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法執

諸取着凡夫가 計身爲實有하나니 如來非所取라 彼終不得見이로다

此人無慧眼하야 不能得見佛일새 於無量劫中에 流轉生死海로다

有諍說生死요 無諍卽涅槃이니 生死及涅槃을 二俱不可得이로다

若逐假名字하야 取着此二法하면 此人不如實이라 不知聖妙道로다

若生如是想호대 此佛此最勝이라하면 顚倒非實義라 不能見正覺이로다

 

諸取着凡夫(제취착범부)취하고 집착하는 범부들은

計身爲實有(계신위실유)하나니, 몸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모든 取着취해서 집착하는 범부들이 몸이 실로 있음을 계교하니, 컵이 본래 깨진 것으로 알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있는 것이어서 탈나도 안 되고, 무너져도 안 되고, 딴 사람한테 무시를 당해도 안 되는 존재라고 집착하고 계산하고 있나니,]

如來非所取(여래비소취)여래는 취할 바가 아니라서   

彼終不得見(피종부득견)이로다. 그가 끝내 보지 못할 것이요

[본래 무아상ㆍ무인상ㆍ무중생상입니다. 없기 때문에 부처님은 없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사실은 꿰뚫어보면 없는데 우리 중생들은 어리석어서 허망하게 환영ㆍ영상환영을 가지고 그것을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지요.] 

 

此人無慧眼(차인무혜안)하야,  사람은 지혜의 안목이 없으니  

不能得見佛(불능득견불)일새. 부처님을 없어서 於無量劫中(어무량겁중)한량없는 동안

流轉生死海(유전생사해)로다생사의 바다에 흘러 것이니라.→ 능히 깨달음의 경지깨어있는 눈이 되지 못한다.

 

有諍說生死(유쟁설생사), 다툼이 있어 생사 말하고  

[諍= 갈등, 다툼ㆍ갈등, 너ㆍ나, 있다ㆍ없다는 상대적인 관계가 있으면 생사를 말하게 되고,]

無諍卽涅槃(무쟁즉열반)이니, 다툼이 없으면 열반일 터인데

[그래서 법성게에서 生死涅槃相共和(생사열반상공화) 생사와 열반이 서로 함께하고 있는 하나다. 共和= 한 덩어리입니다.]

生死及涅槃(생사급열반)생사와 열반은 二俱不可得(이구불가득)이로다하나도 얻을 없는 것이라 

[둘 다 가히 얻을 수 없더라.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라야 얻을 수 있는데우리 중생은 따로따로 있는 것으로까지 밖에 못 보니까 거기에 갈등하고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若逐假名字(약축가명자)하야, 만약 거짓 이름을 따라서 

取着此二法(취착차이법)하면, 법을 취하여 집착하면 → 생사와 열반 두 가지를 취해서 집착하면

此人不如實(차인불여실)이라. 사람은 실답지 못하여 [진실치 못해서]

不知聖妙道(부지성묘도)로다. 성인의 오묘한 도를 알지 못할 것이요 

[화엄경은성스럽고 미묘한 도= 聖妙道를 일깨워주는 가르침입니다.]

 

若生如是想(약생여시상)호대, 만약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 

此佛此最勝(차불차최승)이라하면이것이 부처다 이것이 가장 수승하다 한다면 [잘못된, 전도된 견해}

顚倒非實義(전도비실의)전도되어 뜻이 아니기에  

不能見正覺(불능견정각)이로다. 정각 없으리라.[바른 깨달음 = 제대로 아는 것이 못된다.]

無諍이면, 너니ㆍ나니, 그런 갈등이 없으면 그대로 涅槃입니다. 

 

①     開悟

能知此實體의 寂滅眞如相하면 則見正覺尊이 超出語言道로다

言語說諸法이면 不能顯實相이요 平等乃能見이니 如法佛亦然이로다

正覺過去世와 未來及現在하사 永斷分別根이실새 是故說名佛이로다

 

能知此實體(능지차실체), 능히 실체  寂滅眞如相(적멸진여상)하면, 적멸한 진여의 모습을 있다면 

則見正覺尊(즉견정각존)  정각존  超出語言道(초출어언도)로다. 언어의 길을 뛰어 넘었음을 보리라.

[寂滅眞如相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곧 존재의 실체를 아는 것이고, 존재의 실체를 안다고 하는 것은, 寂滅한 모습을 아는 것이고, 寂滅한 모습이야 말로  “진여= 실체= 寂滅상이다.”

