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力釋論第三十九卷二十四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9. 초품 중 십력(十力)의 뜻을 풀이함 7
是易出易拔 是難出難拔, 是畏罪 是重罪, 是畏生死 是不畏生死,
是多欲 是多瞋 是多癡, 是多欲瞋 是多欲癡 是多瞋癡 是多欲瞋癡;
이 사람은 벗어나게 하기도 쉽고 구제하기도 쉬울 것이고, 이는 벗어나게 하기도 어렵고 구제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는 죄를 두려워하고, 이는 중한 죄가 있고, 이는 생사를 두려워하고, 이는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는 음욕이 많고, 이는 성냄이 많고, 이는 어리석음이 많고, 이는 음욕이나 성냄이 많고, 이는 성냄이나 어리석음이 많고, 이는 음욕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이 모두 많으며,
是薄煩惱 是厚煩惱, 是少垢 是多垢, 是覆慧 是衣裓慧 是廣慧,
이는 번뇌가 얇고, 이는 번뇌가 두텁고, 이는 허물 구(垢)가 적고, 이는 허물이 많고, 이는 지혜가 가리워져 있고, 이는 겉치레의 지혜만 있고, 이는 넓은 지혜가 있다.
是人善知五衆相 十二入 十八界 十二因緣 是處非是處 苦集滅道,
善知入定 出定 住定。
이 사람은 5중(五衆, 오온)의 상(相)과 십이입(十二入) 십팔계(十八界) 십이인연(十二因緣)과 옳은 시처(是處)와 옳지 않은 불시처(不是處), 괴로움의 고(苦)ㆍ괴로움이 쌓이는 집(集)ㆍ괴로움이 사라진 멸(滅)ㆍ벗어나는 도(道)를 잘 알며, 정(定, 선정)에 잘 들어가고, 선정에서 나오고, 선정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을 아시며,
復次 佛知, 是欲界衆生 是色界 是無色界衆生, 是地獄畜生 餓鬼人天,
是卵生胎生 濕生化生, 是有色 是無色, 是有想 是無想, 是短命 是長命;
또한 부처님께서는, 이는 욕계(欲界)의 중생이요, 이는 색계(色界)의 중생이며, 이는 무색계(無色界)의 중생요, 이는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천상의 중생이고, 이는 난생(卵生, jarāyuja)ㆍ태생(胎生, aṇḍaja)ㆍ습생(濕生, saṁsvedaja)ㆍ화생(化生,upapāduka)이요. 이는 모양이 있는 유색(有色)이고, 이는 모양이 없는 무색(無色)이고, 이는 생각이 있는 유상(有想)이고, 이는 생각이 없는 무상(無想), 이는 수명이 짧고 이는 수명이 길다는 것을 아시며,
是但凡夫人未離欲 是凡夫人離下地欲 未離禪欲 如是乃至非有想非無想,
是向道 是得果, 是辟支佛 是諸佛得無㝵解脫。
이는 다만 범부로서 아직 욕망을 여의치 못한 사람이고, 이는 범부로서 아래 경지인 하지(下地)의 욕망은 여의었으나 아직 선욕(禪欲)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에까지 이르기까지를 아시며,
이는 도를 향하는 향도(向道)에 있고, 이는 과위를 얻어 득과(得果)를 하였고, 이는 벽지불이고, 이는 모든 부처님의 무애해탈(無礙解脫)을 얻었다는 것을 아시나니,
如是等種種分別, 五道 四生 三聚 假名 障 衆 入 界 善根 不善根 諸結使
地 業果 是可度 是不可度 滅 智分別。
이와 같이 갖가지로 오도(五道)ㆍ사생(四生, 난생 태생 습생 화생)ㆍ선도 악도 열반도의 삼취(三聚)ㆍ가명(假名)ㆍ장애 장(障)ㆍ오음(五陰)ㆍ육입(六入)ㆍ십팔계(十八界)와 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모든 번뇌의 제결사(諸結使)ㆍ경지 또는 지위의 지(地)ㆍ업과(業果)를 분별하여 아시며, 이는 제도할 수 있는 가도(可度)이고, 이는 제도할 수 없는 불가도(不可度)라는 것을 번뇌가 사라진 멸(滅)의 지혜로써 분별하여 아시나니,
以如是等分別 知世閒種種別異性 得無㝵解脫。
如是等種種別異 佛悉遍知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六力”。
이와 같은 등의 분별로써 세간의 갖가지 다른 성품을 아심에 장애가 없는 무애해탈(無礙解脫)을 얻으셨으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다름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두루 아시는 것을 깨뜨릴 수 있는 이도 없고 보다 수승한 이도 없는 것이라.
