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疏序演義卷第一(經前懸談盡八卷終)

 

淸凉山大華嚴寺沙門澄觀撰述

 

將釋此疏에 大分爲四호리니

初는 總序名意요 二는 歸敬請加요 三은 開章釋文이요 四는 謙讚廻向이니

爲順經文에 有四分故라 若順序正流通則合前二하야 爲序分이요 開章은 爲正宗이요 謙讚이 爲流通이니라

 

장차 이 疏를 解釋함에 크게 나누어 四가 됨이니 처음은 총히 名意를 序함이요,

二는 공경히 歸依하야 加被를 請함이요, 三은 章을 열어 文을 해석함이요,

四는 겸손히 廻向함을 찬탄함이니 經文의 四分이 있음을 따르는 연고라.

만약 序分 正宗分 流通分을 따른다면 앞의 둘을 합하여 序分이 되고 開章은 正宗分이 되고

謙讚은 유통분이 되느니라.

今初는 總序名意니 卽是疏序며 亦名敎迹이라  

分有四요 細科爲十이니 言有四者는 一은 通序法界- 爲佛法大宗이요 二는 剖裂下는 別敍此經하야 以申旨趣요

三은 是以菩薩搜秘下는 慶遇由致하야 激物發心이요 

四는 題稱大方廣下는 略釋名題하야 令知綱要니 亦爲順經四分故라

이제 초에 總序名意니 곧 이 疏의 序이며 또한 敎迹을 이름함이라. 대강 나누면 넷이 있음이요

자세하게 과목해 나누면 열이 됨이니 넷이 있다고 말한 것은

一은 법계가 佛法의 大宗이 됨을 通序함이요 二 剖裂下는 따로 이 經을 敍述하야 지취를 폄이요,

三 是以菩薩搜秘下는 由致 만난 것을 기뻐하야 중생을 격려해서 발심하게 함이요

四 題稱大方廣下는 간략히 名題를 解釋하야 하여금 綱要를 알게 함이니 또한 經이 四分이 됨을 따르는 까닭이니라.

言細科爲十者는 爲順無盡故니 一은 標擧宗體요 二는 別歎能詮이요 三은 敎主難思라 四는 說儀周普요

五는 言該本末이요 六은 旨趣玄微요 七은 成益頓超요 八은 結歎宏遠이요 九는 感慶逢遇요 十은 略釋名題라

세밀하게 과목하면 十이 된다고 말한 것은 無盡을 따른 연고니 一은 宗體를 들어서 표함이요

二는 따로 能詮을 讚歎함이요, 三은 敎主를 생각하기 어려움이요 四는 說儀가 두루함이요

五는 말이 本末을 꾸림이요 六은 지취가 玄微함이요 七은 成益을 몰록 초월함이요

八은 크고 넓음을 찬탄함이요 九는 만난 것을 감사하고 기뻐함이요 十은 간략히 名題를 해석함이라.

往復이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含衆妙而有餘하며 超言思而逈出者는 其唯法界歟인저

往復이 無際이나 動靜이 한 根源이라 衆 妙를 포함하고도 남음이 있으며 말과 생각을 초월하야 훤출히

벗어난 것은 그 오직 법계뿐인저.

今初에 往復無際로 至其唯法界歟하야 文有五句하니 言意多含이어니와 略爲四意호리라

一은 約三大釋이요 二는 約本末釋이요 三은 明法界類別이요 四는 總彰立意라 初今에 約三大釋者는 意明法界-

具三大故니 初句는 明用이요 次句는 明體요 次句는 明相이요 次句는 融拂이요 末句는 結屬이라

이제 처음에 往復無際에서 其唯法界歟에 이르기까지의 글은 다섯 구절이 있으니 말한 뜻은 많은 것을

포함하였으나 간략하게 하면 四意가 되나니라. 一은 三大를 잡아서 해석함이요 二는 本末을 잡아서 해석함이요,

三은 法界의 類가 다름을 밝힘이요, 四는 총히 세운 뜻을 드러냄이라. 이제 처음은 三大를 잡아서 해석함이니 뜻은 법계가 三大를 갖추고 있음을 밝히고자 함이니라. 처음 구절은 用을 밝힘이요 다음 구절은 體를 밝힘이요 다음 구절은 相을 밝힘이요 다음 구절은 融合하여 떨침이요 마지막 구절은 結屬이라.

