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力釋論第三十九卷二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9. 초품 중 십력(十力)의 뜻을 풀이함 5
問曰; 熟 不熟義可爾, 臨死時少許時心 云何能勝終身行力?
묻나니, 성숙하고 성숙하지 않은 이치는 그럴 수 있겠지만, 죽으려 할 때의 잠깐 사이의 마음이 어떻게 종신토록 행한 힘보다 뛰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是心雖時頃少 而心力猛利 如火如毒 雖少能成大事。
답하나니, 이 마음은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나 그 마음의 힘이 맹렬하고 날카로움이 마치 불과도 같고 독과도 같아서 비록 적은 것이라 하여도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
是垂死時心 決定猛健故 勝百歲行力, 是後心名爲大心
이렇게 죽으려 할 때의 마음은 결정코 맹렬하고 씩씩하기 때문에 백 년 동안 행한 힘보다 수승한 것으로, 이 때의 최후의 마음을 대심(大心)이라 하며,
以捨身及諸根事急故。如人入陣 不惜身命 名爲健。
몸과 모든 제근(諸根)을 버리는 일이 급하기 때문이니, 마치 사람이 싸움터에 들어갔을 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굳셀 건(健)이라 하는 것과 같으며,
如阿羅漢捨是身著故 得阿羅漢道。
마치 아라한이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때문에 아라한의 도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이,
如是等種種罪福業報 轉報 亦應如是知。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죄와 복의 업보에 대하여, 그 과보를 바꾸는 것 역시도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聲聞人 但知惡業罪報 善業福報 不能如是細分別,
성문(聲聞)의 사람은 다만 나쁜 업에 대한 죄의 과보와 착한 업에 대한 복의 과보만을 알 뿐이라, 이와 같이 자세히 분별할 수가 없지만,
佛悉遍知是業及業報 智慧勢力無㝵無盡 無能壞故 是名第二力。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업과 업의 과보를 모두 두루 아시는 지혜의 세력이 걸림없고 끝이 없으며,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두 번째의 힘, 제이력(第二力)이라 하는 것이다.
“禪定解脫 三昧淨垢分別智力”者 “禪”名四禪 佐 도울 좌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통하여 청정함과 허물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의 힘인 '선정해탈삼매정구분별지력(禪定解脫三昧淨垢分別智力)'이라 함에서 선(禪)이라는 것은 사선(四禪)을 말하는 것이며,
佛知是禪佐助道法 名相義分 次第熏修 有漏無漏 學無學 淨垢 味不味 深淺分別等。
부처님께서는 이 선(禪)이 조도법(助道法)을 도와주는 것을 아시며, 이름의 명상(名相)ㆍ선의 뜻을 정의한 의분(義分)ㆍ순서의 차제(次第)ㆍ닦아 나아가는 훈수(勳修)ㆍ유루(有漏)ㆍ무루(無漏)ㆍ배울 것이 있는 유학有學)ㆍ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ㆍ깨끗한 정(淨)ㆍ더러운 구(垢)ㆍ선정의 맛(味)ㆍ선정을 맛을 느끼지 못한 불미(不味)ㆍ선정이 깊은 심(深)ㆍ선정이 얕은 천(淺) 등을 분별(分別)하여 다 아시며,
“八解脫” 如禪中分別相。說“禪” 攝一切色界定, 說“解脫” 攝一切定。
팔해탈(八解脫)이란 선(禪)을 분별하여 설명한 것과 같으며,
선(禪)은 온갖 색계의 정(定)인 색계정(色界定)을 포섭하며,
해탈은 일체의 정(定)을 포섭한다고 설하시며,
禪波羅蜜卽是諸解脫。禪定 三昧解脫 禪三昧 皆名爲定 定名爲心不散亂。
선바라밀(禪波羅密, dhyānapāramitā)은 곧 이러한 모든 해탈이며,
선정(禪定)ㆍ삼매해탈(三昧解脫)ㆍ선삼매(禪三昧)를 모두 정(定)이라 하나니,
정(定)이란 곧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심불산란(心不散亂)을 말하는 것이다.
“垢”名愛見慢等諸煩惱, “淨”名眞禪定 不雜愛見慢等煩惱 如眞金。
더러운 구(垢)는 애착하는 소견의 애견(愛見)과 교만한 만(慢) 등의 여러 번뇌를 말하는 것이며,
깨끗한 정(淨)은 진실한 선정의 진선정(眞禪定)이라 하며,
애착하는 소견의 애견(愛見)과 교만한 만(慢) 등의 번뇌가 섞이지 않은 것이 마치 순금과 같은 것이다.
“分別”名諸定中 有一心行 不一心行 常行不常行 難入易入 難出易出
別取相 摠取相 轉治不轉治。
분별(分別)이라 함은, 모든 정(定) 가운데에서
한마음으로 행하는 일심행(一心行)인가,
한마음으로써 행하지 않는 불일심행(不一心行)인가,
항상 행하는 상생常行)인가, 항상 행하지 않는 불상행(不常行)인가,
들어가기 어려운 난입(難入)인가, 들어가기 쉬운 이입(易入)인가,
나오기 어려운 난출(難出)인가, 나오기 쉬운 이출(易出)인가,
각각의 모양을 취하는 별취상(別取相)인가,
전체적인 모양을 취하는 총취상(總取相)인가,
바꾸어 다스릴 수 있는 전치(轉治)인가,
바꾸어 다스리지 않는 불전치(不轉治) 등을 말하는 것이다.
