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4 1

 

▷심궁만법(深窮萬法)

 

불도(佛道)에서는 자성을 보는 견성(見性)을 근본으로 삼고, 법(法)을 아는 것을 그 다음으로 삼는다. 비록 견성을 하였을지라도 만법(萬法)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수행에 막힘이 있는 까닭에 마음으로 보는, 여래장(如來藏)을 밝힌 다음에 다시 부루나 존자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여서 산(山), 강(江), 대지(大地) 등 모든 유위상(有爲相)을 분별하여 일체법(一切法)을 분명히 깨달아서 의혹이나 막힘이 없게 하는 것이다.

십대 제자 중, 아난 존자는 다문(多聞)이며, 부루나 존자는 설법(說法) 제일이다. 

앞에서는 다문의 지혜를 드러내어 정견(正見)을 내게 하고자 아난 존자로 하여금 발기(發起)하게 하셨고, 

여기에서는 모든 의심을 강론(講論)에 의거해서 통하게 하고자 부루나 존자로써 발기하게 하신 것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부루나 존자, Pūrṇá-maitrāyaṇī-putra. 만원자(滿願子) 부루나(富樓那), 분뇩문다니불(分耨文陀尼弗)이라고도 하며, 설법과 교화에 뛰어난 설법제일(說法第一)이며, 수로나국 백성들이 포악하나, 부처님의 허락을 얻어 그 사람들 5백 명에게 설법하고 교화하였다고 한다.

① 초기 경전에서의 부루나(Puna) 존자는 부처님의 초전법륜의 오비구(五比丘)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교진여(橋陣如) 존자의 조카이었다. 부루나 존자는 바라문 출신으로 생년월일이 부처님과 같다고 하며,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영위한 사람으로 부처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며, 설법 제일(說法第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어머니가 교진여 존자의 여동생이었으며, 아버지는 가비라성 정반왕의 국사(國師)이며 큰 부자였다. 그는 그 총명함으로  베다(Veda)와 브라만교의 모든 논서들을 공부하였으나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녹야원에서 설법하심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부루나 존자가 부처님을 뵙기 위해 기원정사를 방문했을 때 사리불 존자가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었으며, 얼마나 수행이 되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여러 질문을 한 가운데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세존을 따라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이 질문은 “출가해서 수행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루나 존자는 파발(擺撥) 수레의 비유를 들어 일곱 단계의 수행방법인 칠청정(七淸淨), 곧 차제수행(次第修行)에 관하여 대답하였다. (중아함경 제24 역마차(驛馬車) 비유경)
➀계청정(戒淸淨) ➁심청정(心淸淨) ➂견청정(見淸淨) ➃ 의심을 극복하는도의청정(渡疑淸淨)

⑤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견청정(道非道知見淸淨) ⑥ 도닦음에 의한 지견청정(行道知見淸淨)

⑦ 지견청정(知見淸淨)
②대승경전에서의 부루나 존자,

대승경전에 나오는 부루나 존자는 북인도의 서해안 변경 지방인 수로나국(수나빠란따의 숩빠리까) 출신이며, 부루나 존자의 아버지는 수로나국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부호였지만,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여종 출신이어서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아무런 재산도 물려받지 못한 채 형제들에 의해 쫓겨났다. 
그러나 영리했던 부루나 존자는 아버지의 무역업을 눈여겨 보아왔던지라 오래지 않아 재산을 모았다.
부루나 존자가 일곱 번째 항해를 했을 때, 배에 동승한 코살라 국의 상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리를 높여 노래하고 있어서 이들로부터 이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항해가 끝난 후 단숨에 코살라 국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을 찾아서, 법의 인연이 있었던 부루나 존자는 부처님을 뵙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출가했다.
출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모두 소멸된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고 진리에 목말라 하는 대중들을 위해 설법해서 많은 사람들, 심지어 무려 9만 9천명의 사람을 교화했다는 말이 전하여 진다.
부루나 존자는 탁월한 지식과 언변이 뛰어나 부처님의 제자 중에 "설법 제일"이라는 칭송을 받았는데, 부루나 존자는 상대를 굴복시켜 자신의 주장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주장을 잘 듣고 수용한 후 차분하게 지혜를 일깨워주고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설법 방법을 구사하였다.
말년에 부루나 존자는 자신의 고향인 수로나국과 같은 거칠고 사나운 변경 지역에 부처님의 법음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서, 
“부처님! 저는 이제 멀리 저의 고향 수로나국에 부처님의 정법을 전하러 가겠사오니 허락해 주십시오.”
“부루나여! 수로나 사람들은 거칠고 사납다. 만약 그들이 너를 꾸짖고 모욕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 저는 그 때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 혹은 손질이나 발길질로 저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지팡이나 돌을 가지고 그대를 때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처님! 저는 그 때는 그들이 칼을 가지고 저를 상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부루나여! 그러면 만일 그들이 칼로 상처를 입힌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처님! 칼을 가지고 상처를 입힌다 하더라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참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그러면 그 칼로 그대를 죽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처님! 그 때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행자는 부처님의 정법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육신 버리기를 원하는데, 수로나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큰 공덕을 짓는구나."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착하고 착하도다! 부루나여!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너는 잘 수행해서 인욕과 자제를 얻었구나.
이제 너는 수로나국으로 가서 여래의 정법을 널리 전하여라. 사납고 모진 사람들을 제도하고 부처의 나라로 인도하여라."

부루나 존자의 뒤를 이은 순교자는 목건련(Moggallana) 존자였다. ㅡ 초암 정만순의 글 참고.

