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十八空義 第四十八 卷三十一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8. 초품 중 십팔공(十八空)의 뜻을 풀이함 13
“一切法空”者,一切法名五衆、十二入、十八界等。是諸法皆入種種門,所謂一切法有相、知相、識相,緣相、增上相,因相、果相,摠相、別相,依相。
일체법공(一切法空)이라 함이란, 일체법(一切法)은 5중(衆, 오온)ㆍ12입(入)ㆍ18계(界) 등을 말하는 것이며, 이 일체법은 각각의 문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른바 일체법의 존재하는 모습의 유상(有相)ㆍ앎의 지상(知相)ㆍ분별하는 식상(識相)ㆍ반연하는 연상(緣相)ㆍ증장하여 나가는 증상상(增上相)ㆍ원인의 인상(因相)ㆍ결과의 과상(果相)ㆍ총상(總相)ㆍ별상(別相)ㆍ의지하는 모습의 의상(依相) 등이 그것이다.
問曰:云何一切法有相?
묻나니, 무엇을 일체법의 존재하는 모습의 유상(有相)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一切法有好有醜、有內有外;一切法有心生,故名爲有。
답하나니, 일체법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있으며, 안과 밖이 있으며,
일체법은 마음이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함의 유(有)라 하는 것이다.
問曰:無法中云何言“有相”?
묻나니, 무법(無法) 가운데에서 어떻게 유상(有相)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若無法不名爲“法”,但以遮有故名爲“無法”;若實有無法,則名爲有。是故說一切法有相。
답하나니, 만약 무법(無法)이라면 법(法)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나, 다만 있다는 유(有)를 막기 위하여 무법(無法)이라 할 뿐이니, 만약 실로 무법(無法)의 상태가 있는 것이라면 곧 유(有)라 이름하여야 되는 것이라.
이러한 까닭에 일체법의 유상(有相)을 설명하는 것이다.
“知相”者,苦法智、苦比智能知苦諦,集法智、集比智能知集諦,滅法智、滅比智能知滅諦,道法智、道比智能知道諦;及世俗善智能知苦、能知集、能知滅、能知道,亦能知虛空、非智緣滅 是名一切法知相。知相故攝一切法。
앎의 지상(知相)이라 함이란, 고법지(苦法智)와 고비지(苦比智)로 고제(苦諦)를 능히 알게 되고,
집법지(集法智)와 집비지(集比智)로 집제(集諦)를 능히 능히 알게 되며,
멸법지(滅法智)와 멸비지(滅比智)로 번뇌가 멸함의 진리인 멸제(滅諦)를 능히 알게 되고,
도법지(道法智)와 도비지(道比智)로 도의 진리인 도제(道諦)를 능히 알게 되는 것이며,
그리고 세속의 선(善)한 지혜로는 괴로움의 고(苦)를 능히 알게 되고, 집(集)을 능히 알게 되고, 멸(滅)을 능히 알게 되고, 도(道)를 능히 알게 되며,
또한 허공(虛空)과 비지연멸(非智緣滅)을 능히 알게 하는 것을 일체법을 아는 지상(知相)이라 하며,
일체법을 포섭하기 때문에 지상(知相)이라 하는 것이다.
十六行(십육행, ṣodaṡa-ākāra) 또는 16행상(行相)이란 열여섯 가지 행상으로 4성제를 관찰하는 법을 말하며,
먼저 고를 관찰함의 네 가지는 '무상(無常) 고(苦) 공(空) 무아(無我)'요,
고의 원인을 관찰함의 네 가지는 '쌓임=集(집)ㆍ인(因)ㆍ연(緣)ㆍ生(생)'이요,
고가 멸함을 관찰함의 네 가지는 '盡(진)ㆍ滅(멸)ㆍ妙(묘)ㆍ出(출)'이라.→ (滅 靜 妙 離)
고(苦)가 滅(멸)에 이르는 도(道)를 관찰함의 네 가지는 '도(道) 정(正) 행(行) 적(跡)'이니라. → (道如行出)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1권 4
비지연멸(非智緣滅, apratisaṃkhyānirodha) 설일체유부에서 말하는 3무위(無爲) 가운데 하나로,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라고도 한다. 법이 생겨날 만한 대상을 결여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지혜로써 얻은 멸(滅)이 아니기 때문에 비지(非智) 혹은 비택멸(非擇滅)이라 하는 것이다.