轉治 如婬欲中慈心 瞋人不淨觀 愚癡人思惟邊無邊,
掉戲心中用智慧分別諸法 沒心中欲攝心。若不爾者 名不轉治。
바꾸어 다스릴 수 있는 전치(轉治)라 함은,
음욕 빠져 있는 사람은 자심관(慈心觀)으로 다스리고,
성냄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不淨觀)으로 다스리며,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끝이 있고 없음의 변무변(邊無邊, antānantabhāvanā)을 사유(思惟)하게 하고,
마음이 들떠있는 사람은 지혜로써 제법을 분별하게 하며,
견해에 빠진 몰심(沒心)의 사람이라면 그가 원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끌어내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바꾸어 다스리는 전치(轉治)라고 하지 않으며,
是定中 應分別時及住處, 若身瘦羸 是非行定時, 如菩薩苦行時作是念,
“我今不能生禪定" 若多人處 亦非行定處。
이러한 중에서는 마땅히 때와 머무르는 곳의 주처(住處)를 분별하여야 하나니, 만약 몸이 파리하게 야위면 이 때는 정(定)을 행할 시기가 아닌 것이, 마치 보살이 고행을 하면서 “나는 지금 선정을 일으킬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역시 정(定)을 행할 곳이 아닌 것과 같다.
復次 佛知是禪定失 是禪住 是禪增益 是禪到涅槃。
또한, 부처님께서는, 이 선정은 잘못된 것의 실(失, dhvaṁsa)이고,
이 선정은 머무는 주(住, sthiti)이고, 이 선정은 더욱 늘어나는 증익(增益, vardhana)이고,
이 선정은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시며,
復次 佛知是人難入定難出定 易入易出 易入難出 難入易出。
또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정(定)에 들기도 어렵고 정(定)에서 나오기도 어려우며, 들기도 쉽고 나오기도 쉬우며, 들기는 쉽지만 나오기가 어려우며, 들기도 어렵고 나오기도 어렵다는 것을 다 아시며,
佛知是人應得如是禪 知是人失禪受五欲, 知是人受五欲已還得禪 依是禪得阿羅漢。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마땅히 이와 같은 선(禪)을 얻어야 할 것이며, 이 사람은 선(禪)을 잃고 오욕을 받을 것이며, 이 사람은 오욕을 받고 나서 다시 선(禪)을 얻을 것이며 이 선(禪)에 의거하여 아라한이 되리라는 것을 아시니,
如是等 一切諸禪定解脫 卽是三昧。
是禪定 佛以甚深智慧盡知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三力”。
이와 같은 온갖 선정(禪定)과 해탈이 곧 삼매(三昧)이라.
이러한 선정을 부처님께서는 심히 깊은 지혜로써 모두 다 아시는 것을 무너뜨릴 수도 없으며, 보다 나은 이도 없으니, 이러함을 세 번째의 힘인 제삼력(第三力)이라 하는 것이다.
“知衆生上下根智力”者 佛知衆生 是利根鈍根中根。利智名爲上 鈍智名爲下。
중생의 상하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인 지중생상하근지력(知衆生上下根智力)라 함은, 부처님께서는 중생에 대해
이 사람은 영리하고 날카로운 이근(利根, tīkṣṇendriya)이요,
이 사람은 둔한 둔근(鈍根, mṛdvindriya)이요,
이 사람은 그 중간의 중근(中根, tīkṣṇajñāna)이라는 것을 아시니,
날카롭고 명백하게 이해하는 지혜를 상(上, para)이라 하고
무디고 이해가 늦은 지혜를 하(下, apara)라 하는 것이다.
佛用是上下根智力 分別一切衆生是利根 是中根 是鈍根。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상하근지력(上下根智力)으로써 온갖 중생을 분별하시되,
이는 영리한 근기의 이근(利根)이요, 이는 중간 정도의 중근(中根)이요, 이는 둔근(鈍根)이라.
