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六 須彌頂上偈讚品第十四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3회의 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4

 

ㅡ서방의 승혜(勝慧) 보살 - 보화(寶華) 세계 - 부동월불(不動月佛)

 

爾時(이시) 勝慧菩薩(승혜보살) 承佛威神(승불위신)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曰(이설송왈) 

그때, 승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승혜라 이름한 것은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면서 더욱 밝고 청정하게 되는 까닭에, 하나의 법도 옮기지 않은 채 이전의 지위보다 뛰어나게 되는 것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보화(寶華)세계란 인(忍)바라밀이 이미 일체 부처님의 지혜를 얻음으로써 도체(導體)로서 능히 인행(忍行)을 행함을 밝힌 것으로, 화(華)란 행(行)이니, 인행(忍行)으로 지혜의 법신을 장엄함을 밝힌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동얼(不動月)이라  것은 이(理)를 얻어서 행(行)을 성취함으로써 마음과 경계를 요달해서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능히 참아 견디어 냄을 밝힌 것으로, 월(月)이란 청량함의 뜻이다.

 

도래한 방위 서방의 대중이니, 서방은 가을이 되고, 살(殺)이 되고, 고제(苦諦)가 되니, 자비의 지위로써 중(中)에 위치한다. 가령 10회향 중에서 선재동자가 금강산의 서쪽에 계신 관음(觀音)을 보는 것은 금(金)이 살위(殺位)가 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온갖 고통의 처소로써 자비와 인내 닦음을 나타낸 것이다. 

 

총체적으로는 법을 얻어 인(忍)을 성취한 능력의 작용이 뛰어남을 밝힌 것으로, 이러함 바로 보화(寶華)의 뜻이며, 이것이 바로 수행주(修行住)의 대치법이며, 이것이 바로 선재동자가 선주(善住)비구를 보고 무애(無碍) 법문을 얻음으로써 능히 참아 견디어 내는 것이다.

 

如來大智慧(여래대지혜) 希有無等倫(희유무등륜) 

一切諸世間(일체제세간) 思惟莫能及(사유막능급) 

여래의 크신 대지혜(大智慧)는 희유하고 짝할 이 없어서, 
일체의 모든 세간 사람들의 사유(思惟, 생각)로서 미칠 수 없는 막능급(莫能及)이로다.

 

凡夫妄觀察(범부망관찰) 取相不如理(취상불여리)

佛離一切相(불리일체상) 非彼所能見(비피소능견) 

범부는 망령되이 허망하게 관찰하여서, 상(相)을 취하여서 여리(如理, 이치와 같음)하지 못하나,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상(相)을 여의셨으니, 범부들이 볼 수 있는 바가 아니로다.

ㅡ금강경의 일체의 모든 상에서 떠나면 곧 부처라 이름할 수 있다는, 이일체상(離一切相) 즉명제불(卽名諸佛)의 뜻입니다.  

 

迷惑無知者(미혹무지자) 妄取五蘊相(망취오온상) 

不了彼眞性(불요피진성) 是人不見佛(시인불견불) 

미혹(迷惑)하여서 무지(無知)한 이들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상(五蘊相)만을 취하여서
그 진실한 성품의 진성(眞性)을 알지 못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부처를 보지 못하리라.

了知一切法(요지일체법) 自性無所有(자성무소유)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 則見盧舍那(즉견로사나) 

일체법(一切法= 제법 諸法= 모든 존재)들이 스스로의 성품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이러하게 법성(法性, 일체법의 성품)을 이해하게 된다면, 곧 노사나불(법신 부처님)을 뵙게 되리라.

 

因前五蘊故(인전오온고) 後蘊相續起(후온상속기) 

於此性了知(어차성요지) 見佛難思議(견불난사의) 

앞의 오온(五蘊)으로 인해서, 뒤의 오온이 상속되어 일어나나니

(앞의 오온, 즉 물질의 색(色)ㆍ 느낌의 수(受)ㆍ생각의 상(想)ㆍ 지어감의 행(行)ㆍ인식의 식(識)을 따라 뒤의 오온이 일어나나니)
법성(法性, 일체법의 성품)이 이러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면 불가사의한 부처님을 뵙게 되리라.

ㅡ촛불을 밝히면, 불이 빛을 발하면서 타오르는 것이 0.01초전에 타오른 불과 0.01초 이후에 타오르는 촛불의 불빛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고, 형광등도 마찬가지라서 1초에 50 ~ 60을 계속 이어가면서 빛이 오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계속 밝게 켜져 있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명, 우리의 육신,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라서, 後蘊相續起(후온상속기)라 한 것입니다.

촛불이나 형광등이 1초에 50번 이상 깜빡거리는 것은 因前五蘊(인전오온)이고, 뒤에 깜빡거리는 것은 후(後)의 오온입니다. 우리 육신도 똑 같고, 우리 마음이 이렇게 지속되는 것 같지만 1찰나에 900생멸한다. 

