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難問維摩詰(아난문유마힐) 是香氣住當久如(시향기주당구여)?

아난은 유마힐에게 물었다. '이 향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납니까?'

Ananda asked vimalakirti, How long does this fragrance last? 


維摩詰言(유마힐언) 至此飯消(지차반소)

유마힐이 답하였다. '이 밥이 소화될 때까지입니다.'

Vimalakirti said, Until completely digesting the rice. 


曰(왈) 此飯久如當消(차반구여당소)?

아난이 말하였다. “이 밥은 얼마나 있으면 소화됩니까?'

He asked How long will it be until completely digesting this rice? 


曰(왈) 此飯勢力至于七日(차반세력지우칠일) 然後乃消(연후내소)

유마힐이 답하였다. '이 음식의 기운=勢力은 7일이 지난 후에 소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He replied, The power of the fragrant rice takes as much as seven days before digesting. 

 

又阿難(우아난) 若聲聞人未入正位(약성문인미입정위) 食此飯者(식차반자)

得入正位(득입정위) 然後乃消(연후내소)

또 아난이여, 만약 성문인으로서 아직 바른 지위=正位에 이르지 못했을 때 이 밥을 먹으면, 정위에 이른 다음에야 소화되며, 

Also Ananda, if a voice-hearer who has not entered the place of awakening and eats this rice, they will not fully digest it until entering the place of awakening. 

[正位(정위)= 깨달음을 얻은 지위로 번뇌가 없는 경지이다. 성문이 무위열반(無爲涅槃)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已入正位(이입정위) 食此飯者(식차반자) 得心解脫(득심해탈) 然後乃消(연후내소)

이미 정위에 이른 사람이 이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心解脫이 된 다음에야 소화가 되며, 

For those who have enterend the place of awakening and ate the rice, they digest the rice upon attaining the liberation of the mind. 

 

若未發大乘意(약미발대승의) 食此飯者(식차반자) 至發意乃消(지발의내소)

만약 아직 대승의 뜻을 발하지 않았을 때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대승의 뜻을 일으킨 다음에야 소화가 되며, 

If someone who has not developed an intent for the Mahayana mind eats this rice, it becomes digested upon developing the intent. 

 

已發意食此飯者(이발의식차반자) 得無生忍(득무생인) 然後乃消(연후내소)

이미 대승의 뜻을 발한 후에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은 다음에야 소화되며, 

Those that have developed the intent and eaten the meal will digest it after attaining patience in non-arising. 

 

已得無生忍(이득무생인) 食此飯者(식차반자) 至一生補處(지일생보처) 然後乃消(연후내소)

이미 무생법인을 얻은 다음에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일생보처(ekajtipratibaddha)가 된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For those who have already attained patience in non-arising, it will only become digested upon reaching the birth where one attains Buddhahood.

[一生補處(일생보처)= 다음에 태어날 태에는 부처가 되므로 보살로서는 최고위(最高位). 이것을 불(佛)과 거의 같은 의미로 ‘등각(等覺)’이라고 한다.]

[차원이 한단계 한단계 높아지면서 전개되고 있다. 일생보처가 제일 높은 단계이며, 일생(一生)만 부처님을 보좌하는 보살로 있다가 그 다음에는 바로 성불하는 지위다.

‘일생보처에 이른 후에 소화됩니다’는 것은 거의 수행이 다 끝나야 소화가 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譬如有藥(비여유약) 名曰上味(명왈상미) 其有服者(기유복자) 身諸毒滅(신제독멸)

然後乃消(연후내소)

비유하자면 마치 상미라고 부르는 약이 있는데, 이것을 복용한 사람은 몸의 모든 독기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 약이 소화되는 것과 같이 

It is as if there’s a medicine called Top Taste that is digested only after the poisions in the body disappear. 

[상미라는 약은 몸에 있는 독기가 다 소멸한 뒤에 그 약이 소화가 된다는 것이다우리가 약을 먹으면, 그 병이 다 나으면 그 약의 기운도 또한 소멸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此飯如是(차반여시) 滅除一切諸煩惱毒(멸제일체번뇌독) 然後乃消(연후내소)

이 음식도 이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번뇌의 독이 완전히 없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Likewise, one has digested the rice after dispelling the poisons of mental afflictions.
[불교의 요체인 계와 정과 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은 그 자체로서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이면서 수행법이지만 그것이 만약 어떤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지장(所知障)이라고 한다오분법신향은 번뇌장을 없애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수행법이지만 번뇌를 없애고 나서 다시 진리를 깨닫고 알아야 할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소지장이 된다즉 알아야 할 것그 또한 장애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번뇌가 없어지고 깨달을 진리마저 남아있지 않아야 된다이러한 이치가 불교의 특징이다중향국의 밥을 먹고 몸에서 향기가 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끝내는 그 향기마저 모두 소화가 되어서 다 사라져서 본래대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처음 평지에서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다시 평지로 내려온 경우와 같은 것이다또한 사찰에서 마당을 쓸 때는 뒤로 걸어가면서 쓴다마당을 쓸고 지나간 발자국까지 마저 쓸어버린다는 뜻이다이 역시 불교의 이치를 잘 표현한 모습이다.]

