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三 菩薩問明品第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2

 

진(眞)과 가(假)의 법재(法財)를 훌륭히 요달해서 중생에게 베풀기 때문에 재수(財首)라 칭하는 것이며, 

10신(十信)의 마음으로 처음부터 법재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수(首)라 칭하는 것이며,

또한 이 믿음 속에서 법의 성재(聖財)로 중생을 요익케 하여 자타(自他)로 하여금 성품의 오염이나 집착을 없게 하기 때문에 세계의 명칭이 연화색(蓮華色) 이라고 호칭함을 밝힌 것이다.

또 법으로 사람에게 보시해 미혹을 타파해서 지혜를 이루는 것을 멸암지불(滅暗智佛)이라 칭하는 것이니, 이는 해당 지위의 믿음에서 스스로 법문의 이행(理行)과 지혜의 인과를 갖추고 있음을 밝힌 것으로 재수(財首)는 바로 이에 해당되는 지위의 행이다.

지위에 따른 인과를 설명하면, 항상 자기 마음의 근본부동지불인 문수사리를 신심의 인(因)으로 삼아 닦아 나감으로써 해탈지불(解脫智佛)을 얻는 것이니, 재수보살은 이 해당되는 지위의 행과(行果)이고 부처님께서는 지과(智果)인 것이다.

 

문수보살이 재수(財首)보살에게 질문하다.ㅡ 10 수중생(十隨衆生)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 財首菩薩言(재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보살이 재수(財首)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佛子(불자) 一切衆生(일체중생) 非衆生(비중생) 불자여, 일체중생이 중생이 아니거늘 

云何如來(운하여래) 隨其時(수기시)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그 시(時, 시절인연)을 따르시며,

隨其命(수기명) 그 명(命, 생명)을 따르시며

隨其身(수기신) 그 몸(身)을 따르

隨其行(수기행) 그 행(行)을 따르시며

隨其解(수기해)  해(解, 이해)를 따르

隨其言論(수기언론) 그 말을 따르시며

隨其心樂(수기심락) 그 심락(心樂, 마음에 즐겨하는 바)을 따르시며

隨其方便(수기방편) 그 방편을 따르시며

隨其思惟(수기사유) 그 사유를 따르시며

隨其觀察(수기관찰) 그 관찰을 따르시어

於如是諸衆生中(어여시제중생중) 爲現其身(위현기신) 敎化調伏(교화조복) 

이와 같은 모든 중생들 가운데에  몸을 나타내시어 교화하고 조복하시는 것입니까?”

 

ㅡ재수(財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首菩薩(재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그 때에 각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 此是樂寂滅(차시락적멸) 多聞者境界(다문자경계)

我爲仁宣說(아위인선설) 仁今應聽受(인금응청수) 

이는 바로 적멸(寂滅)을 즐기면서 많이 듣는 다문자(多聞者, 공부 많이 한 사람)의 경계이라 
제가 인자(仁者)를 위하여 자세히 설명할 것이니, 그대는 이제 마땅히 잘 듣도록 하소서.  

 

2. 分別觀內身(분별관내신) 此中誰是我(차중수시아) 

若能如是解(약능여시해) 彼達我有無(피달아유무) 

내신(內身, 몸 속)을 분별하여 관찰하여서, 그 가운데에서 무엇을 '나(我)'라 할 것인가! 
만약 능히 이러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나(我)'의 있고 없음의 유무(有無)에 통달하게 되리라.

 

3.此身假安立(차신가안립) 住處無方所(주처무방소) 

諦了是身者(제요시신자) 於中無所着(어중무소착) 

 몸은 거짓으로 안립(安立, 존재)하여 있는 것이며,

그 머무는 주처(住處)도 일정하지 않은 무방소(無方所)이라.
진리를 관찰해서 잘아는 체료(諦了)한 이가 이 몸을 분명히 아는 이라서,

그러한 몸 가운데에서 집착함이 없으리라.   

 

4. 於身善觀察(어신선관찰) 一切皆明見(일체개명견) 

知法皆虛妄(지법개허망) 不起心分別(불기심분별)  

이 몸을 분명하게 잘 관찰한다면, 일체의 모든 것들이 모두 밝게 보일 것이니, 
법(오온, 육근, 육식, 육진)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마음으로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병이나 죽음에 대하여 분별하지 않으니라) 

 

5. 壽命因誰起(수명인수기) 復因誰退滅(부인수퇴멸)

猶如旋火輪(유여선화륜) 初後不可知(초후불가지) 

수명(壽命)은 누구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며? 또 누구로 인하여 멸하여 사라지는 것인가?

(수명이라는 것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마치 불을 돌리면 선화륜(旋火輪, 불 바퀴)과 같이 보이는 것과 흡사한 것으로, 그 처음이나 끝을 알지 못하리라.

