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述議偈(술의게) - 論(논)을 짓는 목적

爲欲令衆生(위욕령중생) 除疑捨邪執(제의사사집)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중생들로 하여금 의혹(의심)을 없애고

그릇된 집착을 버리게 하며, 

That all beings (sarvasattava) may rid themselves of doubt (erroneous conceptions) about the True Path, become free from evil attachment.

 

[爲欲令衆生(위욕령중생) 除疑捨邪執(제의사사집)은 ‘중생으로 하여금 의문을 풀게 하고, 그릇된 견해를 고치게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의문을 풀어주는 除疑(제의) 부분을 기신론은 입의분과 해석분 중 顯示正義(현시정의) 부분에서 해설하고 있으며, 邪執(사집)을 버리는 捨邪執(사사집) 부분은 對治邪執(대치사집)에서 그릇된 견해를 고쳐 치유하도록 하고 있다.- 전종식]

 

[衆生(중생) : 진리를 깨달은 자를 부처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중생이라고 한다.

除疑捨邪執(제의사사집) 의혹을 제거하고, 삿된 집착을 버림. 중생의 특징이 바로 의혹을 가짐과 그릇된 집착을 가지는 것이다.

 

元曉대사: 의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는 발심에 장애가 된다. 둘째는 교문(敎門)에 대한 의심이니 이는 수행에 장애가 된다. 법을 의심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법이 하나라면 다른 법이 없으니 중생이 없을 터인즉, 보살은 누구를 위하여 서원할 것인가? 법이 여럿이라면 상대와 내가 다를 것인데 어떻게 동체(同體) 대비(大悲)를 일으키는가? 교문을 의심한다는 것은 여래가 세운 교문이 여럿인데 어느 문에 의해 수행할 것인가?
기신론에서는 일심법을 세워서 두 가지 문을 열었다. 일심법을 세운 것은 처음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승법에는 오직 일심만 있으니, 일심 밖에는 다시 다른 법이 없으나 다만 무명이 자기 일심을 미혹하여 모든 물결을 일으켜 육도에 유전함을 밝힌 것이다. 두 가지 문을 연 것은 두 번째 의심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는 여러 교문이 많지만 진여문에 의해 지행(止行)을 닦고 생멸문에 의해 관행(觀行)을 일으킨 것을 밝힌 것이다.
사집을 버린다는 것은 여기에 두 가지 사집이 있으니 법집(法執)과 인집(人執)이 그것이다. - 바람처럼 물처럼]

 

[二障義(이장의) - 법집(法執)과 인집(人執);

번뇌를 인집(人執)의 측면으로 보아 열반(涅槃)의 과(果)를 방해하는 것을 번뇌장이라 하였고, 

지식을 법집(法執)의 측면으로 보아 보리(菩提)의 과를 장애하는 것을 소지장이라 하였다.
원효가 자신의 독특한 견지에서 6단(段)으로 나누어서 논술한 것으로, ① 명의(名儀)를 해석하고, ② 체상(體相)을 논하고, ③ 장(障)의 공능(功能)을 밝히고, ④ 제문(諸門)의 상섭(相攝)을 밝히고, ⑤ 치단(治斷)을 논하고, ⑥ 총결택(摠決擇)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총괄적으로 정리되고 있는 장애의 문제는 일심(一心)의 원천인 본각(本覺)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제거되고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제기된다.
따라서 장애는 불각(不覺)으로서 각(覺)과는 상대되는 것이다. 원효는 각의 두 장애를 논함에 있어서 현료문(顯了門)과 은밀문(隱密門)의 범주를 가지고 분별 판단한다.
현료문에서는 ≪유가론 瑜伽論≫을 중심으로 유식법상가(唯識法相家)의 설을 종합하고 있으며, 은밀문에서는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유식계(唯識系)에 대한 교리를 조직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이문(二門)을 상호 밀접히 관련시킴으로써 이설(異說)을 원융회통(圓融會通)시켰다.
이에 따르면 현료문의 이장이 은밀문의 번뇌애(煩惱碍)에 포섭되고, 번뇌애는 지애(智碍)와 본말관계(本末關係)에 있는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장애의 근본은 지애인 무명(無明)에 귀착된다. 장애의 근원이 하나인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근원적 무지성(無知性)이라는 데에서 장애가 지니는 인식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원효는 무지에 대응되는 반야지(般若智)가 단순히 실재하는 고통이나 장애를 없애는 수단이 아니라 고(苦)의 해탈이며 자유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 책은 흔히 수행상의 문제로만 취급되는 장애를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여 그 인식적 의미를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는 불교가 갖는 앎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기 위함이었다.
장애의 극복이 곧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성취되는 청정한 경지의 현현(顯現), 즉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원효에게 장애라는 것은 고통없는 상태인 해탈을 방해하는 것이고, 인식적 결함 또는 잘못된 견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제거되고 부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즉, 장애의 극복은 파사(破邪)요, 각의 현현은 현정(顯正)이라고 하는 파사즉현정(破邪卽顯正)의 관계 속에서 각과 장애를 함께 논의한 것이다.- 다움백과]

