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제 6 6

 

5 가지의 악견의 행상(行相, 작용)을 구별하는 것에서의 세 번째. 

三邪見謂謗因、果、作用、實事,及非四見,諸餘邪執。如增上緣。名、義遍故。

셋째는 사견(邪見)이니, 보시(布施)나 탐착 등 모든 선악(善惡)의 원인(因)과

선악의 업에 초감(招感)되는 이숙과(異熟果)인 결과와

세간ㆍ부모 등 모든 사회ㆍ국가를 부정하는 등의 작용과

세간의 참다운 아라한(阿羅漢) 등의 실유(實事) 등이 모두 없다고 부정하면서 비방하고

위의 4 가지 견해가 아닌, 다른 모든 삿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증상연과 같이 명칭과 뜻이 두루하는 것이다.

 

此見差別,諸見趣中,有執前際,二無因論,四有邊等,不死矯亂及計後際,五現涅槃。

사견 종류를 구분하면, 여러 취착된 견해 중에서 전제(前際, 과거)에 집착하는 2 가지 무인론(無因論)과 4 가지 유변론(有邊論) 등과 불사교란(不死矯亂)과

후제(後際, 미래)를 계탁하는 오현열반(五現涅槃)이 있다고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말(末)에 각각의 견해에 관하여 상세하게 발명되어 있다.

 

무인론(無因論) 또는 무인견론(無因見論) 또는 무인유론(無因有論)은 '원인 없이 존재한다는 견해 또는 이론'으로, 나와 우주가 원인 없이, 즉, 우연히, 즉,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견해.

유변론(有邊論) 또는 변무변론(邊無邊論) 또는 유변등론(有邊等論)은, 세간, 즉,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에 대한 견해 또는 자아와 우주가 유한한가 무한한가에 대한 견해이다. 자아와 우주의 공간적 유한성과 무한성에 대한 견해인데, 공간은 사물의 운동이 일어나는 곳이고 사물의 운동을 순서에 따라 나열한 것이 시간이므로, 공간이 무한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끝이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공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끝이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변무변론(邊無邊論)은 부처님께서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침묵한 14무기 가운데 공간과 관련된 4가지 질문에 대한 견해, 즉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하다(世間有邊) · 무한하다(世間無邊) ·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世間有邊無邊) ·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世間非有邊非無邊)'라는 견해를 가진 외도들에 대응한다. 

불사교란(不死矯亂) 또는 종종론(種種論),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天, deva), 즉 최고신을 귀히 여기고 섬기며 사후에 이 신의 거주처로서의 불사천(천국 또는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특이한 점은 이들의 교의 중에 '누군가가, 특히, 이치에 밝은 사람이 불사천에 대해 질문할 때, 답을 잘하면 그것이 좋은 원인이 되어 사후에 불사천에 태어나고, 반대로 거짓을 답하거나 답을 잘하지 못하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 불사천에 태어나지 못한다'는 교의가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이러한 교의는 바른 원인이 아닌 것을 청정하고 뛰어난 원인으로 삼는 것이므로 계금취에 해당하는데, 이들 외도에게는 답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회피하는 답 혹은 얼버무리는 답을 한다는 것이다.《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며, 그 말이 틀림이 없는가 자세히 관찰하며, 그의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이의 소견을 버렸더라도(경험적 선정력은 없지만 아주 밝은 추론적 지식이 있을 때),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 이를 깨우쳐 주지 못하면, 그 외도(즉, 질문을 받은 사문과 바라문)는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즉, 이러한 계금취가 종종론의) 첫 번째 견해(가 있게 된 이유)이다."

5현열반론(五現涅槃論), 문자 그대로의 뜻은 '현재의 법을 열반으로 여기는 견해 또는 이론'으로, '현재의 법'이란 현재의 존재 상태, 즉, 물질적 노력이나 영적 수행을 통해 성취한 상태 또는 경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열반, 즉,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가 아닌 경지를 열반, 완전한 깨달음, 또는 최고의 상태라고 여기는 것을 뜻한다.

