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6권 8
然迷諦相有摠有別。摠謂十種皆迷四諦。苦、集是彼因、依處故。滅、道是彼怖畏處故。別謂別迷四諦相起。二唯迷苦,八通迷四。身邊二見唯果處起。別空非我屬苦諦故。
진리의 상인 제상(諦相)에 미혹함에는 총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있으니,
총체적인 것의 14 가지 모두는 사성제(四聖諦)에 미혹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고제ㆍ집제는 그것의 원인이고 의지처이기 때문이며, 멸제ㆍ도제는 그것이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것이란, 사성제의 상(相)에 각각 별도로 미혹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유신견과 ㆍ변견(邊見), 두 가지는 대부분 유루의 과보처(果報處)를 계탁하는 것으로, 오직 고제에 미혹한 것이고,
나머지 8 가지는 4성제에 공통적으로 미혹한 것이다.
유신견ㆍ변견은 오직 과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니, 개별적인 것의 공(空)ㆍ비아(非我, 무아)는 오직 고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성제의 16행상(十六行相)은 4제(諦)를 관찰하는 16종의 관법(觀法)을 말한다.
*고제(苦諦)의 4행상 : 만유의 현상은 생멸 변화하는 것이며,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행상을 관함.
*집제(集諦)의 4행상 : 온갖 번뇌와 업(業)은 고과(苦果)를 내는 인(因)이며, 고과를 모아(集) 나타나게 하며, 상속하여 나게(生) 하며, 고과를 이루게 하는 연(緣)이라 관함.
*멸제(滅諦)의 4행상 : 멸제는 물(物)ㆍ심(心)의 속박이 없는 진리며(滅), 번뇌의 시끄러움이 없으며(靜), 3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으며(妙), 온갖 재액(災厄)을 여의었다고(離) 관함.
*도제(道諦)의 4행상 : 도제는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며(道), 올바른 이치에 계합하며(如), 열반 적정한 경지에 가게 하며(行), 생사계를 뛰어나게 하는(出) 것이라고 관함. - 천석
謂疑三見親迷苦理。二取執彼三見、戒禁及所依薀爲勝能淨。於自他見及彼眷屬,如次隨應起貪、恚、慢。相應無明與九同迷。不共無明親迷苦理。疑及邪見親迷集等。二取、貪等准苦應知。
의(疑)와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의 3 가지 악견심소는 고제의 이치에 미혹한 것이며,
견취견(見取見)과 계금취견(戒禁取見)의 2 가지 견취견은 유신견ㆍ변견ㆍ사견의 세 가지 악견과 계금(戒禁) 및 의지처인 5온에 집착해서, 뛰어나고 능히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소의(所依, 의지처)로 삼으며, 자신과 타인의 견해 및 그 권속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상응한 바에 따라서 탐ㆍ진ㆍ만 심소를 일으킨다.
9 가지 번뇌와 상응하는 무지(無智)는 9 가지 번뇌와 함께 모두 미혹하며,
불공무명(不共無明)은 바로 고제의 이치에 미혹하며,
의(疑)ㆍ사견(邪見)은 집제 등에 미혹하며,
견취견과 탐심소 등의 2 가지는 고제에 미루어 알아야 하는 것이다.
2무명(二無明) 또는 2종무명(二種無明)은 다음 중 어느 하나를 뜻한다.
① 독두무명(獨頭無明, 불공무명)과 상응무명(相應無明)
② 견고소단(見苦所斷)의 무명과 견집소단(見集所斷)의 무명.
무명(無明)은 탐(貪) · 진(瞋) · 만(慢) · 치(癡, 無明) · 의(疑) · 견(見, 惡見)의 6근본번뇌 가운데 하나인데, 무명은 나머지 5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하면서 생기(生起)할 수도 있고, 이들과 상응하지 않고 그 자체로 홀로 생기할 수도 있다. 후자의 홀로 생기하는 무명(無明)을 독두무명 또는 불공무명이라 한다.- 위키
然瞋亦能親迷滅道。由怖畏彼生憎嫉故。迷諦親疏麤相如是。委細說者貪、瞋、慢三,見、疑俱生,隨應如彼。
踈 트일 소, 거칠 소, 적을 소
진(瞋)심소는 역시 직접 멸제와 도제에 미혹한 것으로, 그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증오와 질투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사성제에 미혹한, 직접적인 친(親), 간접적인 소(踈) 두드러짐의 추(麤)와 미세함의 세(細)가 이와 같으니, 자세히 말하자면 탐ㆍ진ㆍ만의 3 심소가 악견(惡見)ㆍ의(疑) 심소와 함께 생겨나는 것은 상응하는 바에 따라 그것과 같은 것이다.
