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넷째, '해심밀경(海深密經)'은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닌 것으로 종지를 삼는다고 한 것은, 여래께서 유(有)를 가르치고, 공을 가르친 뒤에 이 '해심밀경'의 가르침을 설하셨으니, 유(有)와 무(無)의 두 견해를 회통함으로써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닌 가르침으로 삼은 것으로, 즉 8식 다음의 식(識)인 *9식(九識)이 순수하고 청정하여서 오염이 없는 순정무염식(純淨無染識, 순정식 純淨識)이라는 것을 설한 것이다.
마치 폭포수가 많은 물결을 일으키지만 그 물결이 물을 의지하는 것과 같이, 5식ㆍ6식ㆍ7식ㆍ8식들이 모두 *아타나식(阿陀那識)을 의지한다는 것이니, 이를 '해심밀경'에서는 “가령 깨끗한 거울에 그림자 하나가 반연해서 앞에 나타나면, 오직 그림자 하나만이 일어나고, 또 둘 이상의 많은 그림자가 반연해서 앞에 나타나면, 그러한 여러 그림자들이 일어나나니, 이는 거울면이 전변(轉變)해서 그림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림자를 받아들여서 없애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5식ㆍ6식ㆍ7식ㆍ8식이 의지하는 제9의 정식처(淨識處)를 밝힌 것이다.
또 경전에서는 “이같은 보살이 비록 법(法)을 말미암아 머물지라도 지혜를 의지처로 삼아 건립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경문의 뜻은 식처(識處)로 하여금 그 식(識)의 바탕(體)이 본래부터 참지혜의 진지(眞智)를 떠나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저 폭포수가 물의 바탕을 떠나지 않고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으며, 또 밝은 거울이 그 깨끗한 바탕에 의지해서 아무런 분별 없이 수많은 영상을 내포하면서도 유(有)에 걸리지 않고 항상 무(無)인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스스로의 마음인 자심(自心)에 나타난 식(識)의 모습은 본바탕인 본체(本體)의 조작이 없는 청정한 지혜를 떠나지 않는 것이라서, 나타난 영상이 모두 자타(自他)나 내외(內外)의 집착이 없는 것으로, 오로지 쓰임새(用)에 맡겨 지혜를 따르면서도 분별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공(空)과 유(有)의 두 속박을 깨뜨려서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해심밀경'의 게송에서도 이렇게 읊고 있는 것이다.
"아타나식(阿陀那識)은 너무도 깊고 미세해서
일체의 종자(種子)가 폭포수와 같이 흐르는구나.
내가 어리석은 범부에게는 열어 보이지 않았으니,
그들이 분별하고 집착해서 나(我)로 여길까 염려한 까닭이니라."
‘아타나식(阿陀那識)은 너무도 깊고 미세해서’라는 것은 범부들을 식(識)에 나아가 지혜를 이루도록 인도하는 것이니,
이는 2승(乘)이나 *점교(漸敎)ㆍ*시교(始敎)ㆍ배우는 보살들이 상(相)을 깨뜨려서 공(空)을 이루는 것과는 같지 않으며,
범부들이 집착하여 *실유(實有)로 여기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에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닌 것이다.
어째서 공(空)이 아닌가? 지혜가 연(隨緣)을 따라 기회(機)를 비추어 사물을 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유(有)가 아닌가? 지혜가 올바르게 연(緣)을 따를 때에도 그 체성과 작용의 성상(性相)이 없기 때문이며,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뜻인 까닭에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해심밀경'이 비록 이와 같이 심식(心識)의 처소에서 공과 유가 둘이 아님을 알게 할지라도 '화엄경'은 이와 달라서,
'화엄경'은 오로지 본신법계(本身法界, 비로자나 법계)의 한결 같이 참된 근본지불(根本智佛)의 체(體)와 용(用)을 드러낼 뿐이다. 이러한 까닭에 순진 무구한 성(性,본체)ㆍ상(相, 작용)과 법신(法身, 참된 몸)ㆍ보신(報身, 지혜의 몸)의 바다에서 곧바로 *상근기(上根器, 대심범부 大心凡夫)를 위해서 부처님의 과덕(果德)인 한결같이 참된 법계의 본지(本智)를 단박에 제시하는 것으로써 열어 보여서 깨달아 들어가는 *개시오입(開示悟入)의 문으로 삼은 것이지, 허망함을 따라 식(識)을 낳는 일 따위를 논하지는 않는다.
