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普眼菩薩의 請法 보안보살의 청법

爾時에 普眼菩薩이 白普賢菩薩言하사대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得如是法하야 同諸如來ㄴ댄

何故로 不名佛이며 何故로 不名十力이며 何故로 不名一切智이며

何故로 不名一切法中得菩提者며 何故로 不得名爲普眼이며

何故로 不名一切境中無碍見者며 何故로 不名覺一切法이며

何故로 不名與三世佛로 無二住者며 何故로 不名住實際者며

何故로 修行普賢行願을 猶未休息이며 何故로 不能究竟法界에 捨菩薩道니잇고

 

[중간에 이렇게 請法하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습니다.

화엄경에서는 52위 지위 점차를 이야기를 하지만, 그 지위점차를 行布門(항포문)에서는 낱낱이 분별해서 설명하지만,

圓融門(원융문)에서는 初發心時便成正覺(초발심시변성정각)의 이치 속에 다 녹아 있는 것이러서, 그 낱낱이 계단을 명확하게 나눌 수도 없고, 계단이 없다고도 할 수도 없는, 계단이 있기도 하면서 계단이 없기도 한 것입니다.

즉 있다는 이치에도 맞고, 없다는 이치에도 맞는 도리가 분명히 이 화엄에는 있으니까요.]

 

爾時에 그때 普眼菩薩이 보안보살이 白 普賢菩薩言하사대, 보현보살에게 말했다.

佛子야 불자시여, 此 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이 得 如是法하야, 이러한 법을 얻어

同諸如來ㄴ댄, 여래와 같다면 何故로 不名 佛이며, 왜 부처라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名 十力이며, 왜 십력이라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名 一切智이며, 왜 일체지라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名 一切法中 得菩提者며, 왜 일체법에서 보리(깨달음)를 얻은 이라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得 名爲普眼이며, 왜 보안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으며, 

何故로 不名 一切境中 無碍見者며, 왜 모든 경계 가운데 걸림이 없이 보는 자라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名 覺一切法이며, 왜 일체법을 깨달았다 하지 않으며, 

何故로 不名 與三世佛로, 왜 삼세의 부처님들과 無二住者며, 둘이 없이 머문 이라 하지 않으며, 

[3세불과 한 자리에 딱 머문다.부처하고 똑 같지만 보살은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何故로 不名 住實際者며, 왜 실제에 머문 이라 하지 않으며,

[實際(실제)= 진실제, 진여, 깨달음(보리) 등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 범어로 koti 혹은 bhūta-koti. 인도의 승려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 따르면 진실하므로 ‘실’이라고 하고, 궁극의 경지이어서 ‘제’라고 한다.]

何故로 修行 普賢行願을, 왜 보현의 행원을 猶未休息이며, 쉬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며, 猶未休息유미휴식

何故로 不能 究竟法界에 捨 菩薩道니잇고? 왜 법계에 구경히 보살도를 버리지 못합니까?

[무슨 까닭으로 끝까지 보살도를 행해야 된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부처가 되는 것이 끝이 아니라, 부처이면서 보살이고, 보살이면서 부처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행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지위가 성불한 후입니다.

성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여기 분명하게 나와 있는데, 그것을 보안보살이 묻습니다.

“왜 그렇게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도 (부처라 하지 않고) 부처님과 똑같이 행하느냐?”

“부처이면서ㆍ보살이고, 보살이면서ㆍ부처고, 중이면서ㆍ사람이고, 사람이면서ㆍ중인 것으로 사실은 간단합니다.] 

