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得 無生法忍
入一切法의 本來 無生 無起 無相 無成 無壞 無盡 無轉과 無性爲性과 初中後際가 皆悉平等과
無分別如如智之所入處하며 離一切心意識分別想하야 無所取着이 猶如虛空하며
入一切法如虛空性하나니 是名得無生法忍이니라
入 一切法의 일체법의 本來無生 본래의 생겨남=生도 無起 일어남=起도 無相 모양=相도 없고
無成 이루어짐=成도 無壞 무너짐=壞도 없고 無盡 다함=盡도 無轉 변천함=轉도 없으며,
無性 성품 없는 것으로 爲性 성품을 삼고
初中後際가, 처음, 중간, 나중이 皆悉平等함과, 다 평등하며
無分別如如智之所 入處하며 분별없는 여여한 지혜로 들어가는 곳에 入= 들어가서
離 一切心意識 分別想하야, 일체의 심의식으로 분별하는 생각을 떠나 [이런 저런 분별, 이 생각 저 생각과 감정의 표현으로서 우리의 삶을 펼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一切心意識 分別想입니다. 그러한 것을 다 떠나서,]
無所取着이, 취착함이 없기가 猶如虛空하며, 마치 허공같고
入一切法 如虛空性하나니, 일체법에 들어감이 마치 허공의 성품과 같아지나니
是名得無生法忍이니라. 이것을 일러 '무생법인을 얻었다' 하는 것입니다.
[“일체법이 허공성 같음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無生忍을 얻는다”고 한 것은 초지부터 7지까지는 무생인을 따르는 것이요, 8지에야 비로소 무생인을 얻었다고 이름하는 것이니, 8지 이전은 유위와 무위에서 모두 깨우치고 관하고 닦고 배우는 것이고, 8지에 이르러서 2행이 비로소 종결됨을 밝힌 것이다.]
[無生法忍= 무생인(無生忍), 무생인법(無生忍法), 수습무생인(修習無生忍)= 법화경에 나오는 三法忍의 하나이다.
삼법인(三法忍)이란 신인(信忍), 순인(順忍), 법인(法忍)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법인’을 무생법인이라 한다.
신인(信忍) - 신심에 의해 얻는 지혜,
순인(順忍) - 진리에 순종하는 지혜,
법인(法忍) - 진리를 깨닫는 지혜.
여기서 ‘인(忍)’은 ‘참을 인’이 아니라 ‘인(印)’과 같은 의미라서 인가 ‧ 인허의 뜻이고, 진리를 확실히 이해해서 정확히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참된 인욕바라밀을 수행함으로써 무생법인을 증득할 수 있다”라고 해서 ‘인(忍)’은 ‘인(印)’의 뜻이 아니라 보살의 육바라밀 중의 인욕행(忍辱行)을 의미한다고 했다. 즉, 이는 무척 힘들지만 참고 꾸준히 행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無生法印은 말 그대로 무생의 이치, 모든 존재가 다 본래 생한 바가 없다는 진리, 즉 ‘남[生]이 없는 진리’, ‘불변의 진리’를 이르는 말로서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으며, 일체의 것이 不生不滅한다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의 진리를 확실히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즉 무생법인이란 불생불멸이라는 實相法을 잘 알고, 그 진리에 머물러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 무생의 법을 인정한다는 말로 모든 사물에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고 죽는 이치를 깨달아 안다는 것은 본래 나고 죽는 것이 없다는 불생불멸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생사의 이치를 넘어서서 ‘한 생각’ 나고 없어지는 이치, ‘이 마음’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즉 無生의 이치, 존재[法]의 不生을 결단하는 깨달음이며, 空을 이해하고 얻어지는 깨달음의 다른 이름이다. 깨달으면 다른 헛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니 무생라는 것이다. 마치 해가 나타나면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듯이, 지혜의 해가 나면 번뇌의 검은 구름이 없어지고 안의 마음과 바깥 경계가 완전히 없어져서 망상이 생기지 않는다. 망상이 생기지 않으니 이것이 곧 無生法忍인 것이다. 작성자 아미산]