한 찰나는 120분의 1초이고, 그 1찰나에 900번 생멸하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빠른 순간에 생멸하면서 우리 의식이 지속되는되, 그것이 우리에게는 계속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譬如暗中寶(비여암중보) 無燈不可見(무등불가견) 

佛法無人說(불법무인설) 雖慧莫能了(수혜막능요) 

비유하자면, 어두운 가운데에 있는 보배는 밝은 등불이 없으면 볼 수가 없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불법(佛法)도 설하여 주는 이가 없다면, 비록 지혜롭다 할지라도 알지 못하리라.

(지혜롭다 할지라도 화엄경과 같은 불경이 없다면 불법을 알지 못하리라)

 

亦如目有瞖(역여목유예) 不見淨妙色(불견정묘색) 

如是不淨心(여시부정심) 不見諸佛法(불견제불법) 瞖 눈에 백태 낄 예, 흐릴 예

또한 마치 눈에 눈병이 생겨서 예(翳, 백태)가 끼면, 깨끗하고 묘한 빛들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깨끗하지 못한 마음의 부정심(不淨心)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보지 못하리라. 

ㅡ눈이 없으면 아름다운 산천초목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청정한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위대한 불법, 화엄경이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又如明淨日(우여명정일) 瞽者莫能見(고자막능견) 

無有智慧心(무유지혜심) 終不見諸佛(종불견제불) 

또한 명정일(明淨日, 밝고 깨끗한 해)라 할지라도, 눈이 먼 소경은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지혜의 마음이 없는 이는 끝끝내 모든 부처님을 보지 못하리라.

ㅡ금강경의 '만약 어떤 이가 색(사물 현상)이나 음성으로 나를 보고자 하는 이는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으로서 나(부처)를 볼 수 없으리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와 같은 내용입니다. 

 

若能除眼瞖(약능제안예) 捨離於色想(사리어색상) 

不見於諸法(불견어제법) 則得見如來(즉득견여래) 

만약 눈병을 제거하여 버리고, 색상(色想, 사물에 대한 생각 또는 고정관념) 마저도 제거하여 버려서, 
제법(諸法, 모든 존재, 모든 일, 모든 현상)을 보지 않는다면, 곧 여래를 뵐 수 있으리라.

ㅡ금강경의 '모든 상은 허망한 것이니, 상이 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게 되리라의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의 내용입니다. 

 

一切慧先說(일체혜선설) 諸佛菩提法(제불보리법) 

我從於彼聞(아종어피문) 得見盧舍那(득견로사나) 

일체혜보살이 저보다 먼저 부처님의 보리법을 잘 설하셨으니, 
저는 그로부터 듣고서 노사나불(盧舍那佛, 진리의 몸인 법신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ㅡ법신불(法身佛)ㆍ보신불(報身佛)ㆍ화신불(化身佛- 응신불應身佛)의 삼신불(三身佛 · Trikaya)의 삼신설은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제자들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 후에도 존재하는지, 존재한다고 하면 인격적 존재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나왔다.

‘몸(身)’이란, 부처님의 참 진리에 인격적인 의미를 붙여 일컫는 것이다.   

 

①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깨달음의 경지 · 지혜, 진리 그 자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부처로 사유한 것으로,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밀교)이다. 

비로자나는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한 것으로, 변조(遍照) · 변광(遍光)이라 번역하며,

비로자나는 노사나 외에도 비로절나(鞞嚧折那), 폐로자나(吠嚧遮那), 자나(遮那) 등으로도 불리며,
그 의미를 따라 변일체처(遍一切處, 모든 곳에 두루함) 또는 광명변조(光明遍照, 모든 곳에 두루 비침)라고 한역(漢譯) 되기도 한다.

결국 비로자나불은 우주 전체여서 우주의 모든 현상은 비로자나불의 모습 아닌 것이 없고,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직접 중생에게 설법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하는 ‘침묵의 부처’이다.  

 

②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은 불교경전에는 부처의 몸은 법 자체로 되어 있는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서 온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에도, '자신의 몸에 의지말고 불법과 중생 스스로에게 의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법신이 세상 인간의 몸으로 나타난 것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석가모니불의 화신(化身)이다. 

또한 세상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응현(應現)했다고 하여 응신(應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③보신(報身), 수행을 하여서, 그 과보로 법신의 영원성마저 성취한 것이 보신이다.

보신불을 예로 들자면, 다섯 겁에 걸친 특별한 수행을 통해 수명과 광명이 무량한 경지를 성취한 아미타불이 있다.

아미타는 아미타여스amitāyus, 또는 아비타바 amitābha를 음여한 것으로, amitāyus는 무량수, amitābha는 무량광이라 번역한다.


천상에 있는 달 그 자체는 법신(法身)이 부처님의 본체라면,

응신(應身)인 석가모니붓다는 법신의 영상, 즉 물에 비친 달의 영상이 화신(化身)이고, 
우주에 가득 찬 달의 광명은 보신(報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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