 

. 普賢菩薩의 보현보살의 답

爾時에 普賢菩薩이 告普眼菩薩言하사대 善哉라 佛子야 如汝所言하야

若此菩薩摩訶薩이 同一切佛인댄 以何義故로 不名爲佛이며 乃至不能捨菩薩道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已能修習去來今世一切菩薩種種行願하야 入智境界ㄹ새 則名爲佛이요

於如來所에 修菩薩行하야 無有休息일새 說名菩薩이며

如來諸力에 皆悉已入일새 則名十力이요 雖成十力이나 行普賢行하야 而無休息일새 說名菩薩이며

知一切法하야 而能演說일새 名一切智요 雖能演說一切諸法이나

於一一法에 善巧思惟하야 未嘗止息일새 說名菩薩이며

知一切法이 無有二相일새 是則說名悟一切法이요 於二不二一切諸法差別之道에 善巧觀察하야

展轉增勝하야 無有休息일새 說名菩薩이며 已能明見普眼境界일새 說名普眼이요

雖能證得普眼境界나 念念增長하야 未曾休息일새 說名菩薩이며

於一切法에 悉能明照하야 離諸闇障일새 名無碍見이요 常勤憶念無碍見者일새 說名菩薩이며

已得諸佛智慧之眼일새 是則說名覺一切法이요 觀諸如來正覺智眼하야 而不放逸일새 說名菩薩이며

住佛所住하야 與佛無二일새 說名與佛無二住者요 爲佛攝受하야 修諸智慧일새 說名菩薩이며

常觀一切世間實際ㄹ새 是則說名住實際者요

雖常觀察諸法實際나 而不證入하고 亦不捨離ㄹ새 說名菩薩이며

不來不去하고 無同無異하야 此等分別을 悉皆永息일새 是則說名休息願者요

廣大修習하야 圓滿不退ㄹ새 則名未息普賢願者며

了知法界의 無有邊際와 一切諸法의 一相無相일새 是則說名究竟法界에 捨菩薩道요

雖知法界無有邊際나 而知一切種種異相하야 起大悲心하야 度諸衆生호대 盡未來際토록

無有疲厭일새 是則說名普賢菩薩이니라

 

爾時에 그러자 普賢菩薩이 告 普眼菩薩言하사대, 보현보살이 보안보살에게 말했다. 

善哉라 佛子야 장하십니다. 불자여, 如汝 所言하야, 그대의 말처럼 

若 此菩薩摩訶薩이 同 一切佛인댄, 만일 이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과 동일하다면 

以何義故로, 무슨 까닭에 不名爲佛이며,  부처라 하지 않고

乃至 不能捨 菩薩道오? 나아가 보살도를 버리지 못합니까?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은

已能修習 去來今世 一切菩薩 種種行願하야, 이미 삼세의 모든 보살의 갖가지 행원을 수습하여

入 智境界ㄹ새, 지혜의 경계에 드러갔으니 則名爲佛이요. 곧 부처라 할 것이요,

[삼세(三世)= 三際(삼제). 過去世(過去 · 前世 · 前生 · 前際)와 現在世(現在 · 現世 · 現生 · 中際)와 未來世(未來 · 來世 · 來生 · 當來 · 後際)의 總稱. 去來今, 去來現, 已今當이라고도 하고, 現在世와 未來世를 합하여 現當二世라고도 한다.]

於如來所에 修菩薩行하야 여래의 처소에서 보살행을 닦기를 無有休息일새, 쉬지 않고 하였으니 

說名菩薩이다. 보살이라 말할 것이며[계속 보살행을 닦으니까 또한 보살입니다.]

如來諸力에 여래의 모든 능력에 皆悉已入일새, 이미 다 들어갔으니

則名十力이요. 십력이라 할 것이며, 雖成十力이나 비록 십력을 이루었더라도

行普賢行하야, 보현행을 행하기를 而無休息일새, 쉬지 않고 하니 說名 菩薩이다. 보살이라 말할 것이며, 

[보살이 됐다가 부처가 됐다가, 보통 사람이었다가ㆍ중이었다가, 스님이었다가 사람이었다가,

먹고 자는 것은 보통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툴툴털고 일어나서 예불하고ㆍ기도하고ㆍ경읽고ㆍ교화하고ㆍ설법하고ㆍ목탁치면  스님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기가막힌 도리입니다.]

