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중생(衆生)의 시작

見明色發明見想成,異見成憎同想成愛,流愛爲種納想爲胎,交遘發生吸引同業,

보는 것이 밝아서 색(色)이 환하게 발하고, 밝은 경계를 환히 봄으로 인해서 생각(想)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생각(想)이 같으면 애착이 생겨서 그 애착이 흘러 들어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교구(交遘)가 발생하며, 동업(同業)끼리 끌어 들이는 것이다.

ㅡ'보는 것이 밝아서 색(色)이 환하게 발한다'는 것은 밝은 것을 망령되게 보아서 망령된 색(色)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마음으로부터 경계가 생겨나는 것이고,

보는 대상을 망령되게 밝혀서 그로 인해 부질없는 생각(想)을 이루는 것을 '생각(想)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는 대상 경계로 말미암아 정(情)이 생기는 것이다. 

보는 것이 다르면 대상 경계도 어긋나므로 미움이 생긴다. 

 

이견성증(異見成憎), 소견 또는 보이는 것이 다르면 미움이 생긴다. 곤충은 사람과 다르니까 미움이 생겨서 죽이게 되고,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아버지를 이견(異見)으로 본다. 

동상성애(同想成愛), 생각이 같으면 사랑이 생긴다.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어머니를 동상(同想)으로 보는 것이다.

유애위종(流愛為種) 납상위타(納想為胎), 사랑(정액)이 흘러서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가 된다. 중음신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 때문에 부모가 성교할 때 태중에 들어간다. 원각경 미륵보살장에는 '일체종성(一切種性) 개인음욕(皆因淫欲) 이정성명(而正性命)'이라 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음욕으로 인하여 자기 생명을 확정한다. 따라서 소승에서는 다시는 몸을 받지 않기 위하여 불음계(不淫戒)를 제1로 여긴다. 그러나 대승보살은 불살생을 제1로 여기며 대승보살은 일부러 생사를 받는다. 유마경에는 고원육지(高原陸地) 불생연화(不生蓮花) 고원이나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비습어니(卑濕淤泥) 내생차화(乃生此花) 낮고 습한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즉, 불법은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다.

교구발생(交遘發生) 흡인동업(吸引同業), 암수가 서로 성교할 때, 생을 발하여 동업끼리 서로 끌어당긴다. 부모가 성교할 때 중음신이 생명을 받는 인연조건이 된다. 사람과 사람은 같은 업으로서 업력에 빨려 들어간다. 조상부모들이 좋은 업을 지으면 동업력(同業力)에 의하여 같은 업을 가진 좋은 자손들이 태어나는, 복가생복자 화가생얼자(福家生福子 禍家生孼子)이다 ㅡ향적법진

 

故有因緣生羯囉藍、遏蒱曇等,

그러한 까닭에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羯囉藍)과 알포담(遏蒱曇) 등이 생기느니라.

ㅡ애욕은 윤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애욕이 흘러 들어가 종자가 되고, 생각(想)은 생명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갈라람(羯囉藍)은 응결하여 윤활한다는 것으로 입태 후의 처음 7일간의 상(相)의 기간에 엉켜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응활(凝滑)이라 한다. 그 뜻은 잡예(雜穢)이며, 상(想, 생각)은 가볍고 정(情)은 무거운 것으로 태생(胎生)은 정(情)으로 생기는 것으로써, 부정모혈(父情母血)이 화합하므로 잡(雜)이라하고 자체가 깨끗하지 않으므로 예(穢)라 하는 것이니,

정(情) 자체가 잡염이다. 또한 음욕(婬欲)이 강하기 때문에 욕전도(欲顚倒)인 것이다. 

