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제4 마후라가왕(摩睺羅伽王)은 한역하면 대망(大蟒) 또는 대복(大腹)이고,
나가(羅伽)는 흉복행(胸腹行)으로 정진(精進)바라밀을 주재한다.
흉복행(胸腹行)이란 즐거운 낙법(樂法)을 찾아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포복을 함으로써 오만을 여의어 겸손함을 밝히는 정진(精進)의 뜻으로서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 일체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을 밝힌 것이니, 6도(六道)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가람(伽藍, 사찰)을 수호하는 신이니, 능히 법을 수호하기 때문이다.
법계품(法界品)에서는 “부처님을 보고 환희하면서 몸을 숙여 공경하는 마후라가왕”이라 하는데, 이 10왕(十王)은 정진바라밀 중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그 하나하나의 이름의 아랫 글자의 뜻으로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리들 역시 방편을 통해 중생이 애착으로 행하는 것을 함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보살이 생사에 처하여 행을 같이하면서 애착의 그물을 제거하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아래 경문의 ‘덕을 찬탄하는 탄덕(嘆德)’ 중에서 모두가 광대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고 익혀서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어리석음의 그물을 영원히 단절케 하기 때문이다.
제5 야차왕(夜叉王)은 무진공덕장(無盡功德藏, 다함 없는 공덕의 창고) 회향을 밝힌 것으로 선(禪)바라밀을 주재하는데, 선정(禪定)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을 수호하여 그 마음이 망녕되지 않게 함으로써 대공덕장(大功德藏)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야차(夜叉)란 한역하면 고활(苦活) 또는 사찰(伺察)이라 하는데, 선문(禪門)으로 일체 중생의 고활을 수호하고 살펴서 그 마음이 망되지 않게 함을 밝힌 것이다.
법계품(法界品)에서는 “항상 중생을 부지런히 수호하는 모든 제야차왕(諸夜叉王)”이라고 하며,
나머지 1왕은 선(禪)바라밀 중 10바라밀이니, 이름의 아랫 글자의 뜻으로 지위에 따라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또 비사문야차(毘沙門夜叉)는 주로 관장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명칭을 얻은 것이며,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 야차의 무리들을 이끌면서 수미산 북쪽에 있다.
10회향을 설명하는 것 중 여섯 번째에서, 비루박차용왕(毘樓博叉龍王) 역시 관장하는 것에 의해 명칭을 얻은 것이니, 비루박차천왕이 용들을 이끌고 수미산 서쪽에 있으면서 부다나(富多那)를 병합하고 있으며, 부다나는 열병(熱病)을 주제하는 귀신이다.
이 용왕은 수순견고회향(隨順堅固廻向, 순리에 따르면서도 견고한 회향)을 주재하는데, 반야바라밀문을 밝힌 것이니, 이는 용이 허공에서 노닐 때 능히 숨었다 나타났다 하면서 비를 내려서 중생을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반야의 공혜(空慧)로 유(有)와 무(無)에 자재하면서 모든 법우(法雨)를 내려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용으로 나타낸 것이다. 비루박차(毘樓博叉龍王)란 자세히 말하자면 비로파가홀차(毘路波呵迄叉)이며, 또한 잡어주(雜語主)라고도 한다. 예전의 번역으로는 추목(醜目)이며, 새로운 명칭에서 비(毘)는 종종(種種)이며 노(路)는 색(色)이며, 파가흐라는 근(根)이다.
갖가지의 빛깔로 안근(眼根)을 장엄하는 것이니, 이는 갖가지 지혜로 모든 견(見)을 장엄하여 집착이 없게 함을 밝힌 것이다.
용에는 다섯 가지의 오종용(五種龍)이 있으니,
첫재 코끼리 형상의 상형(象形)이며, 둘째 뱀 형상의 사형(蛇形)이며, 셋째 말 형상의 마형(馬形)이며, 넷째 물고기 형상의 어형(魚形)이며, 다섯째 하마형(蝦蟆形)이다.
*첫째, 선주용황(善住龍王)은 일체의 코끼리 형상의 상형(象形)들을 주재하는 왕(王)이며,
*둘째, 난타(難陀)용왕은 한역하면 환희(歡喜)이니, 일체의 뱀 형상의 사형(蛇形)의 용들을 주재하는 왕이며,
*셋째 아나파달다(阿那婆達多)용왕은 한역하면 무열뇌(無熱惱) 또는 청량(淸凉)으로, 일체의 말 형상의 마형(馬形)의 한 용들을 주재하나, 이 용왕만은 다른 모든 용왕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허물을 멀리 여의었으니,
첫째 뜨거운 모래가 그 머리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둘째 뱀 형상으로 욕망을 행하지 앟는 것이며, 셋째 금시조의 두려움이 없는 것이며,
그러나 다른 고통이 하나 더 있으니, 바람이 보의(寶衣)에 불면 몸이 드러나면서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용왕만이 이 네 가지의 열뇌(熱惱)를 벗어난 때문에 청량(淸涼)이라 말하는 것이며, 지론(智論)에 의거하면 이 용왕은 7주(住) 보살이다.