 

知 一切法하야 而能演說일새. 일체법을 알고 능히 연설하니 名 一切智요, 일체지라 하고,

雖 能演說 一切諸法이나, 일체의 모든 법을 능히 연설하지만

於一一法에 善巧 思惟하야, 개개의 법에서 잘 사유하기를 善巧선교=교묘한 수단과 방법

未嘗止息일새.  그치지 않으니 未 아닐 미, 嘗 맛볼 상, 止息지식= 멈추어 그침

說 名菩薩이며 보살이라 말할 것이며,

知 一切法이 無有二相일새, 일체법에 두 모양이 없음을 아니 

是則說名 悟一切法이요. 이를 곧 일체법을 깨달았다 할 것이며,

於二不二 一切諸法 둘이 둘 아닌(두 가지에 두 가지가 아닌) 일체법의 差別之道에, 차별한 도를

善巧 觀察하야, 잘 관찰하여 展轉增勝하야,  더욱 수승히 하기를 展轉增勝전전증승

無有休息일새. 쉬지 않고 하니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已能 明見 普眼境界일새, 이미 보안의 경계를 밝게 보았으니 說名普眼이요. 보안이라 말할 것이며,

雖能 證得 普眼境界나, 비록 보안의 경계를 증득했더라도 念念에 增長하야, 순간순간마다 증장시키기를

未曾休息일새. 쉬지 않고 하니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비록 능히 보안의 경계를 증득했으나 더욱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일찍이 휴식하지 아니할새 이름이 보살이다.]

於一切法에 悉能明照하야, 일체법을 능히 밝게 비춰서 

離諸闇障일새. 어둠의 장애를 떠났으니 闇 닫힌 문 암, 障 막을 장,   

名無碍見이요. 걸림없는 견이라 할 것이며,

常勤憶念 無碍見者일새, 걸림없이 보는 이를 늘 힘써 억념하니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견(見)= 눈으로 보는 것. 생각하여 헤아리고, 사물에 대한 견해를 정하는 것. 見解 · 思想 · 主義 · 主張 · 正見 · 邪見 등으로 쓰이지만 대개의 경우 잘못된 견해를 가리킨다. 번뇌에 五見(五利使)을 넣고 또 二見 · 七見 · 十見 등으로 분류된다.
有見과 無見, 또는 斷見과 常見을 二見이라 한다. 이것은 五見중의 邊見에 해당된다.
七見; 邪見= 因果의 이치를 否定하는 · 我見= 내가 있다는 견 · 常見=身心의 常住를 집착하는 것 · 斷見=身心의 斷滅을 집착하는 것 · 戒盜見=戒禁取見을 말하며, 바르지 못한 계율을 바르다고 하여 그것에 집착하는 것 · 果道見=바르지 못한 행위에 의하여 얻은 결과를 바른 것이라 하여 집착하는 것 · 疑見= 진리를 의심하는 것, 五見에 貪見 · 恚見 · 慢見 · 無明見 · 疑見을 더하여 十見, 또는 十種見이라 한다.
③ 佛敎的이 아닌 잘못된 견해를 四見, 六十二見(梵網經) 등으로 분류한다. 四見이란 소위  四句分別에 의해 모든 外道의 설을 망라한 것으로 예를 들면「세계는 常住」· 「無常」·「常住이면서 無常」· 「常住도 無常도 아니다」라는 네 가지 잘못된 見解와 같은 것을 말한다. 또한 邪因邪果 · 無因有果 · 有因無果 · 無因無果의 네 가지 잘못된 주장을 四見이라고도 한다.]

 

已得 諸佛 智慧之眼일새, 이미 제불의 지혜안을 얻었으니 

是則說名 覺一切法이요. 이를 곧 일체법을 깨달았다 할 것이며,

觀諸如來 正覺智眼하야, 여래의 정각의 지혜안을 관찰하기를  

而不放逸일새. 게을리 하지 않으니 放逸방일=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놂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住 佛所住하야, 부처님 머무신 데 머물러 與佛無二일새, 부처님과 더불어 둘이 아니니(없으니) 

說名與佛 無二住者요. 부처님과 더불어 둘이 없이 머문다 할 것이며, [그대로 부처입니다]

爲佛攝受하야, 부처님의 섭수하심을 얻어 修諸智慧일새. 온갖 지혜를 닦았으니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常觀 一切世間實際ㄹ새, 일체세간의 실제를 항상 관찰하니

是則說名 住實際者요이를 곧 실제에 머무는 이라 할 것이며,

[實際(실제)= 진실제, 진여, 깨달음(보리) 등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 범어로 koti 혹은 bhūta-koti. 인도의 승려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 따르면 진실하므로 ‘실’이라고 하고, 궁극의 경지이어서 ‘제’라고 한다.]