 

作佛事(작불사)

[여러 가지 불사를 소개하는 이것이 중요한 법문이다. 부처님 불(佛)자와 일 사(事)자 불사(佛事)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일반적으로 불사는 법당을 짓는 것은 법당불사, 요사채를 짓는 요사채 불사, 화장실을 짓는다 해도 화장실 불사, 절에서 하는 모든 일은 불사가 된다.

그런 불사중에서도 사실 아주 높은 차원의 불사가 있고, 낮은 차원의 불사의 여러가지 차원이 있다

‘사람불사를 해야 된다’고 해서 사람불사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의 인재양성을 ‘사람불사다’고 표현한다. 장학금을 마련해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도 좋은 불사라고 알려져 있다.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절만 자꾸 짓는 것보다 인재를 발굴해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재, 즉 사람만 있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있고 어떤 절도 얼마든지 지을 수가 있다. 그런 면에 대해서도 우리 불자들이 바른 안목을 가지고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阿難白佛言(아난백불언) 未曾有也(미증유야) 世尊(세존) 如此香飯能作佛事(여차향반능작불사)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미증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같이 향기로운 밥=香飯이 불사(buddhakrya)를 지을 수 있다니요.'

 Ananda said to the Buddha, It is truly unprecedented! World Honoured One, in this way the fragrant meal can help do the deeds of the Buddha. 

[佛事(불사)=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는 일]

 

佛言(불언) 如是如是(여시여시) 阿難(아난) 或有佛土以佛光明(혹유불토이불광명)

而作佛事(이작불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와 같으니라. 아난이여, 혹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광명 (깨달음의 지혜)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The Buddha said, It is! It is! Ananda, there may be a Buddha-land where the brilliant light of the Buddha does the Buddha’s deeds, 

 

有以諸菩薩而作佛事(유이제보살이작불사) 有以佛所化人而作佛事(유이불소화인이작불사)

어떤 곳에서는 여러 보살들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께서 만드신 변화인=化人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where with the bodhisattvas to undertake the Buddha’s deeds, where the conjuration of the Buddha performs the works of the Buddha, 

[불사란 중생교화이다. 중향국에서는 향으로 불사를 짓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보였고, 이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갖가지 불사의 예를 들었다. 어떤 국토는 부처님의 광명이란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세상에는 빛이 있어야 사물을 분별하고 길을 갈 수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별한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중생은 명예나 금전에 눈이 어두워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지만 목적한 바를 성취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광명을 발하는 불을 가장 좋아한다. 법당에 인등을 밝히는 일이 그렇고 부처님 오신 날 등불을 밝히는 일이 그렇다. 모두가 지혜를 상징한다. 혹은 보살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 불사가 되기도 한다. 어떤 가르침보다도 훌륭한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有以菩提樹而作佛事(유이보리수이작불사) 有以佛衣服(유이불의복) 臥具而作佛事(와구이작불사)

어떤 곳에서는 보리수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의 옷과 침구로써 불사를 짓느니라.' 

where the bodhi tree performs the Buddha’s deeds, where with the Buddha’s clothing and bedding to perform the Buddha’s works, 

 

有以飯食而作佛事(유이반식이작불사) 有以園林臺觀而作佛事(유이원리대관이작불사)

어떤 곳에서는 음식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동산과 숲과 높은 누각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with the food to do the deeds of the Buddha, where the parks and towers does the Buddha’s works, 

 

有以三十二相(유이삼십이상) 八十隨形好而作佛事(팔십수형호이작불사)

어떤 곳에서는 32상과 80수형호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with the thirty-two marks of excellence and eighty noble qualities to work the Buddha’s deeds, 

 

有以佛身而作佛事(유이불신이작불사) 有以虛空而作佛事(유이허공이작불사)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의 몸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허공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나, 

where the Buddha-body performs the Buddha’s works, or where the vast emptiness performs the Buddha’s works. 

 

衆生應以此緣得入律行(중생으이차연득입율행)

중생이 마땅히 이러한 인연으로써 계율이 바른 수행=律行에 들어 갈 수가 있느니라.

Living beings conforming to such conditions gain entry to the practice of precepts. 

[중생을 교화하는 불사에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을 수 있다경전에서 소개한 대로 음식이라든가 동산이나 숲이나 32상 80종호와 같은 것으로 중생을 교화 한다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유를 알맞게 들어 설명함으로서 쉽게 교화를 받는 수도 있다그러므로 한두 가지의 내용이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한다고 고집해서는 옳지 않다반드시 참선이어야 한다거나염불이어야 한다거나간경이어야 한다거나주문이어야 한다거나절이라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다만 주장하는 사람의 편견일 뿐이다.]