물질적 노력 또는 영적 수행을 통해 성취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가 아닌 현재의 상태 또는 경지, 예를 들어, 욕계에서 산해진미와 풍요로운 재화를 누리는 상태 또는 색계의 제4선을 성취한 중간 상태의 경지를 열반, 즉,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 즉, 최고의 상태라고 여기는 견해이다. - 위키

 

或計自在、世主、釋、梵及餘物類常恒不易,或計自在等,是一切物因,或有撗計諸邪解脫,或有妄執非道爲道,諸如是等皆邪見攝。

혹은 욕계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세주(世主), 즉 색계의 18천 가운데 최고천인 색구경천(色究竟天)ㆍ제석천ㆍ색계 초선천(初禪天)의 주(主)인 범천왕  다른 사물 등의 물류(物類)인 자성(自性) 등이 상주해서 변화가 없다고 계탁하는 것이며,

혹은 자재천 등은 모든 사물의 원인이라고 계탁하는, 집제(集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며,

혹은 어떤 사람들은 제멋대로 여러 삿된 해탈을 계탁하는, 멸제(滅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며,

혹은 어떤 사람들은 망령되게 도(道)가 아닌 것을 집착해서 도(道)로 삼는, 도제(道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니,

이와 같은 모든 견해들은  삿된 견해인 사견(邪見)인 것이다.

 

四見取,謂於諸見及所依薀,執爲最勝,能得淸淨,一切鬪諍所依爲業。

넷째는 잘못된 견해에 취착하는 견취견(見取見)이니, 여러 잘못된 견해와 의지처인 5온에 대하여 집착하여서 그러한 것이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청정(열반)을 얻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모든 투쟁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五戒禁取,謂於隨順諸見,戒禁及所依薀,執爲最勝,能得淸淨,無利勤苦所依爲業。

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니, 여러 견해에 수순하는 계율과 의지처인 5온에 대하여 집착해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청정을 얻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로움 없이 수고롭게 애쓰는 고통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계금(戒禁)은 계법(戒法)이라는 뜻으로, 계금취견에는 2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외도에서 잘못된 계법에 집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인 중에서 계법의 진정한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는 계법의 형식 그 자체에 취착하는 경우이다.

 

然有處說執爲最勝名爲見取,執能得淸淨名戒取者,是影略說,或隨轉門。不爾如何非滅計滅,非道計道說爲邪見,非二取攝?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유가사지론' 제8권, '현양성교론' 제1권,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에서 말하기를,

집착해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는 것만을 견취견(見取見)이라 하고,

능히 청정을 얻는다고 집착하는 것만을 계금취견(戒禁取見)이라 한다고 한 것은 그림자처럼 생략한 영락(影略)해서 말한 것이거나, 근기에 따라 말한 방편문인 수전이문(隨轉理門)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유가사지론'의 섭결택분에서 멸제가 아닌 것을 멸제라고 계탁하고, 도제가 아닌 것을 도제라고 계탁하는 것을 삿된 견해라고만 말하고, 두 가지 견취견에 포함된다고는 말하지 않았겠는가?

견취견(見取見) 중에도 사실은 청정(열반) 얻는다고 집착하는 것이 있고,

계금취견(戒禁取見) 중에도 사실은 최승(最勝)이라고 집착하는 것이 있으므로, 따라서 각각 한쪽만을 말하고, 다른 것은 영략(影略)해서 미루어 알게 하였다는 뜻이다.

 

이하 열두 가지 부문을 판별하는 제문분별(諸門分別)으로, 먼저 10 가지 번뇌심소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와 후천적인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를 판별한다.

