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淨佛國土品 第八十二之餘卷 第九十三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2. 정불국토품을 풀이함 ② 3
問曰:諸佛以大慈悲心,爲苦惱衆生故出世;若無三惡道,何所憐愍?
묻나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자비심으로 고뇌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시는데, 만약 삼악도가 없다면 가엾이 여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答曰:佛出爲度衆生故,而三惡道衆生不可度,但可令種善根而已,是故佛名“天人師”。
若無天、人,但有三惡道,可應有難、應作是問。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삼악도에 있는 중생은 제도될 수 없으며, 다만 선근을 심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신 천인사(天人師)라 하는 것이며,
만약 하늘과 인간도 없고, 삼악도만 있다면 그렇게 따질 수도 있으며, 그렇게 질문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
問曰:佛憐愍衆生,淨佛國土中何以無三惡道衆生?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는 연민중생(憐愍衆生)하시면서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시는 가운데에서는 무엇 때문에 삼악도의 중생이 없는 것입니까?
答曰:憐愍一切衆生,平等無異;此中說淸淨業因緣,是國土中無三惡道。
又佛非但一國土,乃有十方恒河沙國土。佛有淸淨國土、有雜國土。雜國土中則具有五道;淨佛國土,或有人、天別異,或無有人、天別異。如過去天王佛國土中,唯佛世尊以爲法王,是故名爲天王佛。復有國土無三毒邪見。
답하나니,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되 평등하여 차이가 없으니, 이러한 가운데에서 깨끗한 청정업인연(淸淨業因緣)을 설하시는 것이므로 이 국토에는 삼악도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에게는 하나의 일국토(一國土)만이 아니고, 시방으로 항하 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국토가 있으니,
그 부처님께는 깨끗한 청정국토(淸淨國土)도 있고, 잡다한 잡국토(雜國土)도 있으며, 잡다한 잡국토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의 오도(五道)를 갖추고 있으며,
부처님의 불국토를 깨끗하게 함에, 혹은 인간과 천상의 구별이 있기도 하고, 혹은 인간과 천상의 구별이 없기도 하나니, 마치 과거 세상의 천왕불(天王佛)의 국토에서는 오직 부처님만이 세간에서 가장 높으신 세존(世尊)이시며 법왕(法王)이셨던 까닭에 명호가 천왕불이셨던 것과 같으며,
또한 어떤 국토에는 탐진치 삼독(三毒)이나 삿된 사견(邪見)이 없었던 것이다.
問曰:諸佛但爲除衆生煩惱故出世,邪見、三毒卽是煩惱,若無煩惱,出何所爲?
묻나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만 중생들의 번뇌를 제거하여 주기 위하여 세간에 출현하실 뿐인 것입니다. 삿된 사견과 삼독, 그것이 곧 번뇌이니, 만약 번뇌가 없다면 출현하신들 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答曰:有人言:是中大福德因緣故,邪見、三毒不發故言無。復次,有人言:是中諸菩薩皆得無生法忍,常修六波羅蜜等諸功德,常遊十方度脫衆生,於諸佛所修習諸佛三昧;勝教化無數聲聞、辟支佛,亦勝教化阿鞞跋致菩薩。成就衆生菩薩、淨佛土菩薩,爲近佛道故,利益轉大。“是國土無二乘之名”者。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가운데에서 큰 복덕의 인연으로 삿된 사견이나 삼독이 일어나지 않나니, 그러한 까닭에 없다고 말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안에 있는 보살들 모두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항상 6바라밀 등의 모든 공덕을 닦으면서 시방을 다니며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이 닦아 익히신 삼매(三昧)에서 수없는 성문과 벽지불을 훌륭하게 교화하며, 또한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보살과 중생을 성취한 보살과 불국토를 깨끗하게 한 보살을 훌륭하게 교화하여 부처님의 불도(佛道)에 가까워지게 하기 때문에, 그 이롭게 함이 더욱 더 크며, 이 국토에는 이승(二乘)이라는 이름도 없다”고 하였다.
問曰:餘佛有三乘教化,豈獨劣耶?
묻나니, 그 밖의 다른 부처님께서도 삼승(三乘)으로 교화하셨거늘, 어찌 홀로 열등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答曰:佛出五濁惡世,於一道分爲三乘。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나쁜 세상에 출현하시어 하나의 일도(一道)를 나누어서 삼승으로 삼으신 것이다.
오탁악세(五濁惡世), 오탁의 오(五)란 명·겁·중생(衆生)·견·번뇌(煩惱)의 다섯 가지를 말하며, 탁(濁, kaṣāya)은 오염, 부패, 타락을 의미하며, 오염되어 타락한 나쁜 세계, 혹은 말세(末世)를 말한다.
