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 6권 5
如是已說善位心所。煩惱心所其相云何?頌曰:煩惱謂貪嗔 癡慢疑惡見。
이상과 같이 선위(善位)의 심소를 말하였으니, 모든 번뇌의 근간인 근본번뇌를 일으키는 번뇌(煩惱)심소의 상은 어떠한 것인가?
번뇌심소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6 가지라고 '삼십송'의 제12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論曰:此貪等六,性是根本煩惱攝故,得煩惱名。云何爲貪?於有、有具,染著爲性,能障無貪,生苦爲業。謂由愛力,取薀生故。
▷논하여 말한다; 이러한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의 6 가지는 체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에 번뇌(煩惱)심소라고 이름한다.
무엇이 ‘탐(貪, rāga)심소’인가? 윤회하는 삶(有)과 그 원인인 유구(有具)에 탐착함을 체성(體)으로 삼으니, 능히 무탐(無貪)심소를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업(業)으로 삼아서 애착의 세력에 의해 5취온이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탐(貪)심소는 ‘탐욕’, 즉 애착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특히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인 5온 나아가 열반에 대해서까지 애착심을 일으킴으로써 고통을 자초하는 것이다.
云何爲瞋?於苦、苦具,憎恚爲性,能障無瞋,不安、隱性、惡行所依爲業。謂瞋必令身心,熱惱起諸惡業,不善性故。
무엇이 ‘진(瞋, dveṣa)심소’인가? 고통(苦)과 그 고통의 원인인 고구(苦俱)에 대해서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으니, 능히 무진(無瞋)심소를 장애하여 불안과 악행의 의지처가 됨을 업(業)으로 삼는 것이니,
진(瞋)심소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매우 괴롭혀서 모든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불선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진(瞋)심소는 ‘성냄’, 즉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쾌감의 심리이다. 고통과 그 원인에 대해 증오심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몸과 마음을 열뇌하게 해서 갖가지 악업을 짓게 만든다.
云何爲癡?於諸理、事,迷闇爲性能障無癡一切雜染所依爲業謂由無明,起疑、邪見、貪等,煩惱、隨煩惱業,能招後生,雜染法故。
무엇이 ‘치(癡, moha, avidhya)심소’인가? 모든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미혹하고 어두운 것을 체성(體)으로 삼으니, 능히 무치(無癡)심소를 장애하고 모든 잡염법의 의지처가 됨을 업(業)으로 삼는 것으로,
무명에 의해서 의(疑)ㆍ삿된 정(定)ㆍ탐(貪) 등의 번뇌와 수번뇌(隨煩惱)의 업을 일으켜서 능히 다음 생의 잡염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치(癡)심소는 ‘어리석음’, 즉 특히 현상계(事)와 그 본질(理)의 진리(연기ㆍ무아ㆍ중도 등)를 모르는 무명의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의(疑)ㆍ사견ㆍ탐(貪) 등 여러 번뇌들이 일어난다.
수번뇌(隨煩惱, upakleśā) 또는 수혹(隨惑)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①첫 번째는 근본번뇌(根本煩惱, mūla-kleśa)를 따라 일어나는 2차적인 번뇌라는 뜻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를 근본번뇌와 구분하여 지말번뇌(枝末煩惱) 또는 지말혹(枝末惑)이라고도 한다.
②두 번째는 마음(心, citta)을 따라 일어나서 유정을 괴롭고 혼란스럽게하는 마음작용, 즉 근본번뇌라는 뜻이다.
③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는 곧 일체(一切)의 번뇌 즉 모든 번뇌를 말하며, 이 경우 수번뇌는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위키
云何爲慢?恃己於他,高擧爲性,能障不慢,生苦爲業。謂若有慢,於德、有德,心不謙下。由此生死輪轉無窮,受諸苦故。此慢差別,有七、九種。
무엇이 ‘만(慢, māna)심소’인가? 자기를 믿고 남에 대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고, 능히 불만(不慢)을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킴을 업(業)으로 삼으니,
만(慢)심소가 있는 사람은 덕(德)과 덕이 있는 유덕(有德)의 사람에 대해서 마음이 겸손하지 않으므로, 생사에서의 윤회가 끝이 없고 모든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만(慢)을 구분하면,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열만(卑劣慢)ㆍ사만(邪慢)일곱 가지의 칠만(七慢),
또는 아만(我慢), 아등(我等), 아열(我劣), 유승아(有勝我), 유등아(有等我), 유열아(有劣我), 무승아(無勝我), 무등아(無等我), 무열아(無劣我)의 아홉 가지인 구만(九慢)이 있다.
