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6
▷수(水 물)·화(火 불)·풍(風 바람)·공(空 비움)의 오대(五大)는 서로 포용한다.
“富樓那!又汝問言:‘地水火風本性圓融周遍法界,疑水火性不相𣣋滅;又徵虛空及諸大地,俱遍法界不合相容。’
부루나여, 또 네가 묻기를, 흙(地)과 물(水)과 불(火)과 바람(風)의 본성(本性)이 걸림 없이 원융하여서 법계(法界)에 두루 원만하다면, 어찌하여 물(水)과 불(火)의 성질이 서로 능멸하여 밀어내어 없애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으며,
또 ‘허공과 모든 대지가 함께 법계에 두루하다면 마땅히 서로 받아들여 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富樓那!譬如虛空體非群相,而不拒彼諸相發揮。
부루나여,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의 본체가 여러 모양의 군상(群相)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모양의 제상(諸相)이 나타나는 것을 막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ㅡ허공체비군상(虛空體非群相), 허공은 물상(산천초목)이 아니지만 허공 속에 모든 물상이 다 나타난다.
허공은 장성(藏性, 여래장)을, 군상(群相)은 사대(四大)를 비유한 것이다.
진원은 상(相)이 없는 것이나, 자성(自性)을 지키지 못해서 반연을 따라 상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나타나는 것을 막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여래장은 칠대가 아니지만 칠대(모든 현상)가 여래장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곧 여래장이 바로 허공과 같은 성질이다.
허공이 제상(諸相)은 아니나, 제상(諸相)이 허공에 의지해서 나타나며, 진체(眞體)는 사대는 아니지만 사대가 진체를 이루나니, 사대(四大)가 본래 물도 아니고 불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능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공불여래장(空不空如來藏)에 비유한 것이다. 공체무상(空體無相)은 공의(空義)요,
제상을 거부하지 않는 불거제상(不拒諸相)이니, 불공의(不空義)이다.
합(合)이란 불변수연(不變隨緣)를 뜻하고, 또한 3제(三諦)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며,
체(體)는 군상(群相)이 아니고, 유변(有邊)에 떨어지지 않으니 진제(眞諦)요,
용(用)을 발휘함을 거부하지 않아서 공변(空邊)에 떨어지지 않으니 속제(俗諦)이며,
공(空)에도 유(有)에도 떨어지지 않아서 전부 중도(中道)로 돌아가니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이다.ㅡ 한울림
所以者何?富樓那!彼太虛空,日照則明、雲屯則暗、風搖則動、霽澄則淸、氣凝則濁、土積成霾、水澄成映。
왜냐하면, 부루나야! 저 넓은 태허공(太虛空)에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둡고, 바람이 흔들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기면 흐리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고,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느니라.
ㅡ여기에서는 제상(諸相)을 보여주고 아래에서는 서로 포용함을 밝힌다.
於意云何,如是殊方諸有爲相,爲因彼生?爲復空有?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여러 방면의 모든 유위의 현상인 제유위상(諸有爲相)이 유위상 자체에서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허공을 좇아서 존재하는 것인가?
ㅡ제유위상(諸有爲相)은 해와 구름 등을 말한다.
若彼所生,富樓那!且日照時旣是日明,十方世界同爲日色,云何空中更見圓日?
만약 저 유위상 자체의 원인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여, 장차 해가 비칠 때에는 이미 해의 밝음이 있으므로, 시방세계가 다 같이 햇빛이어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 가운데에서 다 둥근 해를 보게 되는 것인가?
若是空明,空應自照,云何中宵、雲霧之時不生光耀?
만약 허공을 좇아서 밝은 것이라면, 허공이 당연히 스스로 비추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밤 중이나 구름과 안개가 끼었을 때에는 허공이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인가?
當知是明非日非空不異空日。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밝음은 해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허공과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ㅡ즉 인연도 아니고, 허공과 태양을 떠나서 달리 밝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 자연도 아닌 것이다.
觀相元妄無可指陳,猶邀空花結爲空菓,云何詰其相𣣋滅義?
상(相)으로 살펴보건대, 본래 허망한 것이라서 지적해서 가리켜 말할 수 없는 것이 마치 허공의 꽃인 공화(空花)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헛되게 기다리는 것과 같나나, 어떻게 서로 능멸(𣣋滅)하는 이치를 따지겠는가?
