, 마굿간의 코끼리는 쇠사슬을 떨치면서 미친 듯이 달아나며, 날아 가던 새는 공중 높이 날아서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그 누구를 상대하든 담담하고 당당하게 마주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이 마치 사자의 포효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師子吼)’라고 표현하며, 부처님의 말씀은 귀를 시끄럽게 하는 고함이 아니라 그 엄청난 진동의 ‘으르릉’이라는 것, 사자후에 담긴 이미지입니다.- 이미령의 대지도론 산책

 

佛師子亦如是 從六波羅蜜 古四聖種大姓中生 寂滅大山 深濬禪定谷中住 得一切種智頭 集諸善根頰 無漏正見脩目光澤 定慧等行高廣眉 四無所畏牙白利。

부처님이라는 사자 또한 그와 같아서, 육바라밀(六婆羅蜜)에 의지하여, 네 가지 옛의 거룩한 종성(種姓, vaṁśa)의 큰 성바지에 태어나 적멸(寂滅)의 큰 산과 깊은 선정(禪定)의 골짜기에 머무시며,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여 머리로 삼고, 모든 선근을 쌓아 두 뺨을 삼았으며, 무루(無漏)로 바르게 보는 긴 눈은 번쩍이고, 정혜(定慧)로 평등히 행하는 눈썹은 높고 넓으며, 사무소외(四無所畏)의 어금니는 희고도 날카우며, 

 

解脫具足口 四正懃堅滿三十七品齒密齊利 修不淨觀吐赤白舌 念慧耳高上 十八不共法髦髮光潤鮮白 三解脫門上身肉堅著 三示現脩脊 明行具足腹不現 忍辱腰纖細 遠離行尾長 四如意足安立 無學五根爪利。

무애해탈(無礙解脫)로 두루 갖추어진 입이요, 사정근(四正懃)은 굳고 원만한 턱이며,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의 이는 촘촘하고 가지런하면서 날카로우며,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한 붉고도 흰 혀를 토(吐)하며,

염혜(念慧)의 귀는 높이 솟아 우뚝하고,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갈기와 털은 빛나면서 산뜻하며,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윗몸의 살은 단단하고, 삼시현(三示現)의 등골은 길며,

명행(明行)이 구족된 배는 나오지 않았으며, 인욕(忍辱)의 허리는 날씬하며,

세간을 멀리 여의는 행의 원리행(遠離行)의 꼬리는 길고,

사여의족(四如意足)으로 편안히 서며,

무학(無學)의 오근(五根)의 손발톱은 날카로우며,

 

삼시현(三示現) 또는 삼종시도(三種示導)=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①기적을 나타내 보이는 신변시도(神變示導) ②타인의 마음을 관찰해 파악하는 기심시도(記心示導) ③대중을 효과적으로 잘 가르쳐 인도하는 교계시도(敎誡示導)라는 세 가지.

 

十種力勢無量 無漏法衆具足身, 諸佛三昧王等住處出 四無智頻申 諸法地中 著無解脫口。依是十力廣度衆生時不過 示一切世閒天及人晨朝相;

십력(十力)의 기세는 무량하고, 무루(無漏)의 법을 두루 갖춘 몸이시니,

모든 부처님의 삼매왕(三昧王, 삼매왕삼매) 등에서 머무르시던 곳에서 나와서,

4무애지(四無礙智)로써 사자가 기지개를 키는 사자빈신(師子頻申)을 하고,

제법 가운데에서 무애해탈(無礙解脫)의 말씀을 드러내며,

이 십력(十力)에 의지하여 때를 맞춰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일체 세간 및 하늘과 사람에게 이른 아침과 같은 모습을 나타시며, 

 

동물의 왕 사자가 아침이면 굴에서 나와 기지개를 쭉 펴고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듯 모든 부처님도 최고의 삼매(三昧王)라는 거처에서 나와서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四無礙智)로 등을 낮게 펴고 으르렁 신음하며(頻申), 모든 법의 땅에서 걸림 없는 해탈의 입을 갖다 댑니다.- 이미령의 대지도론 산책

