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無作實相品 第四十三 卷六十四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 三藏法師 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잡법사 구마라집 소역.
43. 무작실상품(無作實相品)을 풀이함① 4
略說二種因緣,不須守護,若人、若非人不得便:一者、從身乃至一切諸法,皆厭離;無我、無我所故,皆無所著;如斬草木,不生憂愁。二者、得上妙法故,爲十方諸佛菩薩、諸天守護。
간략하게 약설(略說)하면, 두 가지의 인연으로 수호할 필요가 없나니,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이 편(便, 기회)을 얻을 수 없는 것에는
첫째 몸에서부터 일체제법에 이르기까지의 모두를 싫어하면서 여의는 것이니, 무아(無我)이고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도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는 무소착(無所著)으로서, 마치 풀과 나무를 베었어도 근심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으며,
둘째는 최상의 묘한 묘법을 얻었기 때문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하늘 등의 수호를 받는 것이다.
復次,譬如人欲守護虛空。虛空,雨不能壞,風日不能乾,刀杖等不能傷;若有人欲守護虛空者,徒自疲苦,於空無益。
또한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허공을 수호하려는 것과 같으니, 허공은 비(雨)로써 파괴할 수도 없고 바람이나 해로써 마르게 할 수도 없으며 칼이나 몽둥이로써도 상하게 할 수가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허공을 수호하려 한다면 스스로만을 피로하게 할 뿐, 허공은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다.
若人欲守護行般若波羅蜜菩薩亦如是。欲令此事明了,故問:“汝能守護空及夢中所見人,及影、響、幻化人不?”答言:“不也!”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을 수호하고자 한다면 이것 또한 그와 같은 것으로, 이러함을 명료하게 하기 위하여 묻기를 “당신은 허공과 꿈속에서 보는 사람이나 그림자ㆍ메아리ㆍ허깨비ㆍ변화로 된 사람을 수호할 수 있느냐?”고 하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고 한 것이다.
此法但誑心眼,暫現已滅,云何可守護?行般若菩薩亦如是,觀五衆如夢等虛誑。
이러한 법은 다만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을 속이면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인 것이거늘 어떻게 수호할 수 있겠는가?
반야를 행하는 보살 또한 그와 같으니, 오중(五衆, 오온)을 관찰하면 마치 꿈과 같이 허망한 것이다.
如無爲法如、法性、實際、不可思議性,無能守護者,亦無所利益。行般若菩薩,知身如如、法性、實際,不分別;得供養利時不喜,破壞失時不憂。如是人何須守護?
마치 무위법(無爲法)과 여(如)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와 불가사의성(不可思議性)은 수호할 수 있는 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익되는 것도 없는 것과 같이, 반야를 행하는 보살은 몸이 마치 여ㆍ법성ㆍ실제와 같아서 분별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아나니,
공양으로 이익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파괴되어 상실할 때에도 근심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사람을 무엇 때문에 수호하겠는가?
爾時,帝釋貪貴是如夢等智慧,菩薩得是智慧力,不須外守護;故問須菩提:“云何菩薩知是如夢等空法如所知?”
그때 제석은 이 꿈과 같은 등의 지혜를 탐내고 귀히 여기거니와 보살은 이 지혜의 힘을 얻었기에 바깥의 외적인 수호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묻기를 “수보리여, 어떻게 보살은 이 꿈과 같은 등의 공법(空法)을 알며 아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였으며,
“見不念夢等”者,夢等喩五衆。五衆,人所著,不著夢等;欲令離著事,故以不著事爲喩,欲令觀五衆如夢。
‘꿈 등을 염하지 않는다.’고 함이란, 꿈 등을 오중(五衆, 오온)에 비유한 것이며, 사람들은 오중은 집착하나 꿈 등에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집착을 여의게 하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써 비유를 한 것이니, 오중이 꿈과 같음을 관하게 하려는 것이다.