ㅡ선화륜(旋火輪): 화륜(火輪)ㆍ화취(火聚)라고도 하며 불을 빨리 선회(旋回)할 때에 보이는 불의 바퀴를 말하는데, 온갖 것이 실체(實體)가 없고 꼭두각시와 같아서 일시적인 것일 뿐, 영구적인 것이 아닌, 가상(假相)이라는 것을 비유 한 것입니다.

 

6.智者能觀察(지자능관찰) 一切有無常(일체유무상) 

諸法空無我(제법공무아) 永離一切相(영리일체상) 

지혜가 있는 지자(.智者)는 일체의 유(有, 존재)들이 무상하다는 것을 능히 관찰하리니
제법(諸法)은 공(空)한 것이며, 무아(無我)라는 것을 관찰하여서 일체상(一切相)을 영원히 여의리라.

 

7.衆報隨業生(중보수업생) 如夢不眞實(여몽불진실)

念念常滅壞(염념상멸괴) 如前後亦爾(여전후역이) 

모든 과보(果報)가 업(業)을 따라 생겨 나는 것이니, 마치 꿈과 같이 진실하지 않아서
염념(念念, 순간순간)에 항상 멸괴(滅壞)하여 부서져서 소멸는 것이니, 그 전후(前後) 역시도 이러한 것이로다.

 

8.世間所見法(세간소견법) 但以心爲主(단이심위주) 

隨解取衆相(수해취중상) 顚倒不如實(전도불여실) 

세간에서 보는 바의 모든 법들은 이 마음이 주(主, 주인)가 되는 것이라
그 해(解, 이해 소견)를 따라 온갖 형상을 취하나니, 전도(顚倒)되어 여실(如實)하지 않은 것이로다.  

 

9.世間所言論(세간소언론) 一切是分別(일체시분별) 

未曾有一法(미증유일법) 得入於法性(득입어법성) 

세간에서 언론으로 논하는 일체의 모두가 분별(分別)일 뿐이니
일찍이 하나의 일법(一法)도 법성(法性)에 들어간 것이 없도다.

 

10. 能緣所緣力(능연소연력) 種種法出生(종종법출생) 

速滅不暫停(속멸불잠정) 念念悉如是(염념실여시) 

능히 인연하는 바의 능연(能緣)과 인연이 되는 바의 소연(所緣)의 힘으로, 갖가지의 모든 법이 생기나나,
속히 멸하여서 잠깐도 머물지 않는 것이니, 염념(念念, 순간순간)이 모두 그러하니라.

 

ㅡ관법(觀法)이란 법을 관하는, 곧 마음으로 진리를 관념(觀念)하는 것이다.
관법은 어떤 한 가지 대상을 생각함으로써 무기(無記)에 빠지지 않고 다른 번뇌가 일어날 틈을 주지 않는 공부방법으로, 불교에서 실천 수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심(觀心)은 주관인 마음을 관하는 것, 관법(觀法)은 객관 대상을 관하는 것으로, 불교 관념론 철학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서로 융통(融通)하고 상즉(相卽)하므로 관법이 관심과 같다. 관법은 관심을 수행하는 방법이란 뜻이기도 하다.
관법은 수행의 길로 처음 들어와 속세의 때가 많이 묻어있는 사람에게 주로 시킨다. 관법이란 마음에 전심해 부처나 법의 일정한 대상을 관찰하고 염(念)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불교의 실천수행법이다. 바로 남방불교에서의 위빠사나(vipassana)를 말하는 것으로, 남방불교에서는 위빠사나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대승불교 권에서도 역시 관법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1. 용수(龍樹, 나가르주나) 보살의 삼관법
용수가 확립한 삼관법(三觀法)은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으로,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수나라 때 천태대사(538~597) 지의(智顗-智者)가 세운 천태삼관(天台三觀)의 모태가 되었다. 
천태삼관(天台三觀)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 하며,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은 차차 관(觀)이 깊어지는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공(空)ㆍ가(假)ㆍ중(中) 세 가지 진리를 한마음 가운데서 원만하게 체득하는 것을 일심삼관이라 한다. 이 삼관은 천태종의 중요한 법문으로서 교의와 실천의 골격을 이루고 있으며, 여러 삼관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설이다. 
가관(假觀)이란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으로서,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이어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도 실체가 없는 임시적인 가(假)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관을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이라고도 하고, 모든 사물은 공(空)한 것이지만 가(假)라는 모양을 실어 표출된다는 말이다. 
공관(空觀)은 만유현상을 거울에 나타난 허상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가관(假觀)은 거울에 나타난 허상이 비록 실물이 아니나 보는 이의 시각에 들어와 차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기에, 그 허상대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차별의 허상을 그대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가관이라 한다. 중생들이 보는 현상 세계가 바로 가관인 것이다. 이와 같이 만유의 모든 법은 공한 것이라서 하나도 실재하는 것이 없으나, 그 모양이 분명한 것은 대개 가(假)의 존재라고 관하는,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가설로 생각해 명상하는 것이 가관이다.ㅡ 아미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