4. 殊勝한 行 [得入 第八不動地 得無功用法]
佛子야 菩薩이 成就此忍하면 卽時에 得入第八不動地하야 爲深行菩薩하야 難可知며
無差別이며 離一切相과 一切想과 一切執着이며 無量無邊이며 一切聲聞辟支佛의 所不能及이며
離諸諠諍이며 寂滅現前이니 譬如比丘가 具足神通하고 得心自在하야 次第乃至入滅盡定하면
一切動心憶想分別이 悉皆止息인달하야 此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住不動地에
卽捨一切功用行하고 得無功用法하야 身口意業의 念務皆息하야 住於報行이니라
譬如有人이 夢中見身이 墮在大河하고 爲欲度故로 發大勇猛하며 施大方便이라 以大勇猛施方便故로
卽便覺寤하나니 旣覺寤已에 所作皆息인달하야 菩薩도 亦爾하야見衆生身이 在四流中하고
爲救度故로 發大勇猛하며 起大精進이라 以勇猛精進故로 至此不動地하나니 旣至此已에
一切功用이 靡不皆息하야 二行相行이 悉不現前이니라
佛子야 如生梵世에 欲界煩惱가 皆不現前인달하야 住不動地도 亦復如是하야 一切心意識行이
皆不現前하나니 此菩薩摩訶薩이 菩薩心과 佛心과 菩提心과 涅槃心도 尙不現起어든 況復起於世間之心이리오
佛子야 불자여 菩薩이 보살은 成就此忍하면, 이 인을 성취하면 卽時에 곧바로
得入 第八不動地하야, 제 8 부동지에 들어가 爲深行菩薩하야, 깊이 행하는 보살이 되어서
難可知며 알기 어렵고, 無差別이며 차별이 없고,
離 一切相과, 일체의 모양과 一切想과, 일체의 생각과 一切執着이며, 일체의 집착을 離= 여의며, 執着집착
無量 無邊이며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니
一切 聲聞 辟支佛의 일체의 성문과 벽지불이 所不能及이며 미칠 수 없으며,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이 所不能及”라고 한 것은 2승이 有를 싫어하고 無를 증득하기 때문에 유와 무, 두 행이 원만하매 작위 없는 功에 맡겨서 모든 논쟁을 여의고 적멸이 현전함으로써, 두 행의 공이 원만하기 때문에 논쟁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5지는 세간의 것을 다 요달하고, 6지는 3공의 지혜가 종결되고, 7지는 대자비의 모든 행이 원만하고, 8지는 운(運)에 맡긴 공용 없는 지혜가 자재해서 대화(大化)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作者가 없는 것이다.]
離 諸諠諍이며, 요란한 모든 다툼을 떠나 諠 잊을 훤, 지껄일 훤, 諍 간할 쟁, 송사할 쟁
寂滅 現前이니, 적멸이 현전하나니 譬如比丘가 마치 비구가 具足神通하고 신통을 구족하고 [比丘라고 한 것은, 이것이 소승들이 수행하는 것을 간단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 목적이니까요.]
得心自在하야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次第로 차례대로 乃至 入滅盡定하면 멸진정에 들어가기에 이르면
[구차제정(九次第定)이란 사선과 사무색정과 멸진정을 차례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선 → 제이선 → 제삼선 → 제사선 → 공무변처정 → 식무변처정 → 무소유처정 → 비상비비상처정 → 멸진정
멸진정(滅盡定)은 마음(心)과 함께 느낌과 생각 등의 심소(心所)가 없어진 선정이다. 그래서 상수멸정(想受滅定)이라고도 칭하고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칭한다.
몸의 행(身行) : 들숨(入息)과 날숨(出息)
말의 행(語行) : 추구하는 생각(尋.覺)과 지속하는 생각(伺.觀)
뜻의 행(意行) : 생각(想)과 의도(思)
멸진정은 일체의 行을 그치고 쉬는 방편으로서 즉, 지식상(止息想)의 作意로서 선정에 든다. 일체의 行을 造作하기를 바라지 않고, 생각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따라 생각과 느낌이 소멸하는 것이다.