有以夢幻影響(유이몽환영향) 鏡中像水中月(경중상수중월) 熱時炎(열시염)

如是等喩而作佛事(여시등유이작불사)

또 어떤 곳에서는 꿈, 환상, 그림자, 메아리 또는 거울 속의 그림자, 물 속에 비친 달, 더운 날의 아지랑이 등과 같은 비유로 불사를 이루며, 

There are where dreams, illusions, reflections, echoes, appearances amongst a mirror, moon in the water, or the flames when it is not, and other such analogies are for doing the works of the Buddha. 

 

有以音聲(유이음성) 語言文字而作佛事(어언문자이작불사)

어떤 경운는 음성, 언어, 문자로써 불사를 이루며, 

There is the undertaking of the Buddha’s deeds with sound, speech, and writing.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시대가 흘러가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경전으로 성문화 되고성문화가 되면서 많은 경전이 결집이 되어서, 그것을 통해서 부처님의 설법을 이천육백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까지도 우리가 이렇게 접해서 들을 수가 있으니, 참 좋은 불사다어떤 국토는 음성과 언어와 문자로써 불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맞은 말이고 좋고 훌륭한 불사이다.]

 

或有淸淨佛土(혹유청정불토) 寂寞無言(적막무언) 無說無示(무설무시)

無識無作(무식무작) 無爲而作佛事(무위이작불사)

어떤 경우에는 청정한 부처님 나라가 적막하여 말이 없는=無言, 설함도 없는=無說, 보여지지도 않는=無示, 식별됨도 없는=無識, 지음이 없는=無作, 작위가 없는=無爲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느니라.

Perhaps a pure land of a Buddha that’s tranquil without words, without speech, without explanation, with no consciousness, with no action, and is unconditioned that does as taught by the Buddha. 

[無作(무작)= 뜻함이 없으므로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는 것.

無爲(무위)=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는 것.]

[유마거사가 불이(不二)의 둘이 아닌 도리를 묵묵히 표현하여서 문수보살이 ‘둘이 아닌 이치를 잘도 표현했습니다’라고 높이 찬탄을 했다. 그와 같이 묵묵하고 아무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고 지음도 없고, 작위(作爲) 짓는 것도 없는, 이런 것으로써 불사를 짓는다. 묵묵히 있는 그것 또한 설법이고, 그것 또한 대답이다.

꼭 질문했을 때 거기에 맞는 소리를 해서 대답을 해야만이 대답이 아니라 묵묵부답도 대답이다. 묵묵히 있는 것도 또한 하나의 대답이라고 볼 수가 있다.]

 

如是阿難(여시아난) 諸佛威儀進止(제불위의진지) 諸所施爲(제소시위) 無非佛事(무비불사)

이와 같이 아난이여, 제불의 위의와 나아가고 머무는 행동거지=進止와 그 밖에 모든 베푸는 일들이 불사 아닌 것이 없느니라.

Thus, Ananda, from the coming and going of the Buddhas’ awe inspiration manners, their various deeds, non which do not do the works of the Buddhas.

[위의(威儀)는 행동거지이다. 부처님의 위의, 행동거지에 나아가고 머무는 온갖 시위하는 바가 불사가 아닌 것이 없느니라.

이런 이치가 분명히 있다. 부처님이 하는 일은 전부 불사가 된다. 그러나 중생이 하는 일은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중생사지 부처님의 일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우리가 부처님을 빙자해서 불사(佛事) 부처님의 일이라고 표현을 해서 온갖 불사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중생의 사량분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사이지, 불사가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유마경을 공부하는 일도 불사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중생이 설명하고 중생이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인연을 통해서 우리가 부처가 되어가고,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는 인연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불사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바는 아니다.]

 

[常求無念(상구무념) 實相智慧(실상지혜)。

부처님을 배워서 어떻게 공(空)을 증득할까요? 먼저 무념(無念)을 구해야 합니다. 무념이란 번뇌가 없는 것이요 잡념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정좌를 말하면 몇 사람이나 무념을 해낼 수 있을까요? 무념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무념은 무엇이든지 다 알며 대단히 청정한 경계입니다. 육조는 ‘무념위종(無念爲宗)’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해석하기를 ‘무(無)란 망상이 없는 것이요. 념(念)이란 진여를 사념하는 것이다[無者無妄想, 念者念眞如].’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념은 두 가지 관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무념은 완전히 생각이 없는 것일까요? 생각이 있습니다. 정념(正念)이 항상 있습니다. 즉, 8정도(八正道)의 정사유(正思惟)입니다. 인생은 혼침 아니면 산란 속에 있어서, 일생동안 이 두 가지 속에서 구르고 있습니다. 정(定)을 얻음은 혼침하지 않은 것이요 산란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 정(定)의 경계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망념이 청정하고 정념(淨念)이 현전하는 것으로서, 즉 무념입니다.

무념에 도달한 뒤에는 자연히 공성(空性)을 볼 수 있으며 반야지혜가 있게 됩니다. 이것은 반야실상(般若實相)의 근본 지혜이지 보통의 지혜가 아닙니다. 무엇이 실상일까요? 실상은 무상(無相)입니다. 온갖 상(相)은 모두 공(空)합니다. 즉,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제법공상(諸法空相)’입니다.-홍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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