이를 여섯 번째의 힘인 제육력(第六力)이라 한다.
“一切至處道智力”者。有人言, 業卽是道。所以者何, 業因緣故 遍行五道。
有業能斷 業能有所至 所謂三聖道分及無漏思。以是故 諸業是一切至處道。
일체중생을 열반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힘인 일체지처도지력(一切至處道智力)이라 함이란,
어떤 사람은, “업(業)이 곧 도(道, pratipad)라 하였으니, 왜냐하면, 업의 인연 때문에 오도(五道)를 두루 오고 가는 것이며, 업이 있으면 능히 업을 끊고서 이를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니, 이른바 세 가지 거룩한 길의 삼성도분(三聖道分)과 무루의 사유인 무루사(無漏思)이라. 이 때문에 제업이 바로 온갖 곳에 이르는 길인 일체지처도(一切至處道)라고 말하였으며,
復次 有人言, 五分五智三昧 [丹云; 無漏三昧禪五支] 住一切處利益事辦.
또한 어떤 사람은, “오별오지삼매(五別五智三昧, 오분오지삼매五分五智三昧)가 - 단주(丹注)에서는 무루삼매선오지(無漏三昧禪五支)라 한다. - 일체처에 머무르면서 이익되는 일을 이루어 마친다”고 말하였으며,
復有人言, 第四禪卽是。何以故, 第四禪一切諸定至處。
如諸『經』中說, 是善心 定心 不亂心 攝心 皆入第四禪中。
復次 有人言, 如身念處 卽是至處道 是諸道利益之本。
또한 어떤 사람은, “제4선(第四禪)이 곧 그것이다. 왜냐하면, 제4선은 온갖 모든 선정이 이르는 곳이기 때문이니, 모든 경전에서의 설명과 같이 착한 마음의 선심(善心)과 안정된 마음의 정심(定心)과 어지럽지 않은 마음의 불란심(不辭心)은 마음을 감싸들여서 가다듬게 하는 것이니 모두가 제4선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고 말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신념처(身念處)와 같은 것이 곧 이르러야 할 곳(열반)의 길이니, 이 모든 도(道, 길)가 이로움의 근본이다”고 말하였으며,
復有人言, 一切聖道是 用是聖道得隨意利益。
復有論者言, 一切善道 一切惡道 一切聖道 各各知諸道至處, 如毛豎經中說。
또 어떤 사람은, “온갖 거룩한 성도(聖道, āryamārga)가 그것이니, 이러한 성도(聖道)를 이용함으로써 뜻한 바의 이로움을 얻게 된다”고 말하였으며,
어떤 논자(論者, 논사)는, “일체의 착한 선도(善道)와 일체의 악도(惡道)와 일체의 성도(聖道)에는 저마다 각각의 길을 통하여 이르게 되는 지처(至處)을 아나니, 모수경(毛豎經, Romaharṣaṇīyasūtra)에서 설한 바와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나,
佛悉遍知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七力。
부처님께서는 이 모두를 두루 아시니,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고 보다 수승한 이도 없으니, 이를 일곱 번째의 힘인 제칠력(第七力)이라 하는 것이다.
“宿命智力”者 宿命有三種, 有通 有明 有力。
凡夫人但有通 聲聞人亦通 亦明 佛亦通 亦明 亦力。
숙명을 아시는 숙명지력(宿命智力)이라 함이란, 숙명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 곧 걸림이 없는 통(通)이 있고, 분명한 밝은 지혜의 명(明)이 있고, 역(力, 힘)이 있는 것이라.
범부의 사람은 다만 통(通)이 있을 뿐이고, 성문의 사람은 통(通)도 있고 명(明)도 있으며, 부처님은 통(通)도 있고 명(明)도 있고 역(力, 힘)도 가지고 계신다.