則見正覺尊바르게 깨달은 분. 부처님은 언어의 길을 뛰어넘어= 초출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부처님과 소견이 똑 같아지는 것입니다. ]

 

言語說諸法(언어설제법)이면, 언어로 모든 법을 설하여 不能顯實相(불능현실상)이요. 실상을 드러낼 없고 

[語說 = 언어로, 언어로써 諸法을 설할 것 같으면 존재의 실상을 드러내지 못한다. 말만 쫓아가다보면 말 넘어, 불교에는  “낙처도 모르고 저 말만 쫓아간다.”  우리가 사석에서 그런 소리 참 잘하지요? 우리가 이야기하다가 딸릴만하면  “저 말만 쫓아간다. 낙처= 말이 떨어지는 곳, 말의 의미가 떨어지는 곳, 돌아가는 곳을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平等乃能見(평등내능견)이니, 평등해야만 이내 있는 것이니

如法佛亦然(여법불역연)이로다. 그러한 대로 부처님도 그렇게 

 

正覺過去世(정각과거세),  과거, 미래와 未來及現在(미래급현재)하사,

永斷分別根(영단분별근)이실새. 현재의 세상을 正覺= 바로 깨달아 

是故 說名佛(시고설명불)이로다. 분별의 뿌리를 영원히 끊으셨기에 이름을 부처라 하는 것이니라

 

(8)西北方의 眞實慧菩薩

爾時에 眞實慧菩薩이 承佛威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그때 진실혜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보살의 명칭 설명하면, 8 童眞住 중에서 願바라밀을 행하여 진실한 지혜로 중생을 그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명칭 설명하면, 세계의 명칭이 阿盧那華로서 한역하면 紅蓮華인데, 꽃이 빨갛고 것이 분명해서 紅色인 것이다. 지위가 8住의 智增位가 되니, 대지혜로 願을 따라 자비를 행하여 지혜와 자비를 원만케 하는 것이 홍련화의 빨갛고 것의 분명함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것은 지혜를 나타내고 빨간 것은 자비를 나타내기 때문에 세계의 명칭이 홍련화이니, 참된 지혜를 따라 생사에 처하면서도 오염이 없는 것이 마치 연꽃이 물에 처할 빨갛고 것이 활짝 피어서 만한 것과 같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星宿月임을 설명하면, 지위의 지혜가 뚜렷해서 근기를 알아 차별을 요달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성수월이 되는 것이니, 중생의 차별적인 근성을 요달함이 분명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도래한 방위라는 것은 서북방이다. 이는 () 되고, 아버지가 되고, 堅剛:굳세고 튼튼함이 되고, 天이 되고, 원만한 순백의 청정함이 되니, 능히 온갖 색깔을 나타내서 속에 처하는 것이다. 때문에 보살의 명칭이 진실혜이며, 세계의 명칭이 홍련화이며, 부처님의 명호가 성수월인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대지혜가 원만히 밝아 능히 중생의 근기 차별을 나타내는 것이 天이 像을 나타내자 사물이 분명한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이는 선재동자의 8 선지식인 仙人 毘目瞿沙인데 한역하면 出聲可畏으로, 참된 지혜가 원만히 밝아서 온갖 邪가 두려워 함을 밝힌 것이다. 仙人이란 것은 지위에서 지혜가 증가하면서 오염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지혜를 얻어 邪見과 함께 함을 나타낸 것이다.]]

 

饒益衆生

寧受地獄苦하야 得聞諸佛名이언정 不受無量樂하야 而不聞佛名이로다

所以於往昔에 無數劫受苦하야 流轉生死中은 不聞佛名故로다

 

寧受地獄苦(영수지옥고)하야, 차라리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得聞諸佛名(득문제불명)이언정, 부처님들의 명호를 들을지언정  

不受無量樂(불수무량락)하야, 한량없는 낙을 누리면서 [한량없는 즐거움을 不受= 받지 아니해서]

而不聞佛名(이불문불명)이로다부처님 명호 듣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이것은 '차라리 고통 속에 있으면서 부처의 이름을 듣는 것이 낫다.' 이런 뜻을 역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所以於往昔(소이어왕석), 왜냐하면 지난 옛적에 無數劫受苦(무수겁수고)하야, 무수한 동안 고통받으며

流轉生死中(유전생사중)생사 속에서 흘러 것이

不聞佛名故(불문불명고)로다. 부처님 명호를 듣지 못한 탓이기 때문이로다.

 

①了妄證眞  妄을 깨달아서 眞=진리를 증득한다.