雖常觀察 諸法實際나, 비록 법의 실제를 항상 관찰하더라도 

而不證入하고 亦不捨離ㄹ새. 증득해 들어가지도  또 버리지도 않으니 

說名菩薩이며, 보살이라 할 것이며,

不來 不去하고 오지도 가지도 않고 無同 無異하야 같지도 다르지도 않아서 

此等分別을. 이러한 등의 분별을 悉皆永息일새. 영원히 쉬었으니(떠났으니) 永 길 영, 息 숨쉴 식

是則說名 休息願者요. 이를 곧 원을 쉬어버린 이라 할 것이며,

[이 부처의 자리는 願을 쉬어 버린 자리= 願이 없는 자리 이니까 '불완전한 자리'입니다.

願을 쉬는데 왜 부처가 됩니까? 탁자위에 노랗게 올라 앉아서 밥만 따먹고 있는 그것이 불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廣大 修習하야 광대히 닦아 익히고 圓滿不退ㄹ새. 원만히 하여 퇴전치 않으니 

則名 未息 普賢願者라. 보현의 원을 쉬지 않는 이라 할 것이며, 未息미식

了知 法界의 無有邊際와 법계의 끝이 없음과 

一切諸法의 一相無相일새. 일체법이 한 모양으로 모양이 없음을 了知= 요지하였으니 

是則 說名究竟 法界에, 이를 곧 법계에 구경히 捨 菩薩道요. 보살도를 버린다 할 것이며,

[구경법계에 들어앉아 있으니까 보살도를 버린 것입니다.]

雖知 法界 無有邊際나, 비록 법계가 끝이 없음을 알지만 

而知一切 種種異相하야, 갖가지로 다른 모든 모양들을 알아서 

起 大悲心하야,  대비심을 일으키고 度 諸衆生호대, 중생 제도하기를 

盡 未來際토록,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無有疲厭일새. 마다하지 않으니 

是則 說名 普賢菩薩이니라. 이를 곧 보현보살이라 할 것입니다. [보현보살, 보현행이 궁극입니다.]

 

. 譬喩 

佛子야 譬如伊羅鉢那象王이 住金脇山七寶窟中에 其窟周圍가 悉以七寶로 而爲欄楯하고

寶多羅樹가 次第行列하며 眞金羅網으로 彌覆其上하며 象身潔白이 猶如珂雪이어든

上立金幢하야 金爲瓔珞하며 寶網覆鼻하고 寶鈴垂下하며 七支成就하고 六牙具足하며

端正充滿하야 見者欣樂하며 調良善順하야 心無所逆이라가 若天帝釋이 將欲遊行하면

爾時象王이 卽知其意하고 便於寶窟에 而沒其形하야 至忉利天釋主之前하야

以神通力으로 種種變現하야 令其身으로 有三十三頭하며 於一一頭에 化作七牙하며

於一一牙에 化作七池하며 一一池中에 有七蓮華하며

一一華中에 有七女하야 一時俱奏百千天樂이어든

是時帝釋이 乘玆寶象하고 從難勝殿으로 往詣華園에 芬陀利華가 遍滿其中이라

是時帝釋이 至華園已에 從象而下하야 入於一切寶莊嚴殿하야 無量女로 以爲侍從하고

歌詠妓樂으로 受諸快樂이러라

爾時象王이 復以神通으로 隱其象形하고 現作天身하야 與三十三天과 及諸

於芬陀利華園之內에 歡娛戲樂하니 所現身相과 光明衣服과 往來進止와 語笑觀瞻이

皆如彼天하야 等無有異라 無能分別此象此天하야 象之與天이 更互相似하니

佛子야 彼伊羅鉢那象王이 於金脇山七寶窟中에 無所變化하고 至於三十三千之上하야

爲欲供養釋提桓因하야 化作種種諸可樂物하야 受天快樂이 與天無異ㄴ달하니라

 