‘명탁(命濁,āyuṣ-kaṣāya)’은 악세에서 악업이 늘어나 사람의 목숨이 점점 짧아져 백 년을 채우기 어렵게 되는 것.
‘번뇌탁(煩惱濁 , kleṡa-kaṣāya)’은 애욕(愛慾)을 탐하여 마음을 괴롭히고 여러 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 것.
‘견탁(見濁, dṛṣṭi- kaṣāya)’은 사악한 사상과 견해가 무성하게 일어나는 것.
‘겁탁(劫濁, kalpa-kaṣāya)’은 기근, 질병, 전쟁 따위의 여러 가지 재앙이 일어는 것.
‘중생탁(衆生濁, sattvakaṣāya)’은 견탁(見濁)과 번뇌탁(煩惱濁)의 결과로 인간의 과보(果報)가 점점 쇠퇴하여서 약해지며 괴로움과 질병은 많고 복은 적어짐을 이르는 것이다.
問曰:若爾,阿彌陁佛、阿閦佛等不於五濁世生,何以復有三乘?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아촉불(阿閦佛) 등은 오탁(五濁)의 세상에 나시지 않으셨거늘, 무엇 때문에 삼승(三乘)이 있는 것입니까?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 , 우주의 중심이자 법신(法身, Dharmakāya)을 상징하며,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깨달음을 나타냅니다.
사방불(四方佛):
동쪽의 아촉불(阿閦佛, Akṣobhya) - 대원경지(大圓鏡智, Ādarśa-jñāna)를 상징하며, 번뇌를 끊고 진실을 비추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남쪽의 보생불(寶生佛, Ratnasambhava) - 평등성지(平等性智, Samatā-jñāna)를 상징하며,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서쪽의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ābha) - 묘관찰지(妙觀察智, Pratyavekṣaṇā-jñāna)를 상징하며, 모든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북쪽의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 Amoghasiddhi) - 성소작지(成所作智, Kṛtyānuṣṭhāna-jñāna)를 상징하며, 모든 것을 이루는 지혜를 나타냅니다. - 우주인
答曰:諸佛初發心時,見諸佛以三乘度衆生,自發願言:“我亦當以三乘度衆生。”
亦無無常、苦、空、無我之名者,以衆生深著常、樂等顚倒故,爲說無常等苦法。是中無常、樂等倒故,不須無常、苦;若無病,則不須藥。亦無我所有,乃至無諸煩惱結使亦如是。
답하나니,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초발심하실 때, 모든 부처님께서 삼승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는 것을 보고 친히 서원 세우기를 ‘나 또한 3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신 것이며,
‘또한 무상하고ㆍ괴롭고ㆍ공하고ㆍ무아(無我)라는 말도 없다’고 함이란, 중생들은 항상 있다는 상(常)ㆍ즐겁다는 낙(樂) 등의 뒤바뀐 전도(顚倒)에 깊이 집착한 까닭에 그들을 위하여 ‘무상하다ㆍ괴롭다’ 는 법을 말하지만,
이 가운데에는 항상 있다는 상(常)ㆍ즐겁다는 낙(樂) 등의 뒤바뀐 전도(顚倒)가 없기 때문에 ‘무상하다ㆍ괴롭다’는 등의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니, 마치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 없는 것과 같으며,
또한 내 것의 아소유(我所有)라는 것이 없는 것에서부터 모든 번뇌와 결사(結使)가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은 것이다.
無二乘故,亦無須陁洹等諸果,但一向著諸法實相。先得無生法忍者,得諸三昧、陁羅尼門,轉復增益諸地等功德。
風吹七寶之樹,隨所應度而出聲者,是菩薩欲使衆生易聞法故,七寶之樹出法音聲。
寶樹遍滿國土故,衆生生便聞法,餘心不生,但生法心。
2승이 없기 때문에 또한 수다원 등의 모든 과위도 없으니, 다만 한결같은 제법의 실상(實相)에 두고 있을 뿐이다.
먼저 무생법인을 얻은 이는 모든 삼매와 다라니(陀羅尼)의 문을 얻어서 더욱 더 모든 지위(地位) 등의 공덕이 불어나며,
‘바람이 칠보수(七寶樹)에 불어서 제도해야 할 것을 따라 음성을 낸다’고 함이란, 이 보살은 중생으로 하여금 법을 듣기 쉽게 하고자 칠보로 된 나무에서 법의 음성이 나오게 한 것이니, 보배나무가 국토에 두루 차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법을 들으면서 다른 마음을 내지 않으니, 다만 법의 마음인 법심(法心)만 생길 뿐인 것이다.
問曰:諸佛有無量不可思議神通力,何以不變化作無量身說法度衆生?何須樹木音聲?
