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 습상응품(習相應品)을 풀이함 ① 2
問曰:諸弟子甚多,何以故說“舍利弗、目揵連等,滿閻浮提中,如竹、麻、稻、茅”?
묻나니, 제자들이 아주 많은데 무엇 때문에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 등이 염부제 안에 가득 찬 죽(竹), 마(麻), 도(稻), 모(茅) 와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一切佛弟子中,智慧第一者舍利弗,神足第一者目揵連;此二人於佛法中大,於外法中亦大。富樓那、迦郗那、阿那律等,於佛法中雖大,於外法中不如。
답하나니, 일체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사리불 존자가 지혜제일(智慧第一)이고, 목건련 존자는 신족제일(神足第一)이라. 이 두 분은 불법 안에서도 위대하고 외도의 법안에서도 위대하나, 부루나(富樓那)ㆍ가치나(迦郗那)ㆍ아나율(阿那律) 존자 등은 비록 불법 안에서는 위대하다 할지라도 외도의 법 가운데에서는 그렇지 못하며,
又此二人常在大衆助佛揚化,破諸外道;富樓那等比丘無是功德,是故不說。
또한 이 두 분은 항상 대중과 함께하면서 부처님을 도와서 교화를 드날리고 모든 외도들을 파하였지만, 부루나 등의 비구에게는 이러한 공덕이 없기 때문에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며,
復次,若說舍利弗則攝一切智慧人,若說目揵連則攝一切禪定人。
또한 만약 사리불 존자를 언급하게 되면 곧 일체의 지혜 있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게 되고, 만약 목건련 존자를 언급하게 되면 곧 일체의 선정을 닦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게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譬喩有二種:一者、假以爲喩,二者、實事爲喩。今此名爲假喩。所以不以餘物爲喩者,以此四物叢生稠緻、種類又多故。
비유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어떤 일을 빌려서 비유를 삼는 가이위유(假以爲喩)이고,
둘째는 실제의 실사(實事)로써 비유를 삼는 실사위유(實事爲喩)이니,
지금 여기에서는 가이위유(假以爲喩)이니, 다른 물건으로써 비유를 삼지 않는 까닭은 죽(竹), 마(麻), 도(稻), 모(茅)의 사물(四物)이 무더기로 수북하게 나서 빽빽이 들어서 있고 종류도 많기 때문이다.
舍利弗、目連等比丘滿閻浮提,如是諸阿羅漢智慧和合不及菩薩智慧百分之一,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 등의 비구들이 염부제에 가득 차 있고, 이러한 모든 아라한의 지혜를 한 곳에 모아 합친다 하여도 보살의 지혜에는 미치지 못하며, 백분의 일이나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問曰:何以不但說“算數譬喩所不能及”,而說“百分、千分不及一”?
묻나니, 왜 단지 산수와 비유로써 미칠 수 없다고만 말하지 않으시고, 백분의 일ㆍ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答曰:”算數譬喩所不能及”者,是其極語。譬如人有重罪,先以打縛楚毒,然後乃殺。如聲聞法中,常以“十六不及一”爲喩;大乘法中,則以“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답하나니,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극단적인 말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사람이 중한 죄가 있을 때에 먼저 때리고 묶어서 모진 고통을 준 연후에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성문의 법에서는 언제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으로 비유를 삼으며, 대승의 법에서는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바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經. “舍利弗!置閻浮提滿中如舍利弗、目連等。若滿三千大千世界如舍利弗、目連等;復置是事,若滿十方如恒河沙等世界如舍利弗、目連等智慧,欲比菩薩行般若波羅蜜智慧,百分不及一,千分百千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경. 사리불아, 염부제 안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과 같은 비유도 그만두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비유 또한 그만두고, 다시 시방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의 지혜로써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ㆍ백천분의 일 내지는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바이니라.
▶論. 釋曰:此義同上閻浮提,但以多爲異。
▷논. 해석한다; 이러한 이치는 위의 염부제에서와 같으며 다만 많은 수를 들어서 비유함이 다를 뿐이다.
問曰:舍利弗、目連等雖多智慧無異,何以以多爲喩?
묻나니,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 등이 비록 많다 할지라도, 지혜는 다름이 없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많은 수로써 비유를 삼는 것입니까?
答曰:有人謂少無力,多則有力。譬如水少,其力亦少。又如絕健之人,少衆力寡不能制之,大軍攻之則伏。
有人謂一舍利弗智慧少,則不及菩薩,多或能及。佛言:“雖多不及。”故以多爲喩。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적으면 힘이 없는 것이고 많으면 힘이 있는 것이니, 마치 물이 적으면 그 힘도 적은 것과 같다.”고 하며,
또한 아주 뛰어나게 강한 사람은 적은 사람들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지만, 대군(大軍)이 공격하면 굴복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한 분의 사리불은 지혜가 적어서 보살에게 미치지 못하나, 사리불이 많으면 혹 미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비록 많다 하여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나니, 그러므로 많은 것으로써 비유를 한 것이다.
