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報應品 第二 卷三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 습상응품(習相應品) 풀이함 3

 

問曰:破無明、集諸善法故生智慧;是智慧,心相應、心共生,隨心行,是中云何說“智慧無生、性空,無有別異”?

묻나니, 무명을 깨뜨리고 모든 착한 선법(善法)을 쌓아 모으기 때문에 지혜가 생기는 것이며, 이 지혜는 마음에 상응하는 심상응(心相應)이며, 마음과 함께하는 심공생(心共生)이며, 마음을 따라 행하는 수심행(隨心行)인데, 어찌하여 여기에서는 “지혜는 낢이 없는 무생(無生)이고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며,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까?

 

答曰:智慧緣滅諦是“不生”;因緣和合故無有自性,是名“性空”,無所分別 智慧隨緣得名,如眼緣色生眼識,或名眼識、或名色識。智慧雖因緣和合作法,以緣無生、性空故名爲“無生”、“性空”。

답하나니, 지혜는 사제(四諦)에서 멸함의 진리인 멸제(滅諦)를 반연하는 것이므로, 지혜는 나지 않는 무생(無生)이요, 

인연과 화합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나니이를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라고 하며,

분별하는 바가 없는 지혜는 인연을 따라 이름을 얻나니, 마치 눈이 색(色)을 반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므로 혹은 안식(眼識)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색식(色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혜가 비록 인연과 화합하여 법을 짓는 작법(作法)이라 하여도 없는 무생(無生)이고,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을 반연하기 때문에 낢이 없는 무생(無生)이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諸賢聖智慧皆緣四諦生,何以但說滅諦?

묻나니, 모든 성현의 지혜는 모두제(四諦)를 반연하여 생기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단지 사라짐의 멸제(滅諦)의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四諦中滅諦爲上。所以者何?是三諦皆屬滅諦故。譬如人請天子倂食群臣,亦名供養天子。

답하나니, 사제(四諦) 가운데 멸제(滅諦)의 진리가 으뜸이니, 왜냐하면,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도제(道諦)의  가지의 진리는 모두가 멸제(滅諦) 진리에 속하기 때문이라마치 사람이 천자(天子)를 청하면  신하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을지라 역시 천자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次,滅諦故說“無生”,三諦故說“性空”。

또한 멸제(滅諦) 진리 때문에 없는 무생(無生)을 말하는 것이고, 고제(苦諦)와 집제(集諦) 도제(道諦)의  가지 진리 때문에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復次,有人言:是諸智慧性自然不生、性自空。所以者何?一切法皆因緣和合故無自性,無自性故不生。

또한 어떤 사람은  모든 지혜의 성품은 자연불생(自然不生)이어서 성품이 저절로 공한 것이니, 왜냐하면, 일체 모두는 인연이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자성이 때문에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다.” 말하였.

 

問曰:若爾者,智慧、愚癡無有別異!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지혜와 어리석음에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答曰:諸法如,入法性中無有別異;如火各各不同,而滅相無異。譬如衆川萬流,各各異色異味,入於大海,同爲一味一名。

답하나니, 법이 법성(法性) 안으로 들어가면 차별이 없는 것과 같으니, 마치 불은 저마다 같지 않으면서도 꺼지는 상(相) 다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여러 하천에서 흐르는 온갖 물은 저마다 빛깔이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바다로 들어가면 똑같이 동일한 맛의 일미(一味)와 동일한 이름의 일명(一名)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如是愚癡、智慧,入於般若波羅蜜中,皆同一味、無有差別。如五色近須彌山,自失其色,皆同金色;如是內外諸法入般若波羅蜜中,皆爲一味。何以故?般若波羅蜜相畢竟淸淨故。

그와 같이, 어리석음과 지혜는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들게 되면 모두가 동일한 맛으로 차별이 없게 되는 것이라. 마치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의 오색(五色) 수미산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색을 잃으면서 모두가 동일한 금빛이 되는 것과 같이, 안팎의법이 보살마하살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모두가 동일한 일미(一味)가 되나니,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의 상(相) 필경에는 청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復次,愚癡實相卽是智慧;若分別著此智慧卽是愚癡。如是愚癡、智慧有何別異?初入佛法,是癡、是慧;轉後深入,癡、慧無異。以是故,是諸衆智無有別異、不相違背、不生、性空,故無咎。

또한 어리석음의 실상(實相)  지혜이니, 만약 분별하여  지혜에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어리석음이거늘, 어찌 어리석음과 지혜에 차별이 있겠는가? 

처음 부처님의법에 들어가면 어리석기도 하고 지혜롭기도 하나니, 더욱 깊이 들어 갈수록 어리석음과 지혜는 다름이 없어지기 때문에  모든 여러 지혜는 차별이 없는 무차별(無別異)이고, 서로 어긋나지도 않는 불상위배(不相違背)이며,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고,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인 까닭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佛告舍利弗:“於汝意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心念:‘我行道慧益一切衆生,當以一切種智知一切法、度一切衆生。’諸聲聞、辟支佛智慧爲有是事不?”舍利弗言:“不也!世尊!”

