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제1중(第一衆)인 아수라왕의 뜻을 넷으로 나눈 것 중에서의 세번 째, 명칭을 해석해서 행과 짝짓는 석명배행(釋名配行)이란 다음과 같으니,
첫 번째 라후라(羅睺羅) 아수라왕은 10회향(十迴向) 중의 단바라밀을 밝히고 있으니,
이 회향 중의 10바라밀이 사(事)로써 법을 나타내는 중에 아수라를 취하는 것은, 이 10회향이 순수하게 대자비의 열 가지 십원(十願)으로 10바라밀의 체(體)로 삼아서 자기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마치 수라(脩羅)의 거처가 아래까지 사무치고, 그 몸이 바다에 처해서도 위로 사무쳐서 몸의 반이 바다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것이다.
총체적으로는 사(事)를 설하여 법을 나타냄으로써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니, 이를 통해 이 지위가 순전히 대지혜와 대자비와 대염원으로 진(眞)과 속(俗)을 사무치는 것으로 체(體)를 삼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라후라(羅睺羅)를 한역하면 능장(能障)이니, 이 지위의 보살이 대자비심으로 생사의 세계에 들어가서 대법공(大法空)을 나타내어서 모든 악도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 아수라왕은 단(檀)바라밀 중 계(戒)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는 한역하면 향고(響高)인데, 대자비와 대염원의 음성으로 맹세코 삼계의 육도를 제도하기 때문에 자비와 염원으로 계(戒)의 체(體)를 삼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왕(王)이란 자재하다는 뜻으로, 고해(苦海)에 처해서도 뜨고 가라앉음의 침부(沈浮)가 자재롭기 때문이다.
세 번째 교환술(巧幻術) 아수라왕은 인(忍)바라밀을 밝힌 것인데,
이 지위의 보살이 비록 생사의 대해에 거처할지라도 항상 환(幻) 같은 인(忍)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네 번째 대권속(大眷屬) 아수라왕은 정진(精進)바라밀을 주재하는데, 만행(萬行)으로 중생을 두루 다스림을 밝힌 것이며,
다섯 번째 대력(大力) 아수라왕은 법성의 대선정력(大禪定力)으로 고해에 있으면서도 고통이 없음을 밝히고 있으며,
여섯 번째 변조(遍照)아수란왕은 지혜의 광명인 혜광(慧光)이 중생을 두루 교화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일곱 번째 견고행묘장엄(堅固行妙莊嚴) 아수라왕은 대자비의 방편으로 장엄함을 밝힌 것이며,
여덟 번째 광대인혜(廣大因慧) 아수라왕은 지혜가 점점 밝아짐으로써 본원(本願)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인(因)으로 삼으며, 제8위(位)에서 지혜가 점점 밝아지는데, 반드시 초발심 때의 대염원으로 인(因)을 삼는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며,
아홉 번째 출현승덕(出現勝德) 아수라왕은 법사(法師)의 지위가 성취된 역(力)바라밀을 밝힌 것이며,
열 번째 묘호음성(妙好音聲) 아수라왕은 지혜의 지위에서 묘음(妙音)을 성취하여 법을 잘 설함을 밝힌 것이다.
제1중(第一衆)인 아수라왕의 뜻을 넷으로 나눈 것 중에서의 네 번째, 수를 매듭짓고 덕을 찬탄하는, 결수탄덕(結數嘆德)이라는 것은 경문에서 그대로 알 수 있다.
이상의 10바라밀(十波羅蜜)은 모두 진(眞)을 알면서도 세속에 처해서 대자비를 융화하는 성품의 10바라밀이다.
이와 같은 10바라밀은 대자비를 체(體)로 삼기 때문에 사(事)를 설해서 법을 나타내는 것이 아수라에 있는 것이니,
이는 보살이 생사의 바다에 처해서도 그 바닥을 얻어서 항상 생사의 바다 속에 빠지지 않는 것을 비유한 것이니,
이 때문에 아래의 경문에서 “여래가 세간을 높이 벗어난 것을 성취한 아수라왕”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10주와 10행에서는 단지 지혜를 요달해서 진(眞)에 응하는 것을 신(神)이라 호칭했으니,
10회향과 10지에서는 다 10왕(十王)으로 나타내었으니, 이는 능숙하게 익히고 발전하는 것이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 자세한 뜻은 10회향품(十迴向品)에서 밝히겠다.
