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力釋論第三十九卷二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9. 초품 중 십력(十力)의 뜻을 풀이함 4

 

“業報智力”者 身口所作業 及此生無作業 所受戒業 亦惡業

日夜隨生業用 生罪福業。是業 佛略說三處攝 是名一切業相。

업보지력(業報智力)이라 함은 몸과 입으로 짓는 업과 이 생에서 지음이 없는 업의 차생무소작업(此生無作業)과 받은 바의 계율에 대한 업과 또한 악업은 낮이나 밤이나 따라 다니면서 업의 작용= 업용(業用)을 내고 죄와 복의 업을 내는 것이다.

이 업을 부처님께서는 요약하여 신구의(身口意) 삼처(三處)에 속함을 말씀하셨나니, 이것을 일체의 업상(業相)이라 한다.

 

佛知一切衆生有業過去 報亦過去, 有業過去 報在現在, 有業過去 報在未來,

有業過去 報在過去 現在, 有業過去 報在過去 未來, 有業過去 報在現在未來,

有業過去 報在過去未來現在。現在業亦如是。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은 그 과보(果報) 역시도 과거 세상에 있었고,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현재 세상에서 그 과보를 받으며,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그 과보는 미래 세상에 있게 되는 것이며,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그 과보는 과거와 현재에 있게 되는 것이며,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그 과보는 과거와 미래에 있게 된 것이며,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그 과보는 현재와 미래에 있게 되며,

과거 세상에 지은 업(業)이 있음으로 해서 그 과보는 과거 미래 현재 세상에 있게 되는 것을 아시며, 현재의 업(業)도 역시 그와 같음을 아시며, 

 

復次 善心中受善不善 無記業報, 不善心 無記心亦如是。

또한 착한 마음인 선심(善心) 가운데에는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의 업보(業報)가 있으며,

착하지 않은 마음의 불선심(不善心)과 무기의 무기심(無記心) 역시도 그와 같으며, 

 

復次 樂業因緣故受樂報 苦業因緣故受苦報 不苦不樂業因緣故 受不苦不樂報。

또한 즐거운 낙업(樂業)의 인연 때문에 즐거운 과보를 받게 되며,

괴로운 고업(苦業)의 인연 때문에 괴로운 과보를 받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불고불락업(不苦不樂業)의 인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며, 

 

現報業因緣故受現報 生報業因緣故受生報 後報業因緣故受後報。

현세에서 업을 짓고 현세에서 받게 되는 현보(現報, 순현보順現報)의 눈에 보이는 업의 인연(dṛṣṭadharmavedanīya) 때문에 현세에서 과보를 받고,

현세에서 짓고 후세에서 받는 생보(生報, 순생보順生報)의 업의 인연으로 후세에 과보를 받으며,

현세에서 지은 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게 되는 후보(後報, 순후보順後報)의 업의 인연 때문에 삼생(三生) 이후에 과보를 받게 되기도 하며, 

 

不淨業因緣故受惱報 淨業因緣故受無惱報 雜業因緣故受雜報。

부정업(不淨業)의 인연 때문에 고뇌의 과보인 뇌보(惱報)를 받으며,

청정한 정업(淨業)의 인연 때문에 고뇌 없는 무뇌보(無惱報)를 받으며,

선과 악이 섞인 잡업(雜業)의 인연 때문에 뒤섞인 과보의 잡보(雜報)를 받는 것이다.

 

復次 二種業, 必受報業 不必受報業。必受報業 不可得離 或待時待人 待處受報。

또한 두 가지의 업이 있으니, 곧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는 필수보업(必受報業)과

반드시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닌 불필수보업(不必受報業)이라.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는 필수보업(必受報業)은 여윌 수가 없는 것으로

혹은 때를 기다리는 대시(待時)이기도 하고, 사람을 기다리는 대인(待人)이기도 하며,

장소를 기다리는 대처(待處, sthāna)로써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如人應共轉輪聖王受福, 待轉輪聖王好世出 是時乃受 是爲待時,

待人者 人卽是轉輪聖王, 待處者 轉輪聖王所出處。

마치 사람이 전륜성왕과 같은 복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면 전륜성왕의 좋은 세상을 기다리다가 그 때에 나와서 비로소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은 때를 기다리는 대시(待時)이며, 