 

顯諸法王德 威諸外道論議師黨邪見之屬, 覺諸衆生四諦中睡 降伏吾我著五衆者憍慢力 開異學論議諸邪見道。行邪者怖畏 信正者歡喜 鈍者令利, 安慰弟子 破壞外道, 長壽諸天久受天樂 則知無常。

제법왕(諸法王)으로서의 덕을 드러내시어 모든 외도의 논의사(論議師)와 삿된 소견을 지닌 무리를 위압하며,

사제(四諦)를 통해서 잠든 중생들을 깨우고,

'나'와 5중(五衆, 오온)에 집착한 이의 교만스런 힘을 항복 받으며,

이학(異學)의 논의와 삿된 소견을 지닌 이들에세 도(道, 불도)를 열어 헤치고,

삿된 행을 하는 이를 두렵게 하고 믿음이 바른 이를 기쁘게 하며,

둔한 이들을 영리하게 하고 제자들을 위로하면서 외도를 파괴하며,

장수천(長壽天, dīrghāyuṣa deva)의 신들이 오래도록 하늘의 쾌락을 누리는 것이 무상함을 알게 하며, 

 

불교를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의 팔난(八難)= 깨달음으로 향하는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을 팔난(八難)이라 합니다. 
①지옥(地獄)은 고통이 너무 극심함으로 수행을 할 엄두를 못 내며,

②아귀(餓鬼)는 너무 배고프고 굶주려 공부가 어렵다. 인간세상이라도 너무 가난하거나 굶주리면 수행이 어렵다   
③축생(畜生)들은 공부가 어렵다.    
⑤장수천(長壽天), 여러 천상(天上) 즉 천당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④변지(邊地), 극락의 변두리 땅으로, 염불을 하면서도 부처님 본원(本願)에 의혹을 품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⑥ 맹농음아(盲聾瘖瘂),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⑦세지변총(世智辨聰), 세속적인 지식은 많고 너무 똑똑하여 그릇된 사견(邪見)과 사견(私見)으로 빠진 학자 정치인들은 수행이 어렵다.  
⑧불전불후(佛前佛後)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이나 열반 후에 가르침을 설할 부처가 없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 -극락사

 

如是衆生聞四諦師子吼 皆生厭心, 厭心故得離 得離故入涅槃。是名“衆中如師子吼”。

이와 같이 중생들은 사제(四諦)에 대한 사자의 외침 사자후(師子吼)을 듣고는 모두가 (세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되고,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여의게 되며, 여의었기 때문에 열반에 들게 되나니, 이를 일컬어 대중 가운데서 사자처럼 외치는 중중사자후(衆中師子吼)라고 하는 것이다.

 

復次 佛師子吼及師子吼有差別. 師子吼者 衆獸驚怖 若死 若近死苦, 佛師子吼 得免死畏。師子吼怖 世世死苦, 佛師子吼但今世死 更無後苦。

또 부처님의 사자후(師子吼)와 사자의 외침에는 차이가 있으니,

사자의 외침은 짐승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며 혹은 죽기도 하고 죽을 뻔하는 고통을 받게 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죽음의 두려움을 면하게 하는 것이며,

사자의 외침에서는 세세마다에서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게 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지금 세상에서만 죽음이 있을 뿐 그 후에 다시 고통이 없게 하는 것이며, 

 

師子吼者 其聲麤惡 物不喜聞 生死怖畏, 佛師子吼 其聲柔軟 聞者無厭心 皆深樂 普遍遠聞 能與二種樂, 生天樂 涅槃樂。是爲差別。

사자가 외치면 그 소리가 거칠어서 만물이 듣기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사(生死)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그 소리가 부드러운지라 듣는 이마다 싫어하는 마음이 없고 모두가 몹시 좋아하게 되며 두루 멀리까지 들리면서 두 가지의 즐거움을 주나니, 곧 천상에 나는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이라. 이러함이 그 다른 것이다.

 

問曰; 佛師子吼亦令聞者生怖 與師子吼有何等異?

