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淨佛國土品 第八十二之餘卷 第九十三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2. 정불국토품을 풀이함  4


問曰:上“聞佛名畢定至佛”,此“於諸法無㝵必得作佛”,有何差別?

묻나니, 앞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마침내 부처님에 이르게 된다’는 것과 

여기서 ‘제법에서 장애되지 않으면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는 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此中衆生常見佛、常聞法、深種善根、多集佛法故,疾得作佛;

聞名者,雖俱畢竟定而小不如。如是等,名爲淨國土相,如“十地中莊嚴菩提樹”說。

답하나니, 여기에서 중생은 항상 부처님을 뵙고, 항상 법을 들으면서 선근을 깊이 심으며, 부처님의 불법을 많이 쌓아 모았기 때문에 빨리 부처님이   있으나,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 이는 비록  같이 필경에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 할지라도, 앞의 것보다 조금은 못하나니, 

이와 같은 등을 바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정불토(淨佛土)의 상(相)이라 하나니,

10지(地) 가운데 보리수를 장엄하는 십지중장엄보리수(十地中莊嚴菩提樹)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  釋畢定品 第八十三 第九十三     
83. 필정품(畢定品)을 풀이함 ① 1
 
▶經. 須菩提白佛言:“世尊!是菩薩摩訶薩爲畢定?爲不畢定?”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畢定,非不畢定。”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 지요? 

아니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부필정(不畢定)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니,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부필정(不畢定) 아니니라.”


“世尊!何處畢定?爲聲聞道中?爲辟支佛道中?爲佛道中?”

佛言:“菩薩摩訶薩非聲聞、辟支佛道中畢定,是佛道中畢定。”

“세존이시여, 어느 곳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지요? 

성문의 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벽지불의 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부처님의도에 정해져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 아니요, 

 부처님의 불도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爲初發意菩薩畢定?爲最後身菩薩畢定?”

佛言:“初發意菩薩亦畢定,阿鞞跋致菩薩亦畢定,最後身菩薩亦畢定。”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뜻을  초발의 보살도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인지요? 

아니면,  마지막의 최후신(最後身)의 보살에게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 뜻을  초발의 보살도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고, 아비발치의 보살도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며, 마지막의 최후신의 보살도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니라.”


“世尊!畢定菩薩墮惡道中生不?”

“不也!須菩提!於汝意云何?若八人,若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生惡道中不?”

“不也!世尊!”

“세존이시여,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보살(畢定菩薩)도 악도(惡道) 가운데에 떨어져 태어나는지요?”

“아니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욕계의 사제와 색계, 무색계를 명료하게 주시하여 그것에 대한 미혹을 끊고 인정한 단계인 팔인(八人, 팔인八忍,)이나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이 악도에 태어나던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已來,布施、持戒、忍辱、精進、行禪定、修智慧,斷一切不善業;若墮惡道、若生長壽天、若不得修善法處、若生邊國、若生惡邪見家、無作見家,是中無佛名、無法名、無僧名,無有是處!

須菩提!初發意菩薩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深心行十不善道,無有是處!”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닦으며, 일체의 착하지 못한 불선업을 끊었기 때문에 악도에 떨어진다거나,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난다거나, 착한법을 닦지 못하는 곳에 나거나, 변두리의 나라에 난다거나, 사악한 견해를 지닌 집이나, 

행위에 대한 책임이나 과보를 부정하는 무작견(無作見, 무작론)를 지닌 집안에 태어나는 일이 없나니, 

 가운데에는 부처님의 불(佛)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가르침의 법(法)이라는 이름도 없으며, 승가의 승(僧)이라는 이름도 없으므로, 이러한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수보리야, 처음 뜻을  초발의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깊은 마음으로  가지의 착하지 못한 십불선도(十不善道)를 행하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世尊!若菩薩摩訶薩有如是善根功德成就,如佛自說本生受不善果報,是時善根爲何所在?”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선근의 공덕을 성취함이 있음에도, 부처님께서 친히 본생(本生)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착하지 못한 과보를 받는다면, 이 때에  선근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요?”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爲利益衆生故,隨而受身,以是身利益衆生。