사람을 기다리는 대인(待人)의 사람이란 곧 전륜성왕을 말하는 것이며,

장소를 기다리는 대처(待處)라 함은 전륜성왕이 나오게 되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復次 是必受報業 不待技能功勳 若好若醜 不求自來。如天上生人 福樂自至,

地獄中人 罪苦自追。不待因緣 此業深重故。

또한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할 필수보업(必受報業)이라면 때(시기), 사람, 장소의 기능이나 공훈(功勳)을 기다리지도 않으며, 혹은 좋고 혹은 추하거나 간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것이니,

마치 천상에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복과 즐거움이 저절로 이르러 오고,

지옥에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죄와 고통이 저절로 따르는 것과 같이

필수보업(必受報業)은 깊고 무겁기 때문에 인연을 기다리지 않으며, 

 

復次 必受報業 如毘琉璃軍殺七萬二千諸得道人 及無量五戒優婆塞

如目連等大神通人所不能救。如薄拘羅 後母投著火中 湯中 水中而不死。

또한 필수보업(必受報業)이면 마치 비유리(毘琉璃, Virūḍhaka)의 군사들이 도(道)를 얻은 7만 2천의 여러 득도한 사람들과 오계(五戒)를 받아 지닌 무량한 우바새(優婆塞)들를 살해할 때에는 목련(目連, 목건련) 존자와 같은 큰 신통을 지닌 분들도 그것을 구제할 수 없었던 것과 같으며,

또한 마치 박구라(薄拘羅, Bakkula)는 그의 계모=후모(後母)를 불 속과 끓는 물속과 강물 속에 던져 넣었는데도 죽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비유리(毘琉璃, Virūḍhaka, Viḍūḍabha. 비루리(毘樓璃)라고도 한다. 파세나디왕이 왕비감을 요구하자 석가족은 신분이 낮은 여자를 대신 보냈는데,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비루리이다. 그는 뒤에 이 일을 알고는 크게 분개해 사위성을 공격해 석가족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如佛遊諸國 雖出家行乞 不須膳供 而五百乘車載王所食 葉中生粳米

隨飯百味羹。如是等善惡業必受。餘者不必受。

마치 부처님께서 여러 나라를 유행하실 때에, 비록 출가하여 걸식을 하시면서 좋은 공양을 바라지 않으셨으나, 5백대의 수레에 왕이 먹는 음식을 실어 왔으니, 잎사귀 안에서 멥쌀이 나오는 것이 밥에 따라 맛있는 국이 나오는 것과 같았으니, 이와 같은 등의 선악(善惡)의 업은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이나, 그 밖의 것은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欲界受三種業報處, 樂受業 苦受業 不苦不樂受業。

욕계(欲界)란 세 가지의 업보를 받는 곳이니, 곧 즐거운 느낌인 낙수업(樂受業)과 괴로운 느낌인 고수업(苦受業)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인 불고불락수업(不苦不樂業)이 그것이며,

흔히 말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사바(娑婆 Sahā)는 과보를 받는 과보토(果報土)라는 뜻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 

 

色界受二種業報處, 樂受業 不苦不樂受業。

색계(色界)에서는 두 가지의 업보를 받으니, 낙수(樂受)의 업과 불고불락수업(不苦不樂業)의 업이 그것이며, 

 

無色界受一種業報處, 不苦不樂受業。

무색계(無色界)에서는 한 가지의 업보를 받으니, 즉 불고불락수업(不苦不樂業)의 업이다.

 

或待事者 依是事得受業報。如弗迦羅婆王池中 生千葉金色蓮華

大如車輪 因是大會快樂 多人出家得道

혹은 일을 기다리는 대사(待事, vastvapekṣa)도 있으니, 일이 일어남에 의하여 업보를 받게 되는 것이라. 마치 불가라바왕(弗迦羅婆王, Pukkusāti)의 연못 속에서 천잎의 큰 수레바퀴만한 금빛 연꽃이 나오자, 이로 인하여 큰 모임을 열어 유쾌하게 즐거웠으며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된 것과 같다.