所以者何, 凡夫人但知宿命所經 不知業因緣相續, 以是故凡夫人 但有通 無有明。
聲聞人知集諦故 了了知業因緣相續生, 以是故 聲聞人亦有通 亦有明。
왜냐하면, 범부의 사람은 경을 통해서 다만 숙명을 알 뿐, 업의 인연이 상속되는 것을 모르는 까닭에 범부의 사람은 다만 통(通)만이 있고 명(明)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성문의 사람은 집제(集諦)를 알기 때문에 업의 인연이 상속하면서 생김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성문의 사람은 통(通)도 있고 명(明)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若佛弟子 先凡夫人時得宿命智 入見諦道中知集因緣 第八無漏心得斷見故
通變爲明。所以者何, 明名見根本。若佛弟子先得聖道 後宿命智生
亦知集因緣力故 通變爲明。
만약 부처님의 제자라면 먼저 범부일 때에는 전생 일을 아는 지혜인 숙명지(宿命智)를 얻고, 견제도(見諦道)에 들어가서 오온과 괴로움의 쌓임인 집(集)의 인연을 알아 제8의 무루심(無漏心)에서 소견을 끊게 되기 때문에 통(通)이 변하여 명(明)이 되나니, 왜냐하면, 명(明)은 바른 소견의 근본인 견근본(見根本)이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의 제자가 먼저 성도(聖道)를 얻고 그 뒤에 전생을 아는 숙명지(宿命智)가 생긴다 하여도 역시 괴로움의 쌓임인 집(集)의 인연의 힘을 알기 때문에 통(通)이 변하여 명(明)이 되는 것이다.
問曰; 若佛本爲菩薩時 先得宿命智 諸菩薩離無所有處煩惱
後入聖道故, 云何佛說“我初夜得初明”?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본시 보살이셨을 때에, 먼저 전생의 일을 아는 숙명지(宿命智)를 얻으셨다고 한다면,
모든 보살들은 무소유처(無所有處, ākiñcanyāyatanaṃ.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경지)에서 모든 번뇌를 여읜 뒤에 성도(聖道)에 들게 되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나는 초저녁= 초야(初夜)에 처음으로 명(明)을 얻었다”고 하신 것입니까?
答曰; 是時非明 若佛在衆中 說我彼時得是明。示衆人言, 是明初夜得。
답하나니, 그 때의 것은 명(明)이 아닌, 삼명(三明, 숙명명, 천안명, 누진명)이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계시면서 “나는 그 때에 이 명(明)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대중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이 명을 초야(初夜)에 얻었다”고 하신 것이다.
譬如國王未作王時生子 後作王時 人問, “王子何時生?”
答言, “王子某時生" 是生時未作王 以今是王故 以彼爲王子 言, “王子彼時生"
비유하자면, 마치 국왕이 아직 왕이 되지 않았을 때에 아들을 낳았으나 뒤에 왕이 되었을 때에 사람들이 “왕자(王子)를 어느 때에 낳았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왕자는 아무 때의 모시(某時)에 낳았다”고 하나니, 그 낳은 때는 아직 왕이 되기 전이었으나 지금은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왕자라 여기면서 “왕자는 그 때에 낳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佛亦如是 宿命智生 爾時未是明 但名通, 後夜時知集因緣故 通變爲明,
後在衆中說言, “我初夜時得是明"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와 같아서 숙명지(宿命智)가 생긴 때에는 아직 명(明)이 아니고 다만 통(通)이라 하였지만, 새벽= 후야(後夜)에 쌓임의 인연을 아셨기 때문에 통(通)이 변하여 명(明)이 된 것이다. 이에 뒷날 대중 가운데에서 말씀시기를 “나는 초야(初夜)에 이러한 명(明)을 얻었다”고 하신 것이다.
問曰; 通 明義如是 云何爲力?
묻나니, 통(通) 명(明)에 대한 정의(定義)는 그러하나, 어찌하여 역(力, 힘)이라 하는 것입니까?
答曰; 佛用是明 知己身及衆生 無量無邊世中 宿命因緣所更 種種悉遍知
是爲“力”。是名“第八力”。
답하나니, 부처님은 이 명(明)으로써 당신 스스로와 중생을 아시며, 무량하고 무변한 세계의 숙명에 의한 인연으로 되풀이 되는 갖가지를 모두 두루 아시므로 이를 역(力, 힘)이라 하며, 이것을 여덟 번째의 힘인 제팔력(第八力)이라 하는 것이다.
