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8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9. 증상혜학분(增上慧學分) ② 1
▶論曰:此中加行無分別智,有三種:謂因緣`引發`數習生差別故.
▷논문; 이 중에서 가행(加行)의 무분별지(無分別智)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인연(因緣)ㆍ이끌어 냄의 인발(引發)ㆍ자주 익힘의 삭습(數習)으로부터 생겨나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ㅡ증상혜학의 상 중에서 다시 세 가지 무분별지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가행지와 근본지는 세 가지의 차이, 후득지는 다섯 가지의 차이가 있다.
▶釋曰:此中加行無分別智,三種差別:謂或由種姓力`或由前生引發力`或由現在數習力,而得生故. 或由種姓力者, 種姓爲因,而得生故.前生引發力者,由前生中,數習爲因,而得生故.現在數習力者,由現在生,士用力爲因,而得生故.
▷해석한다; 이 중에서 가행무분별지(加行無分別智)의 세 가지 차이는
혹은 종성의 세력인 종성력(種姓力)에 의해서이고,
혹은 전생의 이끌어 내는 세력인 전생인발력(前生引發力)에 의해서이며,
혹은 현재의 자주 익히는 세력인 현재삭습력(現在數習力)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혹은 종성의 세력인 종성력(種姓力)에 의한다는 것은 종성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며,
전생의 이끌어 내는 세력인 전생인발력(前生引發力)이란 전생에서 자주 익힌 것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며,
현재의 자주 익히는 세력인 현재삭습력(現在數習力)이란 현재에서의 수행력인, 그 사람의 사용력(士用力)을 원인으로 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論曰:根本無分別智,亦有三種:謂喜足`無顚倒`無戲論無分別差別故.
▷논문;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 근본지)에도 역시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기쁘게 만족함의 희족(喜足)ㆍ전도되지 않음의 무전도(無顚倒)ㆍ희론이 없음의 무희론(無戲論)의 무분별지의 차이가 있는 까닭이다.
▶釋曰:此中喜足無分別者,應知已到聞思究竟,由喜足故,不復分別故,名喜足無分別智.謂諸菩薩,住異生地,若得聞思覺慧究竟,便生喜足,作是念言:凡所聞思極,至於此.以是義故,說名喜足無分別智.
▷해석한다; 여기에서 ‘기쁘게 만족함의 희족무분별(喜足無分別)’이란, 듣고 사유함의 궁극에 이르러 기쁘게 만족하여서 다시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희족무분별지(喜足無分別智)라 이름하는 것이며,
모든 보살은 범부의 지위에 머물러서 만약 들어서 이루는 지혜인 문혜(聞慧)와 사유해서 이루는 사각혜(思覺慧)의 구경을 얻는다면, 곧 만족한 기쁨을 일으켜서 생각으로 말하기를 ‘무릇 듣고 사유하는 바의 구경에 이르렀다’고 하나니, 이러한 뜻으로, 기쁘게 만족함의 희족무분별지(喜足無分別智)라 이름하는 것이며,
復有餘義,應知世閒,亦有喜足無分別智,謂諸有情,至第一有見爲涅槃,便生喜足,作是念言:過此更無所應至處故.名喜足無分別智.
다시 별도의 의미가 있으니, 세간에도 역시 기쁘게 만족함의 희족무분별지가 있으니,
모든 유정은 제일유(第一有, 유정천으로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천)에 이르러서 열반이라 하면서, 문득 기쁘하고 만족한 희족(喜足)을 일으켜서 생각으로 말하기를 ‘이것을 지나면 마땅히 다시 이르러야 할 곳이 없으리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기쁘게 만족함의 희족무분별지(喜足無分別智)라 이름하는 것이다.
無顚倒無分別者,謂聲聞等.應知彼等通達眞如,得無常等四無倒智,無常等四顚倒分別,名無顚倒無分別智.
