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 5

 

▶부루나 존자의 반문(反問)

富樓那言:“若此妙覺 本妙覺明 與如來心 不增不減,無狀忽生 山河大地 諸有爲相;如來今得妙空明覺
,山河大地 有爲習漏 何時復生?”

부루나 존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묘각(妙覺)과 본래 묘한 본묘각명(本妙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불어 더하지도 않는 불증(不增)이고 덜하지도 않는 불감(不減)인 것인데, 까닭없이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을 생겨나게 한다면, 

여래께서는 지금 묘하고 공한 밝은 깨달음의 묘공명각(妙空明覺)을 얻으셨으니, 산과 강과 대지의 작용이 있는 유위(有爲)의 익혀서 쌓은 번뇌인 습루(習漏)를 언제 다시 생기게 하시겠습니까?”

ㅡ"부루나 존자가 다시 질문한 것은, 본래 순수하고 청정한 마음자리에서 산하대지와 온갖 허망이 생길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겼다고 한다면, 마음을 닦고 깨달아서 부처가 된 다음에도 다시 중생세계가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중생과 부처의 마음이 같은데 그렇다면 언제 부처가 다시 중생이 되는 것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묘각(妙覺)'이란 참된 것으로 거짓되지 않은 본체를 가리키고,

'본묘각명(本妙覺明)'은 참된 것에 의지하여 거짓된 망(妄)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중생의 깨달음의 본체도 부처님과 다름이 없거늘, 무단히 모든 작용이 있는 유위상(有爲相)을 생겨나게 한다면, 여래께서는 이미 묘공명각(妙空明覺)을 증득하셨으니, 언제 다시 제유(諸有)를 생기게 하겠습니까?'라는 것으로, 이는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의혹으로써, 특별히 반문하여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佛告富樓那:“譬如迷人 於一聚落 惑南爲北,此迷 爲復因迷而有?因悟所出?”

부처님께서 부루나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어떤 미혹한 사람이 어느  마을에서 남쪽을 북쪽으로 미혹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그 미혹은 더욱 미혹됨으로 인하여 있는 것인가?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인가?

 

富樓那言:“如是迷人,亦不因迷,又不因悟。何以故?迷本無根,云何因迷?悟非生迷,云何因悟?”

부루나 존자가 말씀드렸다.

“그렇게 미혹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본래 뿌리(근본)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도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ㅡ마을(聚落취락)이란 마을 시장을 말한 것으로, 성분(性分)을, 

남쪽과 북쪽은 미혹하여 전도(轉倒)됨을 비유한 것이다.

남과 북이 애당초 바뀌지 않으면 성분은 본래 전도됨이 없기 때문에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고, 

깨달음도 미혹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한 것이다


佛言:“彼之迷人正在迷時,倏有悟人 指示令悟。富樓那!於意云何,此人縱迷,於此聚落更生迷不?”
“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미혹한 사람이 정말로 미혹하여 있 때, 문득 깨달은 사람이 바르게 가리켜줘서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비록 전에 미혹했었다고 해서 그 마을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는가?

부루나가 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富樓那!十方如來 亦復如是。此迷無本,性畢竟空,昔本無迷,似有迷覺,覺迷迷滅,覺不生迷。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루나여, 시방 여래(十方如來)도 역시 그러하나니,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性)이 필경에는 공(空)한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한 것에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서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에 다시는 미혹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ㅡ깨달았다면 미혹하지 않음을 밝힌 것으로, 옛날에는 본래 미혹이 없었으나 미혹으로 인해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이름하여 '미혹을 깨달은 미혹이다'라고 하였다.

무명(無明)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 착각한 때문이다. 착각이라는 것을 한 번 깨달은 사람은 다시는 착각하지 않는다.

 

亦如瞖人 見空中花,瞖病若除 花於空滅;忽有愚人,

於彼空花 所滅空地 待花更生。汝觀是人 爲愚?爲慧?”

또한 눈병이 있는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만약 눈병이 없어지면 그 꽃도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우인(愚人)은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어리석다고 하겠는가?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ㅡ'눈병'은 망령되게 보는 망견(妄見)을 비유한 것이고, 

'허공의 꽃'은 산과 강을 비유한 것이며,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는 묘한 공의 밝은 깨달음인 묘공명각(妙空明覺)을 비유한 것이다.

 

富樓那言:“空元無花,妄見生滅,見花滅空,已是顚倒;

勅令更出,斯實狂癡。云何更名如是狂人爲愚?爲慧?”

부루나 존자가 말씀드렸다.

“허공에는 원래 꽃이 없는 무화(無花)인데, 허망한 소견으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꽃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도 이미 전도(顚倒)된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게 하라고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을 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ㅡ남쪽을 북쪽으로 미혹하는 것이나, 허공의 꽂이라는 2 가지 비유는 본래 공(空)한 이치를 망령되게 생각하는 것이다.