是人如是根 今世但能得初果 更不能得餘, 是人但能得第二 第三 第四果。
이 사람은 이러한 근기이니, 금세에서는 초과(初果, 초선)만을 능히 얻을 수 있을 뿐, 다시 그 밖의 것은 얻지 못할 것이요,
이 사람은 다만 제2과(第二果, 제이선) 또는 제3과(第三果, 제삼선) 또는 제4과(第四果, 제사선)만을 얻을 수 있을 것이요,
是人但能得初禪 是人但能得第二 第三 第四禪 乃至滅盡定亦如是。
이 사람은 다만 초선(初禪)만을 능히 얻을 수 있을 뿐이며,
이 사람은 다만 제2선(第二果, 제이선) 또는 제3선(第三果, 제삼선) 또는 제4선(第四果, 제사선)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멸진정(滅盡定, saṁjñāvedayitanirodhasamāpatti)까지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이 분별하여 아시며,
是人當作時解脫證 是人當作不時解脫證。是人能得於聲聞中第一,
是人能得於辟支佛中第一是人具足六波羅蜜 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사람은 마땅히 시해탈(時解脫, samayavimukta,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을 증득할 것이요,
이 사람은 불시해탈(不時解脫, asamayavimukta,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을 증득할 것이요,
이 사람은 성문 가운데 첫째갈 수 있을 것이요,
이 사람은 벽지불 가운데 첫째갈 수 있을 것이요,
이 사람은 6바라밀을 구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라는 것 등을 분별하여 아시니,
如是知已 或爲略說得度 或爲廣說得度 或爲略廣說得度,
或以軟語教 或以苦語教 或以軟苦語教。
이와 같이 미리 아신 뒤에 (각각에 맞추어서) 혹은 간략하게 약설(略說)하여서 제도하시고,
혹은 자세히 설하는 광설(廣說)로써 제도시키시며
혹은 간략하게 또는 자세하게 설하여 주어서 제도시키시니,
혹은 부드러운 말로써 가르쳐 주기도 하고, 혹은 간절한 말로써 가르쳐 주기도 하며,
혹은 부드럽고도 간절한 말로써 가르쳐 주시기도 하시며,
佛亦分別 是人有餘根 應令增生信根, 是人應令 生精進 念定慧根。
부처님께서는 또한 분별하시되 “이 사람은 다른 근(根)도 있지만 신근(信根)이 더욱 나게 하여 주는 것이 마땅하며,
이 사람은 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 등이 나게 하여 주어야 하며,
是人用信根入正位 是人用慧根入正位。是人利根 爲結使所遮 如鴦群梨摩羅等。
이 사람은 신근(信根)으로써 바른 계위의 정위(正位)에 들게 될 것이요,
이 사람은 혜근(慧根)으로써 정위(正位)에 들게 될 것이요,
이 사람은 영리한 이근(利根)이나 번뇌의 결사(結使)에 막혀 있음이 마치 앙군리마라(鴦群梨摩羅, Aṅgulimāla) 등과 같으며,
是人利根 不爲結使所遮 如舍利弗 目連等。
知根雖鈍而無遮 如周利般陁伽, 有根鈍而遮者。
이 사람은 이근(利根)이면서 번뇌의 결사(結使)에 막혀 있지 않음이 마치 사리불이나 목련 등과 같음을 분별하여 아시나니, 비록 근기가 둔하다 하여도 막힘이 없음이 마치 주리반타가(周利般陀伽, Cūḍapanthaka)와 같다거나
근기가 둔하면서도 막혀 있는 이도 다 아시며,
정위(正位)= 사지(四地)인 불퇴위(不退位)라는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르게 어긋남 없이 ‘공(空)’하게 자리 하게 된 것을 뜻함- 마하반야바라밀다경
知是人見諦所斷根鈍 思惟所斷根利, 思惟所斷鈍 見諦所斷利。
이 사람은 진리를 보는 견제도(見諦道, 불퇴위)에서는 끊을 바 근(根)이 둔하나, 사유도(思惟道)에서는 끊을 바 근(根)이 영리하며,
이 사람은 사유도(思惟道)에서는 끊을 바 근(根)이 둔하나, 진리를 보는 견제도(見諦道, 불퇴위)에서는 끊을 바 근(根)이 영리하며,
是人一切根同鈍同利 是人一切根不同鈍不同利。
是人先因力大 是人今緣力大。是人欲縛而得解 是人欲解而得縛。
이 사람은 일체 근(根)이 같이 둔하고 같이 영리하고,
이 사람은 일체 근(根)이 같이 둔하지도 않고 같이 영리하지도 않으며,
이 사람은 전세의 업의 인(因)의 힘이 크며,
이 사람은 현세의 연(緣)의 힘이 크며,
이 사람은 삼박(三縛)에 속박되려 하다가 해탈을 얻으며,
이 사람은 해탈하려 하다가 삼박(三縛)에 속박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아시니,
譬如鴦群梨摩羅 欲殺母 害佛而得解脫。如一比丘得四禪 增上慢故 還入地獄。
비유하자면, 마치 앙군리마라가 어머니를 죽이고 부처님을 해치려 하다가 해탈하게 된 것과 같으며,
마치 어느 한 비구는 4선(四禪)을 얻었으면서도 증상만(增上慢) 때문에 도리어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知是人必墮惡道 是人難出 是人易出 是人疾出 是人久久乃出。
如是等 一切衆生 上下根相皆悉遍知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四力”
이 사람은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며,
이 사람은 세간을 벗어나기가 어려우나 이 사람은 나오기가 쉬울 것이며,
이 사람은 빨리 벗어날 것이고, 이 사람은 오래오래 되어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며,
이와 같이 온갖 중생들의 상하 근기의 모양을 모두 다 두루 아시나니,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이도 없고 보다 수승한 이도 없으니 이러함을 네 번째 힘인 제사력(第四力)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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