‘전도되지 않음의 무전도무분별(無顚倒無分別)’이란, 성문등을 말하는 것이니, 성문은 진여에 통달하여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등의 네 가지 전도됨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상주의 상락아정(常樂我淨) 등의 네 가지 전도의 사전도(四顚倒)의 분별이 없기 때문에 전도되지 않은 무전도무분별지(無顚倒無分別智)라 이름하는 것이다.
無戲論無分別者,謂諸菩薩.應知菩薩於一切法,乃至菩提,皆無戲論.應知此智所證眞如,過名言路`超世智境,由是名言不能宣說,諸世閒智,不能了知.
‘희론이 없는 무희론무분별(無戲論無分別)’이란, 모든 보살을 말하는 것으로, 보살은 일체법과 나아가 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희론이 없으니, 이 지혜가 증득한 진여는 언어로써의 표현을 넘어서고 세간 지혜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언어로 널리 말할 수 없고, 모든 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論曰:後得無分別智,有五種:謂通達`隨念`安立`和合`如意思擇差別故.
▷해석한다; 후득무분별지(後得無分別智, 후득지)에도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통달(通達)ㆍ생각에 따르는 수념(隨念)ㆍ안립(安立)ㆍ화합(和合)ㆍ뜻대로의 여의(如意)의 사유해서 간택함인 사택(思擇)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釋曰:此後得智,五種差別,一通達思擇`二隨念思擇`三安立思擇`四和合思擇`五如意思擇.
▷해석한다; 이 후득지의 다섯 가지의 차이란,
첫째는 통달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통달사택(通達思擇)이고,
둘째는 생각에 따름의 사유해서 간택하는 수념사택(隨念思擇)이며,
셋째는 안립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안립사택(安立思擇)이고,
넷째는 화합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화합사택(和合思擇)이며,
다섯째는 뜻대로 사유해서 간택함의 여의사택(如意思擇)이다.
此中通達思擇者,謂通達時,如是思擇:我已通達.此中思擇,意取覺察.
여기에서 ‘통달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통달사택(通達思擇)’이란 통달할 때 ‘나는 이미 통달했다’라고 이렇게 생각해서 간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사유해서 간택함의 사택(思擇)의 뜻은 관찰하여 깨치는, 각찰(覺察)의 뜻이다.
隨念思擇者,謂從此出,隨憶念言:我已通達無分別性.
‘생각을 따라 사유해서 간택함의 수념사택(隨念思擇)’이란, 이 선정에서 나와서 지니는 생각을 따라 ‘나는 무분별성에 통달했다’고 말하는 것이며,
安立思擇者,謂爲他說此通達事.
和合思擇者,謂摠緣智,觀一切法,皆同一相,由此智故,進趣轉依,或轉依已,重起此智.
‘안립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안립사택(安立思擇)’이란, 남을 위해서 이 통달사(通達事)를 말하는 것이며,
‘화합의 사유해서 간택함의 화합사택(和合思擇)’이란 총체적으로 반연하는 지혜로써 일체법은 다 동일한 동일상(同一相)이라고 관찰하고, 이 지혜에 의거함으로써 나아가 전의(轉依)를 이루는 것이니, 전의하고 나서 혹은 거듭 이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다.
如意思擇者,謂隨所思,一切如意,由此思擇,能變地等.令成金等爲得如意,起此思擇,是故說名如意思擇,如有說言:由思擇故,便得如意.
‘뜻대로 사유해서 간택함함의 여의사택(如意思擇)’이란, 생각하는 바를 따라 모두 뜻대로 되는 것이니, 이 사유해서 간택함에 의하여 능히 땅 등을 변화시켜 금 등을 만드는 것이다.
뜻대로 되는 여의(如意)를 얻기 위해서 이 사유해서 간택함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여의사택(如意思擇)이라 이름하며, 사유해서 간택함에 의해서 문득 뜻대로 되는 여의(如意)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雖已成立無分別智,猶未宣說成立因緣,是故復說多頌顯示.
