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9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네 종류의 인과(因果) 중 마지막 네 번째의 여래의 대지혜로 만행을 따르는 인과(因果)를 밝힌다는 것이란,
지혜가 만행에 통하는 것이니, 세간에 출현해서 정각(正覺)을 성취하는 것이 정인(正因)이 되고
사자좌(師子座)가 의과(依果)인 것이다.
이 사자좌(師子座)의 한 대목으로부터 그 뜻을 셋으로 나누겠으니,
*첫째 법좌의 명칭을 해석하는 것이며,
*둘째 법좌의 높고 넓음을 서술하는 것이며,
*셋째 법좌를 장엄한 인과를 밝힌 것이다.
첫째로 법좌의 명칭에 대한 해석이니, 사자(師子)란 의주석(依主釋)으로, 여래께서 대중 속에서 무외(無畏)를 얻은 때문이지 법좌 위에 사자의 장엄이 있는 것은 아니니, 설사 있다고 할지라도 단지 의보(依報)를 밝힌 것일 뿐이다.
둘째로 법좌의 높이와 너비를 서술한 것으로, 경전에서는 다만 높이와 너비만 말하고 그 수량은 말하지 않았으니,
예를 들자면, 아래의 10주위 중 제석천궁의 불좌(佛座)는 높이가 십천(十千) 층급(層級)이며,
10행위 중의 야마천궁의 불좌는 높이가 백만(百萬) 층급이며,
10회향위 중 도솔천궁의 불좌는 높이가 백만억(百萬億) 층급이다.
높이와 너비가 지위에 따라 저마다 서로 부합하는 것이니,
이러한 순서로 나아가면 10지위인 타화천궁에서는 그 불좌의 높이가 억만억(億萬億) 층급일 것이니, 이 천궁은 이미 화락천을 넘어선 때문이며,
제3선(禪) 중에서 11지를 설하였으니, 이 천궁은 이미 화락천을 넘어섰기 때문이며,
제3선(禪) 중에서 11지를 설했으니, 이 또한 앞의 두 천(天)을 초과해서 두 배씩 더 높아진 것이다.
십지품에서는 불좌의 층급과 너비와 너비의 양을 말하지 않았지만, 다만 순서를 따라 견주어 본 것이며,
이 네 지위에 있는 불좌의 높고 낮은 층급이 같지 않은 것은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의 닦아 나아가는 지위에 따라 보는 바의 높고 낮음이 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실제로 논하자면, 불좌의 높고 넓음의 고광(高廣)은 결정적으로는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의 대소고하(大小高下)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여래 심량(心量)의 온갖 계(繫, 묶임)가 소진한 까닭에 무량한 것이며, 초래한 의과(依果) 또한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인 때문에 저 무변신(無邊身)보살이 불신(佛身)의 경계를 헤아려 보고자 하였지만 불가능했던 것이니, 이미 정견(情見)으로 헤아리는 것을 벗어난 때문이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모공(毛孔) 중에 머물면서도 몸이 작아지지도 않고, 법계 안에 거처하면서도 몸이 커지지 않는 것이니, 이는 정량(情量)이 소진하였기 때문이다.
몸이 유(類)를 따르면 법좌도 유(類)를 따르는 것이니, 만약 여래 스스로의 보체(報體)로써 말한다면, 법계를 법좌의 체(體)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인(因)이 이와 같다면 의과 또한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법계품(法界品)에서는 법계와 똑같이 법좌의 양이 정해진 것이다.
세번 째로 법좌를 장엄한 인과를 밝힌다면, 대략 10 가지가 있으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로 만행을 따름으로써 일체처에서 정각을 성취하는 것을 인(因)으로 삼고, 일체처에서 10 가지 장엄으로 의과(依果)를 삼는 것이니,
이 10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마니로 대(臺)를 삼은 것은 여래의 지혜로 법의 베품을 따름으로써 단(檀)바라밀을 성취함을 밝히는 것이니, 지혜의 바탕이 청정하므로 초래한 의과도 이구보(離垢寶, 마니)로 장엄하게 된 것을 밝힌 것이다.