아수라왕에서 부터 일천자에 이르기까지의 10중(十衆)으로서 10회향을 나타낸, 그 10회향 중에서의 두 번째인 제2 불괴회향(不壞廻向, 무너지지 않는 회향)은 참다운 이지(理智)로서 중생과 같은 속박을 받으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 대비계(大悲戒)를 성취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세속의 성품이 진(眞)임을 요달해서, 진(眞)과 속(俗)이 둘이 아닌 때문이다.
법화경(法華經)의 명칭인 묘법연화(妙法蓮華)가 이러한 뜻이며,
이 경전의 명칭인 대방광불화엄(大方廣佛華嚴) 역시도 이러한 뜻이다.
이지대비(理智大悲)인 법계 자체의 청정한 깨달음(覺)으로 만행을 일으키는 까닭에 불화엄경(佛華嚴經)이라 호칭하는 것이며,
보살이 법성의 대지혜와 대자비로 세간의 흐름을 버리지 않고 동사(同事)하는 것을 수(水)라 칭하고,
보현행을 갖추는 것을 연(蓮)이라 하고,
각(覺)과 행(行)으로 함께 자랑하는 것을 묘법(妙法)이라 칭한다는 것을 밝히는 까닭에 ‘불괴회향(不壞迴向)’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성(眞性)을 훼손시키지 않고서도 흐름을 같이하면서 세속에 들어가는 것을 불괴(不壞)라고 칭하고,
이와 같이 처럼 자체성이 없는 무성보리(無性菩提)의 의지함이 없는 무의(無依)이거나, 머물지 않는 무주(無住)의 지혜가 자재롭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가루라왕(迦樓羅王)으로써 사(事)에 의탁해서 나타내는 것이니,
가루라(迦樓羅)는 금시조(金翅鳥)이다.
이 한 대목 경문의 뜻을 넷으로 나눈다면,
*첫째는 대중의 수를 드는 거중수(擧衆數)이며,
*둘째는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내는 기위표법(寄位表法)이며,
*셋째는 명칭을 해석해서 행과 짝짓는 석명배행(釋名配行)이며,
*넷째는 수를 매듭짓고 덕을 찬탄하는 결수탄덕(結數嘆德)이다.
첫째, 대중의 수를 든다는 거중수(擧衆數)는 첫 행에서 알 수 있으며,
둘째,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내는 것은 가루라왕의 지위인 사(事)에 의탁하여 대해(大海)에서 청정한 눈으로 목숨이 다한 용(龍)을 보고는 두 날개로 날아서 잡아채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건져서 구제(拔濟)한다 뜻을 밝힌 것이니,
법계품(法界品)에서는 “항상 중생을 건져서 구제하여 모든 유(有)의 바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가루라왕”이라 한 것과 같은 것으로, 이는 10회향(十迴向)의 보살이 항상 생사의 대해에서 법공(法空)의 청정한 지혜의 지안(智目)으로 근기가 성숙한 중생을 관찰(觀察)하여서 망년의 마음이 가라 앉아서 고요한 지(止)와
지혜로써 비추어 보는 관(觀)의 두 날개로 잡아채어서 자성이 청정한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의 언덕으로 편안히 옮겨 놓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 지(止)와 관(觀)은 법성으로서 지체(止體)를 삼고,
자성(自性)의 체성이 없는 지혜의 자성무성지(自性無性智)로서 관체(觀體)를 삼는데,
능관(能觀)과 소관(所觀)의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계(戒)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이니,
계(戒)가 청정하기 때문에, 마치 대해가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는 불숙사시(不宿死屍)와 같은 것이니,
이는 대자비의 대지혜와 계(戒)가 인간과 천상의 인천(人天)과 3승(三乘)의 오염(汚染)과 청정(淸淨)으로 구분하는 두 가지 견해의 사시(死屍,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금시조(金翅鳥, 가루라)의 두 날개의 거리가 36만 리가 된다.
