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持世菩薩(지세보살) 

[보살(菩薩) बोधिसत्त 보디삿따(Bodhisatta) बोधिसत्त्व(Bodhisattva) 菩提薩埵(보리살타)

*대승불교의 보살 개념은 설일체유부 등의 부파불교를 비판하면서 새로이 생겨났다. 북방에서 위빳사나 수행이 사라지고 불교 이론이 전개되면서 기존의 '개인의 해탈 추구'에 대한 일반 신도의 불만이 생겨났으며, 이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대승불교가 생겨나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단순히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성자)가 아닌, 만인을 구원하는 부처가 되기 위해 지상에서 윤회를 겪으며 사람들을 구제하며 수행을 하는 이들을 보살이라 부르게 됐다.
이후 의미가 확장, 모든 불교 수행을 하는 신도를 전부 보살이라 하게 되었다. 이는 만인에게 불성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된다는 사상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의 의미는 상당히 넓어서, 초기에는 대승불교 계통의 승려 중에 수양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고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신화적인 보살이 더해졌다.
대승불교의 보살들은 단순히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자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보다 등급이 낮은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든 부처나 나한(아라한)보다 보살이 더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맛지마 니까야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 역시 인간 세상에 화생하기 직전에는 천상에서 호명보살이라는 이름의 보살로써 존재하고 있었으며, '관음삼매경'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석가모니보다 먼저 부처가 된 정법명왕여래로 석가모니 전생의 스승이었는데 중생 구제를 위해 스스로 부처에서 보살로 내려왔다. 티베트 불교도 최고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고 2인자인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지장보살의 경우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열반할 때까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고 하여 보살로 남아 있으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역시 원래는 부처지만 불법을 통한 중생의 계도를 위해 보살로 내려왔다. 문수보살은 과거 7불의 스승이다. 중국 산시성의 오대산(우타이 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다.
현재 한국 불교에서는 흔히 여자 신도를 높여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남자 신도는 거사나 처사라고 한다. 사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오용돼있는 사례지만 이미 관습상 굳어진 것이다.
*초기불교와 남방불교의 입장,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은 불법이 없던 오랜 기간 후에 처음으로 불법을 가르치는 존재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데, 이 경우는 특히 정등각자(正等覺者, 삼마삼붓다)로 불린다. 그리고 이 삼마삼붓다가 열반을 깨닫기 전 수행자 시절을 보디삿따(보살)이라 부른다. 초기불교에서 보살은 닙바나(Nibbāna)를 체험하여 부처님이 되기 전의 존재로서 전 우주시대를 아우르는 초인적인 존재다.
특히 삼마삼붓다(Sammā-sam-buddha)는 오랜 공겁 시대를 지나 닙바나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편 사람이다. 그래서 우주의 시대는 부처님에 의해서 구분되고 한 우주에 부처님, 특히 정등각자는 오직 한 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하나라도, 소문으로든 글로든 전설로든 남아 있는 한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부처님이 될 수 없고, 오직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를 공겁(空劫) 시대라고 하며, 공겁 시대가 끝나고 인간 수명이 8만 살일 때 다음 부처님이 닙바나의 가르침을 펴는데, 이 분이 멧떼이야(Metteyya) 부처님이다. 공겁 시대를 지나 새로 가르침을 펼 수 있는 분들은 참으로 비범한 존재여서 아라한으로만 끝날 분이 아니다. 이런 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즉시 아라한이 될 수 있고, 아라한이 되면 더 이상의 윤회는 없기 때문에 다음 부처님 시대를 준비하는 보살이 될 수 없으므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초기불교에 따르면, 보살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든가 보살이 설법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초기불교 경전에서 보살의 청법(聽法), 설법하는 모습이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초기불교 입장에서는 보살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든가, 보살이 설법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전은 다 위경이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초기 불교에서 보살은 4아승기와 십만 대겁을 두고 온갖 바라밀을 쌓는 존재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0년 동안 별 탈 없이 불법(佛法)을 새로이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4아승기 십만 대겁의 공덕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들 중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람들도 있었다. 전생에 부모를 죽인 목건련 존자는 이교도로부터 몰매를 맞아 죽었다. 전생이나 현생의 공덕이 부족하므로... 4아승기와 십만 대겁의 스케일로 온갖 공덕과 바라밀을 행해야 불법을 새로이 펴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 그리고 보살은 마지막 생까지는 초기불교의 성위 4과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본생경에서도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으로서 선정(사마타)을 닦고 바라밀을 쌓는 인간 보살들이 등장하지만, 대개는 이를 통해 쌓은 공덕으로 죽은 뒤 천신이 되는 선에서 끝난다.
기원전 1세기에 성립된 붓다왐사(Buddhavamsa, 佛種姓經)에 따르면, 수메다 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로서의 생이 되기 전에는 수행을 했지만 위빳사나의 16단계 지혜 중 형성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 ñāṇā)까지는 이루었지만, 종성(種姓)의 지혜로 가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일단 종성의 지혜로 들어가면 바로 형성평온의 지혜로 후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종성의 지혜(도의 지혜)를 거쳐 닙바나를 체험하면 최소한 수다원과는 얻는다.
그런데 수다원과를 얻으면 그 뒤로 7번 환생한 뒤 해탈하므로 4아승기 10만 대겁 뒤의 다음 우주 시대에 붓다가 되는 보살행을 완수할 수 없다. 연등불께서도 수메다 행자가 삼마삼붓다가 되시겠다고 발심했을 때, 찬탄하고 “4아승기(阿僧祗) 십만 대겁 후에 부처가 되리니, 그때의 명호를 석가모니라 이를 것이다.”라며 축복하셨지만, 깨달음에 관한 말씀은 일언반구도 않고 떠나셨다. 연등불께서 깨달음에 대해 한 마디 하면 수메다 보살은 최소한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보살행은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당시 지혜 보살이신 수메다는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4구게 중 세 번째 구절이 끝나기 전에 바로 아라한이 될 만한 지혜를 갖춘 분이셨다고 한다. 따라서 보살은 부처님의 설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음 붓다 시대를 준비하는 보살은 이미 멧떼이야(Metteyya), 즉 미륵불이 되실 분으로 내정되었다. 즉, 향후 확정된 보살은 멧떼이야 부처가 되실 한 사람뿐이다. 지금 시대에 사실상 보살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시대에 혹시라도 보살이 되기를 서원하는 사람은 이미 한 사람으로 예약이 차 있기 때문에, 멧떼이야 붓다 시대 지난 후 아주 먼 미래 뒤를 위하여 깨달음을 미루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불교 수행자는 성문(聲聞)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한 분뿐인 보살은 부처님 같이 되려고 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를 유지하는, 지금 부처님 시대가 지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흔적도 없는 시대에 다시 불법을 펼 존재다. 그리하여 수메다 보살을 연등불께서도 찬탄하고 연등불의 제자들도 찬탄하지만, 모두들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 없이 입적했다.]