마니는 한역하면 이구보로서 지혜가 능히 세속을 벗어나는 것으로 대(臺)를 삼는 것이니, 이는 지혜의 바탕이 진속(塵俗)을 벗어났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둘째, 연꽃을 그물로(연화위망 蓮華爲網)삼은 것이란, 지혜가 만행을 따름으로써 계(戒)바라밀문을 성취하는 것이니, 그 성품은 계율이 참(眞)을 얻으면서도 증명하지 않고, 속박에 처해 있으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것이 마치 연꽃이 물 속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물(網)로 삼은 것은 지혜가 계(戒)의 바탕을 따라서 가르침의 교행(敎行)으로 중생을 건지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도 과보가 같음을 밝힌 것이다.
*셋째, 청정한 묘보(妙寶)로 그 윤(輪)을 삼은 것은 여래의 지혜로 행(行)을 따름으로써 인(忍)바라밀문을 이루는 것을 밝힌 것이니, 왕궁에 태어나 살고 또 정각의 성취를 나타내는데, 가령 조달(調達)과 범천(梵天)과 마왕 파순(波旬)이 괴롭혀도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도 묘보(妙寶)로 윤(輪)을 삼은 것이니, 이는 부처님의 인행(忍行)이 원만하기 때문에 과보도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ㅡ조달(調達), 데바닷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총명하고 지혜가 많았지만, 아사세왕과 결탁하여 부처님을 해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5백 명의 비구를 데리고 따로 교단을 세웠다.
ㅡ범천(梵天), 새계 초선천의 주재자
ㅡ파순(波旬), 욕계 제6천 타화자재천의 주재자로서 천마(天魔)의 우두머리.
*넷째, 온갖 색깔의 중색(衆色)의 다양한 꽃으로 영락(瓔珞)을 만든 것은, 여래가 지혜로써 온갖 중행(衆行)을 따르면서 정진바라밀을 성취한 때문에 초래한 의과도 온갖 색깔의 꽃으로 영락을 만들어 보좌(寶座)를 장엄함을 밝힌 것으로, 정진의 행으로 장엄을 삼고 대지혜 법신으로 화영(華瓔)을 삼기 때문에 지혜와 행이 서로 장엄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 당사(堂榭)와 누각과 계단과 호유(戶牖) 등 온갖 물상(物像)의 체(體)를 갖추어서 장엄한 것은, 여래께서 지혜로 행을 따름으로써 선(禪)바라밀 문을 성취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여래께서 지혜로 선행(善行)을 따르면서 움직일 때마다 고요하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선문이 총체적으로 법신의 대지혜와 대자비를 닦아 나아가는 행문(行門)의 층급 단계를 포섭하여 모두 구족함으로써 초래한 의과도 역시 구족함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물상(物像)이 체(體)를 갖추어 장엄한 것을 총체적으로 든 것이다.
세속의 책들은, 큰 집을 사(榭)라고 말하는데, 그 모양이 위가 평평해서 대관(臺觀)이 될 수 있으며, 사방의 주위에는 처마(簷, 첨)가 있고, 위 아래로 난간과 계단으로 장엄하고, 가운데의 빈 곳이 방이 된다고 하였다.
또 “대(臺)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사(榭)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이다.
*여섯째, 보배 나무의 가지와 열매가 빙 둘러가면서 늘어서 있는 것은, 여래께서 지혜로 슬기의 작용을 따르면서 근기에 의거해 행(行)을 같이 함으로써 초래한 의과가 나무로 보좌(寶座)를 장엄함을 밝힌 것이니, 보배 나무의 가지와 열매가 빙 둘러 가면서 늘어선 것은 이지(理智)와 비원(悲願)이 동시에 서로 사무치면서 총(總)과 별(別)이 처소를 얻어 편벽된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을 밝힌 것이니, 10현문으로 참조하면 알 수 있으리라.
*일곱째, 마니 광명의 구름이 서로서로 비추는 것은, 여래께서 지혜로 방편행을 따라서 근기에 따라 이익을 줌으로써 초래한 것도, 이와 같은 의과로 장엄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비춘다는 것은 근기를 알아 사(事)를 같이 하는 것이다.
