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 - 佛菩提智所斷(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는 번뇌)

 

世尊(세존) 又如取緣有漏業(유여취연유루업) 因而生三有(인이생삼유)

세존이시여, 또 마치 번뇌의 연(取緣)과 유루업의 인으로 말미암아 삼계= 三有를 낳는 것과 같이,

如是無明住地(여시무명주지) 緣無漏業因(연무루업인)

이러한 무명의 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因=원인으로 말미암아

[루(漏)'는 번뇌를 의미한다. ‘흘러내린다’, ‘액체 같은 것이 샌다’는 뜻으로, 무루는 번뇌가 없다는 말이고, 유루는 번뇌가 있다는 말이다. 유루라는 것은 번뇌를 가진, 번뇌에 더럽혀진 것이라는 의미이며, 무루는 그 반대의 의미이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적인 자극이 오면 그것에 물들어 내적인 습기로 말미암아서 번뇌에 노출되는 현상을 '루(漏)'라 한다. 따라서 ‘유루’란 육근에서 ‘번뇌’라는 허물을 항상 만들어 누출한다는 말이다.- 아미산]

 

生阿羅漢辟支佛大力菩薩三種意生身(생아라한벽지물대력보살삼종의생신)

아라한, 벽지불, 대력 보살들의 세 가지 의생신을 내는 것이니,

[의생신(意生身), 범어 마노말야(摩奴末耶). 신역에서는 의성신(意成身) 또는 곧 화생신(化生身)이며, 변화신(變化身)이다. 겁초(劫初)의 인신(人身)ㆍ색계신ㆍ무색계신, 그리고 사람이 죽은 후 다음 생의 몸을 받을 때까지의 중유신(中有身)을 포함한다. 부모에게서 받은 육신이 아니라 뜻(意)에 의해서 化作 · 化生된 몸을 말한다. 또 그와 같은 의미에서 色界 · 無色界의 天을 意成天이라고도 한다.]

 

此三地(차삼지) 彼三種意生身生及無漏業生(피삼종의생신생급무루업생)

이러한 세 가지 지위와 세 가지 의생신이 낢과 무루업이 나는 것이

依無明住地(의무명주지) 有緣非無緣(유연비무연)

모두 무명주지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연이 있는 것이지, 연이 없는 것이 아니며,

是故三種意生及無漏業(시고삼종의생급무루업) 緣無明住地(연무명주지)

그러므로 세 가지 의생신 및 무루업은 모두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 가지 의생과 무루업이 모두 무명주지를 반연한 것입니다.)

世尊(세존) 如是有愛住地數四住地(여시유애주지수사주지)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유애주지   가지 주지는 

不與無明住地業同(불여무명주지업동)

무명주지로 업이 같지 않나이다.

無明住地異離四住地(무명주지이리사주지) 佛地所斷(불지소단)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번뇌는 네 가지 잠재적 번뇌를 떠나는 것과 달라서  불지(佛地)에서 끊는 바이며,

佛菩提智所斷(불보리지소단) 何以故(하이고)

부처님의 菩提智=깨달음의 지혜로써 끊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阿羅漢辟支佛斷四種住地(아라한벽지불단사종주지) 無漏不盡(무루불지)

아라한과 벽지불도 네 가지 잠재적 번뇌=무명주지는 끊었지만 무루업은 다 끊지 못해서 

不得自在力(불득자재력) 亦不作證(역불작증)

자재력을 얻지 못하며, 역시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無漏不盡者(무루불진자) 卽是無明住地(즉시무명주지)

무루업을 다 끊지 못하였다는 것은 곧 무명의 잠재적 번뇌=무명주지 때문입니다.

 

[이 항에서는 두 가지의 것이 설해져 있다. 즉

(1)번뇌를 연(緣)이라 하고 번뇌가 있는 업=유루(有漏)의 업을 인으로 하여 욕․색․무색이라는 세 종류의 미혹한 생존이 생기고

(2)번뇌의 근본이라는 무시(無始)의 무명, 원초(原初) 무명(無明)이 무명주지를 연으로 하고 번뇌가 없는 업=무루(無漏)의 업을 인으로 하여 여기에 아라한․벽지불․보살이라고 하는 세 종류의 의생신(意生身)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근본무명은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이라는 세 종류의 사람들의 무루의 업에 조력하여 의생신을 생하게 한다고 한다. 환언하면 무명은 3종의 의생신을 생하는 연으로 된다고 하는 것이다.
범부는 번뇌의 생활을 영위함에 반하여 2승(阿羅漢과 辟支佛)과 보살과는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무루의 업을 쌓고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상이(相異)가 있다. 그렇지만 2승과 대력보살은 무명주지를 완전히 이탈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이미 설한바와 같다.
다만 그 무명은 3종의 의생신을 생하는 연으로서 2승․대력보살의 무루업에 조력하기 때문에 무명주지라 하여도, 앞서 말한 4주지번뇌(四住地煩惱) 중의 무색계의 사혹인 유의 애착에 주하는 번뇌와는 명칭은 비슷하지만 실제의 작용은 다르다.
다만 3종의 의생신을 생했다고 하여도 무명주지에 의하는 한 아직 무명주지를 끊지 못한 점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고서야만 자재력을 얻는 것이며, 2승․대력보살은 아직 이 자재력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혜경스님]