於夢亦復生著,是故帝釋問“如夢”,亦不著是夢。凡夫人,以夢喩五衆,卽復著夢,作是言“定有夢法眠睡時生”,是名“念夢”。
그러나 꿈에도 또한 집착을 내기 때문에 제석이 묻기를 마치 “꿈에 대해서도 역시 ‘이것이 꿈이다.’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고 한 것이며,
범부는 꿈을 오중에 비유하면 곧 다시 꿈에 집착하면서 말하기를 “반드시 꿈이라는 법이 있어서 잠을 잘 때에 생긴다.”고 하나니, 이것을 바로 “꿈을 염한다.”고 한 것이다.
是夢惡,是夢好,如是分別,是名“念是夢”;夢得好事則心高,得惡事則心愁。又用此夢譬喩,得是如夢實智慧,是名“念用夢”。聞是譬喩,我因此夢得知諸法如夢,是名“念我夢”。餘喩亦如是。
“이 꿈은 나쁘다, 이 꿈은 좋다.”고 분별하는 것을 “꿈을 염한다.”고 하며, 꿈에 좋은 일이 있으면 뽐내는 마음이 생기고, 나쁜 일이 있으면 근심하며, 또 이 꿈의 비유를 이용하면 이 꿈과 같은 실지혜(實智慧)를 얻게 되나니,
이를 “꿈을 이용하는 것을 염하는 염용몽(念用夢)”이라 하며,
이 비유를 듣고 “나는 이 꿈으로 인하여 제법이 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나의 꿈이라고 염한다.”고 하는 것이며, 그 밖의 비유 역시 그와 같은 것이다.
爾時,須菩提答:“帝釋!若行者不念色,是色 人色、非人色,樹色、山色,是四大、若四大所造色等。不念是色若常、若無常等,不以色故心生憍慢。不念色是我所、非我所,入無我門,直至諸法實相中。”
그때 수보리 존자가 대답하기를 “제석이여, 만약 수행하는 이가 물질(色)에 대하여 ‘이것이 물질(色)이다, 사람이라는 물질인 인색(人色)이다, 사람 아닌 물질인 비인색(非人色)이다, 나무라는 물질인 수색(樹色)이다, 산이라는 물질의 산색(山色)이다, 이것은 사대(四大)이다, 사대로 만들어진 물질인 사대조색(四大造色)이다.’이라는 등으로 염하지 않으며,
물질(色)이 항상(常)하다거나 무상(無常)하다는 등을 염하지 않아서 물질(色) 때문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지 않고,
‘물질(色) 이것이 내 것인 아소(我所)이다, 내 것이 아닌 비아소(非我所)이다.’라고 염하지 않으면,
무아문(無我門)에 들게 되어서 곧 제법의 실상(實相)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是人能不念夢、不念是夢等;用是夢等譬喩,破著五衆;破著故,於夢中亦不錯。若不能破色著,是人於色錯,於夢亦錯。受、想、行、識乃至一切種智亦如是。幻、焰、響、影、化等亦如是。諸菩薩知諸法如夢,於夢亦不念。
이러한 사람은 꿈을 염하지 않고, 이것이 꿈 등이라고 염하지 않으며, 이 꿈 등의 비유를 이용하여 오중(五衆, 오온)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며, 집착을 깨뜨리기 때문에 꿈에 대해서 잘못되지 않지만,
만약 물질(色)의 집착을 깨뜨릴 수 없다면, 이 사람은 물질(色)에 대해서도 잘못되고 꿈에 대해서도 잘못되나니,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 내지는 일체종지도 그와 같으며,
허깨비(幻)ㆍ아지랑이(焰)ㆍ메아리(響)ㆍ그림자(影)ㆍ변화(化) 등에 대하여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모든 보살은 제법이 꿈과 같다는 것을 알며 꿈 또한 염하지 않는 것이다.
▶經. 爾時,佛神力故,三千大千世界中,諸四天王天、三十三天、夜摩天、兜率陁天、化樂天、他化自在天,梵身天、梵輔天、梵衆天、大梵天、少光天,乃至淨居天——是一切諸天以天栴檀遙散佛上,來詣佛所,頭面禮佛足,卻住一面。
▷경. 그때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사천왕천(四天王天)과 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신천(梵身天)ㆍ범보천(梵輔天)ㆍ범중천(梵衆天)ㆍ대범천(大梵天)ㆍ소광천(少光天)에서 정거천(淨居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하늘들이 하늘의 전단향(栴檀香)을 멀리서 부처님 위에 흩뿌리고 부처님에게로 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서 있었다.