 

佛知一切衆生造諸業處 或欲界色界 無色界, 欲界 在何道中, 若天道 在何天中,

若人中 在何天下, 若閻浮提 在何國, 若是國 在何城 何聚落 何精舍 何土地,

若是城 在何里 何巷何舍 在何處。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들이 여러 업을 지은 곳이 욕계인가, 색계인가, 무색계인가를 아시니,

욕계면 어떠한 도(道)에 있었으며, 만일 천상의 세계면 어느 하늘에 있었으며, 만일 사람이라면 사천하의 어는 곳이었으며, 또 염부제(閻浮提)라면 어느 나라에 있었으며, 만약 나라이라면 어느 성(城)ㆍ어느 마을ㆍ어느 동네ㆍ어느 거리ㆍ어느 집이며 어느 장소에 있었음을 아시며,

 

知是業何等時作 過去一世 二世乃至百千萬世。

是業果報幾已受 幾未受, 幾必受 幾不必受。

또 이러한 업은 어떠한 때에 지었는가를 아시니, 곧 과거의 한 세상 두 세상 나아가 백천만의 세상에 이르기까지를 아시며,

이 업의 과보는 이미 얼마만큼 받았고, 얼마만큼을 아직 받지 않았으며, 얼마만큼은 반드시 받게 될 것이고, 얼마만큼은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아시며, 

 

知善不善所用事物 所謂刀杖 勅殺等 自殺 遣人殺, 諸餘惡業亦如是 善業亦如是

착하거나 착하지 않게 쓰여지는 사물을 아시나니, 이른바 칼 도(刀, śastra)나 몽둥이 장(杖, daṇḍa)나 살해의 교칙(敎勅, vadhaśāsana)으로 죽이게 되는 것과 자살(自殺)하거나 혹은 사람을 보내서 죽이는 것 등을 아시며,

그 밖의 여러 나쁜 업도 그와 같이 아시고 착한 업도 역시 그와 같이 아시며,

 

 知如是布施持戒 修善。施中所施何等 土地房舍 衣服飮食 醫藥臥具 七寶財物。

戒中受戒 自然戒 心生戒 口言戒, 一行戒 少分戒 多分戒 滿分戒, 一日戒 七善道戒

十戒 具足戒 定共戒。善福中修初禪 二 三 四禪, 慈心 悲喜捨心。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선행을 닦음도 그와 같이 아시나니,

보시할 때에는 베푸는 바가 토지인지 방사(房舍)ㆍ의복ㆍ음식ㆍ침구ㆍ칠보ㆍ재물인지를 아시고,

계율 가운데서도 받는 계율이 스스로 지키는 자연계(自然戒, dharmatāprātilambhikaśīla)인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심생계(心生戒, caitasikaśīla)인지, 구업을 잘 지키는 구언계(口言戒, vākśīla)인지

일행계(一行戒, ekadivasaśīla)인지 일부분만 지키는 소분계(少分戒)인지

많은 부분을 지키는 다분계(多分戒)인지 만분계(滿分戒)인지 일일계(日日戒)인지

칠선도계(七善道戒, saptakuśalakarmapatha)인지 10계(戒, daśa-śīla)인지 구족계(具足戒)인지

정공계(定共戒, samādhi-śīla)인지를 다 아시며,

착한 복을 닦는 것에서도 초선(初禪)인지 2선ㆍ3선ㆍ4선인지

자심(慈心)인지 비ㆍ희ㆍ사심(悲喜捨心)인지를 아시며,

 

 칠선도(七善道)= ①시절선도(時節善道) ②의선도(義善道) ③어선도(語善道) ④독일선도(獨一善道) ⑤원만구족선도(圓滿具足善道) ⑥청정조유선도(淸淨調柔善道) ⑦범행자비선도(梵行慈悲善道)
십계(十戒)= ①불살생(不殺生) ②불투도(不偸盜) ③불사음(不邪淫) ④불망어(不妄語) ⑤불고주(不酤酒-술 팔지 말 것) ⑥불설사중과계(不說四衆過戒-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 것) ⑦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욕하고 비방하지 말 것) ⑧간석가훼계(慳惜加毁戒-인색하여 보시하지 않거나 남의 훼방을 말 것) ⑨진심불수회계(瞋心不受悔戒-진심을 풀지 않고 남의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짓을 말 것) ⑩방삼보계(謗三寶戒-삼보를 비방하지 말 것)
정공계(定共戒)= 선정에 들어 스스로 악을 여의고자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켜 산란하지 않게 함으로써 저절로 허물이나 악을 방지하게 되는 것.
 

