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解釋分(해석분) - 근본 사상의 해설
The Detailed Explanation of the Mahāyāna Doctrine 

세가지 해석방향 - Three Kinds of Explanations  

  1) 總說(총설) - Aggregated explanation

 

已說立義分(이설입의분) 次說解釋分(차설해석분)

이미 입의분은 설명하였으니, 다음은 해석분을 설명하겠다.

Having explained the fundamental doctrine of Mahāyāna, now I make a detailed analysis of them. 

 

解釋分有三種(해석분유삼종) 云何爲三(운하위삼)

해석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무엇이 그 셋인가?

This detailed analysis accompanying with three the explanations. What are they?

 

一者顯示正義(일자현시정의) 

첫째, 바른 뜻을 드러냄이며,

First, manifest the clear definition of Mahayana,

 

二者對治邪執(이자대치사집) 

둘째, 그릇된 집착=邪執을 다스려 바로 잡는 것이며,

Second, straighten the erroneous attachment (obsession),

 

三者分別發趣道相(삼자분별발취도상)

셋째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함이다.

Third, discern the phase of step up to the enlightenment by taking heart.

 

[分別發趣道相(분별발취도상) : 發趣는 마음을 내어 깨달음에로 나아감이다. 깨달음에로 나아가는 모습을 분별하는 내용은 뒤에 나온다. 즉 해석분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가를 미리 말하고 있다.-물처럼바람처럼]

 

[앞에서 입의분(立義分) 즉 본론의 근본사상을 제시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더 넓게 해석하는 것이다.  

해석분(解釋分)이라 함은 입의분에서 밝힌 대(大)와 승(乘)의 의미를 더 상세히 해설하는 본론으로, 여기에는 다음의 세 부분이 있다.
첫째는 현시정의(顯示正義), 즉 바른 뜻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는 대치사집(對治邪執), 즉 잘못된 고집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며,
셋째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 발심과 수행의 길을 분석 분별하는 것이다.
이상의 세 부분 중 첫째의 현시정의(顯示正義)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분량도 해석분의 2/3를 차지한다.

첫째의 현시정의(顯示正義)는 입의분(立義分)에서 제시한 바른 뜻(正義) 즉 대승의 법(法)과 의(義)를 깊게 해석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기신론(起信論)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며, 기신론의 중요한 교리는 모두 이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심성인 중생심[大乘] 즉, 일심의 법을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으로 나누고, 심진여문에 있어서는 이언진여(離言眞如)․의언진여(依言眞如)를 설명한다.  
심생멸문에서는 ① 심생멸[阿梨耶識 : 覺, 不覺] ② 생멸의 인연[五意, 五識] ③ 생멸의 상[六染, 二種熏習] ④ 진여(眞如)의 자체상용(自體相用)인 삼대(三大)를 넓게 해석하여 설명한다.
다음 두번째의 대치사집(對治邪執)에서는 진여법성(眞如法性)에 대한 사견(邪見) 즉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人我見]과 법(法)에 대한 집착[法我見]때문에 일어나는 그릇된 견해를 밝히고 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여래장(如來藏)을 나(我)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이를 파(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게 된다.  
셋째의 분별도취상(分別道趣相)은 발심(發心)을 다루는 것으로서 이 발심(發心)을 신성취발심(信成趣發心) 해행발심(解行發心), 증발심(證發心)의 세 가지 발심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앞의 두 부분은 이론문(理論門)이고 다음 한 부분은 실천문(實踐門)이다.
바른 뜻(正義)에 대한 사집(邪執)이 제거되면 이 부분의 가르침에 의하여 수행코자 하는 의욕이 생기므로 실천수행의 도정(道程)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라고 말한다.- 전종식] 

 

2) 顯示正義(현시정의) - Manifest the clear definition of Mahayana,

  (1) 二門(이문) - Two modalities

顯示正義者(현시정의자) 依一心法(의일심법) 有二種門(유이종문) 云何爲二(운하위이)

바른뜻을 나타낸다는 것은 일심법에 의하는 것으로서 두가지의 문=二種門이 있으니, 무엇이 그 둘인가?