佛告持世菩薩(불고지세보살)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
부처님께서는 지세보살(Jagatidhar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서 문병을 하도록 하라.”

The Buddhas said to bodhisattva World Upholder, Go to Vimalakirti and ask him about his illness. 

持世白佛言(지세백불언) 世尊(세존)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

지세보살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World Upholder said to the Buddha, World Honoured One! I am not qualified to ask him about his illness. 

所以者何(소이자하) 憶念我昔(억념아석) 住於靜室(주어정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저는 조용한 방에 있었는데, 

What is the reason for this? I remembered that in the past, I was staying in a quiet room 

[마구니를,파순은 아귀이며, 불교에서는 불교의 이치를 반대하거나, 사람을 악한 쪽으로 인도하여 진리와 등지게 하는 것을 마구니라 합니다.

보통 3가지 악(삼악)을 말하는데 첫째는 보통악, 두 번째는 대악 그리고 세 번째는 악중악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가해를 행할 때 그에 대하여 욕이나 신체적 보복으로 대처하는 것, 중생사가 으레히 그렇듯이 그냥 남에게 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은 누구나 저지르는 보통악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남이 나를 악하게 한 것에 대한 과보를 되갚는다는 것이지만, 불교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악은 악인데 보통 악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상대가 나에게 악을 가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까닭없이 남을 해롭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악을 대악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큰 악중 악은 나에게 존경과 공양과 온갖 선의를 다하는데, 내가 오히려 반대로 악으로써 되갚는 것은 악중 악입니다.

법구경에서 원한은 원한으로서 갚으면 그 원한은 끝이 없나니라 오직 참으로써만이 그 원한은 사라지나니라 했습니다.