▷경.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하루 동안 지혜를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도혜(道慧)를 행하여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일체법을 알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나니,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에도 이러함이 있겠는가?”

사리불이 답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釋曰:有四種論:一者、必定論,二者、分別論,三者、反問論,四者、置論。

. 해석한다;  가지의 이론이 있나니, 

첫째는 반드시 정(定)해진 것을 논하는 필정론(必定論)이요, 

둘째는 분별하여서 설명하여 주는 분별론(分別論)이요, 

셋째는 물음을 되물음으로써 답을 대신하는 반문론(反問論)이요, 

넷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치론(置論)이다.

 

“必定論”者,如衆生中世尊爲第一,一切法中無我,世閒不可樂,涅槃爲安隱寂滅,業因緣不失。如是等名爲“必定論”。

'필정론(必定論)'이라 함이란, 중생 가운데에서는 세존이 으뜸이시고, 일체 가운데에서는 무아(無我)이, 세간은 즐거울 수가 없으며, 열반은 안온하면서 적멸(寂滅)한 것이며, 업의 인연은 상실되지 않는다.” 하는 것과  것들을 필정론必定論)이라 하는 것이며,

 

“分別論”者,如無畏太子問佛:“佛能說是語令他人瞋不?”佛言:“是事當分別答。”太子言:“諸尼健子輩了矣!佛或時無憐愍心故,出衆生於罪中,而衆生瞋,然衆生後當得利。

'분별론(分別論)'이라 함이란, 마치 무외(無畏) 태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시면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일은 분별하여 대답해 주어야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태자가 말하기를 “모든 니건자(尼健子, 나형외도)들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중생을  가운데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시지만, 중생은 외히려 화를 내는 것이나, 그 후에 그 중생들이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爾時無畏之子坐其膝上。佛問無畏:“汝子或時呑諸瓦石草木,汝聽咽不?”答言:“不聽。先敎令吐;若不肯吐,左手捉耳,右手摘口,縱令血出,亦不置之。

그때 무외의 아들이 그의 무릎 위에 앉자 부처님께서 무외에게 물으시기를, 너의 아들이 혹시 기와나 돌이나 풀이나 나무를  안에 넣는면, 너는 그것을 삼키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하시자, 

대답하기를 그대로 두지 않겠습니다. 먼저 뱉어 내게 하고, 만약 뱉지 않으 한다면 왼손으로 귀를 잡고 오른손을 아이의 입에 넣어서 비록 피가 날지라로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였.

 

佛言:“汝不愍之耶?”答言:“愍之深故,爲出瓦石,雖當時痛,後得安隱。”佛言:”我亦如是。若衆生欲作重罪,善敎不從,以苦言諌之,雖起瞋恚,後得安隱。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이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 것인가?”라 하시자, 

대답하기를  아이를 몹시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아이를 위하여 기와나 돌을 꺼내려는 것이오니, 비록 그 순간에는 아플것이지만 그 뒤에는 편안하여 질 것입니다.” 하였.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역시도 그와 같아서 만약 중생이 중한 죄를 지으려 한다 부드럽 가르치고,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듣기 싫은 말로써 타이르게 되나니, 비록 화가 날지라 뒤에는 안온함을 얻게 되는 것이니라.” 하셨다.

 

又如五比丘問佛:“受樂得道耶?”佛言:“不必定。有受苦得罪,受苦得樂;有受樂得罪,受樂得福。”如是等名爲“分別論”。

또한 다섯의 비구가 부처님께 즐거움을 받으면서 () 얻습니까?”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괴로움을 받으면서 죄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이는 괴로움을 받으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하며, 어떤 이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죄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이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복을 얻기도 하느니라.” 하셨으니, 이와 같은  등을 분별론(分別論)이라 하는 것이며, 

 

“反問論”者,還以所問答之。如佛告比丘:“於汝意云何?是色常耶?無常耶?”比丘言:“無常。”“若無常,是苦不?”答言:“苦。

반문론(反問論)이라 함이란, 질문을 되물음으로써 그가 답을 얻게하는 이론이니, 마치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한 것과 같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色)은 항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비구가 대답하기를, “무상한 것입니다.”

“만약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若法是無常、苦,聞法聖弟子著是法,言‘是法是我、是我所’不?”答曰:“不也!世尊!”

“만약 법이 바로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법을 든는 성스러운 제자들이 이러한 법에 집착하면서 ‘이 법은 나요, 이것은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그러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였다.

 

佛告比丘:“從今已後,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好、若醜,是色非我所,我非此色所,如是應以正實智慧知;受、想、行、識亦如是。”如是等名“反問論”。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으로부터 존재하는 물질이 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현재이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곱거나 추하거나 간에 이 색(色, 물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도 이 물질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바르고 진실한 지혜로써 알아야 하나니,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은 것들을 반문론(反問論)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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