By manifesting the clear definition of Mahayana based on the law of our consciousness (thoughts or minds), which there also two modalities. What are they?

 

一者心眞如門(일자심진여문) 二者心生滅門(이자심생멸문)

첫째, 심진여문이며, 둘째 심생멸문이다.

First is the True suchness of consciousness (Bhtatathata), 

Second is the rise and fall (birth and death) of phenomenon consciousness (Samsara).

 

是二種門(시이종문) 皆各總攝一切法(개각총섭일체법)

이 두가지의 문은 모두 각각 일체법을 총섭하니,

Each of these two modalities of consciousness embraces the entire law of universe,

 

此義云何(차의운하) 以是二門(이시이문) 不相離故(불상리고)

이 뜻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 두 문=二門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What does this mean? Since these two modalities are inseparable from each other.

 

[元曉 : 일체법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寂靜)하여 오직 일심일 뿐인데, 이러한 것을 심진여문이라고 이름 하기 때문에 (능가경(㘄伽經)에서) ‘적멸이란 일심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일심의 체가 본각이지만 무명에 따라서 움직여 생명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 여래의 본성이 숨어있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는 '능가경'에서 “여래장이란 선과 악의 원인으로서 일체의 취생을 두루 잘 일으킨다. 비유하자면 환술사가 여러 가지 취(趣)를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이런 뜻이 있으므로 ‘일심이란 여래장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는 일심의 생멸문을 나타낸 것으로 심생멸문에서 心生滅者 依如來藏故 有生滅心라고 하고 이어 此識 有二種義 …一者 覺義 二者 不覺義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다만 심생멸심만을 취해서 생멸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생멸자체와 생멸상을 통틀어 취하여 모두 생멸문 안에 둔다는 뜻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문이 이러한데 어떻게 일심이 되는가?

염정(染淨)의 모든 법은 그 본성이 둘이 없어 진망(眞妄)의 이문(二門)이 다름이 있을 없기에 일(一)이라고 이름하며, 이 둘이 없는 곳이 모든 법 중의 실체인지라 허공과 같지 아니하여 본성이 스스로 신해(神解)하기 때문에 심(心)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둘이 없는데 어떻게 일(一)이 있을 수 있는가? 일도 있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심이라고 말하는가? 이런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은 것이니 무엇이라고 지목할지 모르겠으나 억지로 이름을 붙여 일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是二種門 皆各總攝一切法이라고 한 것은 위의 입의분 중에서 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을 해석한 것이니 위에서는 바로 ‘마음이 일체법을 포괄함’을 밝혔으나, 是二種門 皆各總攝一切法을 나타내었다.

是二門 不相離故라고 한 것은 각기 총괄하는 뜻을 해석한 것이다. 이는 진여문은 염정의 통상(通相)이며 통상 밖에 따로 염정이 없기 때문에 염정의 모든 법을 총섭할 수 있음과 생멸문은 각기 염정을 나타내어 염정의 법이 모두 포함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또한 일체의 모든 법을 총섭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통상과 별상이 다르긴 하나 다 같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是二門 不相離고 말하였다.

* 元曉 : <별기> 진여문은 모든 법의 통상이며, 통상밖에 다른 제법이 없어서 모든 법이 다 통상에 의하여 포괄된다. 이는 미진이 질그릇의 통상이며, 통상 밖에 질그릇이 없어서 질그릇이 모두 미진에 의해 포섭되는 것처럼 진여문도 이와 같은 것이다. 생멸문이란 바로 이 진여가 선과 악의 인(因)인지라 연과 화합하여 모든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사실 모든 법을 만들어 내지만 이 법이 모두 진성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도 진여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 以是二門不相離故(이시이문불상리고) : 진여문과 생멸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는 체요 생멸은 용이다. 생멸하는 마음이 따로 있고, 여여한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진여로만 있다면 생멸하는 세계를 거둘 수 없고, 생멸로만 있다면 진여를 거둘 수 없다. 양자가 둘이 아니므로 총섭한다고 한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한 바 空卽是色 色卽是空이다.-물처럼바람처럼]