 

爾時,富樓那彌多羅尼子在大衆中卽從座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恭敬而白佛言:“大威德世尊!善爲衆生敷演如來第一義諦。

그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 존자가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큰 위의(威儀)와 덕(德)을 갖추신 세존께서는 중생들을 위하여 제일의제(第一義諦)를 훌륭하게 설하여 주셨습니다. 

ㅡ먼저 앞의 설법을 찬양하고 그 다음에 의심나는 것을 서술하는 것이다.

 

世尊常推說法人中我爲第一,今聞如來微妙法音,猶如聾人逾百步外聆於蚊蚋,本所不見,何況得聞?佛雖宣明令我除惑,今猶未詳斯義究竟無疑惑地。

세존께서는 언제나 저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추천하셨으나,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法音)을 들으니, 마치 귀머거리가 백보(百步) 밖에서 모기소리를 듣는 것과 같아서, 본래  수도 없거늘 더욱이 어찌 들을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설하시어 의혹이 없게 하여주셨으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완연하게 의혹이 없는 구경무의혹지(究竟無疑惑地)를 자세히 밝히지 못하겠습니다.


世尊!如阿難輩,雖則開悟習漏未除;我等會中登無漏者,雖盡諸漏,今聞如來所說法音尚紆疑悔。

세존이시여. 아난과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 쌓인 번뇌의 습루(習漏) 아직 제거하지 못한 까닭에 그러하겠지만, 저희들은  법회 가운데에서 무루(無漏)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므로 비록 새는 것이 모두 끊어졌다고 하나, 지금 여래께서 설하신 법음을 듣고나서 오리혀 의혹과 회의에 얽매이게 되었습니다.

무루(無漏, anāsravah), 사과(四果) 중의 첫과인 수다원과(須陀洹果)에서 처음으로 얻는 수행 공덕으로 누진(漏盡)이라고도 하며, 누진을 증득함으써 번뇌가 다한다.

번뇌가 끊어진 상태나 번뇌가 끊어지게 하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무루 또는 무루법이라고 하며, 

4성제에서 멸제(滅諦)는 현재 생겨나 있는 번뇌와 미래에 생겨날 수 있는 번뇌가 모두 끊어진 상태의 무루이고,

도제(道諦)는 현재 생겨나 있는 번뇌와 미래에 생겨날수 있는 번뇌가 끊어지게 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의 무루이다.

누(漏, āsrava), '흐르다' 또는 '새어 나오다'이다. 누(漏)는 인간이 번뇌 때문에 각종의 악업을 행하고 그 결과 고(苦)가 그 사람의 삶에 누출(漏出)되어 새어나오는 것을 나타내고 번뇌와 고의 이러한 누출로 인해서 그 사람은 혹(惑) · 업(業) · 고(苦)의 윤회3도(輪廻三道)를 전전하면서 미혹의 미계(迷界)에 끊임없이 윤회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누(漏)를 곧 번뇌라고 할 수 있다.

 

世尊!若復世閒一切根、塵、陰、處、界等,皆如來藏淸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諸有爲相,次第遷流終而復始?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의 일체 6근(六根)과 6진(六塵)과 5(五) 12(十二) 18(十八) 등이  여래장(如來藏)으로서 본연(本然) 그대로 청정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의 모든 유위상(有爲相) 생겨서 차례로 옮겨 흐르는 변천(變遷)하여 흘러서 마쳤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까? 

ㅡ청정하다면 마땅히 모든 상(相)이 없어야 할 것이며,

본연(本然) 그대로라면 변천하는 흐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사대(四大)가 두루하나 어떻게 서로다른 현상들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

又如來說地、水、火、風本性圓融,周遍法界湛然常住。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地)과 물(水)과 불(火)과 바람(風)은 본성(本性)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 가득 차서 고요히 상주(常住)한다고 하셨습니다.

 

世尊!若地性遍,云何容水?水性周遍火則不生,復云何明水火二性俱遍虛空,不相𣣋滅?

世尊!地性障㝵,空性虛通,云何二俱周遍法界?而我不知是義攸往,唯願如來宣流大慈,開我迷雲及諸大衆。”作是語已,五體投地,欽渴如來無上慈誨。攸 바 유, 위태할 유

세존이시여, 만약 땅의 성질이 두루 가득하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겠으며, 

물의 성질이 두루 가득하다면 불은 생기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성질이 허공에 가득하여서 서로 능멸(𣣋滅)하지 않는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땅의 지성(地性) 막히고 걸리는 것이고, 허공의 공성(空性)은 비어 통하는인데, 어떻게  가지가 함께 법계에 두루 가득하다고 할  있겠습니까?

저는  뜻이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하겠아오니, 부디 여래께서는 대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구름에 덮힌 것과 같은 미혹을 거두어 주소서!”

이렇게 말을 마치자 대중과 함께 5체(五體)를 땅에 던져서 존경을 다하여 여래의 더 없이 높고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ㅡ이 2 가지의 질문은 앞의 사과(四科)와 칠대(七大)에 이은 것으로, 성(性)과 상(相)이 서로 어긋난다면 이치(理)와 사물(事)이 서로 장애한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이 질문들은 논란성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부루나 존자는 무학위에 올라서 이미 견사혹(見思惑)을 끊어서 인아집(人我執)을 파하였으나, 무명혹(無明惑)을 파하지 못한 까닭에 법집(法執)이 남아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이미 청정(淸淨)하다면 어떻게 근신기계(根身器界)가 홀연히 생긴 것이며, 
이미 본연本然이라면 오랜 동안의 상속(相續)이 끊어지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만약 7대(七大)의 본성(本性)이 원융(圓融)하여서 법계에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다면 
흙은 물을 이기는 것이므로 지수(地水)가 서로 합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것이며, 
물은 불을 이길 수 있으므로 물과 불이 어떻게 법계에 두루 함께 임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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