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了知一切法
了知一切法이 自性無所有니 如是解法性하면 則見盧舍那로다
因前五蘊故로 後蘊相續起하나니 於此性了知하면 見佛難思議로다
了知一切法이 自性無所有(자성무소유)니, 일체법이 자성이 없는 줄 알지니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하면, 이와 같이 법의 성품을 이해하면
則見盧舍那(즉견로사나)로다. 곧 노사나불을 뵈리라. [법신 부처님을 보게 된다.]
因前五蘊故(인전오온고)로, 앞선 오온으로 인해
[촛불 밝히면, 불이 빛을 발하면서 타오르는 것이 0.01초전에 타오른 불과 0.01초 이후에 타오르는 촛불의 불빛은 다른 초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형광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초에 60몇 번인가 50몇 회인가 계속 오고 있는데, 지금 계속 켜져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사실은 우리 생명, 우리 육신,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後蘊相續起다. 그랬습니다.]
後蘊相續起(후온상속기)하나니, 뒤의 온이 서로 이어 일어나나니[後蘊= 뒤에 오는 오온도 상속해서 계속해서 일어난다. 우리 육신도 형광등하고 똑 같다니까요. 유명한 철인의 말에 “같은 물에 두 번 다시 목욕할 수 없다.”]
[촛불이나 형광등이 1초에 50번 깜빡거림에서 앞에 깜빡거리는 것은 因前五蘊이고, 뒤에 깜빡거리는 것은 後오온입니다. 우리 육신도 똑 같고, 우리 마음이 이렇게 하나로 덩어리 채 지속되는 것 같지만 1찰나에 900생멸한다.
한 찰나는 120분의 1초이고, 그 1찰나에 900번 생멸하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빠른 순간에 생멸하면서 우리 의식이 지속되는,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於此에 性了知(어차성요지)하면, 이러한 성품을 알면 [性= 법성을 알 것 같으면]
見佛難思議(견불난사의)로다. 부사의한 부처님을 뵈리라.
④ 譬喩
譬如暗中寶를 無燈不可見인달하야 佛法無人說이면 雖慧莫能了로다
亦如目有瞖에 不見淨妙色인달하야 如是不淨心이면 不見諸佛法이로다
又如明淨日을 瞽者莫能見인달하야 無有智慧心이면 終不見諸佛이로다
若能除眼瞖하고 捨離於色想하야 不見於諸法이면 則得見如來로다
譬如暗中寶(비여암중보)를, 마치 어둠 속의 보배를 無燈不可見(무등불가견)인달하야, 등불 없이는 볼 수 없듯이
[금은보화가 흙덩어리ㆍ돌덩어리와 섞여 있는 것을 햇빛이나 등불이 없으면 가히 볼 수가 없다.]
佛法無人說(불법무인설)이면, 부처님 법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雖慧莫能了(수혜막능요)로다. 지혜가 있다해도 알 수 없으리라.
[아무리 스스로 지혜가 있다하더라도 그 불법을 설명해주는 사람, 화엄경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르는 겁니다. 화엄경 자체가 불법을 설명해주는 사람이고 또 경을 보고 심취해서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불법을 보는 것입니다.
큰 창고에 금은보화가 쇳덩어리ㆍ돌덩어리와 섞여있는데 빛이 없으면 가려서 가져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亦如目有瞖(역여목유예)에, 또 눈에 눈병이 생기면
不見淨妙色(불견정묘색)인달하야,청정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보지 못하듯이
如是不淨心(여시부정심)이면, 그렇게 마음도 깨끗하지 못하면
不見諸佛法(불견제불법)이로다. 모든 부처님 법을 보지 못하리라.
[눈이 없으면 아름다운 산천초목 못 보듯이, 청정한 마음이 없으면 이 불법ㆍ아무리 위대한 화엄경이라 하더라도 그 맛 못 느낍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ㆍ불교계가 시끄럽든 그것은 불교 아니니까 그런 데에 관심가질 것 없습니다.
종단 돌아가는 그것이 불교입니까? 전혀 불교 아닙니다. 불교하고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이러한 보물을 만나서 그저 보물에 도취해서 사는 것이 불교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더욱 바람직하고요.]
又如明淨日(우여명정일)을, 또 밝고 깨끗한 해를 瞽者莫能見(고자막능견)인달하야, 소경은 볼 수 없듯이
無有智慧心(무유지혜심)이면, 지혜의 마음이 없으면
終不見諸佛(종불견제불)이로다. 모든 부처님을 끝내 보지 못하리라.