*넷째, 파루나(婆樓那)용왕은 한역하면 수천(水天)이니 일체의 물고기 형상을 한 어형(魚形)의 용들을 주재하고,
*다섯째, 마나소파제(摩那蘇婆帝)용왕은 마나사(摩那斯)라고도 하는데, 한역하면 자심(慈心)이다. 바람이 가지를 울리지도 않고 비가 흙덩이를 부수지도 않기 때문에 득의(得意)라고도 칭하고, 또 마나(摩那)라 하는 것은 의고(意高)를 말하는데, 이 용이 위덕(威德)이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의고(意高)가 된 것이니, 일체의 하마 형상의 하마형(蝦蟆形) 용들의 주재자가 된다.
가령 사분율(四分律)의 경문에서는 “모든 용이 처음 탄생할 때와 잠잘 때와 성낼 때와 욕망을 행할 때에는 능히 변형하지를 못하고, 나머지 시기에는 다 변형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3승에서 말하는 용왕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이 1승(一乘)의 용왕은 그 덕이 다 함께 부사의승(不思議乘)에 들어간 불과위(佛果位)의 대보살 등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제도(諸道, 6도)에 두루하면서 널리 그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이 회상에서 부처님의 출현을 경하해서 그 본연(本緣)을 갚고자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내는 것이니, 즉, 이 경전에서 비루박차용왕이 일체 모든 용들 세계의 치열한 고통을 녹여 없애는 치연고해탈문(熾然苦解脫門)을 얻는 것은 이 지위의 반야 지혜의 용이 늘 법공에 노닐면서 갖가지 말로 모든 가르침의 교망(教網)을 시설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10회향(十迴向) 중 단(檀)바라말이다.
사갈라(娑竭羅)용왕은 한역하면 염해(鹽海)인데, 일념 중 스스로 용의 형상으로 전변하여 무량한 중생신(衆生身)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는 것은 생사에 들어가 대비계(大悲戒)를 성취함으로써, 그 과보로 원력(願力)의 신통을 얻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 10회향의 큰 바탕이 자비의 원행(願行)을 성취해서 원력의 신통을 얻는 것이다.
운음묘당(雲音妙幢)용왕이 일체 모든 제유취(諸有趣)에서 청정한 음성으로 부처님의 가없는 명호의 바다인 무변명호해(無邊名號海)를 설하는 해탈문을 얻는 것은 인(忍)이 명예를 초래함을 밝힌 것이니, 이익을 얻는 획익분(獲益分)에서 자세히 밝힌 것과 같다.
덕차가(德叉迦)용왕은 한역하면 능해(能海)이니 해쳐야 할 사물을 해침으로써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이는 제6의 반야바라밀이 능히 모든 사견(邪見)을 꺾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이로서 덕을 삼는다.
차(叉)는 해침을 받는 소리이며, 가(迦)는 능히 해치는 소리이니, 이 용이 화를 낼 때에는 사람과 축생을 허시(噓視, 입으로 독을 뿜으면서 노려보는 것)함으로써 전부 목숨이 끝나게 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번역에서 다설룡(多舌龍)이라 한 것은 말이 많기 때문에 다설이라 한 것이지, 입 안에 혀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며, 이는 닦아 나아가는 가운데 제6의 반야바라밀문으로서 많은 법을 훌륭히 설하는 것을 나타낸 때문에 다설(多舌)이라 한 것이니, 이 용이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냄을 설한 것이다.
이하는 앞에서 말한 것에 준하여 명칭의 뜻을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10용왕(十龍王)은 10회향 중 반야(般若)바라밀로 체(體)를 삼으니, 지혜가 공(空)에 노닐면서 법을 비내리듯 하는 것이 자재로움을 나타낸 것이다.
10회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일곱 번째는 등수순일체중생(等隨順一切衆生)회향이니, 구반다왕(鳩槃茶王)이 주재한다.
이 지위의 보살이 대자비를 성취해서 모든 도(道)에 두루 들어가 자비를 드리워 중생을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염미귀신(厭媚鬼神)이니 정기를 게걸스럽게 먹고, 또한 동과귀(冬瓜鬼)라고도 칭하는데 벙법념경(正法念經)에 의거해서 그 명자(名字)를 설한 것이다. 이러한 악한 중생에게도 보살이 모두 따르기 때문에 ‘등수순일체중생회향’이라 칭하는 것이니, 나아가 지옥까지라도 다 두루 들어가는 것이다.
이 신은 남방천왕(南方天王)이 거느리는 두 부류의 중생이니, 하나는 구반다(鳩槃茶)이며 다른 하나는 벽여귀(薛荔鬼)이다.
구반다(鳩槃茶)는 음낭(陰囊)이 동과(冬瓜)처럼 커서 걸을 때에는 들어서 어깨 위에 올려 놓고 앉을 때는 걸터 앉는다.