須菩提!菩薩摩訶薩作畜生時,有是方便力,若怨賊欲來殺害,以無上忍辱、無上慈悲心捨身,不惱怨賊;汝諸聲聞、辟支佛,無有是力。

以是故,須菩提!當知菩薩摩訶薩欲具足大慈悲心、爲憐愍利益衆生,故受畜生身。”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그 중생들을 따라 몸을 받아서,  몸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축생이 되었을 때에 이러한 방편력이 있으므로 만약 원수나 도둑이 와서 살해하려 하여도  위없는 인욕(忍辱)과 위없는 자비심으로 몸을 버리어  원적들을 괴롭히지 않느니라. 

그대들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이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대 자비심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이롭게 하고자 일부러 축생의 몸을 받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住何等善根中受如是諸身?”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從初發意乃至道場,於其中閒,無有善根不具足者;具足已,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故,菩薩摩訶薩從初發意,應當學具足一切善根;學善根已,當得一切種智,當斷一切煩惱習。”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선근 가운데에 머무르기에 이러한 모든 몸을 받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처음발심하여 도량(道場)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선근으로써 두루 갖추지 못한 것이 없으며, 두루 갖춘 뒤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서부터 마땅히 일체의 선근을 두루 갖추기를 배워야 하고, 

선근을 배운 뒤에는 일체종지를 얻어야 하며, 일체 번뇌의 습기를 끊어야 하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成就如是白淨無漏法,而生惡道畜生中?”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이러한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을 성취하면서도, 악도의 축생 가운데에 태어나게 되는지요?”


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佛成就白淨無漏法不?”

須菩提言:“佛一切白淨無漏法成就。”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님은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 성취한 것이던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온갖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 성취하셨습니다.”


“須菩提!若佛自化作畜生身,作佛事,度衆生,實是畜生不?” 須菩提言:“不也!”

“수보리야, 만약 부처님이 몸소 축생의 몸으로 변화하여 불사(佛事)를 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면, 진실로  몸이 축생인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佛言:“菩薩摩訶薩亦如是,成就白淨無漏法,爲度衆生故受畜生身,用是身教化衆生。”

佛告須菩提:“如阿羅漢作變化身,能使衆生歡喜不?” 須菩提言:“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이와 같아서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 성취하여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축생의 몸을 받아서  몸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이어서 말씀하셨다.

“아라한과 같은 이도 몸을 변화하여 중생을 기쁘게   있는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할  있습니다.”


佛言:“如是!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用是白淨無漏法,隨所度衆生而受身,以是身利益衆生,亦不受苦。

須菩提!於汝意云何?幻師幻作種種形,若象、馬、牛、羊、男、女等,以示衆人,

須菩提!是象、馬、牛、羊、男、女等有實不?”須菩提言:“ 不實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으로써 제도해야  중생을 따라 몸을 받아서,  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역시 괴로움을 받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환술사가 갖가지 형상의 코끼리ㆍ말ㆍ소ㆍ양과 남자ㆍ여자 등을 환술로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때, 수보리야,  코끼리ㆍ말ㆍ소ㆍ양과 남자ㆍ여자 등이 실제로 있는 것이던가?”

수보리 존자가 말씀드렸다.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佛言:“如是,須菩提!菩薩摩訶薩白淨無漏法成就,現作種種身以示衆生故,以是身饒益一切,亦不受衆苦”

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大方便力,得聖無漏智慧,而隨所應度衆生身,而作種種形以度衆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희고 깨끗한 백정무루법(白淨無漏法) 성취하여 갖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보이면서, 그 몸으로 일체를 이롭게 하나, 역시 여러가지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의  방편력은 거룩한 무루의 지혜인 성무루지혜(聖無漏智慧)를 얻고서도 제도해야  중생의 몸을 따라서 갖가지 형상을 지어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論. 問曰:上「阿鞞跋致品」中說:“如是相是阿鞞跋致,如是相非阿鞞跋致。”阿鞞跋致卽是畢定,須菩提今何以更問?