若能除眼瞖(약능제안예)하고, 만약 눈병을 없애고
捨離於色想(사리어색상)하야, 색이란 관념을 버리며 [色想= 사물에 대한 생각]
不見於諸法(불견어제법)이면, 법을 보지 않을 수 있다면
則得見如來(즉득견여래)로다. 곧 여래를 보게 되리라.
[금강경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본다.= 卽見如來.
不見於諸法= 모든 법을 보지 아니할 것 같으면 則得見如來= 여래를 곧 본다.
글자 몇 자만 바꿔놨지 금강경의 이치 그대로입니다.
그래 현실의 모습에 마음을 안 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빼앗기고 살 것도 아닙니다. 깨진 컵이라고 생각하고 사용 하는 겁니다. 애지중지, 잘 닦고 잘 모셔놓되 항상 깨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참 어려운 주문입니다....]
⑤推德一切慧 덕을 일체혜 보살에게 미루다.
一切慧先說 諸佛菩提法일새 我從於彼聞하고 得見盧舍那로다
一切慧가 先說(일체혜선설), 일체혜보살이 앞서 諸佛菩提法(제불보리법)일새, 부처님들의 보리법을 잘 설하니
我從於彼聞(아종어피문)하고, 나는 그에게서 듣고 得見盧舍那(득견로사나)로다. 노사나불을 뵈었노라.
[盧舍那 부처님= 법신부처님을 보게 됐다.= 부처님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게 되었다.]
(4) 北方의 功德慧菩薩
爾時에 功德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
그때 공덕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공덕혜보살; 이 지위는 정진바라밀을 닦아서 부지런한 행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고 널리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많은 공덕을 초래하는데, 이로써 명칭을 세운 것이다.
*세계의 명칭을 설명하면, 優鉢羅華라 이름붙인 것은 한역하면 靑蓮華인데, 이것은 온갖 색깔의 연꽃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온갖 행 속에서 정진이 가장 뛰어나서 이 꽃으로 거주하는 바의 法體를 삼기 때문에 일체의 만행이 이로써 공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불과의 명호를 설명하면, 명호가 風月인 것은 정진 바라밀이 我慢을 여의고 게으름이 없어서 일념에 성불하는 것이 바람처럼 빠름을 밝힌 것이며, 또한 부지런한 정진으로 觀照하니 선정과 지혜가 바람 같아서 능히 더럽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한 무명 번뇌를 녹일 수 있기 때문에 향기와 냄새를 다 바람처럼 불어서 능히 청정케 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도래한 방위를 설명하면, 이는 북방의 대중이다. 북방이란 것은 坎位이며, 黑이며, 어리석음이며, 세간의 험한 도적이란 뜻이며, 또 스승이 되고 임금이 되는 지위이다. 이 때문에 정진바라밀로 부지런히 이익의 행을 닦아서 미혹을 타파하고 어둠을 벗어나 조속히 성불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의 호칭이 공덕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청련화이며, 불과의 명호가 풍월인 것이니, 이는 바람이 능히 온갖 더러움을 정화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生貴住 중의 대치 법문인데, 이것은 선재동자의 네 번째 선지식인 彌伽장자가 輪子 법문을 설해 俗諦法을 요달함으로써 어둡고 캄캄한 자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난 즐거움을 얻게 하는 데 해당한다.]]
①凡夫妄取 범부가 망령되게 함부로 취한다.
諸法無眞實이어늘 妄取眞實相일새 是故諸凡夫가 輪廻生死獄이로다
言詞所說法을 小智妄分別일새 是故生障礙하야 不了於自心이로다
不能了自心이어니 云何知正道리오 彼由顚倒慧하야 增長一切惡이로다
不見諸法空하야 恒受生死苦하나니 斯人未能有 淸淨法眼故로다
諸法無眞實(제법무진실)이어늘, 모든 법에는 진실함이 없는데
제법=모든 존재=모든 사건은 진실이 없다. 진실은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니, 제법은 허망하고 무상한 가상이다
妄取眞實相(망취진실상)일새. 망령되이 진실한 모양으로 보니
是故諸凡夫(시고제범부)가, 그렇기에 범부들이 輪廻生死獄(윤회생사옥)이로다. 생사의 감옥에서 윤회하는 것이며,
言詞所說法(언사소설법)을, 말로 표현된 법을 小智妄分別(소지망분별)일새. 작은 지혜로 망령되이 분별하니
是故生障碍(시고생장애)하야, 그 까닭에 장애가 생겨
不了於自心(불요어자심)이로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느니라.