먼저 순서대로 초선에서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선정에 든 뒤 출정한다. 그 때 그 선정의 각각에 있는 정신과 물질의 형성된 법들을 통찰하면서 무소유처까지 이른 다음 ‘결정 등 미리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비상비비상처에 든다. 그 후 마음의 흐름이 끊어진다. 그 때 그를 멸진정을 증득한 자라고 한다. 여기서 ‘결정 등 미리 해야 할 일’이란 자기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결의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깨어나겠다고 결의하는 것이다. 작성자 지견청정]
一切動心 憶想分別이, 모든 동하는 마음과 기억하고 생각하는 분별이 憶 생각할 억
悉皆 止息인달하야, 다 그치듯이
[부동지에 들어가니 일체의 상념을 여의고 적멸이 현전하는 것이 2승의 멸정(滅定)이 미치지 못할 바임을 밝힌 분]
此菩薩摩訶薩도 이 보살마하살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住 不動地에, 부동지에 머물러서 卽捨 一切功用行하고 일체의 공용행을 즉시 다 버리고 卽 곧 즉
[부동지에 머묾에 일체 공용행= 유위법, 유주상을 다 버리고,]
得 無功用法하야, 무공용의 법을 얻음으로써 身口意業의 신구의의 업과 생각과
念務皆息하야, 사무가 모두 쉬고 務 힘쓸 무, 息 숨쉴 식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無功用法은 身口意 業을 다 활용하되, 그것이 하는 바가 없는 상태 ]
住於報行이니라. 보답받는 행에 머물게 되니 譬如有人이,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夢中見身이 꿈에 그가 墮在大河하고, 큰 강에 빠진 것을 보고 墮 떨어질 타,
爲欲度故로, 헤어나려고 發大勇猛하야, 용맹심을 일으켜 勇猛용맹
施 大方便이라. 큰 방편을 베풀었는데 [大勇猛을 사용한 까닭으로, 발버둥 치면서주변에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붙잡는 등 용맹으로 방편을 시설한 까닭으로,]
以大勇猛으로 큰 용맹심으로 施方便故로, 방편을 베풀었기에
卽便 覺寤하나니, 문득 잠에서 깨어나고 卽便즉변= 바로, 覺寤각오= 잠에서 깸
[우리 중생살이는 전부가 꿈꾸는 것이고, 정각= 깨달음은 꿈을 깨는 것이다.
악몽을 꿨을 때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꿈에서 깨어나듯이 우리가 깨닫는 것도 그와 똑 같은 이치입니다. 발버둥 쳐야 됩니다. 용맹정진하는 방편, 대 용맹으로써 결국은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旣覺寤已에, 잠에서 깨어나서는 旣覺寤已기각오이, 所作皆息인달하야 아무 일도 없듯이
[꿈으로 법을 비유한 것은 초지부터 7지까지는 배움이 있고 닦음이 있는 것이 마치 꿈에 지은 바를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고, 8지는 꿈이 이미 깬 것과 같기 때문에 만사가 모두 없어서 작용에 맡겨 지혜를 좇음으로써 지혜가 자재롭기에 지혜를 왕이라 호칭함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는 경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다.]
菩薩도 보살도 亦爾하야, 그와 같아서
見 衆生身이 중생의 몸이 在四流中하고, 사폭류 속에 있음을 보고
[四流= 欲流ㆍ有流ㆍ見流ㆍ無明流, 流는 번뇌를 뜻하며
욕류= 색성향미촉, 오욕에 대한 탐욕
유류=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미혹하게 사는 것.
견류- 그릇된 견해. 잘못된 소견.
무명류= 고집멸도 4제에 대한 無知, 고집멸도 이치에 대해서 모르는 것.]
爲救度故로, 제도하기 위해 發大勇猛하며, 큰 용맹심을 내어 起大精進이라. 대정진을 일으키고서
以勇猛精進 故로, 그 용맹정진으로써 至此不動地하나니, 이 부동지에 이르게 되며,
旣至此已에, 기왕 (부동지에) 이르러서는 已 그칠 이, 이미 이, 旣 이미 기, 至 이를 지, 靡 쓰러질 미,
一切功用이 일체의 공용이 靡不皆息이라. 다 쉬어버려서 [일체 공용이 다 쉬지 아니함이 없다.]
二行相行이, 공용과 무공용 두 가지 행이 [정잡이행(正雜二行)과 상행(相行)이]
悉不現前이니라. 모두 현전하지 않습니다.
[正雜二行= 극락에 왕생하는 두 가지 行業, 정행과 잡행, 正行은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려는 사람이 닦는 정당한 행업으로 5종 정행이나, 또는 칭명(稱名)만을 행하는 것이고, 잡행(雜行)은 5종 정행이외의 다른 온갖 행을 말함.]
佛子야 불자여, 如生梵世에, 마치 범천에 태어나면
欲界煩惱가 욕계의 번뇌가 皆不現前인달하야, 다 현전하지 않듯이
住 不動地도, 부동지에 머무는 것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一切心意識의 行이 모든 심의식의 행이 皆不現前하나니, 다 현전하지 않습니다.