법계품(法界品)에서는 “아귀의 세계를 항상 부지런히 없애는 구반다왕”이라 하고 있으니, 애착의 오염과 탐욕의 욕구가 마치 아귀와 같을지라도 대자비의 보살이 함께 따르면서 행하여 다하게 함으로써 일체의 탐욕을 끊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제8은 진여상(眞如相)회향이니 건달바왕(乾達婆王)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낸다.
건달바(乾達婆)를 한역하면 심향(尋香)이니, 향기가 있는 곳에 오락(娛樂)을 지어서 음식을 구하는 것이다.
아는 사(事)에 의탁해서 진여상(眞如相)의 지위에있는 보살이 항상 진여법계(眞如法界)의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오염 없는 5분법신향(五分法身香)으로써 중생을 즐겁게하여 그들을 애락(愛樂)하게 함을 나타낸 것이다.
아래 경문에서는 “모두가 대법에 대한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낳아, 기뻐하고 사랑하면서 부지런히 닦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항상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를 키워주는 건달바왕”이라 하였으니, 법으로 중생을 기쁘게 한다는 뜻이다.
이 가운데의 10왕(十王)은 원(願)바라밀 중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이 지위는 지혜가 두드러져서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 중생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는 것이다.
제9의 무박무착해탈(無縛無著解脫,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회향으로서 월천자(月天子)에 사(事)를 의탁해서 역(力)바라밀을 나타낸다. 이는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법성의 허공지혜(虛空智慧)로써 중생을 비추어 번뇌의 역(力)을 정화시키고 법의 청량함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그 중 열 개의 월천자는 역(力)바라밀 중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이름 아래 글자를 따라 그 뜻을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0회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마지막 열 번째는 입법계무량(入法界無量)회향이니 일천자(日天子)에 사(事)를 의탁해 나타냄으로써 10회향 중 지(智)바라밀을 밝히는 것이니, 가령 태양은 허공에 처해서 아래로 만유를 비추어서, 지위는 위이나, 그 공(功)은 아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지위의 보살도 그 지혜가 매우 높으나, 그 행은 더욱 낮아서 인천(人天)의 신과 귀신ㆍ외도(外道)의 사행(邪行, 삿된 행동), 축생과 지옥에 사무쳐 들어가 그 행을 남김없이 같이 하나니, 이는 마치 태양이나 달이 그 형상은 위에 처하고 있으나, 그 공(功)은 아래에 있어서 선과 악을 모두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가운데 열 개의 십일천자(十日天子)는 지(智)바라밀 중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하나하나 명칭을 따라 그 뜻을 짝지어 보면 항상 지바라밀로 체(體)를 삼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시왕(十王)을 10회향 중 10바라밀과 짝지운 것을 마치나니, 가령 10주와 10행과 10회향과 나아가 10지까지 하나하나의 지위에서의 바라밀은 저마다 해당되는 지위에 따라서 그 뜻을 취하면 이내 터득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예만을 취한다면 그 지취(旨趣)를 알지 못할 것이다.
가령 태양과 달, 두 지위의 형상과 높이는 구사론(俱舍論) 의거한다면,
“달은 땅과의 거리가 4만 유순(由旬)이며 폭은 40유순이다. 수정(水精)과 백은(白銀)을 합쳐 양면이 되어서 회전하여 서로 비추기 때문에 이지러지기도 하고 차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사론(俱舍論)의 설은 결정적인 준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니, 오직 경전의 설에 의거하는 것으로서 지남(指南, 지침)을 삼아야 할 터이니, 장아함경(長阿含經)에 의거하면 다음과 같다.
“달 위에 성(城)이 있으니, 그 성은 정방형으로 1천9백6십 리이며 높이도 마찬가지이다. 2분(分, 반)은 하늘의 금으로 짓고 1분(分, 그 반)은 유리로 지었는데 멀리서 보면 둥글며, 천수(天壽) 오백 살에 자손이 서로 1겁을 이어받는데, 해와 달이 서로 가까워지면서 빛과 그림자가 서로 비추면 이지러지기도 하고 차기도 한다.
태양의 폭은 50유순이며, 그 성은 정방형으로 2천4십 리며 높이도 마찬가지이다. 그 성은 순금으로, 칠보로 장식되었으며, 왕좌(王座)는 2천 리다. 수명과 자송은 월천자와 똑같은데, 풍륜(風輪)으로 유지하기 때문에 수미산을 둘러 싸고 있다.
일천자와 월천자 모두 사천왕이 다스리는 바이다.”
이상은 다분히 장아함경의 설에 의거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천자(日天子)와 월천자(月天子)는 모두 10회향(十迴向)에서 대자비의 행원(行願)의 문을 성취함을 나타내고 있으니, 이는 자비와 지혜가 의지함 없이 항상 법공(法空)으로 체(體)를 삼아서 근기에 따라 널리 비추면서도 작위하는 바가 없는 무소위(有所爲)이고, 무공(無功)의 지혜의 태양에 맡겨 만유에 부합함으로써 이익을 성취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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