셋째, 명칭을 해석해서 행과 짝짓는 석명배행(釋名配行)이란,
대속질력(大速疾力, 엄청나게 빠른 능력)가루라왕은 계(戒)바라밀 중 단(檀)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이는 이 지위의 보살이 성기(性起)의 대자비로써 생사의 바다에 들어가 근기가 성숙한 중생을 제도하되, 지관(止觀)의 힘으로 일념 사이에 불과(佛果)인 열반의 언덕으로 이르게 함을 밝힌 것이다.
일념(一念, 잠깐, 한 순간) 사이에 법계성(法界性)에 이르는 것이지,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삼세에 의해서 구속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금시조가 용을 잡는 비유를 든 것이다.
속질력(速疾力)이란 것은 금시조가 용을 잡을 때 일념(一念) 사이에 몸을 이끌어 바닷물에 들어가서, 물결이 합쳐지기도 전에 용을 잡아서 나오는 것을 속질력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아래 경문의 ‘덕을 찬탄하는 탄덕(嘆德)’에서 “일체 중생을 능히 잘 구원하여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한 것이니, 도를 터득하여 득도(得道)한 보살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선정과 지혜의 관찰력(觀察力)을 통하여 무명(無明)의 대해(大海)에서의 좋고 나쁜, 장단(長短)에 속박된 마음으로부터 일념으로 진(眞)에 응하면,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삼세(三世)가 일시에, 그러한 견(見)이 소진하나니,
이렇게 도를 보아 견도(見道)하고, 이렇게 도를 닦아 수도(修道)하는 것을 이름하여
‘발심(發心)과 필경(畢竟, 궁극의 도에 들어가는 것)에 둘이 다르지 않은 것이니,
이러한 두 마음의 이심(二心) 중에서는 발심이 어렵다’고 칭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만 10주 초심의 범부지(凡夫地)에서부터 일념으로 진(眞)에 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지, 궁극의 불과가 어렵다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궁극에 도달하는 것이 초심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법이 다르지 않고, 지혜가 다르지 않고, 때(時)도 다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법계의 체용을 밝힌 것이니, 선정과 지혜로 비추어 보면 볼 수 있을 것이나, 정(情)으로 생각하면 그대로 미혹일 것이다.
그 이하는 모든 바라밀로써 명칭의 뜻에 의거해 대조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수를 매듭짓고 덕을 찬탄하는 결수탄덕(結數嘆德)것은 경문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10회향을 설명하는 것 중 세 번째, 긴나라왕(緊那羅王)은 등일체제불(等一切諸佛, 모든 부처님과 동등함) 회향을 밝힌 것이다.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생사에 처해서 법인문(法忍門)으로 만행의 주(主)를 삼아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보리의 무상법락(無上法樂)을 얻게 하기 때문에 긴나라왕에 의탁해서 나타낸 것이다.
긴나라(緊那羅王)는 한역하면 의신(疑神)이며 또한 행(行)의 주체가 되는데, 사람 같으면서도 정수리에 뿔이 있고, 입도 소의 입과 같아서 누구나 보면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기 때문에 의신(疑神)이라 말한다.
즉, 이 지위의 보살이 10회향(十迴向)으로 대자비심을 성취하고 법인력(法忍力)으로도 6도(六道)에 태어나서 중생과 행을 같이하면서 그들을 이롭게 하는데, 사람이 보면 누구나 범인인지 성인인지 의심하나니,
만약 범부라면 지혜가 부처님과 같고, 만약 성현이라면 그 행이 범부와 같기 때문에 의신(疑神)으로,
그 행에 의탁해서 나타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긴나라(緊那羅王)는 능히 행의 주체를 지어 천(天)과 함께 유희하면서 인(忍)바라 밀문을 주재하니,
인(忍)을 만행의 주체로 삼으니, 만약 인(忍)이 없다면 만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忍)이 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니, 그 속의 네 가지 뜻은 앞의 서술에 준해서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열 개의 십의신(十疑神)은 인(忍)바라밀 중 10바라밀이니, 명칭의 뜻으로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며, 이 종류는 축생도(畜生道)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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