만(慢)심소는 ‘거만’, 즉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얕보며 나아가 덕이 높은 성자에게도 자신을 낮추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칠만(慢);①만(慢)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고 잘난 척하는 것,
②과만(過慢)은 자신과 동등한 자격의 사람에 대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
③만과만(慢過慢)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것,
④아만(我慢)은 5취온을 나ㆍ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교만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
⑤증상만(增上慢)은 자기를 가치 이상으로 보는 것,
⑥비열만(卑劣慢)은 겸손하면서도 자만심을 갖는 것,
⑦사만(邪慢)은 덕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을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삼보를 경시하는 것이다.
구만(九慢); ①아만(我慢), ②아등(我等), ③아열(我劣), ④유승아(有勝我), ⑤유등아(有等我), ⑥유열아(有劣我), ⑦무승아(無勝我), ⑧무등아(無等我), ⑨무열아(無劣我).
이 9만의 자체(體)에서 7만의 만(慢)ㆍ과만(過慢)ㆍ비만(卑慢)을 내는 것으로, 즉
③아열(我劣), ⑤유등아(有等我), ⑦무승아(無勝我)가 만(慢)을 내고,
①아만(我慢), ⑥유열아(有劣我), ⑧무등아(無等我)이 과만(過慢)을 대고
②아등(我等), ④유승아(有勝我), ⑨무열아(無劣我)가 비열만(卑劣慢)을 낸다.
謂於三品、我、德處生。一切皆通見修所斷。聖位我慢,旣得現行。慢類由斯起,亦無失。
삼품(三品)과 자아(我)ㆍ덕(德)의 다섯 곳에서 만(慢)이 생겨나나니,
하품(下品)과 중품(中品)의 일분(一分)에서 만(慢)이 생겨나고,
중품과 상품의 일분에서 과만(過慢)이 생겨나고,
상품의 일분에서 만과만(慢過慢)이 생겨나고,
상품의 일분에서 비만(卑慢)이 생겨나고,
아처(我處)에서 아만(我慢)이 생겨나고,
덕처(德處)에서 증상만(增上慢)과 사만(邪慢)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일체가 모두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에서 단멸되며, 성스러운 지위인 성위(聖位)서도 아만이 현행할 수 있으니,
만(慢)의 종류가 이러함에 근거해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에 과실이 없는 것이다.
云何爲疑?於諸諦理猶豫爲性,能障不疑善品爲業。謂猶豫者善不生故。
무엇이 ‘의(疑, vicikitsā)심소’인가? 모든 진리의 제제(諸諦)와 논리(理)에 대한 결정을 미루는 것을 체성(體)으로 삼고 능히 불의(不疑)의 선품을 장애함을 업(業)으로 삼으니, 결정을 미루는 곳에서는 선(善)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疑)심소는 ‘의심’하는 작용, 특히 4성제 등의 진리를 의심하여 참으로 그러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심리이다. 불신(不信)이 아닌, 불설(佛說)을 신봉하지만 그 교설의 내용ㆍ중요성을 애써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얼버무려 둔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와 선(善)심소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有義此疑以慧爲體。猶豫簡擇說爲疑故。毘助末底是疑義故。末底、般若義無異故。
다른 견해의 대승인, 이사(異師)의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의(疑)심소는 혜(慧)심소를 자체로 하는 것으로, 결정을 미루어서 간택하는 것을 의심이라고 말하나니, 접두어 비(毘, vi)가 혜(미저末底, mati)를 돕는 것이 의심의 뜻이기 때문이다. 혜(미저 末底)와 반야는 뜻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mati(미저 末底)는 혜(慧)의 뜻이다. 이에 접두어 vi(毘)를 덧붙여 vimati로 하면 의심의 의(疑)의 뜻이 되므로 혜(慧, mati)와 반야(般若, praj)는 뜻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有義此疑別有自體。令慧不決非卽慧故。'瑜伽論'說六煩惱中,‘見世俗有,卽慧分故。餘是實有,別有性故'
호법의 정의로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이 의(疑)심소는 별도로 자체가 있으며, 혜(慧)심소를 결정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이것이 곧 혜(慧)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6 가지 번뇌심소를 설명하는 중에서 “악견(惡見)은 세속유(世俗有)이니, 곧 혜(慧)심소의 일부이기 때문이고, 다른 것은 실유이니, 별도로 체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毘助末底,執慧爲疑,毘助若南,智應爲識。界由助力義便轉變。是故此疑非慧爲體。
또한 접두어 비(毘, vi) 혜(미저 末底, mati)를 도우므로 혜(慧)를 고집하여 의(疑)심소라고 말한다면, 접두어 비(毘, vi)가 지혜(약남 若南, jna)를 돕기 때문에 지혜를 식(識, vijna)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계(界, 성 性)는 돕는 힘에 의해 뜻이 바뀌는 것이므로, 따라서 이 의심소는 혜(慧)를 자체로 삼지 않는 것이다.
jna(약남若南)는 지혜(智)의 뜻이다. 여기에 접두어 vi를 붙여서 vijna(毘若南)로 하면 식(識)의 뜻이 되나 식 자체가 곧 지혜는 아닌 것과 같이, 의(疑)심소의 자체가 곧 혜(慧)심소는 아닌 것이다.