 

起大乘正信(기대승정신) 佛種不斷故(불종부단고)

대승에 대한 바른 믿음을 일으켜 (마하연의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부처의 씨앗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By awakening of the right faith of Mahāyāna (craddha),
The Buddha's real seed will be sown forever.

 

[佛種不斷故(불종부단고) 불타의 법통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佛種(불종)은 Buddhavamasa의 의역으로 불타의 법통을 의미한다

귀경계는 이 논을 지으면서, 먼저 불법승의 삼보에 귀의하는 뜻을 밝힌 것이지만 기신론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전종식]

 

[佛種(불종) 성불의 씨앗,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 깨달음의 싹]

 

2. 發起序(발기서) Discourse

  ㉮ 論(논)의 이유와 구성(논의 체를 정립함)

Classification of Explanations in This Treatise

論曰(논왈) 有法能起摩訶衍信根(유법능기마가연신근) 是故應說(시고응설)

논하여 이르나니, 법이 대승(마하연)의 믿음의 뿌리=信根을 일으키므로, 그러므로 마땅히 설하는 것이다.

For the purpose of awakening in all beings a pure faith in the Mahayana,
(in order to destroy their doubts and attachment to false doctrines, and of affording them an uninterrupted inheritance of Buddha-seeds,) I write this discourse.

 

[☆摩訶衍(마하연, mahayana) 마하(摩訶)는 크다는 뜻이고 연(衍)은 탈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대승(大乘)이라고 번역한다. 소승(小乘)은 수레가 작아 혼자만 탈 수 있으나, 대승은 수레가 커서 다른 사람도 태울 수 있다. 그러므로 대승은 자기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한다.

☆元曉(원효) 법이 있다고 한 것은 일심법을 이른 것이다. 이 법을 잘 이해하면 반드시 광대한 신근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에 起摩訶衍信根이라고 하였다.…신근이 이미 섰다면 곧 불도에 들어가며, 무궁한 보배를 얻는데, 이러한 큰 이익을 논에 의하여 얻기 때문에 是故應說이라고 한 것이다.

☆憨山(감산) 有法(유법) - 여기에서는 논문의 종지와 그 근본인 일심법을 총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유법(有法)이란 논문이 의지하고 논리를 전개한 종지이며 그 근본이다. 유법을 말해보자. 우리의 일심법에는 이문(二門)과 삼대(三大)의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논서가 종지로 의거할 대상인 일심법을 정면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처럼바람처럼]

 

[이 부분은 원저자의 서문(序文)으로서 본론 전체를 어떠한 구분으로 쓸 것인가를 밝히고, 위대한 일심(一心) 즉 여래장(如來藏)의 법이 능히 대승의 신근(信根)을 일으키게 한다는 뜻을 간략히 기술한 것이다.-전종식]

 

說有五分(설유오분) 云何爲五(운하위오)

설명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The explanation consists of five chapters.  What are the five? 

