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初品中 十喩釋論 第十一卷 第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임 경량 엮음 참조
12. 초품 중 뜻에 걸림이 없다=意無礙(의무애)를 풀이함 1
▶ 經. 意無罣㝵。罣 걸 괘 걸림 괘, 㝵 거리낄 애, 礙와 同字
▷經. 뜻에 걸림이 없다.
▶ 論. 云何名'意無罣㝵'? 菩薩於一切 怨 親 非怨 非親人中 等心無有㝵。
▷論. 무엇을 뜻에 걸림이 없는 것이라 (apratihatacittaiḥ) 하는가? 보살은 온갖 원수나 친척, 또는 원수도 친척도 아닌 모든 사람들을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니 걸림이 없으며,
復次 一切世界衆生中 若來侵害 心不恚恨, 若種種恭敬 亦不喜悅。如偈說; 侵 침범할 침,
또한 일체 세계의 모든 중생들 중에서 만약 누군가가 와서 침해하여도 성내고 원한을 품지 않으며, 또한 갖가지 방법으로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으니, 마치 게송의 말씀과 같으니라.
侵害침해= 남의 권리나 재산 따위를 함부로 침범하여 손해를 끼침
諸佛菩薩 心不愛著
모든 부처님과 보살께서는 마음으로 애착하지 않고
外道惡人 心不憎恚 憎 미워할 증, 恚 성낼 에
외도나 악인이라도, 증오하거나 화내지 않네.
如是淸淨 名爲意無罣㝵。復次 於諸法中 心無㝵。
이와 같이 청정함을 ‘뜻에 걸림이 없다’고 말하며, 또한 제법에 대하여서도 마음에 걸림이 없느니라.
問曰, 是菩薩 未得佛道 未得一切智 云何於諸法中 心無㝵?
묻나니, 이 보살은 아직 불도를 얻지 못하였으며, 아직 일체지를 얻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제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불(佛)' 이란 '허공의 법칙' 이고 '참다운 이치' 이고,
'도(道)' 란 실체가 없는 마음으로서의 '나' 즉 '투명인간과 같은 마음' 이 흐르는 것이니 '정신의 무한한 흐름' 이라는 것을 알아야하는 것이다.- 마음길 독서
答曰, 是菩薩 得無量淸淨智慧故 於諸法中 心無㝵。
답하나니, 이 보살은 한량없고 청정한 지혜를 얻었기에, 제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된 것이니라.
問曰, 諸菩薩 未得佛道故 不應有無量智, 有殘結故 不應有淸淨智。
묻나니, 보살들은 아직 불도를 얻지 못하였음에 한량없는 지혜가 있을 수 없고, 남은 번뇌=殘結(잔결)이 있음에 청정한 지혜을 얻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答曰, 是諸菩薩 非三界中 結業肉身 皆得法身自在 過老病死, 憐愍衆生故 在世界中行, 爲莊嚴佛土 教化衆生, 已得自在 欲成佛能成。
답하나니, 이 보살들은 삼계 안에서 업으로 맺어진 육신이 아니다. 모두가 법신이 자재하여 노ㆍ병ㆍ사를 초월하였으나,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세상 가운데에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 교화를 행하나, 이미 (제법의 실상을 터득하여) 자재를 얻었으니, 부처가 되고자 원하기만 한다면 능히 성불을 이루느니라.
問曰, 如法身菩薩 則與佛無異 何以名爲菩薩? 何以禮佛 聽法? 若與佛異 云何有 無量淸淨智?
