諸煩惱是道場(제번뇌시도량知如實故(지여실고)

온갖 번뇌가 도량이니, (무명번뇌의 본바탕이 불성임을여실하게 알게 하기 때문이며, 

All afflictions are the place of awakening, to know the reality of suchness. 

[우리는 번뇌를 떨쳐버릴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이 번뇌 때문에 기도가 안 되고, 이 번뇌 때문에 공부가 안 되는데, 번뇌가 도량, 번뇌가 그대로 깨달음의 좋은 조건이라 했으니, 그러면 번뇌가 많으면 많을수록 깨달음이 커진다고도 해석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知如實故=여실하게 사실과 같은 줄 아는 연고다. 번뇌가 없으면 실다운 것을 모른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衆生是道場(중생시도량知無我故(지무아고)

중생이 도량이니중생이 무아임을 알게 하기 때문이며,

Sentient beings are the place of awakening to know the emptiness of the self.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 이름이 중생이지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 중생이라고 하는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

 

一切法是道場(일체법시도량知諸法空故(지제법공고)

일체법이 도량이니제법의 실성이 공함을 알게 하기 때문이며, 

All Dharmas are the place of awakening, knowing the emptiness of all Dharmas. 

[知諸法空故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아는 연고다. 일체법 하나하나에서 공함을 알면 그대로 깨달음에 이른다.]  

 

降魔是道場(항마시도량不傾動故(불경동고)

마군을 항복 받는=降魔 도량이니, (악마로 인하여 마음이) 動=움직이고 傾=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Subduing of demons is the place of awakening because there is no wavering. 

[마구니의 항복을 받으면 끄달리지도 않고 어디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三界是道場(삼계시도량無所趣故(무소취고)

삼계가 도량이니, (마음이 업에 얽매이지 않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The three realms are the place of awakening because it’s free from having a certain a direction. 

[삼계(三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는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즉 출세간(出世間)에 이르지 못한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말하며, 바로 인간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곧 이 ‘우주’, 좁게는 이 지구를 말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삼계는 원래 고대 인도인들의 우주관으로서 이 우주에 삼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중생이 살고 있는 삼계를 도덕적인 표준으로 삼아, 정신상의 수행단계로 보고 있다. 
• 욕계는 음식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욕망, 수면에 대한 욕망, 재산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치성한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 색계의 색(色)은 형체로 육체를 말하며, 육체가 있지만 욕심이 없는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 무색계는 형체가 없어 육체가 보이지 않는 신이나 부처님, 천인(天人) 등의 경계를 말한다. 
중생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와 천상, 삼계는 욕심도 있고, 육체도 있고, 동물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생리적인 현상도 있으며, 부처의 정신, 자비심도 있는 곳으로, 이를 세간(世間)이라고도 한다. 
불교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 윤회한다는 3단계 미망의 세계이
나 엄격하게 말하면, 삼계에서 욕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지구)이고, 색계와 무색계는 우리가 사는, 현세인이 사는 이 우주와 무관한 상상으로 시설된 세계이다. 욕계⋅색계가 물질적 세계라면, 무색계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 정신세계이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 중에서도 특히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를 욕계라고 하고, 욕망이 배제된 세계를 색계라고 한다. 욕계보다는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보다 뛰어난 세계이다. 따라서 욕계가 가장 아래에 위치한 이 세계이고, 색계ㆍ무색계는 이 우주 밖에 위치한 상상의 세계이다. 
① 욕계(欲界)는 맨 아래에 있으며 애욕, 재욕, 식욕, 성욕, 명예욕의 오욕 등 온갖 욕망이 창궐하는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이다. 그리고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의 4악취(惡趣)와 인간ㆍ천상의 육도(六道)가 여기에 속한다. 4악취(惡趣)와 인간인 인취(人趣)를 더하면 오취(五趣)가 된다. 그리고 천상에는 사왕천, 도리천(33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 소위 욕계 6천(六天-六欲天)이 있다. 그래서 욕계엔 5취와 육욕천(六欲天)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욕계에는 우리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라 지옥과 ‘욕계 천상’도 포함된다.