俱生二見及彼相應愛、慢、無明,雖迷苦諦,細難斷故,修道方斷。瞋、餘愛等,迷別事生,不違諦觀故修所斷。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의 유신견과 변견의 두 가지 견해와 그것에 상응하는 탐ㆍ만ㆍ무명은 고제(苦諦)에 미혹하지만, 인식작용이 미세하여 단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도(修道)에서 비로소 단멸될 수 있고,
진(瞋)과 나머지 탐(貪) 등은 별도의 본질인 별사(別事)에 미혹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진리를 관찰하는 것에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수도(修道)에서 단멸된다.
여기서의 '별사(別事)'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어서,
하나는 별(別)과 사(事)를 구분하여 별개의 유정과 대상의 본질인 경사(境事)로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별(別)을 형용사로 보아서 별개적인 유정의 본질인 유정사(有情事)와 대상의 본질로 설명한 것이다.
번뇌심소의 대상에 본질(事)이 있고 없음을 판별한다.
雖諸煩惱皆有相分,而所仗質或有或無,名緣有事、無事煩惱。
모든 번뇌심소 모두가 상분(相分, 객관으로서의 식)이 있지만, 의지되는 것의 본질이 혹 있기도 하고 혹 없기도 한 것으로,
본질이 있는 유사(有事)을 반연하는 번뇌와 본질이 없는 무사(無事)를 반연하는 번뇌라고 이름한다.
유신견 등과 그 상응하는 법 등은 본질이 없으므로 무사(無事)를 반연한다고 이름하고,
나머지 그것들과 함께 일어나지 않는 것은 유사(有事)를 반연한다고 이름한다.
彼親所緣雖皆有漏,而所仗質亦通無漏,名緣有漏、無漏煩惱。緣自地者相分似質,名緣分別所起事境緣。滅、道諦及他地者相分與質,不相似故,名緣分別所起名境。餘門分別,如理應思。
그것의 친소연(親所緣)은 모두 유루이지만, 의지되는 본질(事)은 역시 무루에도 통하는 것으로,
유루를 반연하는 번뇌와 무루를 반연하는 번뇌라고 이름하며,
자기 지위인 자지(自地)를 반연하는 것은 상분(相分, 주관으로서의 식)이 본질에 비슷하므로 분별해서 일어난 분별기(分別起)의 본질의 대상인 경사(境事)을 반연한다고 이름한다.
멸제ㆍ도제ㆍ다른 지위의 타지(他地)를 반연하는 것은 상분(相分)이 본질과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분별해서 일어난 명칭의 대상인 명경(名境)을 반연한다고 이름하며, 다른 부문을 판별하는 것은 논리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번뇌심소가 본질이 있는 대상인 경사(境事)을 반연하는 것과 명칭만 있는 대상인 명경(名境)을 반연하는 것을 판별한다.
*유식학에서는 우리가 외계사물을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식상(識上)의 형상을 인식한다고 본다. 이것은 곧 하나의 인식이 성립될 때, 식이 주관과 객관으로 이분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분(相分)은 객관으로서의 식, 즉 식상(識上)의 영상(影像)으로서 소취분(所取分)ㆍ소량(所量)ㆍ사경상(似境相)ㆍ유상식(有相識)이라고도 하며,
견분(見分)은 주관으로서의 식, 즉 상분을 인식하는 주관적인 작용으로서 능취분(能取分)ㆍ능량(能量)ㆍ능취상(能取相)ㆍ유견식(有見識)이라고도 하며,
자증분(自證分)은 이분화 되기 이전의 식 자체로서 견분과 상분에 의한 인식작용의 결과를 확인하는 인식체의 역할을 한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에 관하여 해설한다.
已說根本六煩惱相。諸隨煩惱,其相云何?頌曰:
이상의 6 가지 번뇌심소의 양상에 대해서 말하였다.
그러면 여러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의 상(相)은 어떠한 것인가?