佛言:'如汝所解,云何問言:‘諸佛如來妙覺明空,何當更出山河大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다면 어찌하여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묘한 깨달음인 묘각(妙覺)인, 밝고 공한 명공(明空)의 자리에서 '어느 때에 산(山)과 강(河), 그리고 대지(大地)가 다시 나오는 것입니까'라고 물은 것인가!

ㅡ존자의 두 가지 미혹으로 첫째는 중생의 드러난 무명과 보여지는 산(山) 강(河) 대지(大地)는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것이고,   
둘째는 인연으로 생긴 법과 산하대지는 모두 본성(本性)을 갖추고 있어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둘도 아니고 별개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여서 한 질문이다. 
부처는 덕(德)을 닦아 전상(全相)이 바로 성(性)임을 깨달아 원래부터 있는 성덕(性德)을 증득하였고

중생은 덕(德)을 닦지 않아 미혹하여 전성(全性)을 상(相)으로 보고 본래의 성덕(性德)을 잃은 것이다.

 

又如金鑛雜於精金,其金一純更不成雜,

또 비유하자면, 마치 금광(金鑛)에서는 순금이 섞인 정금(精金)이었다가, 그 금이 완전한 순금으로 되고 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如木成灰不重爲木,

마치 나무가 타서 재가 되과 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않는 것과 같아서, 

ㅡ금광과 나무의 재, 이 두 가지 비유는 닦아서 끊어버리는 뜻이 있다.

 

*부처님께서 4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①방향(方向) 무명은 본래 공한 것이다. 무명은 방향을 착각한 것이다. 기신론에서는 미동위서(迷東爲西) 방실불전(方實不轉)이라 하였고, 능엄경에서는 혹남위북(惑南為北)이라 했다. 한번 방향을 알게 되면 다시는 착각하지 않는다. 성불한 후에는 다시 미하여 중생이 되는 것이 아니니, 깨달은 후에는 다시 미하지 않는, 각불생미(覺不生迷)이다

②공화(空花) 만법(萬法)은 허공 꽃과 같이 본래 없는 것이나, 중생의 눈에는 우주만법이 현재 존재하는 것 같지만,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와 같은 만법은 없는 것이다. 미(迷) 즉 무명은는 근본이 없는 것이고, 무명은 본래 없는 것이다.

눈에 눈병이 생겨서 허공에 꽃이 생겨도 허공의 꽃은 본래 없는 것이다. 허공 꽃은 눈병난 사람에게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다. 무명을 깨달아서 성불하게 되면 깨달음인 각(본각)에는 미혹이 생기지 않는다.

③금광(金鑛) 진여는 다시 변하지 않는다. 한번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다.

④목회(木灰) 열반은 불생멸이다. 보리열반을 증득하면 다시 중생의 업식 번뇌로 돌아가지 않는다.ㅡ향적법진

 

諸佛如來菩提涅槃亦復如是。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보리(菩提)와 열반(涅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ㅡ보리(菩提)는 불과는 깨달음이고, 열반(涅槃)은 불과의 덕(德)이다.

그 불과는 변하거나 생겨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습루(習漏)가 생기지 않는다. 

4 가지 비유 가운데에서 앞의 2 가지 비유는 미혹함이 본래 없는 것이나 그 미혹은 허망한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임을 밝힌 것이고, 

뒤의 2 가지 비유는 습루의 허망한 인연은 증(證)하기만 하면 곧 영구히 끈어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만약 앞의 비유만을 말씀하셨다면, 허망이 참됨을 방해하지 못하며, 미혹함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여기게 되어서, 털어버리고 없다고 하는 집착이 생길까 염려하신 것이고, 

다만 뒤의 비유만 말씀하셨다면, 깨달음이 본래 깨끗한 것이 아니며, 성품(性) 또한 본래 생기는 것이라고 혼잡하고 더러운 견해가 생길까 염려하신 것이다.

그래서 4 가지 비유를 함께 들어 미혹과 깨달음이 비록 허망한 것이라 할지라도 닦아서 증(證)함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은 일심(一心)이다. 

정(定)이 깊어지면 열반(涅槃)이 되고, 혜(慧)가 깊어지면 보리(菩提)가 된다. 

따라서 정(定)과 혜(慧)는 같이 닦아야 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이다.

보리와 열반은 둘이 아니다. 보리는 된장독의 뚜껑이라면 열반은 된장독의 몸통이다.

뚜껑을 열면 맛있는 된장이 나오고 닫으면 된장이 변하지 않는다.

천수경에서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忘).

죄의 본질은 자체 성품이 없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고 공(空)이다.

죄는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나쁜 행동)에 의하여 생긴다.

나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마음(心)이다.

마음은 본질이 텅 비어 공(空)하고 청정하기에 죄가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러나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ㅡ향적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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