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難(아난) 有此四魔(유차사마) 八萬四千諸煩惱門(팔만사천제번뇌문)

而諸衆生爲之疲勞(이제중생위지피로) 

아난이여, 네 가지 마군=四魔과 (그로부터 생긴) 8만 4천의 번뇌들을 모든 중생들이 고달파하지만, 

Ananda There are four demons and eighty-four thousand gates of various mental afflictions, and all beings are weary by them, 

[八萬四千諸煩惱門(팔만사천제번뇌문) 수많은 것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팔만사천광명(八萬四千光明)’ 등으로 쓰인다.]

[사마(四魔)= 네 가지 마군이란 번뇌마(煩惱魔), 오온마(五蘊魔), 천마(天魔), 사마(死魔)일반적으로 불교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마군을 가장 싫어한다그래서 참선을 하거나 경을 읽어나 집을 짓거나 행사를 하거나 모든 일에 번뇌나 마군은 방해하는 장애물로 여겨서 그것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유마경에서는 이 네 가지 마군뿐만 아니라 8만 4천 번뇌까지 모두가 불사를 짓는 소재가 된다고 하였다마찬가지로 8만 4천 번뇌는 실로 번뇌가 아니라 진여불성의 미묘한 작용이다.]

 

諸佛卽以此法而作佛事(제불즉이차법이작불사) 是名入一切諸佛法門(시명입일체제불법문)

모든 부처님들은 이 (번뇌를 통한) 법으로써 불사를 이루시니, 이같이 교화하는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문에 들어감=入一切諸佛法門이라고 하니, 

but the Buddhas perform the deeds of a Buddha with such a Dharma—it’s called entering the Dharma gate of all Buddhas.

 

菩薩入此門者(보살입차문자) 若見一切淨好佛土(약견일체정호불토)

不以爲喜(불이위희) 不貪不高(불탐불고)

보살이 이 법문에 들어간 이는, 만약 청정하고 아름다운 부처님 국토를 보아도 기뻐하지 않으며, 탐내거나 잘난 척하지도 않으며, 

If a bodhisattva enters such a gate and sees all the tranquil and beautiful Buddha lands, he does not think of it with delight, attachment, or conceitedness. 

 

若見一切不淨佛土(약견일체부정불토) 不以爲憂(불이위우) 不碍不沒(불애불몰)

만약 청정하지 못한 불토를 보아도 근심하지 않으며, 장애를 받지도 않고, 빠져 들지도않으니,

When he perceives all the impure Buddha lands, he does not regard it with concern, hindrance, or disappointment. 

 

但於諸佛生淸淨心(단어제불생청정심) 歡喜恭敬(환희공경) 未曾有也(미증유야)

다만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내어, 기뻐하고 공경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여길 뿐이니,

Yet he gives rise to a pure mind for the Buddhas, with unprecedented joy and reverence.

 

諸佛如來功德平等(제불여래공덕평등) 爲化衆生故(위화중생고)

而現佛土不同(이현불토부동)

제불여래의 공덕이 평등하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불토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니라.

The merits of the Buddhas, the Tathagatas, are without partiality, but for the sake of teaching and transforming all living beings, thus manifesting various Buddha lands.

[진정한 불사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팔만사천 번뇌를 떠나야할 것, 괴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여기지만 모든 부처님은 이 법으로써 불사를 이룬다. 팔만사천 번뇌로써 불사를 삼는다는 것이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번뇌없이 보리, 즉 깨달음이 있을 수가 없다. 깨달음은 곧 번뇌로부터 있게 되므로 번뇌가 깨달음의 밑거름이다.

그러므로 팔만 사천 번뇌가 불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고 불 속에서 연꽃이 핀다. 어려움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다. 배고프고 주린 데서 도 닦을 마음을 발하는 이치다. 이치를 꿰뚫고 보면 전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阿難(아난) 汝見諸佛國土(여견제불국토) 地有若干(지유약간)

而虛空無若干也(이허공무약간야)

아난이여, 그대가 제불의 국토를 보았거니와, 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허공은 약간의 차이도 없으니, 

 Ananda You perceive the various Buddha lands, lands that have variation, but the vast emptiness has no variation. 