내가 당했다고 갚으면 저쪽에서 또 그 이자까지 붙여서 또 갚고 또 이쪽에서 또 갚고 갚으면, 그것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 참고 풀어야 그 윤회가 끝나는 것입니다. 波旬은 악이라는 말입니다]

 

時魔波旬(시마파순) 從萬二千天女(종만이천천녀) 狀如帝釋(상여제석)

鼓樂絃歌(고악현가) 來詣我所(내예아소)

鼓 북 고, 絃 악기줄 현, 밧줄 현, 歌 노래 가. 絃歌현가=현악기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

그 때 마왕 파순이 1만 2천의 천녀를 거느리고 마치 제석천과 같이 꾸며서 북을 치며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when the demon Mara visited me, while accompanied by twelve thousand celestial madens, and came to me resembling Sakra, accompanied by music and songs. 

[마왕 파순(魔波旬)= Mra Ppīyn의 음사(音寫)가 잘못되어 파순(波旬)으로 되었다. 악애(惡愛), 살인자(殺人者), 악자(惡者)라고 번역한다. 파순(波旬), 파피야의 음역. 파순유(波旬喩), 파비연, 파비(播裨), 파비야(波卑夜), 악자(惡者), 악물(惡物), 악애(惡愛), 살자(殺者). 마구니, 마(魔)는 ‘인명(人命)을 죽게 하는 것이나, ’장애하다‘ ’요란하게 한다, 파괴한다'는 범어(梵語) māra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마(魔)의 왕(王)은 파순(波旬)으로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이며, 팔만사천 마구니와 그 권속들(마의 백성 - 마민(魔民) )의 의 왕입니다.  
'파사론(破邪論)'에 ‘부처님께서는 ‘혜명(慧命)=지혜의 목숨을 끊는 것을 마(魔)라고 하느니라그리고 마(魔)에 걸리면 항상 방일(放逸)해지고 해태(懈怠)하여서 일념으로 공부하지 못하니까 혜명=지혜의 목숨을 끊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마구니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경지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일체법은 다 마구니이다. 내가 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인(人) ・ 사(事) ・ 물(物) ・ 현상이 전부 마(魔)가 될 수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마(魔)는 3마, 4마, 5마, 10마, 광범위하게는 팔만사천(八萬四千)가 있다고 하나, 그 대표적인 십마(十魔)를 들면, ①오온마(五蘊魔)=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 또는 오온의 중악(衆惡)으로 인해서 정도(正道)를 방해하고 혜명(慧命)을 끊는 것. 번뇌마(煩惱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업마(業魔)=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등의 악업(惡業) ④마음의 마[心魔]= 아만심(我慢心), ‘내가 잘났다, 내가 옳다, 내가 유식하다, 내가 부자다라는 아만심. 아만심을 좋게 해석을 해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자존심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참선하는 사람은 ‘나야말로 참으로 발심한 사람이요, 나야말로 계행이 청정한 사람이요, 나야말로 청정한 수행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공부에 크게 방해가 되는 마구니가 되는 것. 사마(死魔)= 사람의 목숨은 한계가 있어서 병들어 죽어버리면 도(道)를 닦지 못하여 혜명을 얻지 못한다.
⑥천마(天魔)=욕계(欲界) 육천(六天)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을 주재하는 왕(王)으로, 불보살, 또는 불제자(佛弟子)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악으로 유혹하는 마왕(魔王). 선근마(善根魔) 삼매마(三昧魔)= 선정(禪定)의 마(魔). 삼매의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에 탐착(貪着)해서 즐기고 있으면 비록 오신통(五神通)을 얻는다고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얻지 못하는 것. 선지식마(善知識魔)= 비록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선지식이 되었다 하여도 자기가 얻은 법에 간탐심(慳貪心)이 나서 남한테 설하지 않는 것. ⑩보리심마(菩提心魔)=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수행을 해서 얻은 지혜, 각견(覺見)에 집착하는 것. '금강경'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을 때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하면 이는 벌써 아견(我見) ・ 인견(人見) ・ 중생견(衆生見) ・ 수자견(壽者見)에 떨어진 것이라서, 이것은 아라한이라 할 수가 없다고 했듯이 각견(覺見)에 집착하면 찰나간에 마구니에 포섭이 된 것이다.]

