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難白佛言(아난백불언) 我從今已往(아종금이왕)
不敢自謂以爲多聞(불감자위이위다문) 敢 감히 감, 구태여 감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이제부터 감히 스스로 다문제일이라 하지 않겠습니다.'
Ananda said to the Buddha, From now on, I dare not call myself knowledgeable.
[제불보리(諸佛菩提)란,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보리,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신력, 덕화, 능력, 법력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이하는 그러한 것들을 열거하는 경문이 되겠다.]
佛告阿難(불고아난) 勿起退意(물기퇴의) 所以者何(소이자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그러한 물러서는 마음을 먹지 말아라. 왜냐 하면
The Buddha said to Ananda, Don’t produce a mind that regresses! Why?
我說汝於聲聞中爲最多聞(아설여어성문중위최다문) 非謂菩薩(비위보살)
내가 그대를 성문들 가운데 다문제일이라고 말한 것이지, 보살들 가운데에서도 그렇다는 말은 아니었다.
I say that among the voice-hearers, you are the most knowledgeable, but not the bodhisattvas.
且止(저지) 阿難(아난) 其有智者(기유지자) 不應限度諸菩薩也(불을한도제보살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난이여, 그 어떤 지혜가 있는 (보통) 사람도 모든 보살의 한도에 미치지 못할 것이니,
Stop, Ananda, those who have wisdom should not measure the bodhisattavas.
一切海淵尚可測量(일체해연상가측량) 淵 못 연
모든 바다의 깊이는 설령 측량할 수 있다 하여도
Even the deepest sea one can still measure,
菩薩禪定智慧(보살선정지혜) 摠持辯才一切功德(총지변재일체공덕) 不可量也(불가량야)
보살의 선정과 지혜, 총지, 변재 등의 일체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but a bodhisattva’s meditative concentration, wisdom, total retention, eloquence, and all merits are immeasurable.
阿難(아난) 汝等捨置(여등사치) 菩薩所行(보살소행)
아난아, 그대들 (성문)은 보살의 행할 바=菩薩所行을 그대로 버려둘 것이나,
Ananda, you all have set aside the practice of the bodhisattva.
[드디어 소승성문으로서 지식이 가장 뛰어난 아난존자를 비하하고 보살을 높이 드러내는 내용이 나왔다. 수많은 불교가 있지만 바람직한 불교, 이상적인 불교는 대승보살불교라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불교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내용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고, 자칫 안이한 가르침이나 방편불교에 안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유마경에서는 교리의 우열을 가려내어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是維摩詰(시유마힐) 一時所現神通之力(일시소현신통지력)
이 유마힐이 한순간에 보여준 신통력은
The power of Vimalakirti’s divine powers, which he showed before,
一切聲聞(일체성문) 辟支佛於百千劫(벽지물어백천겁)
盡力變化所不能作(진력변화소불능작)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백천겁 동안 온 힘을 다해 변화시켜 보려고 해도 능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니라.'
is unattainable by all the voice-hearers or pratyekabuddhas with their powers of transformations for even a hundred or a thousand eons.
爾時衆香世界菩薩來者(이시중향세계보살래자) 合掌白佛言(합장백불언)
그 때 중향국에서 온 보살들이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Then the bodhisattvas from the Land of Many Fragrances joined their palms together and addressed the Buddha, saying,
世尊(세존) 我等初見此土(아등초견차토) 生下劣想(생하열상) 今自悔責(금자회책)
捨離是心(사리시심) 所以者何(소이자하)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처음 이 사바세계를 보았을 때는 보잘것없고 비천하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고 자책하여 그러한 생각을 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World Honoured One! When we initially witnessed this land, we had thoughts of its inferiority, but now regret our errors and have abandoned such a mindset. What is the reason for this?
諸佛方便(제불방편) 不可思議(불가사의) 爲度衆生故(위도중생고)
隨其所應(수기소응) 現佛國異(현불국이)
제불의 훌륭한 방편은 불가사의 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마땅한 바에 따라 온갖 서로 다른 불국토를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The skilful means of the Buddhas are unfathomable. For the intent of liberating sentient beings, manifesting different Buddha lands that accord with circumstances.
