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 往生品 第四之下 卷四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4. 왕생품(往生品)을 풀이함③ 2

 

問曰:何以說“得五根”?

묻나니, 무엇 때문에 신근(信根) 정진근(精進根) 염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의 오근(五根)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言:一切聖道名爲五根,五根成立故。八根雖皆是善,而三無漏根無有別異,以是故但說五根。取果時相應三昧,名“無閒三昧”;得是三昧已,得解脫智,以是解脫智斷三結,得果證。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일체 성인의 도를근이라 한다.”고 하나니, 오근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이며, 

팔근(八根)이 모두 선(善)이라 할지라도 미지당지근(未知當智根) 이지근(已知根) 구지근(具知根)의 삼무루근(三無漏根)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단지근(五根)만을 말한 것이다.

과위(果位)를 취할 때에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삼매를 무간삼매(無間三昧)라 하며,

 삼매를 얻고 나서 해탈지(解脫智)를 얻으며, 

 해탈지로써 유중견(有衆見, 유신삼결)ㆍ의결(疑結)ㆍ재계취(齋戒取, 계금취결)의 세 가지 번뇌인 삼결(三結)을 끊으면서 과증(果證)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삼무루근(三無漏根);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견도(見道)의 “공(空)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에 대해서 알지라도 신근(信根) 정진근(精進根) 염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에 대해 걸림 없고 막힘없이 명백하게 이해하지(根) 못하여 아직 열반(涅槃)이라는 과위를 터득하지 못한 것.
이지근(已智根)= 이미 “공(空)”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꿰뚫고 수도(修道)인 “인(因) 집(集) 생(生) 연(緣)”과 “멸(滅) 지(止) 묘(妙) 출(出)”에 대해서도 훤히 알아 열반에 대해 걸림 없고 막힘없이 명백하게 이해 한 것(根).
구지근(具知根)= 무학(無學)에 이를 수 있게 “도(道) 정(正) 행(行) 달(達)”을 두루 갖추어 무루지혜(無漏知慧)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해 걸림 없고 막힘없이 명백하게 이해 한 것(根) - 마하반야바라밀다경

 

“有衆見”者,於五受衆中,生我若我所。“疑”者,於三寶、四諦中不信。“齋戒取”者,九十六種外道法中,取是法,望得苦解脫。

유중견(有衆見, 유신삼결)이란수중(五受衆) 가운데서 나(我)와  것(我所)이라는 마음을 내는 것이며,

의(疑, 의결)란보(三寶)와제(四諦)를 믿지 않는 것이며, 

재계취(齋戒取, 계금취견)란 96종(種) 외도(外道)의  중에서 법을 취하여 괴로움에서 해탈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問曰:見諦所斷十結,得須陁洹果,何以故但說三、不說七?

묻나니, 견제(見諦)에서결(十結)을 끊음으로써 수다원의 과위를 얻는데, 무엇 때문에 단지  가지만을 말씀하고 일곱 가지는 말씀하지 않은 것입니까?

 

십결(十結)=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계취(戒取)ㆍ견취(見取)ㆍ탐(貪)ㆍ진(嗔)ㆍ치(癡)ㆍ만(慢)ㆍ의(疑). 10사(使)라고도 한다.

 

答曰:若說有衆見,已說一切見結,如經說“有衆見爲六十二見根本”故。

답하나니, 만일 유중견(유신삼결)을 말하였다면, 이미 일체의 견결(見結) 말한 것이 되는 것으로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유중견은 62()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62견(六十二見)은 초기불교 경전 등에서 외도(外道)의 모든 견해 또는 사상을 62종으로 분류한 것을 말하며, '62가지의 모든 (외도의) 견해'라는 뜻에서 62제견(六十二諸見) 또는 '62가지의 (외도의) 견해와 내용'이라는 뜻에서 62견취(六十二見趣)라고도 불리며, 간단히 줄여서 62(六十二)라고도 한다 - 위키

 

若人著我,復思惟:我爲是常?爲是無常?若謂無常,墮斷滅中而生邪見,無有罪福。若謂爲常,墮常見中而生齋戒取;計望得道,或修後世福德樂;欲得此二事故取戒。求苦樂因緣故,謂天所作,便生見取。