묻나니, 모든 부처님께는 무량하고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있으시거늘, 무엇 때문에 무량한 몸을 변화로 지어내어서 설법하겨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시는 것이며, 왜 나무를 통한 음성을 필요하신 것입니까?
答曰:衆生甚多,若佛處處現身衆生不信,謂爲幻化,心不敬重。
有衆生從人聞法,心不開悟;若從畜生聞法,則便信受。如『本生經』說:菩薩受畜生身,爲人說法;人以希有故,無不信受。
又謂畜生心直不誑故。有人謂畜生是有情之物,皆有欺誑;以樹木無心而有音聲,則皆信受。所謂空、無相、無作,有佛、無佛,一切法常空,空故無相,無相故無作、無起。如是等法,晝夜常出。
답하나니, 중생이 너무 많으니, 만약 부처님께서 곳곳에 많은 몸을 나타낸다면 중생은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환이요 변화한 것이라 여기어서 마음으로 공경하거나 존중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어떤 중생은 사람으로부터 법을 들으면 마음을 깨치지 못하지만, 만약 축생으로부터 법을 들으면 곧 믿고 받기도 하나니, 마치 '본생경(本生經)'에서 “보살이 축생의 몸을 받아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면, 희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고 받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한 것과 같으며,
또 이르기를 “축생은 마음이 곧고 속임수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축생은 바로 생각이 있는 존재인 유정물(有情物)이라서 모두 속임수가 있지만, 나무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서, 거기에서 음성이 나오면 모두가 믿고 받는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이라서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일체법은 항상 공(空)한 것이며, 공(空)하기 때문에 무상(無相)이며, 무상(無相)이기 때문에 무작(無作)이고 무기(無起)인 것이다’라고 하는, 이와 같은 등의 법이 밤낮으로 항상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餘國土以神通力、口力種種變化,此中常自然音聲。
淨佛國土,佛常爲諸佛所讚,大作功德故,能得如是淨國;若聞淨國佛名,則畢定作佛。
그 밖의 국토에서는 신통력(神通力)과 입의 구력(口力)으로써 갖가지 변화를 하나니, 이 가운데서는 항상 자연의 음성으로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나니, 부처님께서는 항상 모든 부처님의 찬탄을 받으시면서 크게 공덕을 짓기 때문에 이와 같이 깨끗한 국토를 얻게 된 것이니, 만약 그 깨끗한 국토의 부처님 명호를 들으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問曰:餘佛種種勤苦說法,衆生尚不得道、何以但聞佛名便得道?
묻나니, 그 밖의 다른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애쓰시면서 설법하셔도 중생들은 오히려 도를 얻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부처님의 명호만을 들어도 곧 도를 얻게 되는 것입니까?
答曰:餘處佛種種說法,衆生或得道、或得善根,終不空說;若聞是佛名,畢至阿鞞跋致,不言今得。
답하나니, 그 밖의 다른 곳의 부처님께서 갖가지로 법을 설하면, 그 중생들은 혹 도를 얻기도 하고 혹은 선근을 얻어서 끝내 그 말씀하신 바가 헛되지 않지만,
만약 이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마침내는 아비발치(阿鞞跋致)에 이르게 되나, 지금 당장에 된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問曰:一切佛,若人好心聞名,皆當至佛。如『法華經』中說,福德若大、若小,皆當作佛。何以獨說淨國佛?
묻나니, 일체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만약 좋은 마음으로 명호를 들으면 모두가 부처님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으니, 마치 '법화경(法華經)'에서 “그의 복덕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가 부처님이 될 것이다”고 한 것과 같거늘, 무엇 때문에 유독 깨끗한 국토의 부처님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人聞餘佛名字,謂:“受生與人無異,但有一切智得道爲異。”心不敬重故,雖種善根亦不能深。
是中是法性身,佛身無量無邊,光明、說法音聲遍滿十方國土,國中衆生皆是近佛道者,無量阿僧祇由旬衆中說法;勝無量億阿僧祇日月光明,常從身出,佛令衆生見則得見,若不聽則不見。
답하나니, 사람들이 그 밖의 다른 부처님의 명호를 들으면, ‘생(生)을 받은 사람이므로 다른 이들과 차이가 없으나, 다만 일체지(一切智)가 있고 도를 얻은 것이 다를 뿐이다’라고 여겨서 마음으로 공경하거나 귀중히 여기지도 않기 때문에 비록 선근을 심는다 할지라도 깊이 심지 못하나니,
여기에서는 바로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불신이라 무량하고 무변한 광명이 있으며,
그 설법하시는 음성이 시방의 국토에 두루 차며, 그 국토의 중생들 모두는 부처님의 불도에 가까운 이들이라서, 무량한 아승기의 유순(由旬)의 대중 가운데에서 설법하고, 무량한 억(億)의 아승기의 해와 달보다 뛰어난 항상 몸의 광명이 있으나, 부처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보고자 한다면 볼 수 있게 하나, 만약 듣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것이다.