唯然世尊(유연세존) 願賜少法(원사소법) 還於彼土(환어피토)
當念如來(당념여래) 賜 줄 사
그러하오니,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적은 가르침(법)이라도 베풀어 주시면, 저희들이 본국에 돌아가 마땅히 여래를 늘 기억할 것입니다.'
That is so, World Honoured One! Please grant us a bit of your Dharma, so when we return to our land, we will remember the Tathagata.
[지불책우(智不責愚)라는 말이 있다. 진정으로 지혜롭고 마음이 큰 사람은 어리석고 마음이 좁은 사람을 책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향세계에서 온 훌륭한 보살들은 처음에 이 사바세계를 보고 하열하다고 생각하였다가 스스로를 후회하고 책망하였다. 사바세계란 견디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감인세계이다. 그것은 그 세계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한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중향세계 보살들은 뒤늦게 후회하게 된 것이다.]
◎有盡無盡解脫法門(유진무진해탈법문)
佛告諸菩薩(불고제보살) 有盡無盡解脫法門(유진무진해탈법문) 汝等當學(여등당학)
부처님께서 제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有盡=다함이 있고, 無盡=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이 있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The Buddha told the bodhisattvas, There is the exhaustible and inexhaustible Dharma gate of liberation which you all should learn.
[다함=盡과 다함이 없음=無盡을 밝혔다. 다함이란 무상하여 모두 소멸한다는 뜻이다. 곧 끊임없이 변화하여 한 순간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다. 다함이 없음이란 상주하여 소멸하지 않는 것이며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법을 말한다. “다함과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이란 변화무상함에 상주하여 다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 변화가 무궁한 속세에 처하되 속세의 제약에서 멀리 벗어난 삶을 다함과 다함이 없는 해탈이라 한다.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배대하여 밝혔다.]
何謂爲盡(하위위진)? 謂有爲法(위유위법)
무엇을 다함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유위법을 말하는 것이며,
What is exhaustible? It is Dharmas that are conditioned.
何謂無盡(하위무진)? 謂無爲法(위무위법)
무엇이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위법을 말하는 것이다
What is inexhaustible? It is the unconditioned dharmas.
如菩薩者(여보살자) 不盡有爲(불진유위) 不住無爲(불주무위)
보살은 유위를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 머물지 않느니라.
As a bodhisattva does not exhaust the conditioned nor dwells in the unconditioned.
何謂不盡有爲(하위불진유위)? 謂不離大慈(위불리대자) 不捨大悲(불사대비)
무엇이 유위를 다하지 아니함인가? 大慈=큰 사랑을 떠나지 아니하고, 大悲=크게 안타까워함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What does it mean not to exhaust the conditioned? It means not departing form loving-kindness, not abandoning great compassion;
[보통 사람들은 불교 공부를하고 보살에게 감화를 받아서 큰 자비심을 일으키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곧 본래대로 돌아오고 만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고도 하고 말뚝신심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보살은 언제나 큰 자비심을 떠나거나 버리지 아니하여 평생 동안 꾸준하다. 대만의 세계적인 구호단체인 자재공덕회를 세워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증엄(證嚴) 스님은 1966년부터 시작한 자선과 구호의 일을 지금도 잘하고 있으며 날로 발전하고 있다. 몇 년 전에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주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2011년 9월에 접한 기사에는 또 교회를 두채나 세운 사진이 '염화실 카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재민을 위해서 1천 채의 집을 지어서 제공한 사진도 함께 실렸다. 이와 같이 진정한 보살은 큰 자비의 실천이 갈수록 더욱 왕성하다. 비록 유위법이라 하더라도 중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와 같이 끝없이 계속되어야 하리라.]