만약 사람이 나에 집착하면 다시 나에 대하여 사유하기를, “이것은 항상한 상(常)이다”거나 이것은 “항상하지 않은 무상(無常)이다”고 하나니,

만약 무상(無常)이라 단멸견(斷滅見)에 떨어져서 삿된 소견을 내어 죄복이 없다고 여기게 되며, 

만약 항상하다 한다면 항상하다는 상견(常見)에 떨어져서 재계취(齋戒取, 계금취견)를 내어 도(道)를 얻기를 바라거나 혹은 후세의 복덕을 위하여 닦기도 하나니, 

  가지 모두 얻기를 바라므로 계율(戒律)을 취하게 되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인연을 구하기 때문에 “하늘이 짓는 바”라 여기면서 다시 인(忍) · 낙(樂) · 혜(慧) · 관(觀) · 견(見)의 견취(見取)를 내는 것이다.

 

견취(見取, drstiparāmarśa)는 5견(五見), 즉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가지 염오견(染汚見) 중 하나로, 그릇된 견해를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즉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을 일으킨 후 이를 고집하여 진실하고 뛰어난 견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견취견(見取見)이라고도 하며, 집착하는 마음작용들과, 또한 이러한 마음작용들로 인해 일으켜진 인(忍) · 낙(樂) · 혜(慧) · 관(觀) · 견(見)을 통칭한다 - 위키

 

若說有衆見,則攝是二見:邊見、邪見。若說齋戒取,已說見取。餘四結未拔根本,故不說。是十結於三界四諦所斷,分別有八十八。須陁洹乃至辟支佛,分別聲聞、辟支佛道,如先說。

만약 유중견(유신삼결)을 말한다면, 곧 변견(邊見, 변집)과 사견(邪見)의  가지 소견을 포섭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재계취(계금취견)을 말한다면, 이미 견취(見取)를 말한 것이 되며,

나머지 4결(結)은 아직  근본을 뽑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다.

 10결(十結)은 삼계(三界)의제에서 끊을 바인 사제소단(四諦所斷)에서 분별하면 여든여덟(88) 가지가 있나니, 수다원 내지 벽지불이며, 성문과 벽지불의 도를 분별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은 단(斷)과 상(常)의 두 극단[邊]에 집착하는 견해, 즉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말한다. 변집견은 줄여서 변견(邊見)이라고도 하며, 2가지 변견이라는 뜻에서 2변(二邊)이라고도 하며, 변견(邊見)을 번역하여 극단적인 견해라고도 하고 2변(二邊)을 번역하여 두 극단이라고도 한다.- 위키

 

菩薩法眼有二種:一者、分別知聲聞、辟支佛方便得道門,二者、知菩薩方便行道門。聲聞、辟支佛事先已處處說,今當分別菩薩法。

보살의 법안(法眼)에는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분별하면서 성문과 벽지불의 방편으로서 도를 얻는 득도문(得道門)을 아는 것이고, 

둘째는 보살의 방편으로서 도를 행하는 행도문(行道門)을 아는 것이다. 

성문과 벽지불에 대해서는 이미 곳곳에서 설명하였으므로 이제는 보살의 법을 분별하겠다.

 

若菩薩知是菩薩深行六波羅蜜,薄諸煩惱故,用信根、精進根及方便,爲度衆生故受身。是菩薩生死肉身,未得法性神通法身,以是故不說三根,未離欲故。今世行布施功德,信根、精進根,後世生剎利大姓乃至他化自在天。先知因,後知果。

만약 보살이 알기를,

 보살은 육바라밀을 깊이 행하여 모든 번뇌가 얇아졌기 때문에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과 방편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몸을 받았음을 안다면,  보살은 생사(生死)가 있는 육신이고,

아직은 법성(法性)과 신통(神通)과 법신(法身)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지당지근(未知當智根) 이지근(已知根) 구지근(具知根)의 삼근(三根)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니,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생에는 보시의 공덕과 신근(信根)과 정진근(精進根) 행하고,

후세에는 찰리의  성바지 내지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나나니, 

먼저 원인의 인(因)을 알고 뒤에 결과의 과(果)를 아는 것이다.

 

復次,“是菩薩不退”者,如先說“不退轉相”,亦如後「阿鞞跋致品」中說;與此相違,名爲退。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불퇴(不退)라는 것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상(不退轉相)에 대해서도 역시 뒤의 아비발치품(阿鞞跋致品)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나니, 

이것과 반대되는 것을 물러나는 퇴(退)라 하는 것이다.