與其眷屬(여기권속) 稽首我足(계수아족) 合掌恭敬(합장공경) 於一面立(어일면립)

제 발에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두 손을 합장하고 나서 한쪽에 늘어섰습니다. 

Then, whith his subordinates, he bowed down, touched my feet with their heads, respectfully joined his palms in respect, and stood to one side. 

[合掌恭敬하야 於一面立이어늘 - 전부 나를 향해 서서 합장공양하고 우러러 보고 있더라.]

 

我意謂是帝釋(아의위시제석) 而語之言(이어지언)

저는 마음속으로 이들을 제석천이라고 생각하고 말하였으니,
I assumed it was Sakra and said to him, 

[경전에 보면 의례히 수행사문에 제천, 제석천왕이 제석천에서 의식을 대어준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왕은 대게 공부하는 사람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세보살이 공부하다가 그런 모습을 하고 온 사람은 분명히 제석천왕일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善來憍尸迦(선래 교시가) 雖福應有(수복응유) 不當自恣(불당자자) 恣 방자할 자,

잘 오시었소, 교시가(Kauika)여. 그대에게 비록 복덕이 마땅히 갖추어져 있다 하여도 스스로 방자해서는 안됩니다. 

Welcome, Kausika! Although you are fortunate, you shouldn’t be so self-indulgent. 

[尸迦는 제석천왕의 성이며, 尸迦라는 낱말의 본래 뜻은 누에꼬치라는 말입니다]

[지세보살은 마왕파순이 제석천왕인줄 알고 '비록 당신이 천이백 천녀를 거느릴 정도의 복(법)은 있지만, 응당히 스스로 그렇게 방자하게 함부로 수용할 것은 아니라고 충고를 한 것입니다]   

 

當觀五欲無常(당관오욕무상) 以求善本(이구선본) 於身命財而修堅法(어신명재이수견법)

마땅히 5욕은 무상하다고 관하고, 이로써 공덕의 근본=善本을 구하며, 신체와 목숨과 재물, 이 세 가지를 견고하게 간직할 수 있는 수행=堅法을 닦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You should observe the impermanence of the five desire, pursue the root of goodness, and cultivate the solid Dharma with your body, life, and wealth. 

[마땅히 오욕락(五慾樂)= 재(財), 색(色), 식(食), 명(名), 수(壽) -불교적으로 보면 불선법-이 무상함을 관해서 선의 근본을 구할 것이며,→이것은 불선에서 선법을 구해라는 말입니다.

'법연사계'의 첫마디가 福不可受盡이라, 복이 설사 있다 하여도 그것을 다 받아 써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勢不可使盡이라 → 세력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휘두르지 마라.  

好語不可說盡이라 → 좋은 말이라고 해서 해버리지 말라.

規矩不可行盡이라 → 규범, 법규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다 적용시키지 말라. 즉 융통성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身命財=여기서 말하는 신체와 목숨과 재물의 세 가지를 수행을 통하여 끝이 없는 영원한 것으로 이루는 것을 삼견법(三堅法: 즉 세가지 견고한 법신, 혜명, 법재를 얻는 수행)이라고 한다.]

[삼견법(三堅法)-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견고하게 붙들어 쥐려고 하는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몸'과 '목숨'과 '재물' 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견고하게 붙잡고자 하여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한 이 세 가지를 영원히 지켜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불보살님들께서는 '佛身(법신,보신,화신으로 이루어진)'과 '영원한 수명'과 '무한한 보배공덕'을 얻는 진정한 3견법을 일러주신다.]

 

卽語我言(즉어아언) 正士(정사) 受是萬二千天女(수시만이천천녀) 可備掃灑(가비소쇄)

掃 쓸 소, 灑 뿌릴 쇄, 掃灑소쇄=비로 쓸고 물을 뿌림

저의 이러한 말에 그(파순)가 곧 말하기를, 
보살=正士시여, 이 1만 2천의 천녀를 받아 주셔서 씻고 닦는 일을 시켜 주십시오.

He said to me, Good sir, please accept these twelve thousand celestial maidens that can serve and sweep for you.