 

[바른 뜻을 나타낸다고 한 현시정의(顯示正義)는 일심법(一心法)에 의하여 심진여의 상과 심생멸의 상을 함께 갖추고 있다. 그것을 여기에서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심은 2, 3, 4등과 대하는 하나가 아니라 전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유심(唯心)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며, 우리들이 경험하는 전체를 말한다. 경험은 마음 이외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입의분에서 제시한 기본적 입장은 중생심, 즉 우리들이 경험하는 전체를 일심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을 두개의 측면[二門]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심진여문(心眞如門)은 생멸변화가 없는 영원한 측면에서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거기에서 마음의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마음을 영원 불변의 본체적 측면에서 관찰하면, 시간적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선악, 생멸변화 등은 모두 사라져 가고, 평등일미(平等一味)의 본질이 나타난다.  이 일미(一味)의 실재가 마음의 진여(眞如)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생멸문(心生滅門)은 마음이 생멸변화하는 현상적 측면에서, 그 마음을 이해해 가는 방법, 마음의 차별적 상대적 측면에서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심진여문(心眞如門)이 심체(心體) 심성(心性)을 묻는 것이라면, 심생멸문은 마음의 상(相)을 문제로 한다. 이 경우의 상은 체상용(體相用)의 상(相)이 아니다.  성(性)과 상(相)이라는 경우의 상(相)이다.  이상과 같이 심진여, 심생멸 이문(二門)은 접근 방법은 상이하지만 목적은 같은 것으로서 그 어느 방법으로든 마음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심생멸문에서는 마음이 자성청정(自性淸淨)하고 영원 불변이면서도 어찌하여 염정(染淨) 선악(善惡)으로 변화하는 가가 가장 문제이다.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이를 훈습(熏習)으로 설명한다. 무명(無明)이 진여(眞如)에 훈습하고, 또한 진여가 무명에 훈습한다.  불변(不變)이지만, 연(緣)을 따라 염정(染淨)으로 되는 것이 진여이다.  마음의 생멸은 단순한 생멸이 아니고 마음이 훈습에 의하여 염정(染淨)이 되는 것을 말한다.  
심성(心性)은 영원불변이지만 때로는 선심(善心)이 되고 악심(惡心)이 되는 등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것은 훈습(熏習)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은 동일한 중생심(衆生心)의 양면(兩面)으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망념(妄念)을 인식의 근저(根柢)에 두고 있는 범부가, 망념이 있으면서 진여(眞如)에 수순(隨順)하고 진여를 수순함에 따라 역(逆)으로 망념을 멸(滅)하여 진여에 증입(證入)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즉, 범부는 일체법을 설할때, 망념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설하는 자기라는 주관[能說]설하는바 일체법이라는 대상[可說]을 자각(自覺)하고 있으나, 그러나 이같은 능설(能說)과 가설(可說)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한 일체법을 마음에 떠올리면서도 떠올리는 자기(自己)라는 능념(能念)과 떠올려지는 가념(可念)의 일체법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것을 되풀이 수행(修行)하여, 그 진상(眞相)을 알게 되면, 예를 들어 지금 망상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진여에 대등한 상태로서, 이를 수순(隨順)이라 불러도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을 계속함에 따라 망념(妄念)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면, 주객(主客)의 분열(分裂)은 해소되고, 있는 그대로의 인식의 세계[불타의 인식계]가 열리는 것으로서, 이것은 진여에 증입(證入)한「득입(得入)」의 단계라 불러도 좋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신론(起信論)의 교리를 수행하면 망념이 있으면서도, 차차로 그것을 멸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백련,전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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