深發一切智心(심발일체지심) 而不忽忘(이불홀망)
일체지의 마음을 깊이 내어서 한순간도 잊지 않으며,
developing a profound mind that has wisdom of all, without forgetting it even momentarily;
敎化衆生(교화중생) 終不厭倦(종불염권)
중생을 교화함에 싫증을 내거나 피곤해 하지 않으며,
to educate and transform all living things without ever being fatigued;
於四攝法(어사섭법) 常念順行(상념순행) 4섭법을 항상 지니고 그에 따라 행하며,
always mindful of the four means of embracing and acting in accord with them;
護持正法(호지정법) 不惜軀命(불석구명) 軀 몸 구
정법을 수호하여 지킴에 신명도 아끼지 않으며,
to protect and uphold the true Dharma without sparing even body or life;
種諸善根(종제선근) 無有疲厭(무유피염) 온갖 선근 심기에 피곤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으며,
cultivating all virtuous roots without weariness;
志常安住(지상안주) 方便迴向(방편회향)
마음은 항상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과 공덕을 회향함에 머무르며,
intent upon always abiding by skilful means and to transfer merits;
求法不懈(구법불해) 說法無悋(설법무린) 勤供諸佛(근공제불)
법을 구함에 게으르지 않고, 진실을 설함에 인색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제불께 공양하며,
untiringly seeking the Dharma, expounding the Dharma without stinginess; to make diligent offerings to all Buddhas.
故入生死而無所畏(고입생사이무소외) 於諸榮辱(어제영욕) 心無憂喜(심무우희)
일부러 생사윤회에 들어가되 두려움이 없으며, 온갖 영욕=영광과 오욕에도 근심하거나 기뻐하지 않으며,
Thus, enters life and death without fear; in all honour and disgrace, there is no sorrow or joy;
榮辱영욕= 흔히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철되는 영광과 치욕을 이르는 말
[사람이 부처님이다. 그리고 당신은 부처님이다. 오로지 부처님인 사람에게 부지런히 공경 공양하면 결코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하거나 주문을 외워도 옳고 그름이나, 성공과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그 한 가지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설사 죽음이 앞에 닥쳐오더라도 염려할 바가 없을 것이며, 또한 자신이 살아 온 길이 영광이든 오욕이든 마음에 근심도 기쁨도 없을 것이다.]
不輕未學(불경미학) 敬學如佛(경학여불)
未學=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배운 사람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not to despise the unlearned, and to respect the learned as the Buddha.
墮煩惱者(타번뇌자) 令發正念(영발정념) 於遠離樂(어원리락) 不以爲貴(불이위귀)
번뇌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正念=바른 생각을 일으키게 하며, 즐거움을 멀리 떠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Lead those who have fallen into destructive emotions to develop the right mindfulness; To delight in being free, but do not hold it in esteem.
不著己樂(불착기락) 慶於彼樂(경어피락)
자신의 즐거움만을 집착하지 않고 남의 즐거움을 기뻐하느니라.
Not clinging to one’s own happiness, but celebrating the happiness of others.
[修治菩提安處道場(수치보리안처도량), 履踐如來所行之跡(치천여래소행지적)。
‘보리(菩提)’는 깨달음=覺悟이고 또한 모든 곳이 도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좋은 수행 환경이 없다고 불만인데, 제가 대만에 왔을 때에 먼저 기륭(基隆)에 도착해서 약간의 장사를 했는데, 어느 날 저녁 1만 냥의 황금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오직 작은 방을 하나 빌려 살았는데, 한 집에 네 식구가 그 안에서 좁게 살았습니다. 게다가 공무(公務) 탁자 하나를 놓고, 글도 쓰고 밥도 먹어야 했습니다. 정좌할 때에는 그 탁자를 치우고 올라가 정좌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도량이요 식당이요 사무실이요 서실이었습니다. 부귀빈천을 모두 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내일 쌀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오늘 저녁부터 내일까지는 아직 6~7시간이 남아 있으니 먼저 잠부터 자고보자’였습니다. ‘내일의 쌀은 상관하지 말자! 그것은 자연히 올 것이다. 밤중에 한 바탕 대지진이 일어나 모든 게 다 가라 앉아버릴 지도 모르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 이게 바로 ‘안처도장(安處道場)’입니다. 만약 환경이 갖추어져야 도를 배운다면 우리들 여기의 환경은 좋은데 왜 진정으로 도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될까요?
그러므로 수행에 시간과 장소를 고르지 마시고 어디에 있든 마음이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어느 곳이나 도량으로 여기고 편히 생활하면[安處道場]’ 됩니다. 밖으로 구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이요 부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서[履踐如來所行之跡]’, 정진할 수 없다면 당신은 아무리 경전을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홍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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