묻나니, 법신 보살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보살'이라 하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부처님을 예경하고 설법을 듣는 것입니까? 만일 부처님과 다르다면 어찌하여 한량없는 청정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법신보살(法身菩薩)=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원융무애한 가르침을 증득한 보살로, 생사에 상즉(相卽)해서 실상(實相)의 도리를 이해한 '법화경'에서의 보살을 의미한다. 즉, 부처님의 뜻으로 색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와서, 중생들에게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불법을 가르쳐, 일불승인 '법화경'에 들게 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보살을 말한다. 흔히 수행을 거듭한 결과, 진여의 진상(眞相)을 일부분씩 계속해서 깨닫고 있는 보살, 혹은 법화(法華)의 깨달음을 얻은 보살을 말하는데, 십지(十地) 이상에 오른 보살을 말한다. - 아미산
答曰, 是菩薩 雖爲法身 無老病死 與佛小異。譬如月十四日 衆人生疑 若滿若不滿
답하나니, 이 보살이 비록 법신의 경지에 이르러 노ㆍ병ㆍ사의 고통은 없이 하였으나 부처님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마치 열나흘 날의 달을 보면, 혹은 꽉 찼는지 혹은 아직 꽉 차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의심을 내는 것과 같이,
菩薩如是 雖能作佛 能說法 然未實成佛。佛如月十五日 滿足無疑。
보살 역시도 그와 같아서, 비록 능히 부처가 되어 법을 설할 수 있으나 아직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니, 부처님은 달이 보름을 꽉 채워서 의심할 여지가 없음과 같은 것이니라.
復次 無量淸淨 有二種 一者 實有量 於不能量者 謂之無量。譬如海水 如恒河沙等 人不能量 名爲無量, 於諸佛菩薩 非爲無量。
또한 무량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로 한량이 있으나 헤아릴 수 없기에 그냥 무량하다고 하는 것이라. 마치 바닷물이나 항하의 모래 등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그냥 무량하다고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들의 무량함이 되지는 못하는 바,
菩薩無量淸淨智 亦復如是 於諸天人 及聲聞 辟支佛 所不能量 名爲無量智, 菩薩得無生道時 諸結使斷故 得淸淨智。
보살의 무량한 청정지혜 역시도 이와 같으니, 하늘이나 인간 및 성문ㆍ벽지불들이 헤아리지 못하므로 무량한 지혜라 하며, 보살이 무생도(무생법인)를 얻었을 때, 모든 번뇌=結使(결사)를 끊어 낸 까닭에 청정한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니라.
問曰, 若爾時已斷諸結 成佛時 復何所斷?
묻나니, 만일 무생도(무생법인)를 얻었을 때에 이미 모든 번뇌를 끊었다면 성불할 때에는 다시 무엇을 끊는 것입니까?
答曰, 是淸淨有二種 一者 得佛時 除結都盡 得實淸淨, 二者 菩薩捨肉身 得法身時 斷諸結淸淨。
답하나니, 이러한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가 될 때 나머지 번뇌를 끝까지 다 제거하여 실로 청정함(청정한 지혜인 반야바라밀)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이 육신을 버리고 법신을 얻을 때에 모든 번뇌를 끊고 청정해지는 것이다.
譬如一燈能除闇 得有所作 更有大燈 倍復明了。
비유하자면, 하나의 등불으로도 능히 어두움을 제거하여 일을 할 수는 있으나, 다시 큰 등불이 있으면 더욱더 밝은 것과 같으니,
佛及菩薩 斷諸結使 亦復如是 菩薩所斷 雖曰已斷 於佛所斷猶爲未盡。是名 '得無量淸淨智故 於諸法中意無罣㝵'。
부처님을 비롯하여 보살이 모든 번뇌를 끊는 것도 이와 같이 보살들이 비록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었다고는 하나 부처님께서 끊은 것에 비하면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라. 이를 ‘무향한 청정지혜를 얻는 까닭에 모든 법에서 뜻에 걸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 經. 大忍成就。
▷ 經. 대인을 성취하다.
▶ 論. 問曰 先已說等忍 法忍 今何以故復說 '大忍成就'?
▷論. 묻나니, 앞에서 이미 등인과 법인을 말하셨거늘 어찌하여 이제 다시 ‘대인을 성취했다’는 것입니까?
答曰, 此二忍增長 名爲大忍。
답하나니, 이 두 가지 인(등인과 법인)을 증장시킴을 대인이라 한다.