今初니 卽往復無際- 是也라 往者는 去也며 起也며 動也요 復者는 來也며 滅也며 靜也라 無際에 有二하니 一은 約廣多하야 無有際畔이니 此就事用이요 二는 約絶於邊際니 據卽事同眞이라 何法이 往復고 略有三義하니 一은 雙約迷悟說이요 二는 唯就妄說이요 三은 返本還源說이니 今初라 爲迷法界而往六趣는 去也며 動也요 悟法界而復一心은 來也며 靜也니 皆法界用也라 迷則妄生이요 悟卽妄滅이라

이제 처음은 往復 無際가 이것이니라. 往은 가는 것이며 일어나는 것이며 움직이는 것이며 復은 오는 것이며 멸하는 것이며 고요한 것이라. 無際에 둘이 있으니 一은 넓고 커서 際畔이 없음이니 이것은 事用에 나아 감이요 二는 邊際가 끊어짐을 잡음이니 일에 즉하여 眞과 같음을 듦이니라. 무슨 법이 往復하는고 간략히 세 뜻이 있으니 一은 쌍으로 迷悟를 잡아서 說함이요 二는 오직 妄에 나아가 說함이요 三은 本을 돌이켜 근원에 돌아감을 說함이니 이제 초라. 법계를 미하여서 六趣에 가는 것은 去며 動이요 법계를 깨달아 一心을 회복하는 것은 來이며 靜이니 다 법계의 用이니라 迷하면 곧 妄이 나고 깨달으면 곧 妄이 없어짐이라.

然이나 眞有二義하니 一은 約隨緣인댄 迷卽眞隨於妄이라 則眞滅妄生이요 悟卽妄滅歸眞이니 則眞生妄滅이라 二는 約不變인댄 迷悟生滅이 來往紛然이나 眞界는 湛若虛空하야 體無生滅하니 此義는 在下體中하니라

그러나 眞에는 두 뜻이 있나니 一은 隨緣을 잡을진댄 迷한 즉은 眞이 妄을 따름이라. 眞이 滅하면 곧 妄이 낢이요 깨달은 즉 妄이 滅하여 眞에 돌아가나니 眞이 나면 곧 妄이 滅하나니라. 二는 不變을 잡을진댄 迷悟와 生滅이 오고 감이 어지러우나 眞界는 맑기가 허공과 같아서 體가 生滅이 없나니 이뜻은 아래 體 가운데에 있나니라.

言無際者는 迷來無始일새 故無初際요 悟絶始終일새 際卽無際니라 二는 唯約妄說에 復有二義하니 一은 竪論去來인댄 過去無始하고 未來無終이니 無初後際요 二는 約橫說인댄 妄念攀緣이 浩無邊際니 上二는 皆約廣多無際니라 若約絶際인댄 妄無妄源하야 竪無初際요 旣無有始어니 豈得有終이리오 故絶後際니라

無際라고 말한 것은 迷하여 온 것이 비롯함이 없음일새 고로 初際가 없음이요 깨달으면 始終이 끊어짐일새 고로 際가 곧 際가 없음이라. 二는 오직 妄을 잡아서 설하는데 다시 두 뜻이 있으니 一은 竪로는 과거와 미래를 논할진댄 과거는 시작이 없고 미래는 마침이 없나니 初後際가 없음이요 二는 橫을 잡아 說할진댄 妄念으로 반연함이 넓어서 邊際가 없음이니 위의 둘은 다 넓고 많아서 際가 없음을 잡음이라. 만약 邊際가 끊어짐을 잡을진댄 妄은 妄의 근원이 없어서 竪로 初際가 없음이요 이미 비롯함이 없거니 어찌 마침이 있으리요. 고로 後際가 끊어짐이라.

中觀論에 云大聖之所說은 本際不可得이니 生死無有始며 亦復無有終이라 若無有始終인댄 中當云何有리오 是故於此中에 先後共亦無라하니라 橫尋妄心인댄 不在內外일새 故亦無際니라 是以로 遠公이 云本端竟何從고 起滅有無際라 一毫涉動境하면 成此 山勢로다 惑相更相承하여 觸理自生滯라 因緣雖無主나 開途非一致라하니 卽其義也니라

中觀論에 이르대 "대성이 說하는 바는 本際를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생사가 비롯함이 없으며 또한 다시 마침도 없음이라. 만약 시종이 없을진댄 가운데가 어찌 있으리요. 이런 연고로 이 가운데에 先後가 함께 또한 없다" 고 하니라. 횡으로 망심을 찾을진댄 안과 밖이 있지 않는 까닭에 또한 無際니라 그러므로 遠公이 이르대 "本과 端이 필경에 무엇을 쫓는고 起滅함에 無際가 있음이라 한 터럭만큼이라도 움직이는 境界를 涉하면 이는 산을 무너뜨리는 세력을 이룸이라 迷惑한 相이 다시 서로 이어져 닿이는 이치마다 스스로 막힘을 이룸이라 因緣은 비록 主가 없으나 길을 열으매 한 이치가 아니라" 하니 곧 이 뜻이니라.