 

如是見諸佛色身(여시견제불색신) 有若干耳(유약간이)

其無碍慧無若干也(기무애혜무약간야)

그와 같이 제불의 몸=色身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제불의 걸림없는 지혜=無碍智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느니라.

Likewise, you see that the physical bodies of the Buddhas have their variations, but unobstructed wisdom is without variance.

[중생을 교화하는 데는 먼저 지혜가 있어야 한다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로 중생을 교화하는데 그 지혜는 어느 정도가 된다는 양이 없으므로 불사를 짓는 데도 일정한 법칙이 없다부처님에게는 무엇이나 다 중생을 교화하는 불사의 방편이 된다또한 저 허공은 하나지만 천만 가지 사물들을 다 감싸듯이 부처님의 지혜도 하나지만 천만 가지 교화방편이 다 갈무리 되어 있어서 한량이 없다는 것이다. 
땅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몇 평방미터라는 계산이 나오지만 허공은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부처님은 색신도 어느 정도 크기라고 할 수 있으나, 걸림이 없는 지혜는 얼마쯤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阿難(아난) 諸佛色身威相種性(제불색신위상종성) 戒定智慧(계정지혜)

아난이여, 제불의 몸=色身, 위엄 있는 모습=威相, 마음의 성품=種性과 계, 정, 혜=智慧,

 Ananda, the physical bodies of the Buddha, majestic appearance, lineage, monastic discipline, meditative concentration, wisdom, 

 

解脫解脫知見(해탈해탈지견) 力無所畏不共之法(역무소외불공지법)

해탈, 해탈지견 (등 다섯 가지 공덕과) 10력, 4무소외, 18불공법과 

liberation, knowledge and experience of liberation, powers, fearlessness, distinctive characteristics, 

 

大慈大悲威儀所行(대자대비위의소행) 及其壽命說法敎化(급기수명설법교화)

대자, 대비, 위의가 바른 행위=威儀所行, 그 밖에 수명과 교화하심이

great compassion, great loving-kindness, the practice of awe-inspiring manner, as well as life span, expounding the Dharma to educate and transform, 

 

成就衆生(성취중생) 淨佛國土(정불국토) 具諸佛法(구제불법) 悉皆同等(실개동등)

成就衆生=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 淨佛國土=부처님의 나라를 청정하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심이 모두 동등하기 때문에  

leading of all living beings to enlightenment, purifying of the Buddha land, and possession of the Dharma of the Buddhas—these are all equal.

 

是故名爲三藐三佛陁(시고명위삼막삼불타) 陁 비탈질 타

이름하며 삼먁삼불타(正遍知,正等覺, Samyaksambuddha)라고 하며, 

Therefore, they are called for Samyaksambuddha Buddha,

 

名爲多陁阿伽度(명위다타아가도) 名爲佛陁(명위불타)

이름하여 다타아가도(如來)라고 하며, 이름하여 불타(覺者)라고 부르는 것이니라.

or Tathagata, or Buddha.

[삼먁삼불타는 정변지(正遍知) 다타아가도는 여래(如來 )이름이 불타라고 하는 것은 각자(覺者) 이렇게 명명하였다.

이것이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법, 덕화, 능력, 신력, 법력 등으로 표현해서 이렇게 소개했다.]


阿難(아난) 若我廣說此三句義(약아광설차삼구의) 汝以劫壽不能盡受(여이겁수부능진수)

아난이여, 만약 내가 이 3구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네가 무한한=劫壽의 생명이 다해도 다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Ananda, if I were to explain the meaning of these three words, even with a lifespan of an eon, you would still not hear the explanation completely. 