“生死智力“者 佛用天眼 見衆生生死處。凡夫人用是天眼 極多見四天下,
聲聞人極多傍見小千世界 上下亦遍見。
생사를 아시는 생사지력(生死智力)이라 함은,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중생의 나고 죽는 곳을 보시나, 범부는 이 천안(天眼)으로써 아무리 멀리 본다 하여도 사천하(四天下)까지이고, 성문은 아무리 멀리 본다 하여도 겉으로 소천(小千, sāhasracūḍika lokadhātu)세계의 위와 아래를 두루 볼 수 있을 뿐이다.
問曰; 大梵王亦能見千世界 有何等異?
묻나니, 대범천왕(大梵天王, Brahmarāja)도 역시 천(千)의 세계를 볼 수 있거늘, 그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答曰; 大梵王自於千世界中立則遍見, 若在邊立 則不見餘處。聲聞人則不爾 在所住處
常見千世界。辟支佛見百千世界 諸佛見無量無邊諸世界。
답하나니, 대범천왕은 스스로 천(千)의 세계 안에 서 있으므로 곧 두루를 보게 되지만 만일 그 가장자리에 서 있게 된다면 그 밖의 곳은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성문은 머무르고 있는 곳에서 언제나 천의 세계를 볼 수 있고, 벽지불은 백천의 세계를 보며, 모든 부처님은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세계를 보신다.
凡夫人天眼智 是通而非明 亦如是 但見所有事
不能見隨業因緣受生 如宿命中說。
범부가 지닌 천안의 지혜는 바로 통(通)이지, 명(明)이 아닌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 다만 있는 일들만을 보고 업의 인연을 따라 생을 받는 것을 보지 못하나니, 숙명(宿命) 중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復次 得天眼人中最第一者阿泥盧豆 色界四大造色半頭淸淨是天眼。
佛天眼 四大造色遍頭淸淨。是爲差別。
또한 천안을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이로는 아니로두(阿泥盧豆, Aniruddha, 아나율) 존자인데 색계(色界)의 사대(四大)로 만들어진 물질로서 절반= 반두(半頭)만을 볼만큼 청정한 것이 그의 천안이지만, 부처님의 천안은 사대로 만들어진 물질을 두루 완전하게 낱낱이= 편두(遍頭)를 볼 수 있을만큼 청정한 것이라, 여기에 그 차이가 있는 것이다.
復次 聲聞人所住於三昧中得天眼 卽所住三昧中能見, 若有覺有觀三昧
若無覺有觀三昧 若無覺無觀三昧。佛隨所入三昧中住 欲見盡見,
若依無覺無觀三昧中得天眼 入有覺有觀三昧 若無覺有觀三昧中亦能見。
또한 성문인이 머무르는 삼매를 통하여 천안을 얻으면, 곧 그 머무른 바의 삼매 중에서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 초선)나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 이선)나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를 능히 볼 수 있으며,
부처님께서 삼매에 드시어 머무르실 때에는 보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보시게 되는 것으로, 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 삼선)에 의거하여 천안을 얻기도 하고,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에 들기도 하며, 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에 들기도 하시며, 능히 보시기도 하신다
復次 聲聞人用是天眼見時 所住三昧中 心入餘三昧 天眼則滅。
佛則不爾 心雖入餘三昧 天眼不滅。是智慧遍知一切衆生生死所趣
無能壞 無能勝 是名“第九力”。“漏盡智力”者。
또한 성문의 사람은 이 천안으로써 볼 때에 머무르고 있는 삼매에서 마음이 다른 삼매에 들어가게 되면 천안이 곧 소멸되지만, 부처님은 그렇지 않아서 비록 마음이 삼매에 드셨다 하여도 천안은 소멸되지 않으며, 그 지혜로써 온갖 중생이 나고 죽고, 그 취하여 나아가는 바를 두루 아시니, 이는 무너뜨릴 수 있는 이도 없고 보다 뛰어난 이도 없는 것이라.
이를 아홉 번째의 힘인 제구력(第九力)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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