三은 約返本還源說이니 對其初義인댄 初義는 是總이요 第二約妄은 唯往非來요 今此는 唯復이라 復本源故니 斯卽靜義라 故周易復卦에 云復은 其見天地之心乎인져하니라 然이나 往者必復이라 故로 泰卦에 云無往不復은 天地際也라하니라 就此一義하야 自有往復이라 故로 文殊師利所說不思議佛境界經中에 善勝天子- 問文殊云호대 云何名修菩薩道니잇고 文殊- 初說雙行之行하시고 次云復次天子야 有往有復이 名修菩薩道니라

三은 本을 돌이켜 근원에 돌아감을 잡아 說함이니 그 처음 뜻을 대할진댄 처음 뜻은 이 總이요 第 二는 妄을 잡음은 오직 가고 오지 아니함이요 이제 여기는 오직 復이라. 본원을 회복하는 연고니 이는 곧 고요한 뜻이라. 고로 주역 復卦에 이르되 "復은 天地의 마음을 봄이라" 하니라 그러나 往은 반드시 돌아오는 까닭에 泰卦에 이르대 "가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음은 天地의 際라" 했나니라 이 一義에 나아가서 스스로 往復이 있나니라. 그런 까닭에 文殊師利所說不思議佛境界經 가운데에 善勝天子가 문수보살에게 물어 가로대 "무엇을 이름하여 修菩薩道라 합니까." 문수보살이 처음에는 雙行의 行을 說하시고 다음에 이르대 "다시 天子여 감이 있고 돌아옴이 있는 것을 보살도를 닦는 것이라 이름하나니라" 하니라.

云何名有往有復인고 觀諸衆生의 心所樂欲을 名之爲往이요 隨其所應하야 而爲說法을 名之爲復이며 自入三昧를 名之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得於三昧를 名之爲復이며 自行聖道를 名之爲往이요 而能敎化一切凡夫를 名之爲復이며 如是自得無生法忍은 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得無生法忍은 爲復이며 自以方便으로 出於生死는 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而得出離는 爲復이며 心樂寂靜은 爲往이요 常在生死하야 敎化衆生은 爲復이며 自勤觀察往復之行은 爲往이요 爲諸衆生하야 而說斯法은 爲復이며 自修空無相無願은 爲往이요 爲令衆生으로 斷於三種覺觀心故로 而爲說法은 爲復이며 堅發誓願은 爲往이요 隨其誓願하야 拯濟衆生은 爲復이며 發菩提心하야 願坐道場을 名之爲往이요 具修菩薩의 所行之行을 名之爲復이니 是爲菩薩往復之道라하시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감이 있고 돌아옴이 있다고 합니까" "모든 중생들이 마음에 樂欲하는 바를 觀하는 것를 이름하여 往이라 하고 그 應하는 바를 따라서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이름하여 復이라 하며 스스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을 이름하여 往이라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삼매를 얻게함을 이름하여 復이라 하며 스스로 聖道를 行함을 이름하여 往이라 하며 능히 일체 범부를 교화함을 이름하여 復이라 하며 이와같이 스스로 무생법인을 얻음을 往이라 하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무생법인을 얻게 함을 復이라 하며 스스로 방편으로써 생사에서 벗어남은 往이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出離를 얻게함은 復이며 마음이 적정함을 좋아함은 往이요 항상 生死에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復이며 스스로 부지런히 往復의 行을 관찰하는 것은 往이요.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하는 것은 復이며 空과 無相 無願을 닦음은 往이요 중생으로 하여금 三種의 覺觀心을 끊게하는 연고로 설법하는 것은 復이며 굳게 서원을 發함은 往이요 그 서원을 따라서 중생을 건지는 것은 復이며 보리심을 發하여 道場에 앉기를 원함을 이름하여 往이라 하고 보살의 行할 바의 行을 갖추어 닦음을 이름하여 復이니 이것이 보살의 往復의 道가 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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