▷논. 묻나니, 앞에서의 '아비발치품(阿鞞跋致品)'에서 “이와 같은 상(相) 아비발치이고, 이와 같은 상(相) 아비발치가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아비발치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라고 하셨거늘, 수보리 존자는 무엇 때문에 다시 여쭌 것입니까?


答曰:是般若波羅蜜有種種門、有種種道。阿鞞跋致是一門中說;今問畢定,更問異門。

復次,佛心中一切衆生、一切法皆畢定;人以智不及故,名爲不畢定。佛知雖無量阿僧祇劫積大功德,必退作小乘者;亦知微細蜫虫雖未有善心,過爾所劫發心,後當作佛。定知一切法皆如是,從是因得是果,是故名佛;一切法中無㝵,以畢定知故。

답하나니, 이 반야바라밀에는 갖가지의 문(門)이 있고 갖가지의 도(道)가 있나니, 아비발치는   하나의 문인 일문(一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니, 지금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에 대하여 여쭌 것은 다른 이문(異門)을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일체 중생과 일체법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건만, 사람들은 지혜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불필정(不畢定)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  공덕을 쌓았을지라도 반드시 물러나서 소승(小乘)이 된다는 것도 아시고, 

또한 미세한 곤충이어서 아직 착한 마음이 있지 못할지라도 많은 겁이 지난 뒤에는 발심하여 부처님이  것이라는 것도 아시며,

그리고 일체 모두는 이와 같아서 ‘이러한 원인으로부터 이러한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반드시 아시기 때문에 부처님을 ‘일체법 가운데에서 장애가 없는 무애(無㝵)’이시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 아시기 때문이다.


復次,須菩提聞『法華經』中說:“於佛所作少功德,乃至戲笑一稱南無佛,漸漸必當作佛。”又聞「阿鞞跋致品」中有退、不退,又復聞聲聞人皆當作佛 若爾者,不應有退。如『法華經』中說畢定,餘經說有退、有不退,
是故今問爲畢定、爲不畢定。如是等種種因緣故,問定、不定。佛答:“菩薩是畢定。”

또한  수보리 존자는 '법화경(法華經)'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지으신 조그마한 공덕에 대하여, 나아가 장난으로 웃으면서 ‘나무불(南無佛)’이라고 한 번 불렀을 뿐이라도 장차 점차로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으며,

아비발치품에서는 물러나는 것과 물러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들었으며, 또한 “성문인은 모두가 장차 부처님이 된다”는 등의 말을 들었으니, 만약 그러하다면 물러나는 것이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치 '법화경'에서 “반드시 정해진 필정(畢定)이다”고 말씀하셨어도 그 밖의 다른 경에서는 “물러나는 것도 있고 물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한 것과 같나니,

이러한 까닭에 지금은 “반드시 정해진 필정(畢定)입니까?, 아니면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불필정(不畢定)이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정해진 필정(畢定)과 정해지지 않은 부정(不定)을 묻는 질문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곧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心以入涅槃爲畢定,是故問:“爲何道中畢定?”佛答:“非畢定二乘,但於大乘中畢定。”

수보리 존자는 마음으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정해진 필정(畢定)일 것이라고 여긴 까닭에 “어느 도(道)에서 반드시 정해진 필정(畢定)입니까?”라고 여쭌 것이며,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반드시 정해진 바가 없는 비필정(非畢定)은 2승이요, 다만 대승 가운데에서 반드시 정해진 필정(畢定)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求佛道者,有上、中、下,是故問:“爲初發意?爲阿鞞跋致?爲最後身畢定?”

須菩提意謂爲“阿鞞跋致已上,畢定住佛道中”故。佛答:“三種菩薩皆畢定。”畢定者,必當作佛。  
부처님의 불도를 구하는 이에는 상(上)ㆍ중(中)ㆍ하(下)가 있기 때문에 “처음 뜻을 낸 초발의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아비발치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맨 마지막 몸인 최후신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라고 여쭌 것이며,

수보리 존자의 생각으로 ‘아비발치 이상은 반드시 정해져 있을 것이니, 그것은 부처님의 불도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다’고 한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세 종류의 보살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다”고 대답하셨으니,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라 함이란, 반드시 부처님을 이루는 작불(作佛)한다는 것이다.