*여덟째,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주왕(珠王)으로 화현하니 일체 보살의 상투 속의 묘보(妙寶)가 다 광명을 방출하여서 밝게 비추어 영촉(瑩燭)한 것은, 여래의 인(因)에서 8지의 대지혜와 대염원의 공(功)이 종결되면서 대자비가 이미 원만하고 대지혜가 뚜렷이 밝아졌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정수리를 어루만짐으로써 능히 시방으로 불신(佛身)의 성취를 보이고, 일체 보살의 원행(願行)이 똑같이 평등하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도 부처님께서 주왕으로 화현한 것이니, 이는 시방 모든 부처님의 자재로움과 똑같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보살의 묘보(妙寶)가 함께 와서 밝게 비춘 것은 보살행(菩薩行)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며,
영(瑩)은 밝고 깨끗하다는 뜻이며, 촉(燭)은 비춘다는 뜻이니, 이는 여래의 인(因) 가운데에서 8지의 대지혜로, 본원력(大願力)을 따라 중생의 근기를 비추면서 그 근기에 의거해 이익을 주기 때문에, 의과가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모두 10현(玄)과 6상(相)으로 회통하면 1찰나에 동(同)과 별(別)을 총체적으로 구족할 수 있다.
따라서 정(情)을 따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항상 이지(理智)와 달리하지 않고 아는 것이니, 작위 없는 선정의 체(體)를 의거해야만 비로소 밝은 것이며, 생각으로 아는 자는 신위(信位, 언어에 의한 사념을 잊지 못하면 증득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산위)이다.
*아홉째, 다시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가지(加持)한 것은, 여래께서 대지혜로 행을 따름으로써 역(力)바라밀을 성취해 대법사가 되어서 부처님의 법륜을 설하니, 모든 부처님의 능력과 같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依果)도 부처님의 능력으로 법좌를 가지(加持)하여 법좌로 하여금 법을 설하게 한 것이다.
*열째, 법좌에서 음성을 내어서 부처님의 경계를 설하자, 오묘한 음성이 멀리까지 퍼져 하창(遐暢)하여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은, 하(遐)는 멀리라는 뜻이며 ,창(暢)은 기뻐한다는 뜻이니, 법좌에서 음성을 내어 부처의 경계를 설하자 법계에 두루하면서 멀리까지 중생을 기쁘게 한 것을 밝힌 것으로, 이는 여래의 인위(因位)에서 10지의 법운(法運)이 윤택함으로써 초래한 의과이기 때문이다.
문장에 따라 뜻을 풀이하는 것을 넷으로 나눈 것 중 세 번째의 여래께서 성도하시어 중생을 자유롭게 다스림을 밝힌 분(分)은 다음과 같으니, 이 분(分)에서 “이때 세존께서는, (이시세존 爾時世尊)” 이하부터 “있는 바의 장엄을 모두 다 나타나게 하다. (소유장엄실령현현 所有莊嚴悉令顯現)”에 이르기까지의 13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법좌에 처해서 성불하는 것과 몸(身)ㆍ언어(語)ㆍ지혜(智) 등의 세 가지 삼업(三業)의 자재함과 권속의 장엄과 중생을 이롭게 함에 자유로움을 밝힌 것이다.
여래께서 앉으신 법좌는 법계를 좌체(座體)로 삼고, 여래의 일체 만행의 과보를 얻은 것으로서 의과의 장엄을 삼는 것이니, 여래께서 대지혜의 몸으로 법좌의 장엄을 반연하는 것은 모두 여래의 대지혜로 행을 따르면서 운행(運行)에 맡겨 과보를 얻는 것이니,
마치 용이 노니 구름이 일고 호랑이가 울부짖으니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과보의 감응이 마땅히 그러한 것이지 사물이 능히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최고의 정각을 성취한다는, 성최정각(成最正覺)이란 것은 외도와 성문과 연각이 아니란 것을 나타낸 것이다.
