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 往生品 第四之下 卷四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4. 왕생품(往生品)을 풀이함③ 4
問曰:眼爲見相,云何說“聞”?
묻나니, 눈은 보는 것은 견상(見相)모양인데 어찌하여 듣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衆生智慧,從六情生,知六塵。人謂佛有所不聞,如外經書中言或有所不聞;是故佛智慧無所不聞。又耳識因緣生智慧,智慧所知,言“無法不聞”。
답하나니, 중생의 지혜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정(六情)에서 생기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을 알 뿐이나,
사람들은 “부처님도 듣지 못하는 바가 있으니, 마치 외경서(外經書) 안에서 혹 듣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고 말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로는 듣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이식(耳識)의 인연으로 지혜를 내고, 그 지혜로써 알기 때문에 “법마다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問曰:“何以故三識所知合爲一,三識所知別爲三 眼名爲見,耳名爲聞,意知名爲識,鼻、舌、身識名爲覺?
묻나니, 무엇 때문에 안식(眼識) 이식(耳識) 의식(意識)의 삼식(三識)으로 아는 바 모두를 합하여 하나로 하는 것이며?
삼식(三識)으로 아는 바를 는 셋으로 구별하면, 눈은 본다 하고, 귀는 듣는다 하며, 뜻으로 아는 것은 식별(識別)한다고 하면서 코ㆍ혀ㆍ몸의 비설신(鼻舌身)으로 아는 것은 아는 각(覺)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是三識助道法多,是故別說;餘三識不爾,是故合說。是三識但知世閒事,是故合爲一;餘三亦知世閒,亦知出世閒,是故別說。
답하나니, 이 안식(眼識) 이식(耳識) 의식(意識)의 삼식(三識)은 도(道)을 돕는 특성의 조도법(助道法)이 많으므로 구별하여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합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의 식은 단지 세간의 일만을 알기 때문에 합하여 하나로 말하는 것이고,
안식(眼識) 이식(耳識) 의식(意識)의 삼식(三識)은 세간도 알고 출세간(出世間)도 알기 때문에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이며,
復次,是三識但緣無記法;餘三識或緣善,或緣不善,或緣無記。
또한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삼식(三識)은 단지 분별이 없는 무기(無記)의 법만을 반연하지만
그 밖의 안식(眼識) 이식(耳識) 의식(意識)의 삼식(三識)은 선(善)을 반연하기도 하고, 혹은 불선(不善)을 반연하기도 하고, 혹은 무기를 반연하기도 하며,
의식현상의 세 가지 양상 가운데, 인간의식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을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의 3성(性)으로 구분하는데, 이 중 무기는 선악의 분별이 없는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선과 악, 흑백 등의 상태가 분명한 것을 유기(有記)라고 하는데, 선·악이라고 분명히 규정지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기라고 한다. 따라서 유기의 선과 악에는 좋은 과보와 나쁜 과보가 따르지만, 무기에 대해서는 어떤 과보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까닭은 무기의 업(業)에 대해서는 자성(自性)에 기록할 것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무기는 덮어 가릴 수 있는 유부무기(有覆無記)와 덮어 가릴 수 없는 무부무기(無覆無記)로 크게 나뉜다. 유부무기는 번뇌에 오염되어 능히 수행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고, 무부무기는 수행 자체에는 방해를 주지 않는 무기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유부무기를 제거해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 다움
復次,是三識能生三乘因緣,如眼見佛及佛弟子,耳聞法,心籌量、正憶念。如是等種種差別,以是故,六識所知事分爲四分。
또한 안식(眼識) 이식(耳識) 의식(意識)의 삼식(三識)은 능히 승(三乘)의 인연을 내게 되나니,
눈으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보고, 귀로는 법을 들으며, 마음으로는 헤아리면서 바르게 기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차별한 때문에 육식(六識)으로 아는 바를,
믿음의 신분(信分), 바른 이해의 해분(解分), 선업(善業)을 짓는 행분(行分), 열반을 밝히는 증분(證分)의 네 가지로 분별하는 것이다.