 

 [승만경은 상주불변의 여래장과 함께 끊기 힘든 번뇌로서 무명주지가있음 강조하며, 염법(무명) 정법(여래장)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요소를 하나의 이론 체계에 수용하고 있다. 이것은 무명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중생의 현실을 설명해낼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승만경에서 무명주지는 모든 번뇌가 생겨날 수 있는 근본 번뇌인 ‘住地번뇌’ 가운데 하나로서 나머지 네 가지 주지 번뇌를 오래 머물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번뇌로 설명되고 있다. 따라서 승만경은 네 가지 주지 번뇌를 끊더라도 이러한 무명주지는 여래의 지위에 이르러야만 끊을 수 있다고 설한다.
그렇다면 무명주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승만경 은 “성문과 벽지불이 無漏를 다하지 못한 것”을 무명주지라고 할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성문과 벽지불이 ‘두려워하는 바’가 바로 중생의 생사라면, 이들 二乘이 얽매여 있는 무명주지란 결국 열반을 중생계를 떠난 초월적 실재로 보는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부증불감경에서 ‘일법계에 대한 바르지 못한 知見’으로 지적한 增減의 二見에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기신론의 ‘근본불각’ 또는 ‘근본무명’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승학]

 

[승만부인은 삼계가 번뇌와 유루업인에 의해 펼쳐지는 것처럼 무명주지의 연과 무루업의 인으로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意生身)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아라한 벽지불 대력보살과 같은 의생신도 모두 무명주지에 의지하므로 연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다.
그러나 이 의생신은 범부중생의 의생신과 불보살의 의생신이 다르다. 범부중생의 의생신은 잠자다 꿈속에 나타나는 몸처럼 남녀육신의 인연을 빌리지 않는다는 뜻에서 의생신이라 하지만 불보살의 경우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큰 원력으로 의생신을 나타낸다.
하지만 승만부인은 중생의 의생신은 물론이거니와 번뇌가 없는 다른 차원에서 생기는 아라한이나 벽지불, 대력보살의 의생신이라 할지라도 근본무명인 무명주지를 벗어날 수는 없다고 설한다. 즉 번뇌가 있는 유루업(有漏業)을 인연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세계가 펼쳐지고, 번뇌가 없는 무루업(無漏業)을 인으로 번뇌의 근본이라는 시작도 없는 원초적인 무명주지를 연으로 하여 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이라고 하는 세 종류의 의생신(意生身)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라한 벽지불과 대력보살은 무명주지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였으므로 자재한 힘을 증득하지도 못했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경계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혜총스님]

 

[흔히 자주 사용하고 있는 선인(善因)은 선과(善果)를, 악인(惡因)은 악과(惡果)를 초래한다는 말이 있다. 『법구경(法句經)』제183게(偈)의 '모든 악(惡)을 행하지 않을 것(諸惡莫作), 선(善)을 획득(獲得)할 것(衆善奉行), 자기의 마음을 맑[淨]힐 것(自淨其意), 이것이 제불(諸佛)의 가르침(是諸佛敎)이다'를 불교의 생활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인과응보의 사상은 불교 이전에 이미 우파니샷트에서 생육(生育)된 사상이다. 이 사상이 인도 고대 민족의 공유사상으로서의 윤회 사상과 결부되어 윤리적 요청으로서 인도 종교에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과응보의 사상이 불교에 커다란 영향력을 주었던 것이다. 불교는 여기에 업이라는 직접적 원인에 간접적 원인으로서의 연(緣)을 집어 들어 이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결과[果]가 생겨난다는 사상을 빚어냈다. 이 인도 연도 서로 똑같은 원인이므로 일반적으로는 하나로 하여 인연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친인연(親因緣) 즉 우두머리가 되는 인연은 소위 인을 말하며, 소인연(疎因緣), 즉 지엽 인연을 연이라 한다.
설일체유부, 아비달마 불교는 이 모든 인연을 인의 측면에서 분류하여 6인(六因), 즉 능작인(能作因)․구유인(俱有因)․동류인(同類因)․상응인(相應因)․변행인(遍行因)․이숙인(異熟因)이라 하고, 연(緣)의 측면에서 분류하여 4연(四緣), 즉 인연(因緣)․등무간연(等無間緣)․소연연(所緣緣)․증상연(增上緣)으로 한다. 이른바 6인 4연[六因四緣]이라는 사상을 낳은 것이다.-혜경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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