“識相”者,眼識能知色;耳識能知聲;鼻識能知香;舌識能知味;身識能知觸;
식별하는 식상(識相)이라 함이란, 안식(限識)은 색(色, 물질, 빛)을 알고, 이식(耳識)은 성(聲, 소리)를 알며, 비식(鼻識)은 향(香, 냄새)를 알고, 설식(舌識)은 미(味, 맛)을 알며, 신식(身識)은 촉(觸, 감촉)을 알고,
意識能知法,能知眼、能知色、能知眼識,能知耳、能知聲、能知耳識,能知鼻、能知香、能知鼻識,能知舌、能知味、能知舌識,能知身、能知觸、能知身識,能知意、能知法、能知意識是名識相。
의식(意識)은 법(法)을 능히 알며, 능히 안(眼, 눈)을 알며, 능히 색(色, 물질, 빛)을 알며,
능히 안식(眼識)을 알며, 능히 이(耳, 귀)를 알며, 능히 성(聲, 소리)를 알며, 능히 이식(耳識)을 알며,
능히 비(鼻, 코)를 알며, 능히 향(香, 냄새)를 알며, 능히 비식(鼻識)을 알며,
능히 설(舌, 설)을 알고, 능히 미(味, 맛)을 알고, 능히 설식(舌識)을 알며,
능히 신(身, 신)을 알고, 능히 촉(觸, 감촉)을 알고, 능히 신식(身識)을 알며,
능히 의(意, 뜻)을 알고, 능히 법(法)을 알고 의식(意識)을 아나니,
분별하고 식별하는 식상(識相)이라 하는 것이다.
“緣相”者,眼識及眼識相應諸法能緣色;耳識及耳識相應諸法能緣聲;鼻識及鼻識相應諸法能緣香;舌識及舌識相應諸法能緣味;身識及身識相應諸法能緣觸;意識及意識相應諸法能緣法,
반연하는 연상(緣相)이라 함이란, 안식(眼識) 및 안식(眼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능히 색(色, 물질, 빛)에 반연하고,
이식(耳識) 및 이식(耳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성(聲, 소리)에 반연하며,
비식(鼻識) 및 비식(鼻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향(香, 냄새)에 반연하며,
설식(舌識) 및 설식(舌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미(味, 맛)에 반연하며,
신식(身識) 및 신식(身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촉(觸, 감촉)에 반연하며,
의식(意識) 및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여러 법은 법(法)에 반연하며,
能緣眼、能緣色、能緣眼識,能緣耳、能緣聲、能緣耳識,能緣鼻、能緣香、能緣鼻識,能緣舌、能緣味、能緣舌識,能緣身、能緣觸、能緣身識,能緣意、能緣法、能緣意識是名緣相。
또한 능히 안(眼, 눈)을 반연하고, 색(色, 물질, 빛)에 반연하고, 안식(眼識)을 반연하며,
능히 이(耳, 귀)를 반연하고, 성(聲, 소리)에 반연하고, 이식(耳識)을 반연하며,
능히 비(鼻, 코)를 반연하고, 향(香, 냄새)에 반연하고, 비식(鼻識)을 반연하며,
능히 설(舌, 설)을 반연하고, 미(味, 맛)에 반연하고, 설식(舌識)을 반연하며,
능히 신(身, 신)을 반연하고, 촉(觸, 감촉)에 반연하고, 신식(身識)을 반연하며,
능히 의(意, 뜻)를 반연하고, 법(法)에 반연하고, 의식(意識)을 반연하나니,
이것을 연상(緣相)이라 하며,
“增上相”者,一切有爲法各各增上;無爲法亦於有爲法 有增上是名增上相。
증장하는 증상상(增上相)이란, 일체의 유위법은 저마다 각각 증장하는 것이며
무위법(無爲法) 역시도 유위법으로 인하여 증장하게 되는 것을 증상상(增上相)이라 하는 것이다.
“因果相”者,一切法各各爲因、各各爲果是名因果相。
원인과 결과의 인과상(因果相)이란, 일체법은 각각의 원인이 되고, 각각의 결과가 되나니, 이러함을 인과상(因果相)이라 하며,
“摠相、別相”者,一切法中各各有摠相、別相。如馬是摠相,白是別相;如人是摠相,若失一耳,則是別相。如是各各展轉,皆有摠相、別相是爲摠相、別相。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라 함이란, 일체법 가운데에서는 각각의 총상(總相)과 각각의 별상(別相)이 있으니, 마치 말이라 하면 바로 총상(總相)이 되고, 희다는 것은 바로 별상(別相)이 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사람이라 하면 바로 총상(總相)이 되고, 만약 귀 하나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별상(別相)이 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나아가면, 일체의 모든 것에는 전체적인 상(相)과 개별적인 상(相)이 있나니, 이러함을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라 하는 것이다.