'법화경'은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을 깨우쳐서 청정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 것이니, 따라서 '법화경'은 2승이나 3승을 위한 것이 아니고, 또 여래께서는 3승인이 부처님의 체성과 작용의 성상(性相)의 법에 대해 지견(知見)으로 해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 까닭에 '법화경'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니,
‘성(性)과 상(相)의 여러 가지 뜻은 나나 시방의 부처님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지, 사리불(舍利弗)이나 벽지불(辟支佛)이나 *불퇴전(不退轉) 보살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법화경'으로 3승의 방편인 권학(權學)을 회통해서 불승(佛乘)의 진실한 법계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따라서 문 앞에 있는 양ㆍ사슴ㆍ소가 끄는 수레 세 가지 수레이라도 아직은 권승(權乘, 방편의 수레)을 받을 뿐이며,
맨땅의 노지(露地)에서의 흰 소인 백우(白牛)라야 비로소 실다운 덕의 실덕(實德)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법화경'은 약간이나마 '화엄경'과 부합하는 뜻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예를 들자면, 용녀(龍女)가 탄 수레가 바로 흰 소가 끄는 백우승(白牛乘)으로, 그 얻은 바는 선재(善財)동자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화엄의 교문(敎門)은 근본의 체(體)와 용(用)인 법계의 불과문(佛果門)을 곧바로 드러내어서, 이를 상근기의 범부에게 직접 부여하여 깨달아 들어가는 오입(悟入)하게 한 것이다.
이는 '심밀경(深密經)'에서 5식ㆍ6식ㆍ7식ㆍ8식ㆍ9식을 세워서 권문(權門, 방편문)을 마련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심밀경'에는 제9식의 아타나식을 방편으로 마련했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있으니, 즉 2승(乘)의 사람들은 생사(生死)를 싫어한 지 오래되어서 공(空)을 닦고 식(識)을 소멸시켜 곧바로 공적(空寂)으로 나아간다.
또 제2시(時)에 반야(般若)의 가르침을 설했을 때에는 2승(乘)과 단계적으로 배움의 과정에 있는 보살인 점학보살(漸學菩薩)을 돌이키기 위해서, 다분히 공(空)으로 유(有)를 깨드림으로써 6바라밀(六波羅蜜)을 수행의 수레(乘)로 삼은 것이다.
이 중에서 2승은 약간이라도 마음을 돌이키고, 점학보살(漸學菩薩)이 더욱 더 공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방편을 배우는 3승의 보살은 맨 처음 대치(對治)하는 문(門)이 오히려 소승이 처음 대치하는 문과 약간 비슷한 점이 있으니, 이는 한 푼의 자비(慈悲)만이 늘어났을 뿐, 법신과 불성과 근본지(根本智) 등의 도리를 아직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문(空門)으로 타고 갈 수레를 삼고, 6바라밀로 수행의 모습을 삼기 때문에 처음 대치하는 문이 오히려 무상관(無常觀)ㆍ부정관(不淨觀)ㆍ백골관(白骨觀)ㆍ미진관(微塵觀) 등을 통해 비로소 공관(空觀)으로 들어가는 2승과 같은 것이며,
2승은 적멸(寂滅)로 나아가고, 보살은 열반에 들지도 않고 극락을 원하지도 않으며, 이 세상의 생(生)을 받아 중생을 교화하고자 생(生)에 머무르면서 공관(空觀)이나 무아관(無我觀을 통해서 나(我)와 법(法, 대상)을 굴복시켜서 그러한 관념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부터 법신ㆍ불성ㆍ근본지가 아니라서 그 견처(見處)가 참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공(空)만을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해심밀경'에서는 방편으로 제9식을 세워 순정식(純淨識)으로 삼은 것이니, 말하자면 7식과 8식이 정식(淨識)으로써 의지처를 삼기 때문이며, 곧바로 제8 종자식(種子識)이 여래장(如來藏)이 된다고 설하지 않은 것은 배우는 무리들이 괴로운 수습(修習)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즉 업의 종작 항상 참(眞)이라고 설하게 되면, 두려워하여서 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방편으로 제9 아타나식을 세워서 정식(淨識)을 삼은 것이니, 이는 식의 성품을 소멸시키지 않고서도 대보리(大菩提)를 오래도록 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유마경'에서도 “불법(佛法)을 갖추지 못하였어도 수(受)를 소멸시켜 증명을 취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니,
수(受)를 소멸하지 않았다면, 상(想)이나 식(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유마경'에서도 “온갖 번뇌의 진노(塵勞)들이 여래의 종자가 된다”고 한 것과 같이, 도를 닦는 선비들은 그 종류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길이 다르며, 이해(解)와 실천(行)도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다.