 

*태중오위(胎中五位)는 중음신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서 태어나는 과정으로,  

①(1七日) 갈라남(羯囉藍) 부모가 성교하여 수태될 때 7일간(우유방울 같은 액체 상태) 

②(2七日) 알포담(遏蒱曇) 풍선처럼 조금 커진 상태 

③(3七日) 폐시(閉尸) 연한 살이 형성 

④(4七日) 건남(健南) 단단한 살과 뼈가 형성 

⑤(5七日) 발라사가(鉢羅奢佉) 사람의 형상이 나타난다.ㅡ향적법진

 

胎卵濕化隨其所應,卵唯想生、胎因情有、濕以合感

化以離應,情想合離更相變易,所有受業逐其飛沈,以是因緣衆生相續。 

생(生) 난(卵) 습(濕) 화(化)가 제 각각 응(應)할 곳을 따라,

난생(卵生)은  오직 생각(想)만으로 태어나고,

태생(胎生)은 욕정(欲情)으로 존재하며,

습생(濕生)은 합하는 느낌의 합감(合感)으로 생겨나고,

화생(化生)은 떠남(離)을 호응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번갈아 정(情) 상(想) 합(合) 이(離)가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嶪)을 받나니,

그 업장을 따라 날아 오르기도 하고, 혹은 잠기기도 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끊임없이 상속하는 것이니라.

ㅡ어지러운 생각을 상(想)이라 하고, 사랑이 맺어진 것을 정(情)이라 하며, 

움직이는 기운인 기(氣)에 붙는 것을 합(合)이라 하며, 이는 습(濕)과 어울려서 생하는 것이고,

형체를 벗어나는 것을 이(離)라 하나니, 이(離)는 여기를 떠나 저쪽에서 생겨나는 즉,

난생은 정분(情分)보다 상분(想分)이 많은 상태로 태어나는 종류라서, 새와 같이 몸이 가벼워 날아다니는 종류가 많다.

상(想)은 가볍고 정(情)은 무거우니, 태생(胎生)은 정으로 생기니까 잡염(雜染)으로 윤회한다고 하였으니,

정(情) 자체가 잡염이고, 또한 음욕(婬欲)이 강하기 때문에 욕전도(欲顚倒)인 것이다.

이러한 정(情) 상(想) 합(合) 이(離)는 생명을 가진 대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난생을 첫머리에 세운 것은 상념(想念)이 처음 움직이게 되면 정애(情愛)가 뒤에 일어나고, 또한 태생 습생 화생을 겸한 까닭이다. 

이 염상(染想)은 내분(內分)의 염상일 뿐, 외분의 정성(淨想)이 아니며, 이 화생은 곧 변하여 허물을 벗는 업(業)이 화(化)하는 것이지 의생(意生)의 묘화(妙化)는 아니다. 

정(情) 상(想) 합(合) 이(離)가 다시 서로 변역(變易)하는 것은, 혹 정(情)이 변하여 상(想)이 되고, 합(合)이 변하여 떠남(離)이 되어서 정해진 업이 없으며, 

난생이 바뀌어서 태생이 되고, 습생이 바뀌어서 화생이 되어서 정해진 형질(形質)이 없으므로 받는 바 업보(業報)가 혹 비승(飛升)하기도 하고 혹 침강(沈降)하기여 정해진 정취(定趣)가 없으니, 이것이 중생 들이 상속(相續)하는 연유이다. 

 

*중생의 근신(根身)의 원류(原流)를 살펴보면 ‘밝힌다’는 생각이 허망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 ‘밝힌다’는 것은 허망하여 다른 물체가 아니다. 또한 묘명각심(妙明覺心)이 최초로 한 생각을 일으켜 ‘밝힌다’는 것을 깨달음의 밝음으로 잘못 인식하여 허망한 것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허망하게 ‘밝힌다’는 것이 세워지면 담원(湛圓)한 명각성(明覺性)이 분리되어 6근(六根)의 처소(處所)를 이룬다.