如是摠、別十煩惱中,六通俱生及分別起,任運、思察俱得生故,疑後三見唯分別起,要由惡友或邪教力,自審思察方得生故. 邊執見中通俱生者,有義唯斷,常見相麤,惡友等力方引生故。

이상과 같이 총체적인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6 가지 번뇌(煩惱)심소와

여섯 가지 근본번뇌심소 중에서 악견을 세분하여 유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등으로 분류한 개별적인 5 가지를 합한 10 가지 번뇌(煩惱)심소 중에서,

6 가지는 구생기(俱生起)와 후천적인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와 자연히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 의해 생겨나는 것에 통하나니, 자연히 일어날 때에도, 사려 관찰할 때에도 함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소와 나머지의 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  가지 견해 오직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분별기(分別起)이니, 반드시 나쁜 친구나 삿된 가르침의 힘을 말미암아 스스로 살펴서 사려 관찰함에 의해서 비로소 생겨날  있기 때문이다. 

변견(邊見) 중에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에 통하는 것은 오직 단견(斷見)뿐이니, 상견(常見) 양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쁜 친구 등의 힘에 이끌려서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이다.

 

'瑜伽'等說:何邊執見,是俱生耶?謂斷見攝,學現觀者,起如是怖。今者我我何所在耶?故禽獸等若遇違緣,皆恐我斷而起驚怖。

'유가사지론' 등에서 말하기를 “어떠한 변견(邊見)이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俱生)인가? 

단견(斷見)에 포함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현관(現觀)을 배우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공포심을 일으킨다. 

지금 구생(俱生)의 나(我)는 분별에 의한 나(我)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라고 '유가사지론' 제86권, 제88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4권, 제7권에 말하였다. 

따라서 짐승 등은 거스르는연(違緣)을 만날 때에는, 모두 내가 단멸된다고 두려워하는 공포심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현관(現觀) 얻은 자가 무아관(無我觀) 들어가 분별에 의한 나(我) 이미 단멸되었음을 알며,

출관(出觀) 때에 문득 공포를 일으켜서 지금 나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修道) 중에서도 상견(常見) 없다고 말해서는  된다는 것이다. 

 

有義彼論依麤相說,理實俱生亦通常見,謂禽獸等執我常存,熾然聚集長時資具。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그 논서에서는 두드러진 상(相)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고, 논리와 진실로써 말하자면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구생기(俱生起) 역시 상견(常見)에 통하는 것이니, 

짐승 등은 내가 항상 존재한다고 집착해서 오랜 기간 동안을 지낼  있는 재료ㆍ도구로서의 자구(資具, 동굴과 음식)등을 치열하게 만들고 모으는 것이니, 그와 같이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 없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것은 반드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故'顯揚'等諸論皆說,於五取薀執斷計常,或是俱生或分別起。

따라서 '현양성교론' 제1권과 ‘유가사지론’ 제8권 등의 여러 논서에서 말하기를 “5취온에 대해서 단멸되는 것에 집착하거나 항상하는 것에 계탁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 것이다.

 

此十煩惱誰幾相應?貪與瞋、疑定不俱起,愛、憎二境必不同故,於境不決,無染著故。貪與慢、見或得相應,所愛、所陵境非一,故說不俱起。所染、所恃境可同,故說得相應。於五見境皆可愛故,貪與五見相應無失。

회통(會通), 법문(法文)의 어려운 뜻을 알기 쉽게 해석하는 것.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10 가지 번뇌심소에 있어서 무엇이  가지와 어떻게 상응하는, 자류상응(自類相應)인가?

탐(貪)심소는 진(瞋)ㆍ치(癡) 심소와는 반드시 함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애착과 증오의 대상이 반드시 같지 않기 때문이며, 대상에 대해서 결정하지 않을 때에는 탐착이 없기 때문이다. 

탐(貪)심소는 만ㆍ악견(惡見) 심소와 혹은 상응할  있으나, 애착되는 것과 멸시되는 대상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고, '유가사지론' 제58권에서 탐ㆍ만 심소가 상응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며,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서 탐ㆍ만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면, 잡염되는 믿어지는 대상은 같을  있기 때문에 상응할  있으니,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 가지 악견(惡見)의 대상에 대해서는 모두 애착할 만하기 때문에 탐심소가 다섯 가지 악견과 상응한다고 하는 것에 과실이 없는 것이다.