[心意識 心= '신 · 구 · 의 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뜻의 집기(集起)를 뜻하고,
意= '과거에 쌓은 원인, 즉 업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을 뜻하며,
識= '대상을 안다'는 뜻의 요별(了別)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야! 이 OST 정말 아름다운데! 어떤 가수가 불렀을까? 음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음원구입처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요별작용 또는 요별능력이고, 가수가 누군지 그리고 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사량작용 또는 사량능력이고, 검색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검색을 행하고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집기(集起),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집기작용 또는 집기능력이다.[7]
크게 보면, 심의식(心意識), 즉 心 · 意 · 識은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관련된 것이므로, 心意識이라고 통칭하여 칭할 때나 心 · 意 · 識 개별로 칭할 때나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心 · 意 · 識의 개별에 대하여 이들이 구체적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면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간에 견해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이렇게 차이가 나는 대승불교의 견해에서도 다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心이 집기(集起)를 뜻하고, 意가 사량(思量)을 뜻하고, 識이 요별(了別)을 뜻한다는 것에는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집기, 사량, 요별의 작용 또는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견해를 같이 하지만,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작용 또는 측면을 집기라고 하고 사량이라고 하고 요별이라고 하는 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위키백과]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菩薩心과 보살의 마음, 佛心과 부처의 마음, 菩提心과 보리심,
涅槃心도 열반에 대한 마음도 尙不現起어든, 오히려 일으키지 않을 터인데 尙 오히려 상
況復起 於世間之心이겠는가? 하물며 세간의 마음이야 어찌 일으키겠는가?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의 일체가 저절로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냥 보살행하는 것입니다.]
5. 諸佛現前
佛子야 此地菩薩의 本願力故로 諸佛世尊이 親現其前하사 與如來智하야
令其得入法流門中케하고 作如是言하사대 善哉善哉라 善男子야 此忍이 第一이라
順諸佛法이어니와 然이나 善男子야 我等所有十力無畏十八不共諸佛之法은 汝今未得이니
汝應爲欲成就此法인댄 勤加精進하야 勿復放捨於此忍門이니라
又善男子야 汝雖得是寂滅解脫이나 然諸凡夫는 未能證得하야 種種煩惱가 皆悉現前하며
種種覺觀이 常相侵害하나니 汝當愍念如是衆生이니라
又善男子야 汝當憶念本所誓願하야 普大饒益一切衆生하야 皆令得入不可思議智慧之門이니라
又善男子야 此諸法法性은 若佛出世어나 若不出世에 常住不異니 諸佛이 不以得此法故로
名爲如來라 一切二乘도 亦能得此無分別法이니라
又善男子야 汝觀我等의 身相無量과 智慧無量과 國土無量과 方便無量과 光明無量과 淸淨音聲도
亦無有量하야 汝今宜應成就此事니라
又善男子야 汝今適得此一法明하니 所謂一切法無生無分別이어니와
善男子야 如來法明은 無量入이며 無量作이며 無量轉일새
乃至百千億那由他劫에도 不可得知니 汝應修行하야 成就此法이니라
又善男子야 汝觀十方無量國土와 無量衆生과 無量法種種差別하야 悉應如實通達其事니라
佛子야 불자여 此地菩薩의 이 지위의 보살은 本願力故로, 본래의 원력으로
諸佛世尊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親現其前하사, 친히 현전하시어
與 如來智하야, 여래의 지혜를 주시고 令其得入 法流門中케하고, 법류의 문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作 如是言하사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善哉善哉라. '참으로 장하도다, 善男子야 선남자여.
此忍이 第一이라, 이 인(무생법인)은 順諸佛法이어니와. 불법을 수순함에 第一= 제일가는 것이니라.
然이나 그러나 善男子야 선남자여, 我等에 所有十力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십력과
無畏와, 4 무소외와 十八不共 諸佛之法은 18 불공불법은
汝今未得이니, 그대가 아직 얻지 못하였으니 [無生法忍을 얻었더라도 부처님이 갖춘 그런 것까지는 아직 못 갖췄다.]
汝應 爲欲成就 此法인댄, 그대가 마땅히 이러한 법들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勤加精進하야, 더욱 힘써 정진하여 勤加근가
勿復放捨 於此忍門이니라. 이 인의 문에서 방일하지 말지니라.[이忍門을 가지고 가야 된다] 勿 말 물
[시방의 모든 부처가 가(加)를 나타내서 모든 여래의 18불공법을 닦기를 권한 분(分)이다.]