問曰:如上品中說“佛以佛眼見十方菩薩,求佛如恒河沙,得阿鞞跋致者若一、若二”;今何以言“三種菩薩盡皆畢定”?
묻나니, 위의 품(品)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부처님의 불안(佛眼)으로써 시방에 있는 보살들을 보건대, 부처님을 구하는 구불(求佛)하는 이는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으나, 아비발치를 얻는 이는 한 사람 아니면 두어 사람이다”고 하셨거늘,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세 종류의 보살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我先已說:般若甚深有無量門,有說“諸菩薩退而不畢定”,有處說“菩薩畢定不退”,如「阿鞞跋致品」中,須菩提問佛:“菩薩退者,於何處退?爲從色,爲從受想行識,乃至十八不共法?畢竟空故,諸法皆不退。”此中佛何以更說不退?
답하나니, 내가 앞에서 이미 “반야는 매우 깊어서 무량한 문(門)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어떤 이는 “모든 보살은 물러나게 되어서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불필정(不畢定)이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보살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라서 물러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나니, 
마치 '아비발치품(阿鞞跋致品)'에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살로서 물러나는 이는 어느 곳에서 물러나는지요? 물질(色)에서 물러나게 되는지요? 수상행식(受想行識) 내지는 18불공법에서부터 물러나게 되는지요?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에 제법은 모두가 물러나지 않는 불퇴(不退)인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부처님께서는 여기에서 무엇 때문에 또 다시 물러나지 않는 불퇴(不退)를 말씀하시겠는가!

問曰:是二義何者是實?
묻나니, 이 두 가지 이치에서 어떠한 것이 진실입니까?

答曰:二事皆實。佛口所說無不實者。如佛或說“諸法空無所有”,或說“布施、持戒等是有”。爲初發心者說“諸法有”,爲久學人著善法者說“諸法空無所有”。
답하나니, 두 가지 모두가 진실이니, 부처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마치 부처님께서 “제법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공무소유(空無所有)이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보시와 지계 등은 곧 유위(有爲)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며,

처음 초발심한 이에게는 “제법은 유위이다”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오래도록 배운 구학인(久學人)으로서 착한 선법에 집착한 이에게는 “제법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공무소유(空無所有)이다”고 말씀하시기도 한 것과 같은 것이다.

懈怠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牢固者,如是人應從聲聞道得度而不求聲聞,久於生死中受苦,是故說“發心如恒河沙,得阿鞞跋致者若一、若二”。衆生聞是已,能堪受衆苦者,畢定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不能者,取聲聞、辟支佛道。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하여 게으름을 피우면서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문의 도에서 제도되어야 하는 것이나, 성문을 구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생사에서 괴로움을 받나니,

이러한 까닭에 “발심한 이들은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아도 아비발치를 얻는 이는 한 사람 아니면 두어 사람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중생들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뭇 고통을 받아낼 수 있는 이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지만, 만약 그러하지 못한 이라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有人堪任得佛而大悲心薄、自愛身重;此人聞佛難得,多有退者,作是念:“我或不能得佛,不如早取涅槃,何用世世受勤苦爲!”爲是人故,說一切菩薩乃至初發心皆畢定,如『法華經』中說。
어떤 사람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인데도, 대비(大悲)의 마음이 박하고 자신만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나니, 이러한 사람은 ‘부처님이 되기도 어렵고 물러나는 이가 많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나는 혹 부처님이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일찍 열반을 취하는 것이 나으리라! 무엇 때문에 세세에서마다 갖은 괴로움을 받겠는가!’라고 하나니,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일체의 보살로서 처음 초발심한 이까지 모두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필정(畢定)이다”고 하신 것이니, 마치 법화경에서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