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作實相品 第四十三之餘 卷六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3. 무작실상품을 풀이함② 2
問曰:天上亦有般若波羅蜜,諸天何以於六齋日隨逐不淨人身求聞般若?
묻나니, 천상에도 반야바라밀이 있을텐데, 무엇 때문에 모든 하늘들이 육재일(六齋日)에 청정하지도 못한 사람을 따라 반야를 들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天上有經卷,傳聞如是,亦非佛說。若令有者,忉利天上、兜率天上當有。何以故?阿修羅共忉利天鬪時,佛勅帝釋:‘汝當誦念般若。’
답하나니, 천상에도 경전이 있고 전하여 듣는 것도 그와 같을 것이나 역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만약 있다면 도리천(忉利天)의 천상이나 도솔천(兜率天)의 천상에 있을 것이니, 왜냐하면 아수라(阿修羅)가 도리천과 싸울 때에 부처님께서는 제석에게 “너희들은 반야를 외우고 염해야 한다.”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兜率天上常有補處菩薩爲諸天說,故可有。色界諸天,身及衣服輕微,乃至無兩數,常樂宴寂,受禪定味,是故不應有經卷。
도솔천에는 항상 보처(補處) 보살이 있으면서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설하고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있을 것이나,
색계의 모든 하늘은 몸과 의복이 가벼워서 무게가 한 냥(兩)도 되지 않으며 그들은 항상 고요함을 즐기면서 선정의 선미(禪味)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경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諸天著二種樂:欲樂、定樂,不能懃苦書持般若波羅蜜。閻浮提人能精進書、持、受學、正憶念。
모든 하늘에게는 두 가지 즐거움인 이종락(二種樂)이 있나니, 곧 욕락(欲樂)과 선정의 즐거움인 정락(定樂)이라.
이 때문에 부지런히 애써서 반야바라밀을 쓰고 지닐 수 없지만, 염부제의 사람은 정진하면서 쓰고 지니고 부지런히 배우며 바르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如經說:‘閻浮提人以三因緣勝諸天及鬱單曰人:一者、能斷淫欲,二者、强識念力,三者、能精懃勇猛。”是閻浮提人能書寫、讀、誦、受持,以是故諸天來下,禮拜般若經卷,或欲聞說。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염부제의 사람은 세 가지의 인연으로 모든 하늘과 울단왈(鬱單曰)의 사람들보다 뛰어나나니,
첫째는 음욕을 능히 끊는 것이요, 둘째는 알고 기억하는 힘이 강한 것이며, 셋째는 부지런히 힘쓰고 용맹스러운 것이라서 염부제 사람들은 능히 쓰고 베끼고 읽고 외우며 받아 지닐 수 있으니,
이 때문에 모든 하늘이 내려와서 반야의 경전에 예배하며 혹은 그 법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울단왈(鬱單曰, Uttarakuru)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대주 가운데 하나로 북방에 위치한 주(州)를 말한다. 울다라구류(鬱多羅究留)라고도 한다.
復有人言:天上若有經卷,遠來供養,福德增益,求般若波羅蜜亦無厭足。
또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천상에도 경전은 있지만 멀리서 와서 공양하면 복덕이 더욱 증가하며, 반야바라밀을 구하는 것에 싫증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며,
有菩薩,天欲令般若尊重,故來下,欲令衆生益加信敬 “諸天尚來,何況我等行者!”若聞好香、若見光明,有如是希有事故,深心信樂般若。
어떤 하늘의 보살은 반야를 존중하게 하고자 일부러 내려와서 중생들로 하여금 더욱 더 믿고 공경을 더하게 하였으며, 모든 하늘들조차도 오히려 이와 같이 내려오거늘 하물며 수행하는 우리들이겠는가!