如是等善業因緣。若慳貪 若瞋恚 若怖畏 若邪見 若惡知識等種種惡業因緣。

福業因緣, 若信 若憐愍 若恭敬 若禪定 若智慧 若善知識等種種善業因緣。

이러한 등의 착한 업의 인연이나 또는 간탐ㆍ성냄ㆍ두려워함ㆍ삿된 소견ㆍ삿된 벗 등에 관한 갖가지 악업의 인연을 아시며, 복된 업의 인연으로서는 믿음ㆍ연민ㆍ공경과 선정과 지혜와 선지식 등의 갖가지 선업의 인연을 아시며, 

 

是諸業自在 一切天及人 是諸業相無能轉者 於億千萬世常隨逐衆生不捨 如債主隨人。

得因緣具足 便與果報, 如地中種子 得因緣時節和合便生。

이 모든 업에 대하여 자재(自在)함으로 온갖 하늘과 사람으로서는 바꿀 수 있는 이가 없으며,

억천만의 세상 동안에 항상 그 중생을 따르면서 버리고 떠나지 않음은 마치 빚쟁이가 빚진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과 같으며, 인연을 구족하게 되면 곧 그 과보를 주게 되는 것이 마치 땅속에 있는 종자가 인연과 시절의 화합을 얻게 되면 곧 싹을 틔우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是業能令衆生 六道中受生 駛疾於箭。一切衆生皆有諸業報分,

如父母遺財 諸子皆應得分。是業果報時到 不可遮止 如劫盡火。

이 업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육도(六道) 가운데에서 생(生)을 받게 함이 화살보다 더 빠르니, 일체 중생이 다 모든 업보의 몫= 업보분(業報分, karmadāyāda)이 있음이 마치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면 아들들이 모두 받아야 할 몫을 받게 되는 것과 같으며, 

이렇게 업의 과보는 때가 되면 막거나 중지할 수 없으니, 마치 겁(劫)이 다할 때의 불과 같은 것이다.

 

隨衆生應生處 處處安置 如大國王 隨其所應而與官職。

人命終時 是業來蔭覆其心 如大山映物。是業能與種種身 如工畫師作種種像。

중생이 마땅히 태어나야 할 곳에 따라 태어나고, 태어나는 곳곳에 안전하게 잘 놓이게 됨은 마치 큰 나라의 왕이 능력에 알맞게 신하에게 관직을 주는 것과 같으며,

사람의 목숨이 다할 때에 이 업이 와서 그의 마음을 가리고 덮는 것이 마치 큰 산이 전경을 가로막는 것과 같으며,

이 업이 갖가지의 몸을 받게 하는 것은 마치 장인과 화가가 갖가지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若人以正行業 則與好報, 若以邪行業 則與惡報。

如人事王 隨事得報。如是等分別諸業相果報。

만약 사람이 바른 행으로써 지은 업이면 곧 좋은 과보를 주고, 만일 삿된 행으로써 지은 업이면 곧 나쁜 과보를 줌은 마치 사람이 왕을 섬길 때에 그의 일에 따라 보수를 받는 것과 같이 모든 업의 업상(業相)과 그 과보를 분별하시며, 

 

復次 如『分別業經』中 佛告阿難, “行惡人好處生 行善人惡處生" 阿難言, “是事云何?"

또한 마치 '분별업경(分別業經, Karmavibhaṅgasūtra)'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악을 행한 사람도 좋은 곳에 가서 나고 선을 행한 사람도 나쁜 곳에 태어날 수도 있느니라.”

그러자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佛言, “惡人今世罪業未熟 宿世善業已熟 以是因緣故 今雖爲惡而生好處。

或臨死時 善心心數法生 是因緣故 亦生好處。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악인이 지은 금세(今世)의 죄업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는데 숙세(宿世)에 지었던 착한 업이 벌써 성숙한지라 이 인연 때문에 지금 비록 악을 행하고 있다 하여도 좋은 곳에 와서 태어나게 되며,

혹은 죽으려 할 때에 착한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이 생겼으므로 이 인연 때문에 역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기도 하며, 

 

行善人生惡處者 今世善未熟 過世惡已熟 以是因緣故 今雖爲善而生惡處。

或臨死時 不善心心數法生 是因緣故 亦生惡處"

선을 행한 사람이 나쁜 곳에 난다 함은, 금세(今世)에 짓는 착한 업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으나, 과거 세상에 지었던 악이 벌써 성숙한지라 이 인연 때문에 지금은 비록 선을 행하고 있다 하여도 불행한 곳에 태어나게 되며, 혹은 죽으려 할 때에 착하지 않은 마음과 마음에 속한 심수법(心數法)이 생겼으므로 이 인연 때문에 역시 불행한 곳에 태어나기도 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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