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報應品 第二 卷三十五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 습상응품(習相應品)을 풀이함 ① 1
▶經. 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如是思惟:‘菩薩但有字,佛亦但有字,般若波羅蜜亦但有字;色但有字,受、想、行、識亦但有字。’
▷경.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으니,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보살은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고, 부처님도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고,
반야바라밀도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고, 물질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 역시 이름만 있을 뿐이다.’라고 마땅히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舍利弗!如我但有字,一切我常不可得,衆生、壽者、命者、生者、養育、衆數、人、作者、使作者、起者、使起者、受者、使受者、知者、見者,是一切皆不可得;不可得空故,但以名字說。
사리불아, 마치 내(我)가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 일체의 나(我)를 항상 얻을 수 없듯이,
중생(衆生)과 살아 있는 수자(壽者)와 생명이 있는 명자(命者)와 생자(生者)와 양육(養育)과 모든 중생의 중수(衆數)와 사람의 인(人)과 짓는 작자(作者)와 짓게 하는 사작자(使作者)와 인연화합을 일으키는 기자(起者)와 인연 화합이 일어나게 하는 사기자(使起者)와 과보를 받는 수자(受者)와 과보를 받게 하는 사수자(使受者)와 아는 지자(知者)와 보는 견자(見者) 등의 모두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고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다만 명자(名字, 이름)로써 말할 뿐인 것이니라.
菩薩摩訶薩亦如是行般若波羅蜜,不見我、不見衆生,乃至不見知者,見者,所說名字亦不可見。”
보살마하살 또한 그러한 것이니,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나(我)를 보지 못하고 중생(衆生)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아는 (知者) 와 보는 (見者)에 이르기까지를 보지 못하나니, 말한 바의 명자(名字, 이름) 역시 볼 수 없는 것이니라.”
▶論. 問曰:第二品末已說空,今何以重說?
▷논. 묻나니, 제이품(第二品) 끝에서 이미 공(空)을 설하셨거늘 무엇 때문에 지금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上多說法空,今雜說法空、衆生空。行者觀外法盡空無所有,而謂能知空者不空,是故復說“觀者亦空”,是衆生空。
답하나니, 위에서는 대부분 일체법이 공한 법공(法空)을 말씀하신 것이고, 지금은 법공(法空)과 중생공(衆生空)을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니, 수행하는 이는 외법(外法)은 전부 공하여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라고 관하면서도 ‘능히 공(空)을 아는 자는 공(空)하지 않다.’고 여기나니, 이러한 때문에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며,
관하는 관자(觀者) 역시도 공(空)하나니, 이러함이 바로 중생공(衆生空)이다.
聲聞法中多說,一切佛弟子皆知諸法中無我。佛滅後五百歲分爲二分:有信法空;有但信衆生空,言“五衆是定有法”,但受五衆者空。以是故佛說衆生空,以況法空。
성문의 법 가운데에서는 일체의 부처님의 제자들 모두는 제법에서는 무아(無我)임을 안다고 말하나,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의 5백 년을 두 갈래로 나누면, 법공을 믿은 이도 있지만, 단지 중생공만을 믿는 이도 있었으니,
곧 “오중(五衆, 오음)은 정해진 법이니, 다만 오중(五衆)을 받는 자만이 공할 뿐이다.”고 말하게 되는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중생공(衆生空)에 법공(法空)을 더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復次,我空易知,法空難見。所以者何?我以五情求之不可得,但以身見力故憶想分別爲我。法空者,色可眼見、聲可耳聞,是故難知其空。是二事般若波羅蜜中皆空,如“十八空”義中說。
또한 나 스스로가 공한 아공(我空)은 알기 쉬우나, 일체법이 공한 법공(法空)은 알기가 어려우니,
왜냐하면, 나는 오정(五情, 오근)으로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나, 다만 이 몸이 인연화합으로 결합된 거짓된 것이라는 신견(身見)의 힘으로써 생각하고 분별하여서 나를 삼을 뿐이다.
일체법이 공한 법공(法空)은 눈으로 색(色)을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 공함을 알기가 어려우며, 반야바라밀에서는 이러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두 가지 모두가 공한 것이라고 하나니,
마치 십팔공(十八空)의 이치 가운데서 설한 바과 같은 것이다.
問曰:如我乃至知者、見者,爲是一事?爲各各異?
묻나니, 나(我)라는 것에서부터 알아차리는 지자(知者)와 보는 견자(見者)는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저마다 각각 다른 것입니까?
答曰:皆是一我,但以隨事爲異。於五衆中,我、我所心起,故名爲“我”。五衆和合中生故,名爲“衆生”。命根成就故,名爲“壽者”、“命者”。能起衆事,如父生子,名爲“生者”。
답하나니, 이 모두는 동일한 나(我)이나, 단지 일(경우)에 따라 다를 뿐이다. 오중(五衆, 오온) 가운데서 나(我)와 내 것의 아소(我所)라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我)'라 하는것이고,
오중(五衆, 오온)이 화합하여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衆生)이라 하며,
목숨의 명근(命根)을 성취(유지)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수자(壽者)이고, 생명이 있는 명자(命者)라 하며, 능히 온갖 일을 일으킴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과 같으므로 생자(生者)라 하는 것이다.