復次 等忍在衆生中 一切能忍, 柔順法忍 於深法中忍。
또한 등인은 중생과 함께하면서 모든 것을 능히 참아 유순하는 것(유순인)이요, 법인은 깊은 법에 대하여 참는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此二忍 增長作證, 得無生忍, 最後肉身 悉見十方諸佛 化現在前 於空中坐 是名 '大忍成就'。
이 두 가지 인이 자라나면 무생인(무생법인)을 증득하게 되고, 최후의 육신으로 시방의 부처님들이 화현해서 앞에 나타나시거나 공중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되나니, 이것이 대인을 성취한 것이라 한다.
譬如 聲聞法中 煖法增長 名爲頂法, 頂法增長 名爲忍法, 更無異法 增長爲異。等忍 大忍 亦復如是。
비유하자면, 성문의 법 가운데 난법(煖法)이 자라남을 정법(頂法)이라 하고, 정법이 자라남을 인법(忍法)이라 함과 같으니, 다시 다른 법과 차이가 없으나, 자라남에 차이가 있으니, 등인과 대인(大忍)도 역시 그러하며, 또한 두 가지의 인(忍)이 있으니,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니라.
인욕의 4인(四忍);
① 복인(伏忍)은 비위에 거슬리거나 괴로움을 당해 성이나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해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逆境)만 참아서는 안 되고,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번뇌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② 유순인(柔順忍)은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돼져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복인을 통해 마음이 다스려지면 역경이나 순경을 당했을 때 스스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③ 무생인(無生忍)은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으로서, 인생이 무상하고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불생불멸(不生不滅)임을 깨달으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어지는 경지이다.
④ 적멸인(寂滅忍)은 인욕행을 애써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음을 체득해 인욕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는 부처의 경지에 오른 인욕바라밀로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고 적멸한 경지인 열반에 드는 것이다.- 아미산
두 가지 인욕에서는
생인(生忍)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참는 마음이다. 사람과의 사이에 온갖 갈등을 참는 것을 말한다.
법인(法忍)= 자연계를 대상으로 해서 참는 마음이다. 여기서 법(法)은 사물을 뜻한다. 사물에 대해서 참는다는 것은 비ㆍ바람ㆍ더위ㆍ추위와 수재⋅풍재⋅화재 등 자연계의 모든 재난에 대해서 참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서 참는 것만이 인욕이 아니라, 자연계와 일체의 사물에서 오는 고통마저 참는 것도 인욕에 포함된다. - 아미산
復次 有二種忍 生忍 法忍, 生忍名衆生中忍, 如恒河沙劫等衆生 種種加惡, 心不瞋恚, 種種恭敬供養 心不歡喜。
생인(生忍)이라 함은 중생들 가운데서 묵묵히 참는 것을 말하니,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에 중생들이 갖가지로 괴롭힌다고 하여도 성내지 않고, 갖가지로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라.
復次 觀衆生無初 若有初則 無因緣, 若有因緣 則無初, 若無初 亦應無後. 何以故? 初後相待故 若無初後 中亦應無。
또한 중생을 관찰함에 처음이 없는 것으로, 만약 처음이 있으면 인연이 없고(인연도 없이 중생이 있게 되고), 만약 인연이 있으면 처음이 없으며, 처음이 없으면 나중도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처음과 나중은 서로 기다리기 때문이며, 만약 처음과 나중이 없다면 중간도 없으리니,
(처음이라는 실마리가 있으므로 나중이라는 갈무리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게 되는 까닭에, 만약 맨 처음에 실상(實相)이 없다면 나중도 없어야 하고 중간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如是觀時 不墮常 斷二邊, 用安隱道 觀衆生 不生邪見 是名生忍。甚深法中 心無罣㝵 是名法忍。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항상하다는 상견(常見)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단견(斷見)의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으며, 근심 걱정이 없는 안은도(安隱道)에 의하여 중생을 관찰함에 사견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를 생인이라 하고, 매우 깊은 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이를 법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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