'삼십송'의 제12ㆍ13 ㆍ14에서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으니;
隨煩惱謂忿 恨覆惱嫉慳, 誑諂與害憍 無慚與無愧
掉擧與惛沈 不信幷懈怠, 放逸及失念 散亂不正知。
수번뇌심소는 분(忿, 성내고 원망)ㆍ한(恨, 원한을 품)ㆍ부(覆, 감)ㆍ뇌(惱, 괴로워)ㆍ질(嫉, 시샘하고 미워)ㆍ간(慳, 아끼고 망설)ㆍ광(誑, 속이고 유혹)ㆍ첨(諂, 아)과 해(害, 해)ㆍ교(憍, 교만함)
무참(無慚, 자신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 및 무괴(無愧, 남에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 도거(掉擧, 들뜬 마음)와 혼침(惛沈, 가라앉은 마음), 불신(不信) 아울러 해태(懈怠, 게으름), 방일(放逸, 선법을 닦지 않음) 및 실념(失念, 망념),
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 그릇된 앎, 그릇된 이해)이다.
20 가지의 수번뇌심소를 밝힌 것으로, 수번뇌심소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동류(同類)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것이다.
論曰:唯是煩惱分位差別,等流性故,名隨煩惱。此二十種類別有三。謂忿等十各別起故,名小隨煩惱。無慚等二遍不善故,名中隨煩惱。掉擧等八遍染心故,名大隨煩惱。
▷논하여 말한다; 이것은 오직 번뇌의 분위(分位, 측면)의 차이이고, 등류(等流, 비슷한 종류)의 성질이므로 수번뇌라고 이름하며, 이 20 가지의 종류를 구분하면 3 가지가 되는 것으로,
분(忿)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해(害)ㆍ교(憍) 심소 등의 10 가지는 각각 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소수번뇌(小隨煩惱)라 이름하고,
무참(無慚)ㆍ무괴(無愧) 심소 등의 2 가지는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 중수번뇌(中隨煩惱)라고 이름하고,
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실념(失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의 심소 등의 8 가지는 잡염심에 두루하기 때문에 대수번뇌(大隨煩惱)라고 이름한다.
*소수번뇌심소의 10가지 모두: 분 · 한 · 부 · 뇌 · 질 · 간 · 광 · 첨 · 해 · 교
*중수번뇌심소의 2가지 모두: 무참 · 무괴
*대수번뇌심소의 8가지 모두: 도거 · 혼침 · 불신 · 해태 · 방일 · 실념 · 산란 · 부정지
분위(分位)= 측면, 국면, 상태, 양태, 단계, aspect, phase
등류(等流)= 비슷한 종류
먼저 열 가지 대수번뇌인 대수혹(大隨惑)의 체성과 업을 해설한다.
云何爲忿?依對現前不饒益境,憤發爲性。能障不忿,執杖爲業。謂懷忿者多發暴惡身表業故。此卽瞋恚一分爲體。離瞋無別忿相用故。
무엇이 ‘분(忿, krodha)심소’인가? 현전의 이롭지 않은 대상을 대함으로써 분발하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고, 분노하지 않는 불분(不忿)을 능히 장애하고 몽둥이를 잡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
분노를 품는 사람은 대부분 포악한 몸의 신표업(身表業)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며, 이것은 성냄의 진(瞋)심소의 일부분으로써 자체(體)를 삼는 것이니, 성냄의 진(瞋)심소를 떠나서는 별도의 분노의 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분(忿)심소는 ‘분노’, ‘노여움’, 즉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대상ㆍ경우에 대해 분노하는 심리작용이며, 이로써 포악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며 따로 체(體)가 없는 것이다.
분노하기 때문에 몽둥이를 잡아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을 때히는 것은 악한 신표업(身表業)이고, 이외에 욕과 악담을 하는 악한 어표업(語表業)이 있다.
云何爲恨?由忿爲先懷惡不捨,結怨爲性。能障不恨,熱惱爲業。謂結恨者,不能含忍,恒熱惱故。此亦瞋恚一分爲體。離瞋無別恨相用故。
무엇이 ‘한(恨, upanaha)심소’인가? 이전에 분노가 있었기 때문에 악을 품고 버리지 않아서 원한을 맺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으며, 원한을 품지 않는 불한(不恨)을 능히 장애하고 매우 괴롭게 함을 업(業)으로 삼는다.