如一切草木力不如火,一切諸明勢不及日。亦如十方世界諸山,不如一金剛珠。所以者何?菩薩智慧是一切諸佛法本,能令一切衆生離苦得樂。
마치 일체의 초목(草木)의 힘은 불에 미치지 못하고, 일체의 모든 광명도 해의 세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시방세계의 모든 산은 하나의 금강주(金剛珠)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왜냐하면, 보살의 지혜는 바로 모든 부처님 불법(佛法)의 근본이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如迦陵毘伽鳥子雖未出㲉,其音勝於衆鳥,何況出㲉!菩薩智慧亦如是,雖未出無明㲉勝一切聲聞、辟支佛,何況成佛!
又如轉輪聖王太子,雖未成就,福祚威德勝於一切諸王,何況作轉輪聖王!菩薩亦如是,雖未成佛,無量阿僧祇劫集無量智慧福德故,勝於聲聞辟支佛,何況成佛!祚 복 조
마치 가릉비가(迦陵毘伽, karavnka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새끼와도 같으니, 비록 아직 알의 껍질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도 그 음성이 온갖 새들보다 뛰어나거늘, 하물며 알 껍질에서 나온 뒤이겠는가!
보살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아직 무명(無明)의 껍질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나니 하물며 성불한 뒤이겠는가!
또한 마치 전륜성왕의 태자가 아직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의 복조(福祚)와 위덕을 성취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일체의 모든 왕들보다 뛰어나거늘, 하물며 전륜성왕이 된 뒤이겠는가!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아직 성불하지 못하였을지라도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한량없는 지혜와 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나니 하물며 성불하신 뒤이겠는가!
▶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出過一切聲聞、辟支佛上"
▷경. 또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지혜를 닦아도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느니라.
▶論. 問曰:先已說除佛智慧,過一切聲聞、辟支佛上,今何以復重說?
▷논. 묻나니, 먼저 이미 “부처님을 제외한 보살의 지혜는 일체 성문이나 벽지불을 초월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非重說也!上摠相說,今別相說。先言“一切聲聞、辟支佛不及菩薩智慧”,今但明“不及一日智慧”,何況千萬歲!
답하나니, 거듭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위에서는 전체의 총상(總相)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여기에서는 각각의 별상(別相)을말씀하신 것이다.
앞에서는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은 보살의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지금 여기에서는 단 하루 동안의 지혜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히신 것일 뿐이라. 하물며 천만 년동안 닦은 지혜이겠는가!
▶經. 舍利弗白佛言:“世尊!聲聞所有智慧 若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辟支佛智慧,佛智慧,是諸衆智無有差別,不相違背,無生、性空。若法不相違背、無生、性空,是法無有別異;云何世尊言‘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出過聲聞、辟支佛上’?”
▷경.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성문이 지닌 지혜는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및 벽지불의 지혜와 부처님의 지혜와 이러한 여러 지혜와 차별이 없는 무유차별(無有差別)이며, 서로 어긋나지도 않는 불상위배(不相違背)이며, 낢이 없는 무생(無生)이며,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입니다.
만약 법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무생이고 성품이 공한 것이라면, 이러한 법에는 차별이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닦은 지혜만으로도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論. 問曰:上佛已說“菩薩摩訶薩修智慧出過聲聞、辟支佛上”,今舍利弗何以故問?
▷논. 묻나니, 위에서 부처님께서 이미 “보살마하살이 닦은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고 하셨는데, 사리불은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입니까?
答曰:不問智慧勢力能度衆生,今但問佛及六子智慧. 體性法中無有差別者 以諸賢聖智慧,皆是諸法實相慧,皆是四諦及三十七品慧,皆是出三界、入三脫門、成三乘果慧,以是故說無有差別。
답하나니, 지혜의 세력으로 능히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물은 것이 아니고, 이번에는 다만 부처님과 사리불 목건련 부루나 가희나 아나율존자의 여섯 분의 지혜만을 물었을 뿐이며,
체성(體性)의 법에서는 차별이 없다 함이란, 모든 성현의 지혜는 모두가 제법의 실상 지혜인 실상혜(實相慧)이고, 모두가 사제(四諦)와 37조도품(助道品)의 지혜이며, 모두가 삼계(三界)에서 벗어나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삼해탈문(三解脫門)에 들어가서 삼승(三乘)의 과보를 이루는 지혜이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다.
復次,如須陁洹以無漏智滅結得果,乃至佛亦如是;如須陁洹用二種解脫果:有爲解脫、無爲解脫,乃至佛亦如是;如佛入涅槃,須陁洹極遲不過七世。皆同事、同緣、同行、同果報,以是故言“無相違背”。所以者何?不生、性空故。
또한 마치 수다원이 무루의 지혜인 무루지(無漏智)로써 번뇌에 얽힌 결(結)을 없애어 과위를 얻게 되고 나아가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니,
마치 수다원이 유위해탈(有爲解脫)과 무위해탈(無爲解脫)의 두 가지 해탈의 과위를 이용하듯이,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으며,
그리고 부처님처럼 열반에 듦이 수다원은 극히 더디지만 일곱 세상인 칠세(七世)를 넘지 않으며, 모든 일을 같이하는 동사(同事), 연을 같이하는 동연(同緣), 행을 같이하는 동행(同行)을 하고, 과보(果報)를 같이하는 때문에 서로 어긋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나지도 않는 불생(不生)의 성품이 공(空)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5권 10 (0) | 2024.05.19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5권 9 (1) | 2024.05.18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5권 7 (1) | 2024.05.16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5권 6 (0) | 2024.05.15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5권 5 (0) | 2024.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