“依相”者,諸法各共相依止,如草木山河依止於地,地依止水,如是一切各各相依,是名依止相。依止相攝一切法。如是等一法門相攝一切法。
의지하는 의상(依相)이라 함이란, 제법은 저마다 각각 서로 서로가 의지하는 것이 있는 것으로, 마치 들과 나무와 산과 하천은 땅에 의지하여 머무르는 등과 같이, 일체의 각각이 서로 저마다 의지하는 것이 있는 상(相)이며, 의지상(依止相)이 일체법을 포섭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등의 일법문(一法門)의 상(相)이 일체법을 포섭하는 것이다.
復次,二法門攝一切法,所謂色、無色法,可見、不可見法,有對、無對法,有漏、無漏法,有爲、無爲法,內法、外法,觀法、緣法,有法、無法,如是等種種二法門相。三、四、五、六乃至無量法門相攝一切法。是諸法皆空,如上說,名一切法空。
또한 이법문(二法門)이 일체법을 포섭하나니,
이른바 형상이 있는 색법(色法)과 형상이 없는 무색법(無色法),
볼 수 있는 가견(可見法)과 볼 수 없는 불가견법(可見不可見法)과,
마주 대함이 있는 유대법(有對法)고 마주 대함이 없는 무대법(無對法)과
번뇌가 있는 유루법(有漏法)과 번뇌가 다한 무루법(無漏法)과,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내법(內法)과 외법(外法), 관법(觀法)과 연법(緣法), 유법(有法) 무법(無法) 등이니,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이법문(二法門)의 상(相)이 있으며,
또한 셋ㆍ넷ㆍ다섯 내지는 한량없는 법문(法門)의 상(相)이 있어서 일체법을 포섭하나니,
이 제법 모두가 공(空)함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아서, 일체법공(一切法空)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若皆空者,何以說一切法種種名字?
묻나니, 만약 모두가 공(空)하다면 무엇 때문에 일체법의 갖가지로 다른 이름을 언급하시는 것입니까?
答曰:凡夫人於空法中無明顚倒取相故,生愛等諸煩惱;因煩惱故,起種種業;起種種業故,入種種道;入種種道故,受種種身;受種種身故,受種種苦樂。如蠶出絲無所因,自從己出而自纏裹,受燒煮苦。蠶 누에 잠, 裹 쌀 과
답하나니, 범부들은 공법(空法) 가운데에서 무명(無明)때문에 전되 되어서 상(相)을 취하는 까닭에 갈애(愛) 등의 모든 번뇌를 내게 되며,
이러한 번뇌로 인하여 갖가지의 업(業)을 일으키게 되고,
갖가지의 업(業)을 일으킨 때문에 여러 갈래(道) 들어가게 되며,
여러 갈래(道)로 들어간 때문에 갖가지의 몸(身)을 받게 되며,
갖가지의 몸(身)을 받은 때문에 갖가지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게 되는 것이니,
마치 누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 몸에서 실을 내어서 스스로를 휘둘러 감고는,
결국 삶아지는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聖人淸淨智慧力故,分別一切法本末皆空;欲度衆生故,說其著處,所謂五衆、十二入、十八界等:汝但以無明故,而生五衆等自作自著!若聖人但說空者,不能得道,以無所因、無所厭故。
성인(聖人)은 청정한 지혜의 힘 때문에 일체법의 본말(근본)이 모두 공(空)함을 분별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들이 집착하는 곳을 말해주나니, 이른바 5중(衆, 오온)ㆍ12입(入)ㆍ18계(界)의 일체법이 그것이다. 그대는 다만 무명 때문에 5중 등을 내어서 스스로가 지으며, 스스로가 집착하고 있을 뿐이나, 만약 성인(聖人)이 다만 공(空)을 설한다면 도(道)를 얻지 못할 것이니, 곧 아무런 인(因)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싫증을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問曰:汝言一切法空,是事不然!何以故?一切法各各自相攝故。如地堅相,水濕相,火熱相,風動相、心爲識相,慧爲知相;如是一切法,各自住其相,云何言空?