一者因緣分(일자인연분) 첫째는 인연분(본론을 쓰는 이유를 밝힘)

The first, reason for writing this treatise.- Introduction.  

二者立義分(이자입의분) 둘째는 입의분, (본론의 근본적 의미를 밝힘)

The second, establishment of the fundamental of Mahāyāna doctrine. - General statement of principles.

三者解釋分(삼자해석분) 셋째는 해석분, (앞서 밝힌 근본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

The third, detailed explanation of the Mahāyāna doctrine.- The explanation itself

[바른 뜻을 나타내는 현시정의(顯示正義)와 그릇된 견해를 치유하는 대치사집(對治邪執) 및 깨달음의 길에 나아가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 여기에 포함된다.- 전종식]

四者修行信心分(사자수행신심분) 넷째는 수행신심분,(信心과 그를 바탕으로 한 수행을 밝힘)

 The Fourth, practice of the Mahāyāna faith. - The practice of faith.

五者勸修利益分(오자권수이익분) 다섯째는 권수이익분이다.(이익을 나타내어 수행을 권함)

 The fifth, benefits of the practice of the Mahāyāna faith. - Benefits.(derived therefrom)

이것은 이 '大乘起信論'의 목차이다.

 

[Dharma(법, 법성, 본체); According to a general interpretaion of Mahayana Buddhists, Dharma means ⓛ that which exists ② the object of understanding. Dharma may therefore be rendered in the first sense by 'object', or 'thing', or 'being' including everything mental as well as physical in its broadest sense, and so sarvadharma will designate all possible existences in the universe; while Dharma in the second sense may safely be rendered by 'law' or 'doctrine' as generally understood by Western Buddhist scholars, to most of whom, however, the first significance of the term is strangely unknown.

대승불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Dharma란 첫째 모든 존재들 둘째 이해의 대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Dharma는 우선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뜻의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대상' 또는 '물건' 또는 '존재' 등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전체의 모양(總相총상, sarvadharma)은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존재를 지칭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반하여, 두 번째 의미로는 서양 불교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법' 또는 '교리' 따위로 쉽게 표현될 수 있으나,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용어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Max Muller fitly remarks in his introduction to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Vajracchedika, 'Dharma in its ordinary Buddhist phraseology may be correctly rendered by law/ Thus the whole teaching of Buddha is called the good law, Saddharma. But in our treastise Dharma is generally used in a different sense. It means for and likewise what is possessed of form, what is therefore different from other things, what is individual, in fact, what we mean by a thing or an object. This meaning has escaped most of the translators, both Oriental and Western, but if we were always to translate Dharma by law, it seems to me that treatise that the whole drift of our treatise would become unintelligible.' In this translation Dharma is rendered sometimes by 'thing' sometimes by 'law', sometimes by 'truth' or 'doctrin', according to the context. But when it is synonymous with suchness, I have retained its original Sanskrit form, capitalised.- Teotaro Suzuki

막스 밀러는 그의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의 영어 번역에서 적절하게 소개하였는데, 'Dharma는 '제법' 이라고 일반적인 불교적 용어으로 바르게 표현 될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올바른 가르침 '묘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논설에서 Dharma는 일반적으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그것은 형태를 가진 것을 의미하는, 즉 다른 것들과 다른, 개인적인 것으로, 사실 우리가 뜻하는 것은 '대상' 또는 '물건'이다. 이러한 뜻은 동양과 서양의 대부분의 번역에서 빠져있지만, 한편 만약 우리가 항상 Dharma를 법이라고 해석한다면 논설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멀어져서 난해하게 될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Dharma를 때로는 '진리' 또는 '교리', 때로는 '제법'으로 그 문장의 흐름(내용)에 따라 표현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본성과 같은 의미일 때에는 나는 산스크리스트 원어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테오타로 스즈끼의 대승기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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