是佛一一毛孔邊常出無量無邊阿僧祇佛,一一諸佛等無異,於化佛邊展轉復出。
隨應度衆生見佛優劣,根本眞佛無有分別大小之異。
如是等若見、若聞名、若聞如是功德,深信敬重故,所種善根,云何不畢定作佛?
復次,是佛說法時,無有疑者,乃至無一人言:“是法爲非佛口所說!”悉皆是法。
이 부처님의 낱낱 모공(毛孔)에서는 항상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부처님이 나오게 하나니, 그 각각의 모든 부처님 모두는 똑같아서 다르지 않으며,
그 변화한 부처님 곁에서 전전(展轉)하면서 다시 출현하니, 제도되어야 할 중생을 따라 부처님을 뵙는 것에 우열(優劣)이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진불(眞佛)과는 크고 작은 차이를 분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등으로 뵙기도 하고, 그 명호를 듣기도 하며 또는 이와 같은 공덕을 들어서 깊이 믿고 공경하며 존중하기 때문에 선근을 심게되거늘, 어찌 마침내 부처님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에는 의심하는 이도 없으며, 나아가 한 사람도 이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없나니, 부처님의 불구(佛口)로써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서 모두가 다 법(法)인 것이다.
問曰:人從釋迦文尼佛聞法生疑者多?
묻나니,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사람들 가운데 석가모니(釋迦文尼)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의심을 내는 이가 많았던 것입니까?
答曰:佛此中自說因緣:“有人薄福不種善根、不得善知識故生疑。”著我見、邊見、邪見等諸煩惱覆故,非佛言是佛、是佛言非佛。不深種善根、不順善師,三毒、邪見一時發起,無所依隨,任意自恣 若見邪見,順其意故,言是一切智見;
諸佛說畢竟空,不順其意,便言非佛;非法言法,法言非法。如是人於諸佛所多生疑,多生疑故心悔。
是淨佛國中無如是罪人,故不生疑。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여기에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어떤 사람들은 박복(薄福)하여 선근을 심지 못하였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까닭에 의심을 내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나'라는 아견(我見)과 일변에 치우친 변견(邊見)와 삿된 사견(邪見)등의 모든 번뇌에 가려져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아님에도 부처님이라 하고, 그 분이 부처님이신데도 부처님이 아니라 하며,
선근을 깊이 심지 못하고, 착한 스승을 따르지 않았기에 삼독과 삿된 사견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의지할 곳이 없어서 제 마음대로 방자하게 구는 것이니,
만약 삿된 사견을 듣고는 그의 뜻에 맞으면 ‘이것이 바로 일체지이다’라고 하며,
모든 부처님께서 ‘필경공이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드고 그의 뜻에는 맞지 않으므로 곧 ‘부처님이 아니다’ 라고 하며,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하고, 법을 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의심을 많이 내며, 의심이 많은 까닭에 마음으로 후회하게 되지만,
이 깨끗한 부처님의 정불국(淨佛國)에는 이러한 죄인이 없기 때문에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이다.
佛言:“如是罪人,破諸法實相故,死墮地獄惡道中!諸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見諸罪人往來生死中,以佛神通力,拔出衆生令住正定聚中,不墮三惡趣,是名淨佛土。”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은 죄인은 제법의 실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죽으면 지옥의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셨으니,
모든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이러한 모든 죄인이 생사에서 왕래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구출하여, 미혹과 견혹을 끊어 반드시 깨달음에 얻게 될, 정정취(正定聚, 정취) 안에 머무르게 하여서,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악취(惡趣, tri-durgati,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나니,
이를 일컬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는 정불토(淨佛土)’라 하는 것이며,
是佛土中無如是諸過。無不具足,於世閒、出世閒,有漏、無漏,有爲、無爲等中無有障㝵 所謂國土七寶,衆生身端正,相好莊嚴,無量光明,常聞法音,常不遠離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是中衆生皆畢竟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부처님의 불토(佛土)에는 이와 같은 모든 허물이 없으며, 두루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세간과 출세간, 유루와 무루, 유위와 무위 등에서 장애되는 것이 없으니,
이른바 그 국토는 칠보(七寶)로 이루어졌으며, 중생들은 몸이 단정하고 상호(相好)로 장엄하고 무량한 광명이 있으며,
언제나 법음(法音)을 들으면서 항상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을 여의지 않나니,
이 가운데의 중생들 모두는 필경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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