['현겁경(賢劫經)' 제1권에 ‘개사(開士)’와 ‘정사(正士)’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들은 보살(菩薩)의 두드러진 성향이나 능력을 분별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분을 나타내는 칭호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많은 보살 가운데 특정 보살에게만 이런 칭호를 붙인 것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개사(開士)는 그 많은 보살 가운데 부처님께 질문을 하는 희왕보살에게만 썼고, 정사(正士)는 여덟 명의 보살에게만 국한하여 썼다. 여기서 말하는 개사란, 부처가 되는 바른길을 열어서 인도하는 스승 격의 보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정사(正士)란 작은 집착이나 삿된 소견 따위를 모두 여의고 바른 법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 말하는 보살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들우물]

 

我言(아언) 憍尸迦(교시가)

저는 교시가에게 말하되,

無以此非法之物要我沙門釋子(무이차비법지물요아사문석자)

此非我宜(차미아의) 

‘교시가여, 이는 법도에 맞지 않는 일이라 제게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釋子(수행자)인 사문으로 이는 저에게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I said, Kausika, as a monk and disciple of Shakyamuni, do not impose on me such unlawful things. I don’t want them. It is not proper for me. 

[非法之物= 법답지 못한 이 물건으로서 나 이 사문 석자 사문= 수행자 석자, 부처님의 아들, 부처님의 제자에게 강요 또는 유혹하지마라]

[고대 인도에는 바라문(婆羅門, brahman)과 사문(沙門, sāmaña)이라는 두 부류의 종교인이 있었다. 바라문은 전통적인 브라만교인으로 '베다'를 신봉하는 브라만계급이고, 이외의 출가 수행자를 사문이라 했다. 즉, 바라문에 대항해 새로운 정신적 수행자(지도자)로 등장한 사람들을 사문이라 일컬었다. 당연히 불교도도 사문의 하나였다.

이와 같이 부처님 당시의 인도사회에는 각양각색의 종교가나 사상가가 등장해 일가견을 이룸으로써, 가히 이 시대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 할만 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기존의 권위체계가 도전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원래 북방유목민족이었던 아리안족이 인도라는 신천지에 들어와 농경생활에 정착하면서 생산력의 신장으로 사회의 안정을 구축하게 된 과정에서 농업의 신장은 가내수공업을 발전시켰고, 이로 인한 잉여생산물은 상공업을 발달시켰다.

이렇게 경제력이 신장됨으로써 농경사회의 절대적 권위였던 사제(司祭), 즉 브라만계급은 그 권위가 실추되기에 이른다.다시 말해서 제2계급인 왕족, 귀족과 제3계급인 상인들이 제휴함으로써 브라만의 권위가 실추되고, 이 두 계급의 사람들이 브라만이 독점한 정신문화의 대열에 뛰어듦으로써 자유로운 사상이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신흥종교가 또는 사상가를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사문(沙門, samana)이라 불렀다. 이들은 현실생활 속에서 인생의 의의를 찾으려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또 한편으로는 인생의 모든 향락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출가해 수행에 전념하기도 했다.
자유사상가인 사문(沙門)은 바라문과는 달리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를 무시해 어떠한 계급도 사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모든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등 브라만교에 비판적이었다. 
언어적으로도 바라문의 용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언어에 근거한 프라크리트어(Prakrit, 俗語)를 사용했다. 초기불교 언어인 빠알리어도 프라크리트어의 일종이다.

그들은 브라만교에서 규정한 네 가지 생활단계에도 따르지 않았다. 네 가지 생활단계란,
• 스승 밑에서 학습하는 청년시절의 범행기(梵行期), •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 가정과 재산을 아들에서 물려주고 숲 속에 들어가 은거하는 임서기(林捿期), • 숲 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로 걸식하고 편력하는 생활에 들어가는 유행기(遊行期). 
사문들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기에 출가해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행생활에 들어가 여러 가지 수행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설했다. 바라문을 정통사상가라고 한다면 사문은 이단적인 자유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장아함경> 제1권 <대본경(大本經)>에는 “사문이란 은혜와 사랑을 끊고 집을 떠나 도를 닦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해 바깥 욕망에 물들지 않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는다. 괴로움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고, 즐거움을 만나도 기뻐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잘 참는 것이 마치 대지(大地)와 같다. 그러므로 사문이라 한다.”
위의 글은 붓다가 출가하기 전 태자 시절에 지나가는 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마부에게 물었을 때, 마부가 지나가는 사람이 사문이라며, 사문에 대해 설명을 하는 대목이다. 당시 사문이 상당한 수준의 수행을 쌓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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