비록 이렇게 무분별지를 성립했지만, 아직 성립의 인연을 널리 말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많은 게송으로 인연을 나타내었다.
▶論曰:復有多頌,成立如是無分別智.
▷논문; 다시 많은 게송으로써 이러한 무분별지를 성립하나니;
“鬼傍生人天, 各隨其所應, 等事心異故, 許義非眞實.
아귀ㆍ축생ㆍ인간ㆍ하늘 세계가 각각 그 상응하는 바를 따라,
똑같은 현상의 등사(等事)에 대한 마음이 다른 까닭에
대상(義)은 진실이 아닌 의비진실(義非眞實)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
於過去事等, 夢像二影中, 雖所緣非實, 而境相成就.
과거의 일 등, 꿈속의 영상의 두 가지 영상 중에서
소연(所緣, 인식대상)은 진실이 아니지만 경계상인 경상(境相)을 성취하나니,
若義義性成, 無無分別智, 此若無佛果, 證得不應理.
만약 대상(義)으로서 대상의 성품인 의성(義性)을 성취한다면, 무분별지는 없는 것이라.
만약 이것이 없는 것이라면, 불과를 증득함이 도리에 맞지 않을 것이라네.
得自在菩薩, 由勝解力故, 如欲地等成, 得定者亦爾.
자재를 얻은 보살은 뛰어난 이해의 해석력(勝解力)에 의거해서
하고자 하는 대로 땅 등을 이루나니, 선정을 얻은 이 역시도 그러하다네.
成就簡擇者, 有智得定者, 思惟一切法, 如義皆顯現.
간택(簡擇)을 성취한 이와 지혜가 있고 선정을 얻은 이는
일체법을 사유하여 뜻 그대로 다 현현한다네.
無分別智行, 諸義皆不現, 當知無有義, 由此亦無識.”
무분별지가 작용한다면 모든 대상(義)은 다 나타나지 않나니,
대상(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하여 역시 식(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리.
▶釋曰:鬼`傍生`人`天,各隨其所應等者,謂於傍生,見有水處,餓鬼見是陸地高原;於人所見有糞穢處,猪等傍生見爲淨妙,可居室宅;於人所見淨妙飮食,諸天見爲臭穢不淨.如是衆生於等事中,心見異故,應知境義非眞實有.
▷해석한다; ‘아귀ㆍ축생ㆍ인간ㆍ하늘 세계가 각각 그 상응하는 바를 따라’ 등이란,
축생이 물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을 아귀는 육지의 높은 언덕으로 보며,
인간이 더러운 곳으로 보는 것을 돼지 등 축생은 깨끗하고 승묘한 곳으로서 살 만한 곳으로 보며,
인간이 깨끗하고 승묘한 음식으로 보는 것을 여러 하늘에서는 냄새나고 더러운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이,
중생은 똑같은 현상인 등사(等事)에 대하여 그 마음을 따라 다르게 보기 때문에, 대상(義)은 진실된 존재가 아닌 의비진실(義非眞實)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若義實無,識應無境.有無境識,如緣去來`如緣夢像`如緣鏡等,及三摩地所行影像,爲顯此義,說一伽他.謂於過去等,此中前半,由後半釋,如其次第,
만약 대상(義)이 실재가 아니라면 식(識)도 마땅히 대상이 없어야 하는 것인가?
대상이 없는 식이 있으니, 과거와 미래를 반연하는 것, 꿈의 영상을 반연하는 것, 거울 등과 삼마지에서 행하여지는 영상을 반연하는 것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이른바 ‘과거의 일 등과’ 등이다.
여기에서 전반부는 후반부에 의해서 해석되는 것이니, 마땅히 그 순서대로 그 상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應知其相.由無別實境,是故說言,有無境識.由自變爲境,是故說言, 境相成就,卽是自緣心影像義.