[삼구(三句)란 삼먁삼불타=正遍知다타아가도=如來불타=覺者, 세 구절을 말한다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와 능력과 신통 등의 위대함을 표현한 열 가지 이름=十號가 있지만 이 세 구절만으로도 그 깊은 의미를 설명하려면 끝이 없다. 정변지(正遍知)란 정등각이라고도 하며, 본체계와 현상계에 대한 모든 것을 두루 안다는 뜻이고, 여래(如來) 진리로부터, 진리의 세계에서 오신 분이라는 뜻이고, 각자(覺者) 또는 불(佛)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삼구로 요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에 대한 많은 표현이 있지만 이 세 가지 이름이 가장 대표적이다그래서 이 삼구의 뜻을 널리 설한다면 그대가 몇 겁의 수명으로도 다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하였다.]

 

正使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정사삼천대천세계만중중생)

皆如阿難多聞第一(개여아난다문제일) 得念摠持(득념총지)

비유하자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중생이 모두 아난과 같은 다문제일이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있는 총지를 얻었다 하여도, 

Even if all sentient beings in the three thousand worlds were as foremost in knowledge as you, Ananda, and remember with total retention, 

 

此諸人等(차제인등) 以劫之壽亦不能受(이겁지수역불능수)

그러한 모든 사람들 역시 무한한 생명=겁수동안 들어도 전부를 들을 수는 없느니라. 

they would still not finish hearing the explanation even with lifespans of an eon.

 

如是阿難(여시아난) 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제불나뇩다라삼막삼보리)

無有限量(무유한량) 智慧辯才不可思議(지혜변재불가사의)

아난이여, 이와 같이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량하고, 지혜와 변재는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Thus, Ananda, the Buddhas’ unsurpassed perfect enlightenment is without limitation, and their wisdom and eloquence are inconceivable.

[물질적인 재산은 다음생에 가져가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쌓은 재산은 나의 훌륭한 업, 선업이 되기 때문에 가져갈 수 있다.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만 가지를 가져가기 못하지만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오직 업만이 따라간다고 하였다.

여기서 부처님이 스스로 이렇게 열거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戒)다 정(定)이다 혜(慧) 해탈(解脫)이다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열 가지 힘이다, 사무소외(四無所畏)다, 18불공법(十八不共法)이다, 대자대비(大慈大悲)다 위의(威儀)다 수명(壽命)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다, 중생을 성취하는 일이다, 정불국토(淨佛國土) 세상을 얼마나 교화했는가 등등 그런 것들 꼽아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일생동안의 교화사업, 쌓은 공덕들을 낱낱이 적어보면 상당할 것이다.

우리도 어떤 좋은 일을 했는가? 내가 다음 생에 가져갈 공덕이 있는가? 어떤 공부를 했는가? 어떤 실수를 했는가? ‘내가 얼른 참회하고 소제를 해서 다음 생을 맞든지 해야지’하는 생각도 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得念總持(득념총지) 所聞不忘(소문불망)

‘총지(總持)’는 범어의 다라니인데, 총강(總綱)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진언도 다라니라 하고 진언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들 총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머리가 혼침하기 쉬워서, 듣고 보았어도 빨리 잊어버립니다. 정력(定力)이 있다는 것은 바로 ‘염총지(念總持)’를 얻은 것이며 머리의 힘이 자연히 좋아진 것입니다. 아난은 바로 총지법문을 닦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한 법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일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전생의 일까지 기억할 수 있는 숙명통까지 수행하고 싶을까요? 어떻게 해야 전생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염총지’를 얻어야 잊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계율이며 공부이기도 하니까 자기가 하루 종일 수행하며 무엇을 닦고 있는지를 시험해 봐도 좋습니다. 기억력도 지혜이고, 또 당신의 뇌력이 좋지 않으면 무엇을 배우든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배워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부처님을 배우러 왔다고 말한다면, 부처님은 그렇게도 재수가 없을까요? 부처님은 제1류 지혜의 사람이라야 배워서 이룰 수 있으니, 이해력과 기억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정좌수지는 먼저 뇌력을 건전하게 하고 오성(悟性)을 높게 할 수 있어야 무슨 학문을 하든 이해하고 기억합니다. 정력(定力)이 충분한 사람은 총지력(總持力)이 증가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