만약 좋은 향기를 맡거나 광명을 보면 이와 같은 희유한 일이 있기 때문에 깊은 마음으로 반야를 믿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又未離欲人,惡鬼、魔民常逐伺便,令墮惡處;從四天王乃至淨居天,是大力諸天來,小鬼避去。菩薩能生淸淨大心,如先品中說,是故來隨逐法師。
또한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사람은 나쁜 귀신이나 악마의 백성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기회를 엿보아, 나쁜 곳에 떨어지게 하나, 사천왕에서부터 정거천에 이르기까지의 큰 힘을 지닌 여러 하늘들이 오게 되면 조그마한 귀신들은 피하여 도망가며,
보살이 청정한 대심(大心)을 내는 것은 앞의 품(品)에서 설명한 바와 같나니, 이 때문에 하늘들이 와서 법사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六齋日,諸天來觀人心,十五日、三十日,上白諸天。復次,是六齋日是惡日,令人衰凶;若有是日受八戒,持齋、布施、聽法,是時諸天歡喜,小鬼不得其便,利益行者。是日法師高座說法,如是等種種因緣故諸天皆來。
육재일(六齋日)에는 모든 하늘이 내려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15일과 30일에는 올라가서 모든 하늘에게 알리며,
또 이 육재일은 나쁜 날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쇠하고 흉하게 하나니, 만약 이 날에 팔계(팔戒)를 받아 지제(持齋, 오후불식, 포살布薩)하고, 보시하고 법을 들을 때에 모든 하늘들은 기뻐하게 되니, 조그마한 귀신들은 괴롭힐 틈을 얻지 못하며, 수행하는 이들은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에는 법사가 높은 자리에서 법을 설하는 등, 이와 같은 여러 인연 때문에 모든 하늘들이 오는 것이다.
포살(布薩)= 스스로 깨달아서 참회를 하는 것을 보통 참회(懺悔)라 하고 대중 앞에 드러내서 여러 대중앞에 드러내어서 참회하는 것을 발로참회(發露懺悔), 즉 포살 (布薩)이라고 한다.
포살은 같은 계율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다. 같이 계율을 받고 같이 지키기로 약속을 했는데, 못 지킨 경우 다른 사람에게 의혹이 생기기 때문에 드러내서 참회하여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의혹을 없애는 것이다. 참회는 내 자신의 정화를 가져오고 포살은 공동체의 정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 대한불교화엄종 약사사
說法者讚歎無量無邊無上法 所謂般若波羅蜜,亦得無量無邊福德。若爲人說,人鈍根、福德薄,故得福少;諸天利根、福德多、福田勝,故得福多。故佛說:“行者齋日,諸天及大衆中說般若,得福無量。”
설법하는 설법자는 무량하고 무변한 무상법, 즉 반야바라밀을 찬탄하며 또한 무량하고 무변한 복덕을 얻나니,
만약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다면, 사람의 근기가 둔하고 복덕이 얇기 때문에 복을 얻음이 적겠지만, 모든 하늘들은 근기가 예리하고 복이 수승하고 많기 때문에 복을 얻음이 많으니,
이러한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수행하는 행자가 재일(齋日)에 모든 하늘과 대중 가운데서 반야를 설하면 복을 얻는 것이 무량하다.”고 하신 것이다.
此中佛可須菩提所言,復自說無量福德因緣,所謂“般若波羅蜜是大珍寶波羅蜜。”如如意寶珠能滿一切人願;是般若波羅蜜能滿一切衆生願,所謂離苦、得樂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 존자가 하는 말이 옳다고 하시면서, 다시 스스로 무량한 복덕의 인연을 말씀하셨나니, 이른바 반야바라밀은 바로 크고 값진 대진보(大珍寶)의 바라밀이라 하셨으니,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가 일체 사람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듯이 이 반야바라밀은 일체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나니, 이른바 고통을 여의게 하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離苦者,般若波羅蜜能拔衆生地獄、畜生、餓鬼及人中貧窮;與樂者,能與剎利大姓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樂因緣善法,般若波羅蜜中廣說,所謂十善道乃至一切智
‘고통을 여의게 하는 이고(離苦)’라 함이란, 반야바라밀이 중생들 가운데 지옥ㆍ축생ㆍ아귀와 빈궁한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요,
‘즐거움을 주는 여락(與樂)’이라 함이란, 찰리의 큰 성바지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낙인연(樂因緣)은 착한 선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널리 설명한 것이니, 이른바 십선도(十善道) 내지는 일체지이다.
如如意寶能出衣服、飮食、金銀等,隨意所須;般若波羅蜜亦如是,能令得十善道乃至一切智、剎利大姓乃至佛。以是事故,名爲“珍寶波羅蜜”。
마치 여의보(如意寶)가 의복과 음식과 금ㆍ은 등을 뜻하여 구하는 바대로 나오게 하듯이,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아서 십선도 내지는 일체지와 찰리의 큰 성바지 내지는 부처님이 되게 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값진 진보(珍寶)의 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며,
復次,“珍寶波羅蜜”者,如人得如意寶,則隨意所須皆得,失則憂惱;是般若波羅蜜不生不滅,常不失,世世與衆生樂,末後令得佛道。
또한 값진 진보(珍寶)의 바라밀이라 함이란, 사람이 여의보를 얻으면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얻었다가 잃게 되면 근심하고 괴로워하거니와, 이 반야바라밀은 불생불멸이며, 항상 잃지 않는 것이므로 세세에서마다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마지막에도 부처님의 불도를 얻게 하는 것이다.