별도의 실재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대상이 없는 식이 있다는 무경식(無境識)’이라 말하는 것이니, 스스로 변화시킨 것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경계의 상인 경상(境相)을 성취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곧 스스로의 마음의 영상을 반연한다는 뜻이다.
謂緣去來,夢像二影,次第安立境相成就.若義義性成無無分別智者,若義實有義之自性, 是則應無無分別智. 若謂雖無無分別智,當有何失?此若無佛果證得不應理者,若汝撥無無分別智,是則不應證得佛果,故應決定許有如是無分別智.
과거와 미래ㆍ꿈속의 영상, 두 영상을 반연한다는 것은 순서대로 경계의 대상인 경상(境相)을 성취하는 것을 안립하는 것이며,
‘만약 대상(義)으로서 대상의 성품인 의성(義性)을 성취한다면 무분별지는 없는 것이다’는 것이란,
만약 대상(義)이 실제로 대상(義)의 자성이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분별지가 없어야 하는 것이며,
만약 무분별지가 없다고 말한다면 어떠한 과실이 있게 되겠는가!
‘만약 이것이 없다면 불과를 증득함은 도리에 맞지 않네’란,
만약 그대가 무분별지를 부정한다면 곧 마땅히 불과를 증득할 수 없어야 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무분별지를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得自在菩薩者,謂已證得自在菩薩.由勝解力故者,由願樂力.如欲地等成者,謂令地等,成金等相,隨欲皆成.得定者亦爾者,謂餘聲聞等.成就簡擇者者,謂已成滿毘鉢舍那.言有智者,謂諸菩薩.得定者者,得三摩地.思惟一切法,如義皆顯現者,謂菩薩等定慧成滿,攝心於內,如如思惟經等法義,如是如是,皆得顯現.若念佛時,隨所思念彼彼法中,佛義顯現,思色受等,應知亦爾.
‘자재를 얻은 보살’이란, 이미 자재를 증득한 보살을 말하는 것이며,
‘뛰어난 이해의 의 해석력(勝解力)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원락(願樂)의 힘에 의거하는 것이며,
‘하고자 하는 대로 땅 등을 이룬다’는 것은, 이른바 땅 등을 변화시켜 금 등의 모습을 만드는 것과 같이, 하고자 하는 대로 모두 성취하는 것이며,
‘선정을 얻은 이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나머지 성문등을 말하는 것이며,
‘간택을 성취한 이’는 이미 비발사나(毘鉢舍那, vipassana)를 원만히 성취한 것을 말하며,
‘지혜가 있는 이’란 모든 보살을 말하고, ‘선정을 얻은 이’란 삼마지를 얻는 이를 말하는 것이며,
‘일체법을 사유하여 의미 그대로 다 현현한다’는 것이란, 보살 등의 선정과 지혜가 원만히 성취되어 마음을 내면에 포섭하고, 경전 등의 법의(法義)를 사유하는 그대로 다 현현함을 얻는 것으로,
만약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그 생각하는 바를 따라, 그들의 법 안에서 부처님의 불의(佛義)를 현현하며, 물질(色)ㆍ감수작용(受) 등을 사유함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無分別智行,諸義皆不現者,謂無分別智,正現行時,一切境義,皆不顯現.
當知無有義者,謂由前說種種道理,當知境義實無所有.欲顯其識如境亦無,故言由此亦無識.
所識境義,旣無所有,由此應知能識亦無.此義如前所知相中,分明已顯.
‘무분별지가 작용한다면, 모든 대상(義)은 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란, 무분별지가 바르게 작용할 때에는 모든 대상인 일체의 경의(境義)가 다 현현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며,
‘대상(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종류의 도리에 의거해서 대상(義)의 의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 식(識)도 대상(境)과 같이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로 인하여 역시 식(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식별되는 대상이 이미 존재하지 않고, 이에 의거해서 식(識, 식별작용)도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야 하나니, 이러한 뜻은 앞의 알아야 할 바의 소지상(所知相) 중에서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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