乳哺、衣、食因緣得長,是名“養育”。五衆、十二入、十八界等諸法因緣,是衆法有數,故名“衆數”。行人法故,名爲“人”。手足能有所作,名爲“作者”。力能役他故,名“使作者”。能造後世罪福業故,名“能起者”。哺 먹일 포
젖을 먹이고 옷을 입혀 주고 밥을 먹여 준 인연으로 자라게 되므로 이를 양육(養育)이라 하고, 오중(五衆, 오온)ㆍ12입(入)ㆍ18계(界) 등의 제법의 인연들은 셀 수 있는 중법(衆法)인 까닭에 많은 수의 중수(衆數)라 하는 것이며,
사람의 법을 행하기 때문에 사람 인(人)이라 하고, 손과 발로 능히 짓는 바가 있음을 일컬어 짓는 작자(作者)라 하며,
세력으로써 다른 이를 부리기 때문에 짓게 하는 사작자(使作者)라 하는 것이며,
令他起後世罪福業故,名“使起者”。後身受罪福果報故,名“受者”。令他受苦樂,是名“使受者”。目睹色,名爲見“者”。五識知,名爲“知者”。
후세의 죄와 복의 업(業)을 짓기 때문에 인연화합을 일으키는 능기자(能起者)라 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후세의 죄와 복의 업을 일으키게 하므로 인연화합을 일으키게 하는 사기자(使起者)라 하며,
후생의 몸이 죄와 복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받는 수자(受者)라 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게 하기 때문에 받게 하는 사수자(使受者)라 하며,
눈으로 색(色)을 보므로 견자(見者)라 하고, 오식(五識)으로 알아차리므로 지자(知者)라 하는 것이며,
復次,用眼見色,以五邪見觀五衆,用世閒、出世閒正見觀諸法,是名“見者”,所謂眼根、五邪見、世閒正見、無漏見,是名“見者”。餘四根所知及意識所知,通名爲“知者”。
또한 눈으로써 색(色)을 보되 다섯 종류의 삿된 사견(邪見)으로써 오중(五衆, 오온)을 관하며, 세간과 출세간의 바른 정견(正見)으로써 제법을 관찰하므로 이를 보는 견자(見者)라 하나니,
이른바 눈=안근(眼根)으로써 다섯 가지를 삿되게 보거나, 세간을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 무루(無漏)로 보는 것을 보는 견자(見者)라 하며,
안근(眼根)을 제외한 그 밖의 네 가지 감관인 사근(四根, 이근 비근 설근 신근)으로 아는 바와 의식(意識)으로 아는 바를 통틀어서 아는 지자(知者)라 하는 것이다.
如是諸法皆說是“神”。此神,十方三世諸佛及諸賢聖求之不可得,但憶想分別,强爲其名。諸法亦如是,皆空無實,但假爲其名。
이와 같은 제법 모두를 '신(神, 정신)'이라 말하며, 이 신(神, 정신)은 시방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구한다 하여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며, 다만 생각으로 분별하여서 억지로 그 이름을 지었을 뿐이라.
제법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가 공한 것으로 진실이 없으니, 다만 임시로 '신(神, 정신)'이라 이름할 뿐이다.
問曰:是神但有十六名字?更有餘名?
묻나니, 이 '신(神, 정신)'이 단지 임시로 열여섯 가지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略說則十六,廣說則無量。隨事起名,如官號差別、工能智巧、出家得道,種種諸名,皆是因緣和合生故無自性,無自性故畢竟空。生空故法空,法空故生亦空。
답하나니, 간략하게 말하면 열여섯 가지이지만 자세하게 말한다면 무량하니, 그 일(상황과 경우)에 따라 이름을 붙였으니, 이는 마치 관리의 호칭이 그 기술의 능함과 지혜와 공력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출가하여 도를 얻게 하는 갖가지의 이름들 모두는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없고, 자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공한 필경공(畢竟空)이며,
남의 생(生)이 공(空)하기 때문에 일체법이 공한 법공(法空)이고,
법공(法空)이기 때문에 낢의 생(生) 역시 공한 것이다.
▶經.“菩薩摩訶薩作如是行般若波羅蜜,除佛智慧,過一切聲聞、辟支佛上,用不可得空故。所以者何?是菩薩摩訶薩諸名字法、名字所著處亦不可得故。
▷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니, 그 지혜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을 넘어서게 되나니, 불가득공(不可得空)에 의하기 때문이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명자(名字, 이름)와 법의 명자(名字, 이름)에 집착하여 얻고자 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舍利弗!菩薩摩訶薩能如是行,爲行般若波羅蜜。譬如滿閻浮提竹、麻、稻、茅,諸比丘其數如是,智慧如舍利弗、目連等,欲比菩薩行般若波羅蜜智慧,百分不及一,千分、百千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何以故?菩薩摩訶薩用智慧度脫一切衆生故。”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와 같이 행함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찬 대나무 죽(竹), 삼 마(麻)、벼 도(稻)、갈대 모(茅) 수만큼의 비구들이 있고, 그 지혜가 모두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동등하다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ㆍ백천분의 일 내지는 산수(算數)의 비유(譬喩)로써도 미칠 수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지혜에 의지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니라.”