如人得如意寶,則心生自高、輕賤他人,是爲衰因緣;若人得世閒般若波羅蜜,亦如是分別,著諸善法、捨諸惡法,生高心、輕蔑餘人,則開諸罪門。
마치 사람이 여의보를 얻으면 자신이 높다는 교만한 마음을 내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어서, 그것이 바로 쇠퇴하는 인연이 되는 것이나, 만약 사람이 세간의 반야바라밀을 얻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분별하되 모든 착한 선법에 집착해서 모든 나쁜 악법을 버리면서도 높은 체하는 교만한 마음을 내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긴다면 모든 죄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珍寶般若波羅蜜出世閒般若波羅蜜中,不分別善、不善,是名大珍寶波羅蜜,能利衆生,畢竟無憂。是珍寶波羅蜜,善法尚不能污染,何況不善法!如此中說。
값진 진보(珍寶)의 반야바라밀이란 출세간의 반야바라밀에서는 착하거나 착하지 않거나 간에 분별하지 않나니, 이것을 크고 값진 대진보(大珍寶)의 바라밀이라 하며, 이는 중생을 이롭게 하여서 마침내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珍寶) 바라밀은 착한 선법으로도 더럽힐 수 없거늘, 하물며 착하지 않은 악법이겠는가? 이는 여기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니라.
“如是亦不知”者,如上說般若相,亦不作是知、不作知者;不取相亦不生著,不分別,不得定相;是名“無有過患、無有法愛、斷諸戲論”。
‘이와 같이 또한 알지 못한다는 여시역불지(如是亦不知)’라 함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야의 상(相)은 또한 앎을 짓지 않는 불작지(不作知)이니,
앎을 짓지 않는 불작지(不作知)라는 것은 상(相)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또한 집착을 내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며 일정한 정상(定相)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만족을 모르는 과환(過患)도 없고, 법애(法愛)도 없으며 모든 쓸모없는 희론(戱論)을 끊는 것이라 하는 것으니,
如是人能實修行般若波羅蜜,以法禮佛、自得實法利益故,能利益衆生;能自離惡、能令衆生離惡故,得淨佛世界。
이와 같은 사람은 진실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법답게 부처님께 예배하고 스스로 진실한 법의 이익을 얻기 때문에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또한 스스로의 악(惡)을 여의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악을 여의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用無所得方便力故,知諸法畢竟寂滅相,而能爲衆生故起諸善法。
얻을 것이 없는 방편의 힘인, 무소득방편력(無所得方便力)을 쓰기 때문에 제법이 필경에는 고요히 사라진 적멸상(寂滅相)임을 알며,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모든 착한 선법을 일으키며,
般若波羅蜜畢竟淸淨故,無力、無非力;譬如虛空,雖無有法,而因虛空得有所作。
반야바라밀은 필경에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힘이 없는 무력(無力)이고, 힘이 아닌 것도 없다는 무비력(無非力)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에는 비록 어떠한 법도 없으나 허공으로 인하여 짓는 바의 유소작(有所作)이 있는 것과 같다.
無有一法定相可著,故無有力;得諸法實相,於諸善法無碍,乃至降魔成佛,非無有力。“不受不與”、“不生不滅”等乃至“不捨有爲法、不與無爲法”,亦如是。
어떠한 일법(一法)도 일정하게 정해진 정상(定相)이 있어서 집착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힘이 없는 무유력(無有力)이라고 하나, 제법의 실상을 얻어서 모든 착한 선법에 장애가 없으며, 나아가 악마를 항복받고 부처님이 되므로 힘이 없는 것도 아닌 무비력(無非有力)인 것이다.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나아가 유위법을 버리지 않고 무위법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此中說因緣:“有佛、無佛,諸法性常住世閒。”諸法性者,卽是諸法實相;諸法實相者,卽是般若波羅蜜。若以常、無常等求諸法實相,是皆爲錯;若人入法性中求,則無有錯謬。法性常故不失。
이 가운데서 인연을 말씀하시되 “부처님이 계신 유불(有佛)이거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無佛)이거나 간에 제법의 성품은 항상 머무른다.”고 하였나니,
모든 제법의 성(性)이란 곧 제법의 실상이요, 제법의 실상이라 함이란 곧 반야바라밀이라.
만약 항상하고 무상하다는, 상무상(常無常)등으로 제법의 실상을 구한다면 이 모두는 잘못되는 것이요, 만약 어떤 사람이 법성(法性)에 들어가서 구한다면 잘못됨이 없나니, 법성(法性)은 항상 있는 상(常)이기 때문에 유실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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