② 색계(色界), 욕계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天人)이 거주하는 천상이다. 색(色)= 물질의 물질세계이지만 욕망을 끊어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청정세계이다. 이 세계에 거주하는 중생들은 음욕을 떠나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으나 청정하고 미세한 색법에 묶여 있으므로 색계라 한다. 물질적인 것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한 세계로 남녀구별이 없다. 이곳에는 천상인 사선천(四禪天)이 있다.
③ 무색계(無色界), 육체를 가지지 않고 오직 정신적 요소만 있는 세계. 무색계는 색 아닌 법체의 세계로서 물질과 공간 개념을 초월한, 형질이 없는 허공 자체이자,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이다. 무념무상의 정(定:三昧)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 삶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미혹의 중생세계이다. 
색계와 무색계는 정(定)의 세계이고 일종의 정신세계임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인도 신화에서 뇌성벽력의 주재자인 인드라(Indra)가 불교로 수용되면서 선신(善神)인 제석천(帝釋天)이 됐다. 이와 같이 불교는 인도의 신격을 거부하지 않고 자기화 과정을 통해 수용했다. 삼계에 대한 소박한 믿음도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도인 특유의 염원을 수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 고유의 사상을 수용해서 삼계라는 우주관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삼계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마음에 있는 여러 현상이 외부로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계층조직을 그대로 투영한 것으로, 이것을 정신적 깊이나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 삼계(三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계는 세상(bhumi/loka)과 마음(citta)의 두 가지에 다 적용되는 용어라는 점이다. 
먼저 세상으로서의 삼계(三界)를 살펴보면,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육욕천(六欲天)]이라는 무리들이 사는 곳이다. 이 중에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를 4악취(惡趣), 인간은 인취(人趣), 그래서 욕계는 5취가 거주하고, 육욕천(욕계 6천)이 있는 곳이다. 
색계는 초선천(初禪天)부터 사선천(四禪天)까지의 18가지 색계천(色界天)이다. 단, 18천 이외에 16천, 17천, 22천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 무색계는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부터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까지 4가지 무색계천(無色界天)이다. 
즉 그러하여 5취+욕계 6천+색계 18천+무색계 4천=33천으로 구성된 것이 삼계이다. (욕계 육천(六天) 중 제2천인 도리천(忉利天)에도 삼십삼천(三十三天)이 있으므로 두 종류의 33천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세상(삼계)은 모두 중생들 마음의 반영이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했다. 
욕계는 다양한 감각적 욕망에 휩싸인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사는 곳이다. 
색계는 색계선(色界禪)이라 불리는 초선부터 사선까지의 선정(禪定)의 심리상태에 있는 중생들이 머무는 곳이고, 
무색계는 무색계 사선(無色界四禪)의 심리상태를 가진 중생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러한 심리상태, 즉 마음을 분류해보면 다음 넷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① 욕계마음(kāmāvacara-citta), 욕계마음은 선정 즉 근본집중의 경지에 들지 않은 나머지 모든 심리상태
② 색계마음(rūpāvacara-citta), 초선부터 제4선까지의 근본집중(appanā-samādhi)에 든 심리상태를 뜻
③ 무색계마음(arūpāvacara-citta), 무색계선에 든 상태를 뜻
④ 출세간의 마음(lokuttara-citta), 열반에 든 심리상태 등의 넷으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욕계에 있는 인간이 초선에 들어있으면 그때 그의 몸은 욕계에 머물지만 색계마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욕계에 있는 인간이 열반을 실현하면 그의 몸은 욕계에 머물지만 그의 마음은 삼계를 벗어난 출세간의 경지에 가있다.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대오(大悟)해서 멸진정(滅盡定)에 든 선지식은 비록 몸은 현세에 있지만 그분의 마음은 출세간의 경지인 열반(극락)에 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삼계는 세상과 마음의 두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고, 삼계를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선정
(근본집중)이다. 따라서 색계와 무색계는 근본집중(禪定)의 증득 없이는 불가능한 마음이고 세상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은 “계(戒, sīla)는 나쁜 세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내고, 집중(定, samādhi)은 욕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내며, 지혜(慧, paññā)는 모든 존재(삼계)를 뛰어넘는 수단을 나타낸다.”라고 적고 있다. 
비록 선정이 감각적 욕망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수행은 되지만, 생사윤회의 근본원인인 갈애와 무명을 타파하는 지혜(paññā)가 없이는 삼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삼계를 설하신 것은 단순히 세상을 분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집중을 닦아서 감각적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제법의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를 통찰해 삼계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삼계는 허공, 하늘, 대지 따위의 즉물적 구분이 아니라 매우 섬세한 철학적 구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삼계(三界)나 삼계 속에 나오는 천상(天上), 그리고 삼계 밖의 극락(極樂)과 같은 환상적 세계나 초월적 세계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다. -아미산]

 

師子吼是道場(사자후시도량無所畏故(무소외고)

사자후(부처님의 설법)가 도량이니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며, 

Lion’s roar is the place of awakening because there is no fear. 

 

力無畏不共法是道場(역무외불공법시도량無諸過故(무제과고)

10, 4무소외, 18불공법 도량이니모든 잘못이 없기 때문이며,

The (ten) powers, the (four) fearlessnesses, and (eighteen) distinctive characteristics are the place of awakening, since there are no faults. 

[십력(十力) :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의 힘, ①옳고 그른 것을 아는 지혜의 힘, ②중생들의 三세 업보(業報)를 아는 것, ③여러 선정과 八해탈, 三삼매를 아는 것, ④중생의 근기가 높고 낮음을 아는 것, ⑤중생의 여러 가지 지해(知解)를 아는 것, ⑥중생들의 여러 가지 경계(境界)를 아는 것, ⑦여러 가지 업행(業行)으로 어디 가서 나게 되는 것을 아는 것, ⑧천안통으로 걸림 없이 보는 것, ⑨숙명통으로 중생의 숙명을 아는 것, ⑩온갖 번뇌의 습기를 영원히 끊는 지혜의 힘.