爾時,四天王天、釋提桓因及三十三天、梵天王乃至諸淨居天,佛神力故,見東方千佛說法,亦如是相、如是名字,說是般若波羅蜜品;諸比丘皆字須菩提,問難般若波羅蜜品者皆字釋提桓因;南西北方、四維、上下亦如是各千佛現。
그때 사천왕천과 석제환인 및 삼십삼천ㆍ범천왕에서 정거천에 이르기까지의 신들이 부처님의 신력으로 인하여 동쪽에서 1천의 부처님이 설법하시는데 역시 그와 같은 모습(相)과 그와 같은 이름임을 보았으니,
이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蜜品)을 해설하는 비구들은 모두가 이름이 수보리였고 반야바라밀품을 질문하는 이들은 모두가 이름이 석제환인이었으며,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도 역시 그와 같아서 각각 1천의 부처님이 나타나 계셨다.
爾時,佛告須菩提:“彌勒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亦當於是處說般若波羅蜜。如賢劫中諸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亦當於是處說般若波羅蜜。”
그때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미륵(彌勒)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에도 역시 이곳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할 것이요,
현겁(賢劫) 동안에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에도 역시 이곳에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리라.”
須菩提白佛言:“世尊!彌勒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用何相、何因、何義說是般若波羅蜜義?”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륵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실 때에는 어떠한 모습(相)과 어떠한 인(因)과 어떠한 이치(義)로써 이 반야바라밀의 뜻을 설하시는지요?”
佛告須菩提:“彌勒菩薩摩訶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色非常非無常,當如是說法;色非苦非樂、色非我非無我、色非淨非不淨,當如是說法;色非縛非解,當如是說法。受、想、行、識非常非無常乃至非縛非解,當如是說法。
부처님께서 수보리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미륵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때에는 ‘물질(色)은 항상 있는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한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요,
‘물질(色)은 괴로운 고(苦)도 아니고 즐거운 낙(樂)도 아니며, 물질(色)은 나도 아닌 비아(非我)이고 무아(無我)도 아니며, 물질(色)은 깨끗한 정(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는 비정(非淨)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며,
‘물질(色)은 속박된 것도 아닌 비박(非縛)이고 벗어난 것도 아닌 비해(非解)이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니라.
‘느낌(受)ㆍ생각(想)ㆍ 지어감(行)ㆍ분별(識)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닌 비상(非常)이고 무상한 것도 아닌 비무상(非無常)이며, 나아가 속박된 것도 아닌 비박(非縛)이고 벗어난 것도 아닌 비해(非解)이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니라.
色非過去、色非未來、色非現在,當如是說法;受想行識亦如是。色畢竟淨,當如是說法;受想行識畢竟淨,當如是說法;乃至一切智畢竟淨,當如是說法。”
‘물질(色)은 과거도 아니고 물질(色)은 미래도 아니며 물질(色)은 현재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요,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이와 같으며,
물질(色)은 필경정(畢竟淨)이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요, ‘수상행식(受想行識)도 필경정(畢竟淨)이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며, 나아가 ‘일체지도 필경정(畢竟淨)이다.’라고 이와 같이 설법할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是般若波羅蜜淸淨。”
佛言:“色淸淨故,般若波羅蜜淸淨;受、想、行、識淸淨故,般若波羅蜜淸淨。”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청정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色)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청정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청정하느니라.”
“世尊!云何色淸淨故般若波羅蜜淸淨?云何受想行識淸淨故般若波羅蜜淸淨?
佛言:“若色不生不滅、不垢不淨,是名色淸淨;受想行識不生不滅、不垢不淨,是名受想行識淸淨。復次,須菩提!虛空淸淨故,般若波羅蜜淸淨。”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물질(色)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이며,
어떠한 것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청정한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물질(色)이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면, 이를 물질(色)이 청정하다고 하며,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면, 이를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청정한 것이라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허공이 청정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청정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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