一切種智者,如人眼見近不見遠,見內不見外,見麤不見細,見東不見西,見此不見彼,見和合不見散,見生時不見滅。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하는 것이란, 사람의 눈은 가까운 것은 볼 수 있으나 먼 것은 보지 못하고, 안은 볼 수 있으나 바깥은 보지 못하며, 거친 것은 볼 수 있으나 미세한 것은 보지 못하고,
동쪽을 볻다면 서쪽은 보지 못하며, 이것을 본다면 저것은 보지 못하고, 화합한 것은 볼 수 있으나 흩어진 것은 보지 못하며, 생길 때는 볼 수 있으나 소멸한 후는 보지 못하며,
육조 혜능(慧能) 대사는 <금강경오가해>에서 모든 사람에게 오안(五眼)이 있지만 어리석음에 덮여 스스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오안이 밝아 생각 생각에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①육안(肉眼) :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것.
②천안(天眼) :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연민심)을 일으키는 것.
③혜안(慧眼) :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
④법안(法眼) :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⑤불안(佛眼) : 미세한 번뇌까지 영원히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
이에 대해 강거국(康居國) 출신 강승개(康僧鎧)가 번역한 <무량수경>에서는,
육안은 청정하고 철투철미하게 분석해 알 수 없고,
천안은 한량없이 한계가 없이 통달했고,
법안은 구경에 모든 도를 관찰한 것이고,
혜안은 진리를 봐서 열반에 이른 것이고,
불안은 원만구족하게 진리의 본질을 깨달아 마친 것이라고 했다. - 아미산
肉眼見,天眼不見:眼根成就,未離欲凡夫人故無天眼。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있으나 천안(天眼)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안근(眼根)은 성취했으나,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범부이기 때문에 천안이 없기 때문이며,
天眼見,慧眼不見:凡夫人得天眼神通故無慧眼。
천안(天眼)으로는 볼 수 있으나 혜안(慧眼)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범부인(凡夫人)이 천안의 신통을 얻었으나 혜안이 없기 때문이며,
慧眼見,法眼不見:未離欲聲聞聖人,不知種種度衆生道故無法眼。
혜안(慧眼)으로 볼 수 있으나 법안(法眼)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성문(聲聞)의 성인이 갖가지로 중생을 제도하는 도(道)를 모르는 탓에 법안이 없기 때문이며,
法眼見,佛眼不見:菩薩得道種智,知種種度衆生道,未成佛故無佛眼。
법안(法眼)으로는 보면서도 불안(佛眼)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보살이 일체의 실천을 배워 중생을 구하는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를 얻어서 갖가지로 중생을 제도하는 도를 알지만, 아직 성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佛眼)이 없는 때문이며,
復次,肉眼、天眼見,慧眼、法眼、佛眼不見:凡夫人眼根成就,得天眼神通故,無慧眼、法眼、佛眼。
또한 육안과 천안으로는 보면서도 혜안과 법안과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범부인의 안근이 성취되어서 천안의 신통만을 얻었으나, 혜안(慧眼)과 법안(法眼)과 불안(佛眼)이 없기 때문이며,
肉眼、慧眼見,法眼、佛眼不見:眼根成就聲聞聖人;不知種種度衆生道故無法眼,聲聞人故無佛眼。
육안과 혜안으로는 보면서도 법안과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성문의 성인이 안근이 성취되었으나, 갖가지로 중생을 제도하는 도(道)를 모르는 탓에 법안(法眼)이 없는 성문인(聲聞人)이며, 이 때문에 불안(佛眼)이 없는 것이며,
肉眼、法眼見,佛眼不見:初得無生忍、未受法性生身菩薩,得道種智;未成佛故無佛眼。
육안과 법안으로는 보면서도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처음으로 무생인(無生忍, 무생법)을 얻었으나 아직 법성생신(法性生身)을 받지 못한 보살이 일체의 실천을 배워 중생을 구하는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는 얻었지만, 아직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오종법신
법성생신(法性生身). 법신은 만유의 본체인 진여 법성에서 난 몸
공덕법신(功德法身). 법신은 여러 공덕을 이루는 것이란 뜻
변화법신(變化法身). 법신은 시기에 응하여 변현한다는 뜻
실상법신(實相法身). 법신은 허망함을 여의어 진여(眞如) 자체이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란 뜻.