佛子야 불자여, 譬如伊羅鉢那象王이, 마치 이라발나 코끼리왕이 伊羅鉢那象王이나발나상왕,

住 金脇山 七寶窟中, 금협산 칠보굴 속에 사는데 金脇山금협산 七寶窟칠보굴,

其窟 周圍가, 그 굴의 주위에는  窟 굴 굴, 圍 둘레 위, 에워쌀 위, 

悉以七寶로 而爲欄楯(이위난순)하고, 칠보로 난간을 이루고, 七寶칠보 欄楯난순, 欄 난간 란, 楯 방패 순, 

寶多羅樹가 次第行列하며, 보배 다라수 차례로 줄지었으며, 寶多羅樹보다라수 次第行列차제행열,

眞金羅網으로 彌覆其上하며, 진금으로 짜여진 그물로 그 위를 덮었고, 眞金羅網진금나망 彌覆其上미부기상,

象身潔白,  코끼리의 몸은 희고 깨끗하여 象身潔白상신결백, 

猶如珂雪이어든, 마치 눈 같은데 猶如珂雪유여가설,

上立金幢하야, 위에 황금 깃발을 세웠으니    上立金幢상립금당, 

金爲瓔珞하며 금이 영락이 되었고 金爲瓔珞금위영락

寶網覆鼻하고,  보배그물로 코를 덮고 寶網覆鼻보망부비, 

寶鈴垂下하며, 보배방울 드리워져 있으며, 寶鈴垂下보령수하, 

七支가 成就하고, 七支= 몸의 일곱 부분이 온전하고 七支칠지 [七支= 코ㆍ상아  개ㆍ네 다리]