 

瞋與慢、疑或得俱起,所瞋、所恃境非一,故說不相應,所蔑、所憎境可同,故說得俱起。初猶豫時未憎彼,故說不俱起,夂思不決便憤發,故說得相應,疑順、違事隨應亦爾。

진(瞋)심소는 만(慢)ㆍ의(疑) 심소와 혹은 함께 일어날  있으나, 성내게  것과 믿어지는 대상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하나니, '유가사지론' 제58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서 진(瞋)ㆍ만(慢) 심소가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며,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진ㆍ만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회통한다면, 멸시되는 것과 증오되는 대상이 같을  있기 때문에 함께 일어날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유가사지론' 제55권과 제58권에서 진ㆍ의(疑) 심소가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면, 의(疑)심소가 처음에 결정을 미룰 때에는 진(瞋)심소가 아직 그것을 증오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며,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서 진ㆍ의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면, 오랫동안 생각하여도 결정되지 않을 때에는 문득 분발심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응할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만약 이미 수순되는(順) 일을 의심할 때에는, 진(瞋)심소를 일으키지 않으며, 또는 만약 이미 거스르는(違) 일을 의심할 때에는, 문득 그것에 성을 내므로 상응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瞋與二取必不相應,執爲勝、道,不憎彼故。

진(瞋)심소는  가지의 견취견과는 반드시 상응하지 않으니, 집착해서 뛰어나며 도(道)인 것으로 삼을 때에는 그것을 증오하지 않기 때문이다.

 

此與三見或得相應,於有樂薀起身、常見,不生憎,故說不相應,於有苦薀起身、常見生憎恚,故說得俱起。斷見翻此說瞋有無。邪見誹撥惡事、好事,如次說瞋或無或有。

이것은 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의  가지 악견과 혹은 상응할  있으며,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 6권에서 진(瞋)심소가 유신견ㆍ변견(邊見)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회통하면, 유신견이나 변견이 즐거움이 있는 5온에 대해서 유신견ㆍ상견(常見)은 선천적인 구생기(俱生起)일 수도 있고, 후천적인 분별에 의한 분별기(分別起) 일 수도 있으므로, 이를 일으킬 때에는 증오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며,

고통이 있는 5온에 대해서 유신견ㆍ상견을 일으키는 것은 후천적인 분별에 의한 분별기(分別起)이기 때문에 증오를 일으키기 때문에 함께 일어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단견(斷見)은 유신견(有身見)ㆍ상견(常見)과 정반대로 성냄이 있고 없다고 말 할 수 있으며,

사견(邪見)이 나쁜 일과 좋은 일을 비방하거나 부정할 때에는 순서대로 성냄이 있기도 없기도 하다고 할 수 있다.

 

慢於境定,疑則不然,故慢與疑無相應義。慢與五見皆容俱起,行相展轉不相違故。

만(慢)심소는 대상에 대해서 결정적이고, 의(疑)심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만심소는 의심소와 상응하는 뜻이 없으며,

만심소는 다섯 가지 악견(惡見)과 모두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되나니, 인식작용이 전전하여 서로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然與斷見必不俱生,執我斷時無陵恃故,與身、邪見一分亦爾。疑不審決,與見相違,故疑與見定不俱起。五見展轉必不相應,非一心中有多慧故。癡與九種皆定相應,諸煩惱生必由癡故。

그러나 단견(斷見)은 반드시 함께 생겨나지 않는 것이니, 내가 단멸된다고 집착할 때에는 남을 멸시하고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유신견ㆍ사견의 일부도 역시 그러하며,

의(疑)심소는 살펴서 결정하지 않는 것이니, 악견과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의심소는 악견과 함께 일어나지 않으며,

다섯 가지 악견은 전전하여서 반드시 상응하지 않는 것이니, 일심(一心) 중에서 많은 혜(慧)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치(癡)심소는 나머지 9 가지 모두에 반드시 상응하나니,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어리석음에 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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