 

不退菩薩有二種:一者、受記,二者、未受記。如『首楞嚴三昧』四種受記中說。

물러나지 않는 불퇴보살(不退菩薩)에는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수기(受記)를 받은 이이고, 둘째는 아직 수기를 받지 못한 이라. 

이는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의 사종수기(四種受記) 중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아직 발심하지 않았으나 수기를 받는 유미발심이수기有未發心而授記),

발심했을 때에 맞춰 수기를 받는 유적발심이수기(有適發心而授記)

이전에 수기를 받았지만 자신은 전혀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아는, 유어전수기(有於前授記) 타인진지(他人盡知),

이미 수기를 받아서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아는, 기신불지(己身不知) 유어전수기(有於前授記) 타인기신진지(他人己身盡知)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권 16  

 

“具足神通”者,於十方恒河沙世界中,一時能變化無量身,供養諸佛、聽法,說法度衆生。如是等除佛無能及者,是爲末後身菩薩;與此相違者,名不具足。

신통을 두루 갖춘 구족신통(具足神通)이라는 것은, 시방의 항하 강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에서 일시에 무량한 몸을 변화할  있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며, 법을 듣고 설법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미칠  있는 이가 없으나, 그는 마지막 몸의 말후신보살(末後身菩薩)이기 때문이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두루 갖추지 않은 불구족(不具足)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各各自地中無所少,名爲具足;各各地中未成就,是不具足。

 저마다 각각 스스로의 지위에서 모자람이 없음을 일컬어 두루 갖춘 구족(具足)이라 하며, 

각각의 지위에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두루 갖추지 않은 불구족(不具足)이라 하며, 

 

“得神通”有二種:有用者,有不用者。“未得神通”者,有菩薩新發意故,未得神通;或未離欲故、懈怠心故、行餘法故,是爲未得;與上相違,是爲“得”。

“淨佛世界、未淨世界”,如先說。

신통을 얻은 득신통(得神通) 두 종류가 있으니, 

작용이 있는 유용자(有用者)와 작용하지 않는 불용자(不用者)이다.

아직 신통을 얻지 못한 미득신통(未得神通)이라는 것은, 어떤 보살이 새로 뜻을 낸 신발의(新發意)이 때문에 아직 신통을 얻지 못한 것이거나, 

혹은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요, 마음이 게으르기 때문이며, 다른 법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니, 이를 아직 얻지 못한 미득신통(未得神通)이라 하는 것이며, 이와 반대라면 얻음의 득(得)이라 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한 정불세계(淨佛世界), 혹은 아직 청정하게 하지 못한 미정불세계(未淨佛世界)라 함이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成就衆生”者有二種:有先自成功德,然後度衆生者;有先成就衆生,後自成功德者。如寶華佛欲涅槃時,觀二菩薩心,所謂彌勒、釋迦文菩薩。彌勒菩薩自功德成就,弟子未成就;釋迦文菩薩弟子成就,自身未成就。

중생을 성취시킨다는 성취중생(成就衆生)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이는 먼저 자기 자신의 공덕을 이룬 후에 중생을 제도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먼저 중생을 성취시킨 후에 자신의 공덕을 이루는 이가 있으니, 

이는 마치 보화불(寶華佛)께서 열반에 드시려   미륵(彌勒) 보살과 석가문(釋迦文) 보살, 두 보살을 자세히 살펴보니

미륵보살은 자신의 공덕을 성취하였으나 아직 제자들이 성취되지 못하였고, 

석가문보살은 제자들을 성취하였으나 아직 자신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成就多人難,自成則易。’作是念已,入雪山谷寶窟中,身放光明。是時釋迦文菩薩見佛,其心淸淨,一足立,七日七夜,以一偈讚佛;以是因緣故,超越九劫。如是等,知成就衆生、不成就衆生者。

그리하여 생각하기를 ‘여러 사람을 성취시키기는 어렵되 자신을 이루는 것은 쉽다.’고 하시고는 설산(雪山) 계곡의 보굴(寶屈)에 들어가셔서 몸으로 광명을 놓으시자,

이때 석가문보살이 부처님을 뵙고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한 발을 든채 7일 밤과 낮 동안을 서 있으면서 한 구의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으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9겁(劫)을 초월한 것이라.

이와 같은 등으로 중생을 성취시키고 혹은 중생을 성취시키지 않은 이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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