묻나니, 일체법이 공(空)하다 하시는 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저마다의 자상(自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
마치 땅은 단단한 견상(堅相)이고, 물은 축축한 습상(濕相)양이며, 불은 더운 열상(熱相)이고, 바람은 움직이는 동상(動相)이며, 마음은 식별(識別)하는 상(相)이고, 지혜는 아는 지상(知相)인 것과 같이, 일체법은 저마다 스스로 상(相)에 머무르거늘 어찌하여 공(空)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性空、自相空中已破,今當更說。相不定故,不應是相。如酥、蜜、膠、蠟等皆是地相,與火合故,自捨其相,轉成濕相;金、銀、銅、鐵與火合故,亦自捨其相,變爲水相;如水得寒成冰,轉爲地相。
답하나니, 성공(性空)과 자상공(自相空)에서 이미 설하여 파하였으나 이제 다시 설명하나니, 상(相)은 일정하지 않은 부정(不定)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상(相)이 아닌 것이다.
마치 소(酥, 연유)와 꿀과 교(膠, 아교)와 납(蠟, 밀 혹은 밀랍) 등은 모두 땅의 지상(地相)이지만 불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그지상(地相)을 버리면서 축축한 습상(濕相)으로 바뀌고,
금ㆍ은ㆍ동ㆍ철 등도 불을 만나게 되면 역시 스스로의 상(相)을 버리면서 물의 습상(濕相)으로 변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음이 되면서 지상(地相)으로 바뀌는 것과 같으며,
如人醉睡、入無心定,凍冰中魚,皆無心識,捨其心相,無所覺知;如慧爲知相,入諸法實相,則無所覺知,自捨知相。是故諸法無有定相。
또한 사람이 술에 취하거나 잠이 들거나, 무심정(無心定)에 들어서 얼음 속에 있는 물고기와 같이 되는 경우에는 모두 심식이 없게 되며, 그 마음의 상(相)을 버리어 지각(知覺)이 없게 되나니,
마치 지혜는 지상(知相)이지만 제법의 실상(實相)에 들어가면 곧 지각이 없어서 스스로 지상(知相)을 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제법은 정해진 모양의 정상(定相)이 없는 것이다.
復次,若謂諸法定相,是亦不然!所以者何?如未來法相,不應來至現在;若至現在,則捨未來相;若不捨未來相入現在者,未來則是現在,爲無未來果報。
또한 만약 제법이 정해진 정상(定相)이라면, 이 역시 옳지 못한 것이니, 왜냐하면, 마치 미래의 법상(法相)은 응당 현재에는 이르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만약 현재에 이르게 되면 미래의 상(相)을 버리게 되는 것이며,
만약 미래의 상(相)을 버리지 않은 채 현재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로써 미래의 과보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若現在入過去,則捨現在相;若不捨現在相入過去,過去則是現在。如是等過,則知諸法無有定相。
또한 현재가 과거로 들어간다면 현재의 상(相)을 버리는 것이며,
만약 현재의 상(相)을 버리지 않은 채 과거로 들어간다면 과거가 바로 현재가 되는 허물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제법에는 정해진 상(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復次,若謂無爲法定有者,應別自有相;如火自有熱相,不因他作相。是故當知無爲法無相故實無。
또한 만약 무위법이 결정코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별개의 상(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불은 스스로 더운 열상(熱相)이 있으나, 다른 원인이 없다면 그 상(相)을 짓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무위법은 상(相)이 없기 때문에 실로 없는 실무(實無)인 것이다.
復次,汝以未來世中非智緣滅法是有爲法,而無有爲相。若汝謂“以非智緣盡是滅相”,是亦不然!所以者何?無常滅故,是名滅相,非以非智緣滅故名爲滅相。如是等種種,無有定相。若有定相,可使不空;而無定相;而不空者,是事不然。
또한 그대가 미래세에서 조건이 없어서 유위법이 될 수 없는 무위법의 비지연멸법(非智緣滅法, 비택멸법)이 유위법이라고 한다면, 유위의 상(相)은 없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비지연멸(非智緣滅)이 소멸하는 멸상(滅相)이라고 여긴다면 이것도 옳지 못한 것이니, 왜냐하면, 무상하여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멸하는 멸상(滅相)이라 할 뿐, 비지연멸(非智緣滅)이기 때문에 소멸하는 멸상(滅相)이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등으로 갖가지는 정해진 정상(定相)이 없는 것이니,
만약 정해진 정상(定相)이 있다면 공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상(定相)이 없음에도 공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는 옳지 않은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5 (0) | 2024.04.18 |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4 (1) | 2024.04.17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2 (0) | 2024.04.15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1 (0) | 2024.04.14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1권 10 (0) | 202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