권교(權教)에서 나무나 풀의 자리(座)로 세속을 싫어하여 속박에서 벗어난 것은 이해력이 낮은 중생으로 하여금 3승의 종성(種性)을 일으키게 해서 8고(八苦)를 뽑아내도록 하는 것이지 구경각(究竟覺)의 정각은 아니다.
이 3승과 같은 각(覺)이 아니란 것을 가려내기 위해서 최고의 정각을 성취한, 성최정각(成最正覺)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 정각이란 기뻐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아서 오염과 청정의 정(情)이 다한 까닭에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법계성(法界性)에 부합해서 자유롭게 교화(教化)하는 것이니, 즉, 일체 중생 세계의 찰해(刹海)가 모두 제한되지 않으며, 모든 과보의 경계도 몸과 국토가 서로 사무쳐 시방에 원만한 까닭에 모든 부처와 중생이 자타(自他)가 같이 처하면서 서로 사무쳐 들어가 영현(影現)이 겹겹이 겹치면서 다함이 없는 것이니, 과보가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정토가 타방(他方)에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상(大相)이 97 가지 대인(大人)의 상(相)과 다함이 없는 수호(隨好)를 갖추고 있으며, 정수리엔 화관(華冠)을 쓰고, 목에는 영락(瓔珞)을 걸고, 손에는 팔찌를 꼈다고 설하는 것이니, 이는 세속을 싫어해서 출가하고 모든 보살을 권해서 타방의 불국정토(佛國淨土)에 나게 하는 3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이러한 3승과는 같지 않음을 가려내기 위해서 최고의 정각을 성취한, 성최정각(成最正覺)했다고 말한 것이다.
아울러 비로자나(毘盧遮那)라고 호칭한 것은, ㅡ 한역하면 광명변조불(光明遍照佛)이다. ㅡ 그 대지혜의 교화로써 근기에 의거해 장애를 타파하기 때문이니, 경전에그 하나하나의 문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지혜가 삼세에 들어가서 모두 평등한 지능수속언입삼세(智能隨俗言入三世)'란 것은 지혜가 능히 세속을 따른다는 것을 밝히기 때문에 삼세에 들어간다고 말한 것이니, 즉 세속의 체(體)가 본질적으로는 참(眞)이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한 것이며,
총별동이성괴문(總別同異成壞門)의 6상(六相)의 뜻으로 총괄해 보면,
총(總)에 즉해서 완전한 별(別)이 있고, 별(別)에 즉해서 완전히 총(總)이 있으며,
동(同)에 즉해서 항상 이(異)가 있고, 이(異)에 즉해서 항상 동(同)이 있으며,
성(成)에 즉해서 항상 괴(壞)가 있고, 괴(壞)에 즉해서 항상 성(成)이니,
이 모두는 정(情)의 계(繫, 묶임)인 일(一)과 이(異), 구(俱)와 불구(不俱), 유무(有無)와 비유무(非有無), 상(常)과 무상(無常)의 생멸상(生滅相)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모두가 여래의 이지(理智)의 체용으로서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모두가 자재한 것이니, 자체(自體)에 염력(念力)이 없는 대지혜로 비추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대목의 13행의 경문은 모두 여래의 몸(身)ㆍ언어(語)ㆍ지혜(智) 세 가지의 삼업(三業)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작용을 따라 자재함을 밝힌 것으로, 경전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시 풀이하지 않는다.
문장에 따라 뜻을 풀이하는 것을 넷으로 나눈 것 중 네 번째의 “십불세계미진수 보살(十佛世界微塵數菩薩)” 이하부터 “무량한 공덕(無量功德)”에 이르기까지 30행의 경문은 보살 대중이 둘러쌈을 밝힌 분(分)이다.
이 분(分)에서 초회(初會)에 모두 47 대중이 둘러싸고 있음을 나타낸 것은 다 그 뜻이 있으니,
이 47대중 안의 최초 “보리수내류광중(菩提樹內流光衆)” 이하부터 “보현등십개상명실동명지위보(普賢等十箇上名悉同名之爲普)”에 이르기까지의 대중을 셋으로 나눈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9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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