六牙가 具足하며,  여섯 상아를 구족하여 牙 어금니 아, 바퀴테 아

端正充滿해서 단정함이 충만한지라  端正充滿단정충만 

見者欣樂하며, 보는 이들이 즐거워 하며 欣 기뻐할 흔, 기쁠 흔, 樂 즐거울 락, 

調良 善順하야, 잘 길들여져서 순종하여 調 고를 조, 良 어질 량, 順 순할 순

心無所逆이라가, 거역하려는 마음이 없었으니 逆 거스를 역, 거스릴 역

若天帝釋이, 만약에 제석천왕이 將欲遊行하면, 행차하고자 하면 將欲遊行장욕유행,

爾時 象王이, 그 때 코끼리 왕이 卽知 其意하고, 곧 그 뜻을 알고 

便於寶窟, 문득 칠보굴에서 便於寶窟변어보굴, 

而沒其形하야, 모습(형상)이 사라져 而沒其形이몰기형, 

至 忉利天 釋主之前 하야,  도리천의 제석천왕 앞에 이르러 至忉利天釋主之前지도리천석주지전,

以神通力으로 신통력으로  種種變現하야  갖가지로 변해 나타나되  

令其身으로,  몸으로 하여금 有 三十三頭하며, 33개의 머리가 있게 하기도 하고 

於一一頭에 낱낱의 머리마다  化作 七牙하며, 일곱 상아를 변화해 만들며,

於一一牙에 낱낱의 상아마다 化作 七池하며, 일곱 연못을 변화해 만들고 池 못 지,

一一池中에 낱낱의 연못마다 有 七蓮華하며, 일곱 연꽃이 있으며,

一一華中에 낱낱의 연꽃마다 有 七女하야, 일곱 채녀가 있어 婇女채녀, 

一時 俱奏 百千天樂이어든, 일시에 백천 가지의 천상의 음악을 함께 연주하는데, 俱 함께 구, 갖출 구, 奏 연주 주

是時 帝釋이 이 때 제석천왕은 乘玆寶象하고, 이 보배 코끼리에 올라 乘玆寶象승자보상,

從難勝殿으로, 난승전으로 부터 從難勝殿종난승전 往詣 華園에, 꽃동산으로 나아가 往詣왕예 華園화원,  

芬陀利華가 遍滿其中이라. 분다리화가 그 안에 두루 가득 피어있어, 

是時 帝釋이그 때 제석천왕은 至 華園已에, 꽃동산에 이르러   至華園已지화원이, 

從象 而下하야,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 入 於一切寶莊嚴殿하야, 일체보배로 장엄한 궁전에 들어가서 寶莊嚴殿보장엄전

無量女로 한량없는 채녀들의 以爲侍從하고, 시중을 받으며 侍從시종= 시중을 드는 사람

歌詠妓樂으로, 노래와 기악으로 歌詠妓樂가영기악, 受諸快樂이러라. 모든 쾌락을 누립니다.

 

爾時 象王이, 그 때 코끼리는 復以神通으로 다시 신통으로 

隱 其象形하고,  코끼리의 모습을 감추고  隱其象形은기상형, 隱 숨을 은, 

現 作天身하야, 하늘 몸=천신의 모습을 나타내   與三十三天과 삼십삼천들과

及諸女로 모든 채녀들로 더불어 於芬陀利 華園之內에, 분다리화(백연화) 동산 안에서 

歡娛戲樂하니, 기뻐하며 즐기는데, 歡娛戲樂환오희락,

所現身相과, 나타낸 모습이나 光明 衣服과, 빛나는 의복이나 往來 進止와, 오고 가는 거동이나 

語笑觀瞻,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을 보건대 語笑觀瞻어소관첨,

皆如彼天하야  모두 그 천신들과 等 無有異라. 같아서 다름이 없는지라 

無能分別 此象 此天하야, 이것이 코끼리인지 천신인지 분별할 수 없을만큼 

象之與天이, 코끼리와 천왕이 更互 相似하니, 서로 흡사합니다. 更互相似갱호상사, 

 

佛子야 불자여 彼 伊羅鉢那象王이, 그 아라발나 코끼리왕은 

於金脇山 七寶窟中에, 금협산의 칠보굴 속에서는 無所變化하고, 변화하는 바가 없으나 

至 於三十三千 之上하야,  삼십삼천 위에서는 

爲欲供養 釋提桓因하야,  석제환인께 공양하고자 하여 爲欲供養위욕공양 釋提桓因석제환인 

化作種種 諸可樂物하야, 갖가지 즐길만한 것들을 화작하여 

受天 快樂이, 하늘의 쾌락을 누리는 것이 與天無異ㄴ달하니라. 하늘과 더불어 다름이 없습니다.

[이라발나상왕(伊囉鉢那象王), 이라발나는 한역하면 향엽(香葉)이니, 금협산(金脅山) 보배굴 주변에 향기로운 잎의 나무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며, 33()를 화작(化作)하여 하나하나의 두() 6()가 있고, 하나하나의 아() 위에서 7()를 화작하고, 하나하나의 지() 속에서 7연화(蓮華)를 화작하기에 화한 바 연꽃잎이 향기롭고 순결함을 취해서 이로 인해 명칭을 삼은 것이다. 1금산(金山)의 옆구리에 주거(住居)하면서 제석이 유행(遊行)코자 할 때를 알게 되면 여기서 몰()하여 천상에 나타나 제석을 보내고 원()에 이르러 유관(遊觀)하는데, 이때는 그 자신을 화하여 천인(天人)과 더불어 비슷하게 하고, 제석이 환궁하면 다시 코끼리 몸을 지어서 제석을 보내고 궁으로 돌아와 문득 처상에서 몰하여 보배굴 안에 나타나니, 이 비유를 드는 것은 이 보살이 이미 부처 지위를 성취했으면서도 방편행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마치 상왕이 능히 몸을 화해 천()을 지으면서도 항상 상()의 본위(本位)를 잃지 않는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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