云何惡見?於諸諦理顚倒推度染慧爲性。能障善見招苦爲業。謂惡見者多受苦故。
무엇이 ‘악견(惡見)심소’인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뒤바뀌어 전도(顚倒)되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잡염의 혜를 체성(體)로 하여서,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으니, 악견은 고통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악견(惡見)심소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는 심리작용으로, 특히 인습에 사로잡혀서, 4성제 등의 진리를 오해하고 인과법을 무시한다. 이것은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일부분인 염오성이 작용된 것으로, 악견은 작용의 차이에 따라 유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의 다섯 종류로 나뉜다.
此見行相差別有五。一薩迦耶見,謂於五取薀執我、我所。一切見趣所依爲業。此見差別有二十句、六十五等。分別起攝。
이 악견의 행상(行相, 작용)을 구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으로, 5취온에 대해서 나ㆍ나의 소유인 아아소(我、我所)로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모든 견해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이 견해를 구분하면 20 가지 문구인 이십구(二十句)와 65 가지 문구 등이 있으며, 후천적인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살가야견(薩迦耶見)은 산스끄리뜨 satkāya-dṛṣṭi의 번역어이며, 유신견(有身見)ㆍ신견(身見) 등으로 의역(意譯)되며, 5온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임시적 육신을 실아(實我)라고 집착하는 소견 또는 육신에 달려 있는 일체의 소유도 고정된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나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을 말한다.
이십구(二十句), 5온(蘊)의 각각에 네 가지 문구가 있어서 합하면 스무 가지가 되는 것으로,
즉 색온(色蘊)에 대해서는 “물질(色)은 나이다”, “나는 물질(色)을 갖는다”, “물질(色)은 나에게 속한다”, “나는 물질(色) 중에 있다”라고 계탁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온(蘊)에 4 가지가 있고, 5온(蘊)으로 말하면 20 가지의 문구(句)가 된다.
다시 말하면 다섯 가지의 아견(我見, 5온 각각에 대한 나라는 견해)과 15 가지 나의 소유라는 견해인 아소견(我所見, 5온 각각에 아영락我瓔珞ㆍ아동복我童僕ㆍ아기我器라는 세 가지씩의 아소견我所見)이 있으므로 합하면 20 가지의 문구(句)가 되는 것이다.
二邊執見,謂卽於彼隨執斷常。障處中行、出離爲業。
둘째는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의 변견(邊見) 또는 변집견(邊執見)이니, 아견(我見)의 대상을 따라서 단멸 또는 상주한다는 것으로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단멸(斷)과 상주(常)의 극단을 떠난 중용(中容)의 의처(意處) 중의 실천의 행(行)인 도제(道諦)와 벗어남의 출리(出離)인 멸제(滅諦)를 장애하는 것을 업(業)으로 한다.
此見差別,諸見趣中,有執前際,四遍常論,一分常論及計後際,有想十六,無想、俱非,各有八論,七斷滅論。等分別起攝。
이 견해의 종류를 말한다면, 여러 견해 중에서
과거에 의해 분별의 견해를 일으키는 전제(前際)에 집착하는 4 가지의 두루 상주한다는 견해인 변상론(遍常論),
일부만 상주한다는 견해인 일분상론(一分常論),
미래에 의해 분별의 견해를 일으키는 후제(後際)에 계탁하는 16 가지의 표상작용이 존재한다는 견해인 유상론(有想論),
표상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인 무상론(無常論)과
표상작용의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구비팔론(俱非八論)에 각각 8론(八論)이 있으며,
또한 7 가지의 단멸론인 칠단론(七斷論) 등이 있으니, 이것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에 포함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견해인 변견(邊見)은 62견(見) 중에서 47견(見)을 포함하고, 47 가지 중에서 40 가지(사변상론四遍常論ㆍ사일분상론四一分常論ㆍ유상육십론有想十六論ㆍ무상팔논無想八論ㆍ구비팔론俱非八論)는 상견(常見)이고,
7 가지는 단견(斷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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