이 6근처소(六根處所)는 국한되고 막힘이 있어서 다시 두루두루 통하는 원통(圓通)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기세계(器世界)를 초월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견성(見性)과 문성(聞性) 등이 두루 임할 수 없게 된다. 
망소(妄所) 중에 허망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성취되고 여기에서 망능(妄能)이 나누어져 열린다.
근진(根塵)은 정해진 처소가 있고, 정상합리(情想合離)는 각각 정해진 업(業)이 있으며 
태란습화(胎卵溼化)는 각각 정보(情報)가 있어서 업이 같으면 한 곳에서 엉기고,

업이 다르면 떨어지기도 하고 합하기도 한다. 
화생(化生)은 습기와 합하여 형태를 이루기도 하고 혹 다른 것에 의탁하기도 한다.ㅡ 한울림  

 

富樓那!由有諸慾 助發愛性 愛不能離,造種種業 是故能令 生死輪回

부루나야, 여러가지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애욕(愛慾)의 성품이 생겨나게 돕는 것이니,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까닭에 생사의 윤회(輪廻)가 계속하는 것이니라. 

ㅡ업과(業果)는 자심(自心)의 탐욕이 근본임을 밝힌 것이다. 
탐욕이 번뇌의 영수(領袖)이며 모든 업의 근본이다. 
같은 생각은 애착(愛着)을 이루고, 애착(愛着)은 결박(結縛)의 인(因)이 되어서 서로를 버리거나 헤어지지 않으니,  
세간의 부모와 자손들이 대를 이어 상생(相生)함이 끊이지 않는 것은 모두 탐욕이 근본인 것이다.

애욕은 미세하고 탐욕은 거칠다. 애욕과 어긋나면 미움이 생기는데, 미움은 미세하고 노여움은 거친 것이다. 

애욕과 미움이 업(業)을 짓는 원인이 되고, 그 업보가 생사의 과보(果報)가 되는 것이다.

 

則諸世閒 夫婦婚合 父母子孫 相生不斷,是等則以 淫貪爲業;

모든 세간의 남편과 아내가 혼인하여 합함으로 인해서 아버지(父)와 어머니(母)와 자식(子)과 손자(孫)이 계속 생겨나서 끊어지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業)이 된 것이고,

 

又諸世間 卵胎濕化 隨力强弱 遞相吞食,是等則以 殺貪爲業;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의 강약(强弱)을 따라 번갈아 서로 잡아 먹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業)이 된 것이며,

ㅡ 탐애(貪愛)가 일어나면 반드시 신명(身命)이 생긴다. 신명이 생겨 있으면 반드시 먹고 살아야 하므로, 단지 자양(滋養)만 알고 잔인(殘忍)함을 고려하지 않고 생령(生靈)을 살해하고 그 고기를 먹으니, 살탐(殺貪)의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復諸世間 他有財貨 大少妖賊 强奪暗取 是等則以 盜貪爲業;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재화(財貨)를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하는 도탐(盜貪)의 업이다.

 

假令世間 以人食羊,羊死爲人,人死爲羊,如是乃至 十生之類,死死生生 互來相噉,惡業俱生 窮未來際,亦復如是

가령 세간에서 사람이 양(羊)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의 십생(十生)의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며, 나고 죽기를 번갈아 하면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惡業)이 함께 생겨서 미래제(未來際)를 다하도록 계속 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으니라.

 

汝負我命,我還汝債 我負如命 汝還我債, 以是因緣 經百千劫 常在報應;

네가 나의 목숨을 빚지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빚지게 되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汝愛我心 我憐汝色 我愛汝心 汝憐我色,以是因緣 經百千劫 常在纏縛,

너는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너의 모습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모습을 어여삐 여겨서 이러한 인연으로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느니. 

ㅡ앞에서는 업과(業果)의 근본을 밝혔고 여기에서는 서로 계속되어 상속하는 이유를 밝혔다. 빚을 지고 갚는 것은 살생과 도적질 때문에 있는 것이고, 사랑하고 어여삐 여기는 것은 음욕(淫慾)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唯婬殺盜 三爲 諸惡本,以是因緣 業果相續。

 오직 살생(殺生) 투도(偸盜) 음욕()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 업과(業果) 서로 계속하여 끊임없이 상속하느니라.