허공법신(虛空法身). 법신은 허공에 가득하여 만유를 포함하였다는 뜻
여기서, 법성법신과 공덕법신은 보신, 변화법신과 실상법신은 응신, 허공법신은 법신에 해당한다.
법신(法身)이 곧 허공(虛空)이요 허공이 곧 법신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법신이 허공이라는 장소에 두루 퍼져있으며 허공 속에 법신이 품어져 있다고 말하니, 법신이 바로 허공이고 허공이 바로 법신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전심법요) - 위키
天眼、慧眼見,法眼、佛眼不見:離欲聲聞聖人得天眼神通,非菩薩故無道種智,無道種智故無法眼,聲聞人故無佛眼。
천안과 혜안으로는 보면서도 법안과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욕망을 여읜 성문의 성인이 천안의 신통을 얻었으나 보살이 아니기 때문에 일체의 실천을 배워서 중생을 구하는 지혜인 도종지(道種智)가 없으며,
도종지가 없기 때문에 법안이 없으며, 성문인이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天眼、法眼見,佛眼不見:得菩薩神通,知種種度衆生道;未成佛故無佛眼。
천안과 법안으로는 보면서도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보살의 신통을 얻어서 갖가지로 중생을 제도하는 도를 알지만, 아직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慧眼、法眼見,佛眼不見:菩薩得無生法忍,得無生法忍已,能觀一切衆生得道因緣,以種種道而度脫之;未成佛故無佛眼。
혜안과 법안으로는 보면서도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무생법인을 얻은 뒤에 능히 일체 중생의 도를 얻는 인연을 관찰하면서 갖가지의 도로써 그들을 제도하기는 하나, 아직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復次,肉眼、天眼、慧眼見,法眼、佛眼不見:眼根成就聲聞聖人得天眼神通;無道種智故無法眼,聲聞人故無佛眼。
또한 육안과 천안과 혜안으로는 보면서도 법안과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안근이 성취된 성문의 성인이 천안의 신통을 얻었으나, 도종지가 없기 때문에 법안이 없으며, 성문인이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天眼、慧眼、法眼見,佛眼不見:法性生身菩薩,具六神通,以種種道度衆生;未成佛故無佛眼。
천안과 혜안과 법안으로는 보면서도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보살이 육신통을 갖추고 갖가지의 도로써 중생을 제도하지만, 아직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며,
復次,肉眼、天眼、慧眼、法眼見,佛眼不見:初得無生法忍菩薩,未捨肉身,得菩薩神通,無生法忍、道種智具足;未成佛故無佛眼。
또 육안과 천안과 혜안과 법안으로는 보면서도 불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처음으로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아직 육신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보살의 신통과 무생법인을 얻어서 도종지는 두루 갖추었지만 아직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이 없는 까닭이라.
如是等,不名“無法不見聞覺識”。若以佛眼觀諸法,是名“無所不見,無所不聞,無所不覺,無所不識”。五塵隨義分別,亦如是。
이와 같은 등은 법마다 보거나 듣거나 깨닫거나 알지 못함이 없다는 무법불견문각식(無法不見聞覺識)이라 하지 않는 것으로, 만약 불안(佛眼)으로써 제법을 관찰한다면, 이야말로 보지 못하는 바가 없고 듣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깨닫지 못하는 바가 없고 식별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진(五塵)을 이치에 따르면서 분별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三乘等諸善法,是五眼因緣。諸善法皆六波羅蜜攝;是六波羅蜜,般若波羅蜜爲本。以是故說“般若波羅蜜能生五眼;菩薩漸漸學是五眼,不久當作佛”。
삼승(三乘) 등의 모든 선법(선善法)과 이 다섯 가지의 오안인연(五眼因緣)으로 된 선법은 모두가 육바라밀에 포섭되는 것이며,
이 육바라밀의 근본이 반야바라밀이니, 이러한 까닭에 반야바라밀은 능히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오안(五眼)을 낸다고 하는 것이다.
보살이 점차로 이 오안(五眼)을 배워 익히면 오래지 않아서 부처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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