不能了自心(불능요자심)이어니, 자기 마음을 알 수 없는데 云何知正道(운하지정도)리오? 어찌 바른 도를 알리오
彼由顚倒慧(피유전도혜)하야, 그 전도된 지혜로 말미암아 增長一切惡(증장일체악)이로다. 온갖 악이 늘어나는 것이로다.
[능히 自心을 요달 하지 못했거니, 어떻게 正道를 알겠는가?
顚倒慧 전도의 지혜, 요는 지혜가 거꾸로 전도되었기 때문에 자꾸 안 좋은 방향으로 일체 악을 증장시키는 겁니다.]
[어리석음이 쌓이고 쌓여서 일체 악한 일까지도 증장시킨다.]
不見諸法空(불견제법공)하야, 모든 법이 공한 것을 보지 못하고
恒受生死苦(항수생사고)하나니, 항상 생사의 고통을 받으니
[제법이 공한 줄을 제대로 봤으면, 그 컵이 몇 억 하는 고려청자가 됐든, 이조백자가 됐든 아무관심 없을 것이다. 그렇게 관심 없다면 무슨 고통이나 번민이 있을 턱이 없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恒受生死苦 생사의 고통을 항상 받는다.]
斯人未能有(사인미능유) 이 사람은 아직 淸淨法眼故(청정법안고)로다. 청정한 법안이 없기 때문이니라.
② 眞見眞法
我昔受衆苦는 由我不見佛이니 故當淨法眼하야 觀其所應見이로다
若得見於佛이면 其心無所取니 此人則能見 如佛所知法이로다
若見佛眞法이면 則名大智者니 斯人有淨眼하야 能觀察世間이로다
無見卽是見이라 能見一切法이니 於法若有見이면 此則無所見이로다
我昔受衆苦(아석수중고)는, 내가 옛적에 온갖 고통을 받은 것은
由我不見佛(유아불견불)이니, 내가 부처를 보지 못한 까닭이니
故當淨法眼(고당정법안)하야, 마땅히 법안을 청정히 하여 觀其所應見(관기소응견)이로다. 그 보아야 할 것을 보리라.
[이것은 실상을 관하라. 모든 존재의 실상을 봐야 된다는 뜻입니다]
若得見於佛(약득견어불)이면, 만약 부처님을 뵙고도
其心無所取(기심무소취)니, 그 마음에 취하는 바가 없다면
此人은 則能見(차인즉능견) 如佛所知法(여불소지법)이로다. 이 사람은 곧 부처님이 아신 바와 같은 법을 보리라.
[마음에 취하는 바가 없으면존재의 실상을 그대로 본다.]
若見佛眞法(약견불진법)이면, 만약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본다면
則名大智者(즉명대지자)니, 곧 대지자라 할 것이며
斯人有淨眼(사인유정안)하야, 이 사람은 청정한 안목이 있어
能觀察世間(능관찰세간)이로다. 세간을 관찰할 수 있으리라.
[그 마음에 취할 바가 없어 부처님의 참다운 법을 만약 본다면, 곧 이름이 큰 지혜 있는 사람으로, 이 사람은 청정한 눈이 있어서 능히 세간을 관찰한다.= 세간의 실상을 관찰한다. 고려백자가 ‘본래 깨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한다.]
無見卽是見(무견즉시견)이라. 무견이 곧 견이라 能見一切法(능견일체법)이니, 일체 법을 볼 수 있는 것이요
[봄이 없는 것이 곧 보면 일체 법을 제대로 보는 것이니]
於法若有見(어법약유견)이면, 만약 법을 보았다면
此則無所見(차즉무소견)이로다. 그것은 곧 본 바가 없는 것이로다. [無所見= 보는 바가 없는 것이로다.]
③自覺覺他 자기 자신이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해서 覺行圓滿(각행원만)覺=깨달음의 행이 원만한.→불교 수행의 결정
一切諸法性이 無生亦無滅이니 奇哉大導師여 自覺能覺他로다
一切諸法性(일체제법성)이 일체 법의 성품이 無生亦無滅(무생역무멸)이니, 생겨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奇哉大導師(기재대도사)여, 기이하십니다, 대도사시여
自覺能覺他(자각능각타)로다.스스로 깨달으시고 남도 깨닫게 하시다니.
[스스로 그러한 이치를 깨닫고 우리들까지 이렇게 깨닫게 해주는구나.]
④ 推德勝慧菩薩
勝慧先已說 如來所悟法일새 我等從彼聞하고 能知佛眞性이로다
勝慧先已說(승혜선이설), 승혜보살이 이미 앞서 如來所悟法(여래소오법)일새. 여래가 깨달으신 법 설하니
我等從彼聞(아등종피문)하고, 우리는 그에게서 듣고
能知佛眞性(능지불진성)이로다. 부처님의 진실하신 성품 알았노라.