ㅡ업과상속(業果相續)을 밝힌 것으로, 한 생각의 망탐(妄貪)을 여의지 못하여서 업과의 상속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진여(眞如)가 자성(自性)을 지키지 못하고 허망하게 명각(明覺)을 다시 밝히겠다는 한 생각을 일으켜서 밝히고자 탐(貪)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러 탐욕(貪慾)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일체의 화내는 진(瞋) 등이 모두 탐(貪)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3탐(三貪)이 업과의 근본인 것이다. 
욕탐은 음욕(婬欲)의 정성명(正性命)이니, 만약 탐애(貪愛)를 끊는다면 즉시 삼계(三界)를 벗어나게 되나, 
중생은 인과(因果)가 순환(循環)한다는 것을 모르고 서로 숙업(夙業)을 주고 받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업과(業果)가 상속하는 것이다. 

 

富樓那!如是三種 顚倒相續,皆是覺明 明了知識,因了發相,從妄見生 山河大地,諸有爲相 次第遷流,因此虛妄 終而復始。”

부루나야, 이러한 세 가지의 뒤바뀜이 계속되는, 전도상속(顚倒相續)은 모두가 밝은 깨달음의 각명(覺明, 성각묘명性覺妙明, 본각묘명本覺妙明)인 밝고 명료한 식(識)이 분별로 인하여 생겨난, 또렷하게 발하는 현상의 요발상(了發相)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산 강 대지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고 흘러가지만,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이니라. 

ㅡ이상은 세계와 중생의 업과 모두가 각명(覺明)이 허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으로, 

세계(世界), 중생(衆生), 업과(業果) 등 상속(相續)하여 현행(現行)한다는 것을 총결한 것이다. 
이 3종상속(三種相續)은 최초의 한 생각에서 생긴 종자(種子)이며, 
망인(妄因)이 망과(妄果)를 결성할 뿐 전혀 실제로 있는 실법(實法)이 아니다. 
3종의 전도(顚倒)된 상속은 세계가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하여서 연생(緣生)이 있게 되고,
연생이 있으므로 업과(業果)가 있게 되며, 업과가 끊이지 않으므로 연생이 끊어지지 않고,  
연생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세계가 끊어지지 않는다. 
3종상속(三種相續)의 본원(本源)을 추구해 보면, 모두 성각(性覺)의 묘명심체(妙明心體)일 뿐이다.
각명(覺明)을 추구해 보면, 둘이 없는 각(覺)이고, 맑고 고요한 것으로, 그 처음 생긴 현상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거늘, 미세하고 거친 연기(緣起)의 차례로 일어나는 현상이겠는가! 

제법이 생겨도 곧 생기는 것이 아니고, 멸하여도 또한 멸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오직 묘각명(妙覺明)일 뿐인 것이다. 

'각명(覺明)'이란 곧 깨닫는 성품의 성각(性覺)이 반드시 밝혀야 하는 것이고, 

'밝고 명료한 식의 명료지식(明了知識)'이란 망령되게 밝혀내는 깨달음의 망명각(妄明覺)이며,

'또렷하게 발하는 현상의 요발상(了發相)'이란 업식(業識)이 처음으로 동(動)하는 것이고,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긴다'는 것은, 곧 망능(妄能)이 생기는 것으로, 그 허망이란 밝은 깨달음의 각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업은 원인이고 과는 결과이니,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

살도음(殺盜婬)의 세 가지가 근본이 되어, 이러한 인연으로 업에 따른 과보인 업과(業果)가 상속된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삼세육추(三細六麤)가 벌어지는 과정이다.

각명(覺明)(아뢰야식) → 명료지성(明了知性)(業相) → 요발상(了發相)(轉相.現相) → 망견(妄見)(六麤)ㅡ한울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