▶論. 釋曰:有二因緣故,菩薩智慧勝聲聞、辟支佛:一者、以空知一切法空,亦不見是空;空以不空等一不異。二者、以此智慧,爲欲度脫一切衆生令得涅槃。
▷논. 해석하다; 두 가지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보살의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나니,
첫째는 일체법을 공한 법공(法空)으로 알되 역시 공(空)함 또한 보지 않으니, 공함이 공하지 않은 불공(不空)과 평등하고 동일하여 다르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지혜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 하는 것이다.
聲聞、辟支佛智慧,但觀諸法空,不能觀世閒、涅槃爲一。譬如人出獄,有但穿牆而出自脫身者;有破獄壞鎖,旣自脫身,兼濟衆人者。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는 다만 제법이 공(空)함을 관찰할 뿐, 세간과 열반이 하나임을 관찰하지 못하나니, 비유하자면, 사람이 감옥을 탈출할 때에, 어떤 이는 담장을 뚫고 다만 자기 자신만 탈출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감옥을 부수고 쇠고랑을 끊고서 자신도 탈출하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도 구제하여 함께 탈출하는 이가 있는 것과 같으며,
復次,菩薩智慧入二法中故勝:一者、大悲,二者、般若波羅蜜。復有二法:一者、般舟三昧,二
者、方便。復有二法:一者、常住禪定,二者、能通達法性。
또 보살의 지혜는 세간과 열반의 두 가지 법에 들어가기 때문에 뛰어난 것이니, 그 첫째는 대비(大悲)요, 둘째는 반야바라밀이요.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으니, 첫째는 반주삼매(般舟三昧)요, 둘째는 방편이요.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으니, 첫째는 항상 선정(禪定)에 머무는 것이고, 둘째는 법성(法性)을 통달하는 것이요.
復有二法:一者、能代一切衆生受苦,二者、自捨一切樂。復有二法:一者、慈心,無怨無恚;二者、乃至諸佛功德,心亦不著。如是等種種功德莊嚴智慧故勝聲、聞辟支佛。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스스로 일체의 즐거움을 버리는 것이요.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으니, 첫째는 인자한 자심(慈心)으로 원한도 없고 화냄도 없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공덕에 이르기까지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
이와 같은 등의 종종의 공덕으로 지혜를 장엄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난 것이다.
問曰:諸鈍根者可以爲喩,舍利弗智慧利根何以爲喩?
묻나니, 모든 근기가 둔한 둔근자(鈍根者)에게는 비유를 들어야 할 것이지만, 사리불 존자는 지혜와 근기가 영리한 분인데 무엇 때문에 비유를 드신 것입니까?
答曰:不必以鈍根爲譬喩,譬喩爲莊嚴論議,令人信著;故以五情所見以喩意識,令其得悟。譬如登樓,得梯則易上。
답하나니, 꼭 근기가 둔한 둔근자(鈍根者)만을 위하여 비유를 든 것이 아니다.
비유는 논의(論議)를 바르게 장엄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니, 다섯 감관의 오정(五情)이 보는 바로써 의식(意識)을 깨우쳐 주면서 그로 하여금 깨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마치 누각을 오를 때 사다리가 있으면 오르기가 쉬운 것과 같은 것이며,
復次,一切衆生著世閒樂,聞道得涅槃則不信不樂;以是故以眼見事,喩所不見。譬如苦藥,服之甚難;假之以蜜,服之則易。復次,舍利弗於聲聞中智慧第一,比諸佛菩薩未有現焉。
또한 일체 중생은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도(道)를 얻음과 열반(涅槃)을 얻음에 관하여 들어도 믿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는 하나 보지 못하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쓴 약은 먹기가 매우 어렵지만 거기에 꿀을 넣으면 먹기가 쉬운 것과 같은 것이며,
또한 사리불 존자는 성문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지만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 비하면 아직 드러내어 보일 것이 없기 때문이다.
“如閻浮提”者,“閻浮”,樹名,其林茂盛,此樹於林中最大。“提”名爲洲。此洲上有此樹林;林中有河,底有金沙,名爲閻浮檀金;以閻浮樹故,名爲“閻浮洲”。此洲有五百小洲圍繞,通名閻浮提。
'염부제(閻浮提)'라 함이란, 염부(閻浮, Jambhu. 대나무)는 대나무의 이름이며, 그 숲은 무성하며, 이 나무가 숲 속에서 가장 크며,
'제(提, dvīpa)'란 대륙의 주(洲)를 말하는 것으로 이 대륙(대지, 땅) 위에 나무 숲이 있고 이 숲 속에 강이 있으며, 그 강의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어서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 하며,
염부나무 때문에 염부주(閻浮洲)라 부르며, 이 대륙에는 5백개의 작은 섬인 소주(小洲)들이 둘러서 에워싸고 있으니 이 모두를 통틀어서 염부제(閻浮提)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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