2승(乘)을 제외한 보살승(菩薩乘)에도 네 종류의 차이가 있으니,
첫째는 공(空)과 무아(無我)를 닦는 보살이요,
둘째는 단계적으로 불성(佛性)을 보는 보살이며,
셋째는 단박에 불성을 보는 보살이요,
넷째는 여래의 자성청정지(自性淸淨智)를 통해 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써 노력하는 가행(加行)으로 차별지(差別智)를 일으켜 보현행(普賢行)을 원만히 하여서 대자비를 성취하는 보살이니, 궁극에는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서도 시방에 충만한 불과문(佛果門)인 것이다.
이상은 대략의 명목(名目)만을 제시한 것이며,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밝혀 나가겠다.
'화엄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으니,
“어떤 부류의 보살은 백천억 *나유타(那由他)의 겁을 거치면서 6바라밀을 행한다 해도 부처님의 불가(佛家)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여전히 *가명(仮名)보살이라 칭한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밝히겠지만, 어쨌든 비록 불성을 보더라도 지혜의 업인 여래근본지의 무공용의 *지업(智業)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여전히 가명 보살이라 칭하는 것이다.
ㅡ9식(九識); 8식 다음의 식(識)으로서 순정식(純淨識)이라고도 하는데, 진여(眞如)를 식(識)으로 인정한 것이다.
ㅡ아타나식(阿陀那識); 본래는 제8식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9식을 일컫는 것이다.
ㅡ오시팔교(五時八敎);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시점부터 열반 때까지 49년 동안 설하신 것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서 분류한 것을 5시(五時)라 하고, 그 가르침의 내용을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을 팔교(八敎)라 하며, 오시는;
①화엄시(華嚴時): 부처님이 성도(成道) 후 21일간의 설법기간.
②아함시(阿含時): 12년간 소승교(小承敎)를 설한시기.
③방등시(方等時): 대, 소승법을 함께 설하여 근기에 따라 고르게 이익을 주는 8년간 설한 시기. (유마경. 사익경. 능가경. 능엄삼매경. 금강명경. 승만경. 등등)
④반야시(般若時): 21년간 반야경을 설함.
⑤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4년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시기.
8교(八敎)(돈점비부 장통별원)
①화의4교(化儀四敎):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
②화법4교(化法四敎):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
ㅡ점교(漸敎); '범망경'의 가르침. 점진적으로 익혀 나아가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대로를 이해할수 없는 이를 제도하기 위해만든 방편시설이며,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쉬운 이론으로 설명하여서 점차로 불타의 진리 에 접근하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5시의 교판에서 아함.방등.반야의 3시는 화엄돈교에 대하여 모두 점교라 하며, 이는 설법을 듣는 중생의 능력에 맞추어서 적합한 방편을 사용하여서 유인(誘引) → 탄가(彈咖) → 도태(淘汰)의 방법을 사용하는 법문을 의미한다.
ㅡ시교(始敎); 반야부 경전의 가르침.
ㅡ실유(實有); 실유의 종지를 말하는 실유가 아니라, 범부가 허망한 상(相)에 집착해서 실유로 삼는 것을 말한다.
ㅡ상근기(上根器); '화엄경'에서는 대심범부(大心凡夫)를 뜻한다.
ㅡ개시오입(開示悟入);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서 보이고,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고,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다.
ㅡ불퇴전(不退轉); 도달한 수행의 경지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
ㅡ나유타(那由他);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단위. 천억이라고도 하고 만억이라고도 하는데 일정하지가 않다.
ㅡ명(仮名)보살; 불가(佛家)는 여래근본지의 가문이니, 이는 무공용(無功用)의 도를 말한다. 설사 어떤 보살이 백천억 나유타겁을 계속해서 6바라밀을 행하더라도 만약 여래근본지의 가문에 태어나지 못하면, 모든 행위가 유공용(有功用)에 떨어져서 1승 보살의 무공용의 도(道)에는 합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의 덕이 없으므로 가명 보살이라 한 것이다.
ㅡ지업(智業): 자비가 지극해도 애착을 일으키지 않고, 종일 중생을 제도해도 제도하는 상(相)이 없는 여래근본지의 무공용의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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