묻나니, 부처님의 사자후도 역시 듣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이 일게 하거늘,

사자의 외침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聞佛師子吼 當時小怖 後大利益。著吾我心者 渴愛世閒樂人 常顚倒所縛 邪見心者生怖畏。如『經』中言:

답하나니, 부처님의 사자후를 들으면 당시는 조금 두렵기는 하나 뒤에는 크게 이익되어서, '나'라는 마음에 집착하는 이와 세간의 쾌락을 갈망하는 사람과 항상 전도(顚倒)되어서 삿된 소견의 마음에 속박된 이라면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이, 마치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으니, 

 

佛說四諦 乃至上諸天悉皆怖畏 作是念, “我等無常相 苦相 無我相 空相。

何以故爲顚倒心故?著常樂相?” 是爲差別。

“부처님께서 사제(四諦)를 말씀하시자 위로 모든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두려워하면서 ‘우리들에게는 무상함의 무상상(無常相)과 괴로움의 고상(苦相)과 나 없는 무아상(無我相)과 공한 공상(空相)이 있거늘 무엇 때문에 뒤바뀐 마음으로 항상하고 즐거운 상락상(常樂相)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러함에 차별이 있는 것이다.

 

復次 聞師子吼者 除離欲人 餘者皆怖畏, 佛師子吼 求涅槃 離欲人皆怖。

師子吼者 善人 不善人皆怖, 佛師子吼者 但善人怖。

또한 사자의 외침을 들으면 욕망을 여읜 사람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게 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열반을 구하면서 욕망을 여읜 사람까지도 모두 두려워하며,

또 사자가 외치면 착한 사람이나 착하지 않은 사람이나 다 두려워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다만 착한 사람만이 두려워하며,  

 

復次 師子吼 一切時怖畏。佛師子吼雖小怖畏衆生 示世閒惡罪 令不樂世閒生, 觀涅槃功德利益 能除世閒種種怖畏, 閉惡趣 開善道 能令人到涅槃城。

또한 사자가 외치면 언제나 두렵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비록 조금 두렵기는 하나 중생들에게 세간의 나쁜 죄악을 보여 주면서 세간에서 살기를 좋아하지 않게 하고, 열반의 공덕과 이익을 관찰하게 하여 능히 세간의 갖가지 두려움을 제거하게 하며, 악취(惡趣, durgati 악도)를 닫고 선취(善趣, 선도)를 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의 성(城, 열반무위성)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復次 二十事故 佛語名師子吼 所謂依止十力故 不縮故 不展故 梵音故 未曾有故 能引大衆故 惡魔驚怖故 擾亂魔民故 諸天歡喜故 得出魔網故 斷魔縛故 破魔鉤故 過魔界故 自法增長故 減損他法故 果報不誑故 說法不空故 凡夫人入聖道故 入聖道者得具足漏盡故 隨所應得三乘故。以是故 佛語名師子吼。是名師子吼摠相 別相義。

또한 스무 가지의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사자후(獅子吼)라 하는 것이니

이른바 십력(十力) 의지하기 때문이고움츠러들지 않기 때문이고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고맑은 음성의 범음(梵音)이기 때문이고전에 없던 미증유(未曾有)이기 때문이고대중을  이끌기 때문이고악마가 놀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고악마의 백성을 혼란하게 하기 때문이고모든 하늘들이 기뻐하기 때문이고악마의 그물에서 벗어날  있기 때문이고악마의 속박을 끊기 때문이고악마의 고리를 파괴하기 때문이고악마의 세계를 초월하기 때문이고자신의 법이 더욱 자라기 때문이고다른 이의 법을 줄이기 때문이고과보(果報) 속이지 않기 때문이고설법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고범부가 성인의 도에 들게 되기 때문이고성인의 도에  이가 완전히 번뇌를 다하게 됨을 구족하기 때문이고응하는 바에 따라 삼승(三乘, 성문 연각 보살) 얻게 하 때문이라.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을 사자후라 하는 것이며,

이러함을 사자후의 총상(總相) 별상(別相) 이치(정의)라 하는 것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