於法不顚倒하고 如實而現證하야 離諸和合相하면 是名無上覺이로다

現在非和合이며 去來亦復然하니 一切法無相이 是則佛眞體로다

若能如是觀 諸法甚深義하면 則見一切佛의 法身眞實相이로다

 

於法不顚倒(어법부전도)하고, 법에 전도되지 않고 如實而現證(여실이현증)하야여실히 그대로 증득하여

離諸和合相(이제화합상)하면, 모든 화합상 여의면 

是名無上覺(시명무상각)이로다. 이를 무상각이라 하리라.

 

現在非和合(현재비화합)이며, 현재가 화합상이 아니고

去來亦復然(거래역부연)하니과거와 미래도 또한 그러하며 

一切法 無相(일체법무상)일체법에 모양=형상이 없으면 

是則佛眞體(시즉불진체)로다. 이것이  부처의 참된 체성이리니  

 

若能如是觀(약능여시관) 만약 이와 같이  諸法甚深義(제법심심의)하면, 모든 법의 심오한 뜻을 관찰한다면 

則見一切佛(즉견일체불) 모든 부처님 법

法身眞實相(법신진실상)이로다진실함 모습을 보게 되리라.

 

②     正見名佛  바로 보아야 부처라고 이름 한다.

於實見眞實하고 非實見不實하야 如是究竟解일새 是故名爲佛이로다

 

於實에 見眞實(어실견진실)하고, 진실에서 진실을 보고 

非實에 見不實(비실견부실)하야, 진실이 아닌 데서 진실 아님을 보며

如是究竟解(여시구경해)일새. 이와 같이 구경하여 이해하니 

是故名爲佛(시고명위불)이로다. 까닭에 부처라 하느니라.

 

4 非覺名覺  覺이 아닌것의 이름이 覺이다

佛法不可覺이라 了此名覺法이니 諸佛如是修일새 一法不可得이로다

知以一故衆이며 知以衆故一이니 諸法無所依하야 但從和合起로다

無能作所作이라 唯從業想生이니 云何知如是오 異此無有故로다

一切法無住라 定處不可得이니 諸佛住於此하사 究竟不動搖로다

 

佛法 不可覺(불법불가각)이라. 불법은 깨달을  있는 것이 아니요

了此名覺法(요차명각법)이니, 그것을  것을 법을 깨달았다 하나니 

諸佛如是修(제불여시수)일새. 부처님들도 이와 같이 닦으셨기에 

一法不可得(일법불가득)이로다.  법도 가히 얻지 못하시니라

 

知以一故衆(지이일고중)이며, 하나의 연고로 여럿을 알고 

知以衆故一이니, 여러 연고로 하나를 아나니 [많은 것을 아는 까닭으로 하나를 안다]

諸法無所依(제법무소의)하야, 모든 법은 의지한 없이

但從和合起(단종화합기)로다.  다만 화합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로다.

 

無能作 所作(무능작소작)이라. 짓는 주체도 지어진 객체도 없고 [能作 所作도 없다.]

唯從業想生(유종업상생)이니, 오직 업이라는 관념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能作所作= 주관과 객관.

내 마음이 저 산천을 만들었는가? 아니, 산천이 있어서 내 마음이 그것을 이해하는가? 불교에서 흔히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 해가지고, 저 산천도 내 마음이 만들었다. 하는 그것이 能作 所作입니다.

능히 짓는 것과 지어질 바. 그것은 결국은 오직 業生= 업이라고 하는 생각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云何知如是(운하지여시)?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異此無有故(이차무유고)로다. 이것과 달리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오직 우리 업= 업상에 의해서 생긴 것과 같은 사실을 아는가?

이것과 저것!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고 하는데 말만으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다.” 하면 이해가 안 되니까 지적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되거든요.  “내가 있음으로 여러분이 있고, 여러분이 있음으로 내가 있다.ㆍ여러분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여러분이 없다.” 부처님은 이렇게 지적하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연기법의 원리. 此有故 彼有(차유고피유)하고, 彼有故 此有.

부처님은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책이 있으므로 책뚜껑이 있고, 책뚜껑이 있으므로 책이 있다.”

그 能作所作.  “이것이 없음이다.”  여기서는 그렇게 말합니다. 

異此 가 다른 것과 이것이, 저것과 이것이 無有故로고, 있음이 없는 없는 까닭이다.]

 

一切法無住(일체법무주)일체법은 머물지도 않고

[일체 법은 머묾이 없음이라. 정해진 곳이 없는 無有定法(무유정법)입니다.

금강경 최고의 구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有定法 如來假說이 여기의 定處不可得입니다.]

定處不可得(정처불가득)이니정해진 곳도 없는데 

諸佛住於此(제불주어차)하사부처님들은 거기에 머무사

究竟 不動搖(구경부동요)로다. 구경하여 동요치 않으시도다.  [究竟에 동요함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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