[18불공이란, 1 잘못이 없는 것이며, 2 갑작스럽고 거친 음성이 없는 것이며, 3 念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4 定하지 않은 마음이 없는 것이며, 5 갖가지 상념이 없는 것이며, 6 지욕(志欲)을 가려내지 못함이 없는 것이며, 7 정진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8 念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9 定이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10 慧가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11 解가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12 일체의 업에서 물러남이 없는 것이며, 13 지혜를 따르면서 지혜를 굴리는 것을 전도(前導)로 삼는 것이며, 14 일체 모든 語業이 지혜가 전도가 되서 지혜를 따라 구르는 것이며, 15 일체의 意業이 지혜가 전도가 되어서 지혜를 따라 구르는 것이며, 16 過去世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며, 17 미래세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며, 180현재세를 알아 집착이 없는 것이다.
4무외란, ① 일체지가 무외이며, ② 누진(漏盡)이 무외이며, ③ 장애의 길을 설함이 무외이며, ④ 苦를 멸진하는 길을 설함이 무외이다.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汝 雖得 是寂滅解脫이나, 그대는 비록 이 적정해탈을 얻었지만
然 諸凡夫는, 그러나 범부들은 未能證得하야, 능히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種種의 煩惱가 갖가지 번뇌가 皆悉現前해서, 다 앞에 나타나고,
種種覺觀이, 갖가지 느끼고 보는 경계로 常相侵害하나니, 항상 침해받고 있으니 常 항상 상, 侵 침범할 침, 害 해칠 해,
[覺觀= 각(覺)은 사물을 미루어 짐작하는 마음의 작용 중에서 비교적 엉성한 작용을 말하고, 관(觀)은 각보다는 조금 더 세밀한 작용을 말한다. 이 둘은 모두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한다.]
汝當愍念 如是衆生이니라. 그대는 마땅히 이런 중생들을 가련히 여겨야 하느니라. 當 마땅할 당, 愍 슬플 민,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汝當憶念 本所誓願하야, 그대는 마땅히 본래 서원한 바를 기억하여 憶念억념 誓願서원,
普大饒益 一切衆生하야 널리 일체중생을 크게 이익케 하고
皆令得入 不可思議智慧之門이니라 모두 불가사의한 지혜의 문에 들어가게 해야 하며,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此諸法 法性은, 이 모든 법의 성품은
若佛出世어나, 부처님의 출세거나 若不出世에, 불출세거나에 常住不異니, 다름없이 항상 있는 것이라
[법성뿐만 아니라 인과의 도리도 진리도 부처님이 출세했거나 출세하지 않았거나 간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道不可須臾離(도불가수유리) 도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도 떠나 있지 아니하다.
可離면 非道(가리비도)라. 만약에 떠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
諸佛이 부처님들이 不以得 此法故로, 이 법을 얻었기에 名爲如來라.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 不= 아니며,
[그것을 얻고 얻지 않은 것은 부처님, 여래 하고는 관계없다. 즉 그것을 얻었다고 해서 여래이고, 얻지 않았다고 해서 여래가 아니라는 그런 이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一切二乘도 모든 이승들도 亦能得 此無分別法이니라. 이 분별없는 법은 얻을 수 있느니라.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汝觀 我等의, 그대는 우리의 身相無量과 몸의 모습이 한량없고
智慧無量과 지혜가 한량없고 國土無量과 국토가 한량없고 方便無量과 방편이 한량없고
光明無量과 광명이 한량없고 淸淨音聲도 청정한 음성도 亦無有量하야, 또한 한량없음을 觀= 관하여
汝今 宜應 成就此事니라. 그대가 이제 마땅히 이 일을 성취해야 하니라, 宜 마땅할 의, 마땅 의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汝今 適得此一法明하니, 그대는 이제 하나의 법에 밝음을 얻었으니 適 다만 적
所謂 소위 一切法無生 일체법이 남=生이 없고 無分別이어니와 분별이 없다는 것이니라.
善男子야 선남자여, 如來法明은, 여래 법의 밝음은 無量入이며 한량없는 데 들어가고
無量作이며 한량없이 작용하고 無量轉일새 한량없이 윤전하기에
乃至 百千億那由他劫에도 백천억 나유타 겁에 이르러도 不可得知니, 알 수 없나니,
汝應 修行하야, 그대는 마땅히 수행하여 成就此法이니라, 이 법을 성취해야 하며,
又 善男子야, 또 선남자여, 汝觀 十方無量國土와 그대는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와
無量衆生과 한량없는 중생과 無量法 種種差別하야, 한량없는 법이 갖가지로 차별함을 觀= 보아
悉應 如實通達其事니라. 그러한 일들 모두를 여실히 통달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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