[우리들은 그 분 승혜 보살부터 듣고 능히 佛眞性= 모든 존재의 참다운 성품을 본다.]
(5)東北方의精進慧菩薩
爾時에 精進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觀察十方하 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정진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정진혜라 이름붙인 것은 이 지위가 具足方便住로서 방편의 定門을 부지런히 닦고 익힘으로써 깊은 지혜를 드러내기 때문에 이로써 명칭을 세운 것이다. 또 하나의 행 속에 한량없는 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定位에서 정진의 명칭을 일으키고 정진 위에서 공덕의 명칭을 일으킴으로써 온갖 행이 사무쳐 작용하여 하나의 행이 한량 없는 행을 갖추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 세계의 명칭이 金剛華인 것은 法性을 禪의 體로 삼아 묘한 슬기를 일으켜 正과 邪를 가려내서 파괴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로 금강의 뜻이다. 華란 것은 행이니, 선정과 지혜의 능히 가려내는 묘용을 밝힌 것이다.
*불과의 명칭이 水月인 것은 선정의 體가 능히 청정하고, 청량하며 능히 萬象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물과 같기 때문이다.
*도래한 방위를 설명하면, 이는 동북방의 대중이다. 동북이란 것은 간위(艮位)로서 산이 되고 돌이 되고 문궐(門闕)이 되고 童蒙이 되고 初明이 되고 高顯:높게 드러남이 되고 寂靜이 되고 止가 되니, 이로써 선정의 體가 두루 모든 지위와 모든 행을 수행해 나가는 啓蒙과 더불어 미혹의 熱惱를 청량케 하는 닦아 나감의 始終과 本末을 발명케 함을 밝힌 것이다. 간(艮)이 한 해의 시작과 끝의 본말이 되기 때문에 初明이 되고 止가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정진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금강화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수월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다섯 번째 선지식인 解脫장자가 禪門을 주재해서 그 몸 속에 십불찰미진수의 불국토가 모두 몸 속에 있고, 시방으로 각각 십불찰미진수의 불국노가 모두 몸 속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禪의 體로써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①無相觀 본래 형상이 없음을 관하는
1若住於分別이면 則壞淸淨眼이라 愚癡邪見增하야 永不見諸佛이로다
2若能了邪法하야 如實不顚倒하며 知妄本自眞하면 見佛則淸淨이로다
3有見則爲垢라 此則未爲見이니 遠離於諸見하야사 如是乃見佛이로다
若住於分別(약주어분별)이면, 만약 분별에 머문다면 則壞淸淨眼(즉괴청정안)이라. 청정 안목이 무너지고
[청정한 눈= 쉽게 모든 존재의 공성을 보는 안목 또는 존재의 실상을 보는 눈]
愚癡邪見增(우치사견증)하야, 어리석고 삿된 소견만 더하여
永不見諸佛(영불견제불)이로다. 영원히 부처님을 보지 못할 것이요
[부처님의 진실은 제법 공상에 있다. “性空卽是佛(성공즉시불) 모든 존재의 空性 그것이 부처다. 소승경전이나 일반적인 불교에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존재의 空性이 부처다= 離一切相이 卽名諸佛(이일체상즉명제불)이다. 일체 상 떠난 것= 空性]
若能了邪法(약능요사법)하야, 삿된 법을 전도되지 않고 →만약 능히 삿된 법을 요달= 깨달아서
如實不顚倒(여실불전도)하며, 여실히 알아낼 수 있다면 → 여실히 전도하지 아니하면
知妄本自眞(지망본자진)하면, 망상이 본래 스스로의 진실임을 알아서→망의 근본을 알아서 스스로 진실하면,
見佛則淸淨(견불즉청정)이로다. 부처님 보는 것이 곧 청정해지리라.
[“부처님” 하니까 또 자꾸 우리가 그동안 상식적으로 이해해 오던 그 부처님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세계하고 전혀 다른 空性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有見則爲垢(유견즉위구)라. 견이 있다는 것은 곧 때[垢]가 되어
此則未爲見(차즉미위견)이니, 이는 곧 본 것이 되지 못하나니
遠離於諸見(원리어제견)하야사, 모든 견에서 멀리 떠나야
如是乃見佛(여시내견불)이로다. 마침내 부처를 보리라.
[컵을 컵만으로 보지, 깨진 것으로 못 보는 이와 같은 모든 견해를 遠離하여야 부처를 보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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