원한을 맺은 사람은 참을 수 없어서 항상 매우 괴롭기 때문이며, 한(恨)심소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體)로 하는 것으로, 진심소를 떠나서는 별도로 한(恨)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한(恨)심소는 ‘원한’, 즉 분노하고 원한을 품어서 마음이 열뇌(熱惱)하는 작용이며, 이것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云何爲覆?於自作罪,恐失利譽,隱藏爲性,能障不覆,悔惱爲業。謂覆罪者,後必悔惱,不安隱故。
무엇이 ‘부(覆, mrakṣa)심소’인가?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자신의 지은 죄를 감추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고, 숨기지 않음의 불부(不覆)를 능히 장애하며 후회하면서 괴로워함을 업(業)으로 삼으니,
죄를 숨기는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고 괴로워하여 안온함이 없기 때문이다.
부(覆)심소는 ‘숨김’ㆍ‘덮음’ㆍ‘허물 감추기’, 즉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재산과 명예의 손실을 볼까 두려워 감추는 심리작용으로, 그리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후회하며 열뇌하게 된다. 이것은 탐(貪)심소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有義此覆癡一分攝。論唯說此癡一分故,不懼當苦覆自罪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부(覆)심소는 치(癡)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되는 것으로,
논서, '유가사지론' 제55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서 이것은 오직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였으니,
장래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자신의 죄를 덮어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有義此覆,貪、癡一分攝,亦恐失利譽,覆自罪故。論據麤顯,唯說癡分。如說掉擧是貪分故。然說掉擧遍諸染心。不可執爲唯是貪分。
또한 호법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부(覆)심소는 탐ㆍ치 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 역시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해서 자신의 죄를 덮어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는 논서, '유가사지론' 제55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에 의거해서 오직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도거(掉擧)심소를 탐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거심소는 모든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하였으므로, 이에 집착해서 오직 탐심소의 일부분으로만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55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등에서는 부(覆)심소가 무지(無智)와 함께함으로써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 죄를 덮어 두는 것에 의거하여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으로, 사실은 탐심소의 일부분에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거(掉擧)심소는 실제는 별도로 자체(體)가 있지만, 탐(貪)의 모습이 증성하므로 탐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云何爲惱?忿、恨爲先,追觸暴熱很戾爲性,能障不惱,蛆螫爲業。謂追往惡,觸現違緣,心便很戾,多發囂暴凶鄙麤言,蛆螫他故。此亦瞋恚一分爲體。離瞋無別惱相用故。
무엇이 ‘뇌(惱, pradāsa)심소’인가? 먼저 분(忿)ㆍ한(恨) 심소가 있었으며, 그것을 좇아서 사납고 맹렬하게 다투고 어그러지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고, 고뇌하지 않음의 불뇌(不惱)를 능히 장애하여, 타인에게 지네가 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
이전의 악을 좇고 현재의 거슬리는 위연(違緣)에 접촉하여서 마음이 문득 다투고 어그러져서, 대부분 사납고 흉하고 비루한 구체적인 말을 하여서 타인에게 마치 지네가 쏘듯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體)로 삼으니, 진심소를 떠나서 별도로 뇌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뇌(惱)심소는 ‘열뇌(熱惱)’, 즉 과거에 분하게 여긴 일을 돌이켜 생각하거나, 현재 일이 마음에 맞지 않아 괴로워하는 심리작용이다. 불편한 심기로 조악(粗惡)한 말로 타인을 씹게 되며,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云何爲嫉?徇自名利,不耐他榮,妒忌爲性,能障不嫉,憂慼爲業。謂嫉妒者,聞見他榮,深懷憂慼,不安隱故。此亦瞋恚一分。爲體,離瞋無別嫉相用故。
무엇이 ‘질(嫉)심소’인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나치게 구하여, 남의 영화를 참지 못하고 시기함을 체성(體)으로 삼고, 질투하지 않음의 불질(不嫉)을 능히 장애하여 근심함을 업(業)으로 삼는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영화를 보고 듣고서 깊이 근심을 품어 안온하지 못하며, 이것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진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질(嫉, īrṣyā)심소는 ‘질투’, 즉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워 다른 사람의 영화를 질투하는 심리작용으로,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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