觀性元眞唯妙覺明,妙覺明心先非水火,云何復問不相容者?
성품(性)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원진(元眞)이라서 오직 묘한 깨달음의 밝음인 묘각명(妙覺明)일 뿐이다.
묘각명의 마음이 본래 물(水)이나 불(火)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 다시 서로 포용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인가?
ㅡ관상원망(觀相元妄) 관성원진(觀性元眞)
①모양(相)으로 보면 원래 허망하여 가리킬 수가 없고, 상으로 보면 천태만상이 다 허망하다.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허공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허망한 것이라서 밀어낼 것이 없다.
②성(性, 본성)으로 보면 원래 참(眞)이라서 오직 묘각명일 뿐이다. 묘각명의 마음은 본래 물도 불도 아닌 것은 물과 불이 생기기 이전의 자리이다. 따라서 진실하니까 용납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③부모가 자식을 낳기 전에는 자식이 없으니까 자식 사이에 알력이 있을 수 없다. 자식이 생긴 후에는 형제간에 알력이 생기는 것이나, 형제가 생기기 이전에는 알력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물과 불이 생기기 이전은 묘각명(妙覺明)인데, 어떻게 서로 밀어내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능엄경 6권에서 귀원성무이(歸元性無二),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품이 둘이 아니고,
성성무불통(聖性無不通) 성인의 마음자리에서 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방편유다문(方便有多門) 그러나 공부하는 방편에는 여러 가지 문이 있다고 하였다.ㅡ향적법진
眞妙覺明亦復如是。汝以空明則有空現,地水火風各各發明則各各現,若俱發明則有俱現,
참되고 묘한 깨달음의 밝음인 진묘각명(眞妙覺明)도 역시 그러하나니,
네가 허공으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저마다 나타나며, 만약 함께 밝힌다면 곧 함께 나타나느니라.
ㅡ여이공명즉유공현(汝以空明則有空現)은 곧 허공은 상(相)이 아니나 나타나는 것을 막지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 '우물을 파서 허공이 생기게 하는 것과, 볼록렌즈로 비추어서 불이 생기게 하는 것 등이 다 그러하다는 것이다. 업인(業因)으로 말한다면,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면 허공이 되며, 바람과 쇠가 서로 마찰하므로 불빛이 생긴다'고 한 것이 그것이고, 마음이 '망령되게 허공을 보는 것이 일어나면, 허공이 나타나나니 지수화풍(地水火風)도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며, 각각(各各)이란 전후(前後)를, 함께의 구(俱)란 동시(同時)를 말한다.
云何俱現?富樓那!如一水中現於日影,兩人同觀水中之日,東西各行則各有日,隨二人去一東一西,先無准的不應難言:‘此日是一,云何各行?各日旣雙,云何現一?’宛轉虛妄,無可憑據。憑 기댈 빙, 據 의거할 거,
어떠한 것을 함께 나타남이라 하는가?
부루나여,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나니, 두 사람이 같이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각 각자의 길을 간다면, 물 속의 해도 두 사람을 따라서 제 각각 하나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가는 것과 같이,
처음부터 일정한 표준이 없는 선무준적(先無准的)이니,
따져 말하기를, 해는 하나인 일시일(日是一)인데, 어찌하여 각기 따로 가는가?라고 하며,
각각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는가?’라고 따지지 못할 것이다.
완전히 허망만 더할 뿐, 그 어디에 의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ㅡ함께 나타나는 현상의 구현상(俱現相)을 해석한 것으로,
해(日)는 진성(眞性) 또는 여래장 묘진여성을, 물은 망심(妄心) 또는 허망한 마음을,
물 속의 해인 일영(日影)은, 허망한 경계를, 두 사람은 허망한 업인의 망업(妄業) 또는 허망한 업을 비유한 것이다.
제 각각 간다는 각행(各行)은 업인(業因)을 따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따라가면 허망한 경계가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함께 볼 때에는 오직 하나였는데, 둘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허망한 것이고,
제각각 갈 때에는 이미 둘인데, 하나로 느끼는 것도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허망한 무가빙거(無可憑據)라고 한 것이며,
해 그림자가 사람을 따라 하나가 아닌 것이 마치 칠대(七大)가 조건을 따라 달라지는 것과 같아서 애당초 기준이 없는 선무준적(先無准的)이라서 따질 바가 못되는 것이다.