4무소외(無所畏) 네 가지 무외로서 일체지무외(一切智無畏), 누진무외(漏盡無畏)ㆍ설장도무외(說障道無畏)ㆍ출고도무외(出苦道無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①신무실(身無失): 몸으로 짓는 행위에 오실(誤失)이 없음. ②구무실(口無失): 말에 오실이 없음. ③염무실(念無失): 생각에 오실이 없음. ④무이상(無異想): 일체중생을 차별하지 않음. ⑤무부정심(無不定心): 항상 선정에 들어 있어 산란하지 않음. ⑥무불지이사심(無不知已捨心): 무지 때문에 평정한 마음을 내는 일이 없음. ⑦욕무감(欲無減):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이 줄어들지 않음. ⑧정진무감(精進無減):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이 줄어들지 않음. ⑨염무감(念無減): 기억하는 힘이 줄어들지 않음. ⑩혜무감(慧無減): 지혜가 줄어들지 않음. ⑪해탈무감(解脫無減): 해탈이 줄어들지 않음. ⑫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感): 일체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했다는 지견이 줄어들지 않음. ⑬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 모든 신업(身業)은 지혜가 수반함. ⑭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 모든 구업은 지혜가 수반함. ⑮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 모든 의업은 지혜가 수반함. ⑯지혜지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過去世無碍無障): 지혜로써 과거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음. ⑰지혜지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未來世無碍無障): 지혜로써 미래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음. ⑱지혜지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現在世無碍無障): 지혜로써 현재의 일을 모두 통달하여 하등의 장애도 없음.]

三明是道場(삼명시도량無餘碍故(무여애고)

3 도량이니천안통(天眼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으로 3세의 이치에 통달해  어디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The three understandings are the place of awakening, and no obstacles remain. 


一念知一切法是道場(일념지일체법시도량成就一切智故(성취일체지고)

 생각(한 순간)=一念에 일체법을 아는 것이 도량이니일체지 성취하기 때문이며,

A single thought to know all Dharmas is the place of awakening, for it is the attainment of all wisdom. 

[成就一切智故, 꼭 경전의 내용만을 불법이라고 강조해서 그로 인해서만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두두물물 사사물물 모든 것이 전부 법이니까, 그 하나하나 어디에도 지혜를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로다 사물 하나하나에 전부 조사의 뜻이 들어 있다. 불교 경전 속의 부처님 말씀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이 그대로 법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안내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일상 생활과 환경, 산이면 산, 나무면 나무, 풀이면 풀, 돌이면 돌, 하늘이면 하늘, 구름이면 구름 등의 전부가 다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如是善男子(여시선남자菩薩若應諸波羅蜜敎化衆生(보살약응제바라밀교화중생)

이와 같이 선남자여보살이 만약 온갖 바라밀에 따라서 중생을 교화하고 

In this way, good fellow, if a bodhisattva teaches and transforms all sentient beings with all kinds of paramitas, 

諸有所作(제유소작擧足下足(거족하족)

當知皆從道場來(당지개종도량래住於佛法矣(주어불법의)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일거수일투족=擧足下足, ( 모든 말과 행동이모두가 도량으로부터 나와서 불법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all their actions, lifting of the foot, or lowering of the foot, know that all comes from the place of awakening and abides in Buddha’s Dharma. 

[결론입니다. 如是善男子 선남자야 보살이 이와 같이 응당히 모든 바라밀에 맞추어 바라밀로써 중생을 교화하면 諸有所作 모든 하는 것, 무엇을 하든, 발을 들고 발을 놓는 등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도량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은 실천불교 행동불교를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즉 중생을 교화하는 일, 다시 말해서 남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부처의 행동이고 또 남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성불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성불하고 나서도 남을 위하는 것이 행동불교이고 실천불교 대승불교이다. 왜 실천불교인가 하면 우리 모두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부처이니까 밖으로 행하는 행동이 부처의 행이면, 안팎이 그대로 다 부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행이란 무엇인가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고 또 남을 위하는 것이다. 남을 위하는 일이 결국 성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고 또 성불한 후에도 부처님이나 보살들과 같이 남을 위하는 일 그것 밖에 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비스님은 一行一佛사상이다. 한 가지 부처행동 하면 그 동안은 부처입니다. 하루에 일분 만이라도 부처행동하면 그 일분동안은 부처가 된 것입니다. 一行一佛 안은 아예 부처이니까 부처 행동을 한 일분 동안은 안팎이 다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說是法時(설시법시五百天人皆發(오백천인개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이같이 설할  5 명의 천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When he spoke this Dharma, five hundred celestial beings developed the mind to seek the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

그러므로 제가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Therefore, I cannot go to him to ask him about his il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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