선무준적(先無准的), 태양은 하나로서 그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따라가니 정해진 표준이 없다. 이와 같이 여래장도 똑같다. 금강경의 무유정법명(無有定法名)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고 한 것과 같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고 말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는, 무준적(無准的)이라는 뜻이다.
富樓那!汝以色空相傾相奪於如來藏,而如來藏隨爲色空周遍法界,
是故於中風動、空澄、日明、雲暗,衆生迷悶背覺合塵,故發塵勞有世閒相;
부루나여, 너는 색(色, 물질)과 공(空)으로써 여래장(如來藏)에서 서로 밀쳐내기도 하고 서로 빼앗기도 하기 때문에 여래장도 따라서 색과 공이 되어 법계에 두루 가득하게 된다고 하나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에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버리고 허망한 경계(塵)와 어울리기 때문에 번뇌인 진로(塵勞)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인 세간상(世閒相)이 있게 되느니라.
ㅡ물과 불의 성질이 서로 능멸하는 것은 서로 밀쳐내는 상경(相傾)이고,
허공과 대지가 서로 포용하지 않는 것은 서로 빼앗는 상탈(相奪)이다.
미혹하여 진체(眞體)를 잃어버리고, 인연의 그림자를 분별하여 따르는 것이 '깨달음을 저버리고 허망한 경계(塵)와 어울리는' 것이고,
상(相)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알고, 성품(性)이 본래 참된 것임을 살펴 보는 것이 티끌(塵)을 없애고 깨달음과 합해지는 것이다.
색공을 가지고 여래장을 경탈한다면, 여래장은 박탈당하고 색공만 나타난다.
즉, 상경상탈(相傾相奪)은 배각합진(背覺合塵)으로서 각각의 여래장 묘진여성을 등지고 진(塵) 즉, 수(水, 물)·화(火, 불)·풍(風, 바람)·공(空, 비움)의 오대(五大)에 합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여래장이 그믐달과 같이 감추어지는 것이다.
我以妙明不滅不生合如來藏,而如來藏唯妙覺明圓照法界,
나는 묘하게 밝은 묘명(妙明)이 멸하지도 않는 불멸(不滅)이고, 생기지도 않는 불생(不生)의 것으로서 여래장에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묘한 깨달음의 밝음인 묘각명(妙覺明)이므로 법계를 원만하게 법계를 비추는 것이다.
是故於中一爲無量、無量爲一,小中現大、大中現小,不動道場遍十方界,身含十方無盡虛空,
於一毛端現寶王剎,坐微塵裏轉大法輪,
그러므로 그 가운데에서 하나가 무량하게 많은 일위무량(一爲無量)이 되고,
무량하게 많은 것이 하나가 되는 무량위일(無量爲一)이 되며,
작은 가운데에서 큰 것을 나타내는 소중현대(小中現大)이고,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나타내기도 하는 대중현소(大中現小)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 세계에 두루 원만하고,
몸으로 시방의 끝없는 허공을 감싸안기도 하며,
하나의 털끝에서 부처님의 세계인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기고,
작은 티끌 속에 앉아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기도 하느니라.
ㅡ물질과 허공의 색공(色空)은 세간의 허망한 세간상(世閒相)이고,
묘명(妙明)은 진여의 묘한 성품으로, 모두가 여래장이 나타낸 것이다.
본래 하나의 원융한 것이었으나, 중생들은 참된 것을 저버리고 허망한 것과 어울려서 세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불은 허망한 것을 없애고 참됨과 어울렸으므로 미묘한 진여의 작용을 얻어서 하나와 많음이 서로 호응하며,
크고 작음이 서로 용납하여서 털 끝에서 보왕찰을 나타내고 대법륜을 굴리고 일마다 막힘이 없고 법마다 여여(如如)한 것이다.
즉, 여래장은 공적(空寂)하고, 공(空)한 것으로 찾아보면 아무것도 없으나, 영지(靈知)이고 불공(不空) 또는 만공(滿空)이다. 텅 비어 있지만 거기에서 우주만물이 나온다. 공은 공인데 그 안에 모든 것들이 가득 차 있는 만공(滿空)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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