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4
▷6내처(六內處)의 신처(身處) - 촉진(觸塵)
阿難!汝常晨朝以手摩頭。於意云何,此摩所知,誰爲能觸。能爲在手?爲復在頭?
아난아, 너는 새벽마다 항상 손으로 머리를 만지나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져서 느끼는 것은 누가 능히 감촉의 수능촉(誰能觸)을 느끼는 것인가?
그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ㅡ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루에 세 번씩 머리를 문지르라고 하셨다.
若在於手,頭則無知,云何成觸?若在於頭,手則無用,云何名觸?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인데, 어떻게 감촉을 느끼는 것이며?
만약 머리에 있다면 손은 쓸모가 없을 것이니, 어찌 감촉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ㅡ감촉은 감감기관과 대상 물질로 인해 주관하는 것의 능(能)과 그 대상인 소(所)가 서로 느끼는 것이다.
유독 근(根)에 의해서만 밝힌 것은 만법이 한 몸의 일체(一體)이나, 망령되게 분별하는 주체와 그 대상을 연유하는 까닭에 허망한 감촉인 망촉(妄觸)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근(根)과 그 대상이 서로 나타나야만 감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若各各有,則汝阿難應有二身。若頭與手一觸所生,則手與頭 當爲一體,若一體者觸則無成;
若二體者,觸何爲在?在能非所,在所非能。不應虛空與汝成觸。
만약 각각 따로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당연히 두 개의 몸인 이체(二體)라야 할 것이며,
만약 머리와 손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마땅히 한 몸의 일체(一體)가 되어야 할 것이며,
만약 한 몸의 일체라면 촉감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개의 몸인 이체(二體)라면 촉감이 어느 쪽에 있는 것인가?
손(能)에 있다면 닿는 머리(所)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며,
닿는 머리(所)에 있는 것이라면 만지는 손(能)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ㅡ신처(身處)와 촉처(觸處) 두 가지를 합하여 밝히는 것으로,
'촉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감촉은 두 개의 물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하나로서는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머리(所)도 아니고 손(能)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능소(能所) 모두가 처소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是故當知 覺觸與身 俱無處所,卽身與觸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 처소가 없는 것으로,
몸과 촉감,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6내처(六內處)의 의처(意處) - 법처(法處)
阿難!汝常意中所緣善、惡、無記三性,生成法則。此法爲復卽心所生?爲當離心別有方所?
아난아, 네가 항상 의중(意中)에 반연하는 것은 선성(善性), 악성(惡性) 무기성(無記性)의 세 가지 삼성(三性)이 생성하는 것이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방소(方所)가 있는 것인가?
ㅡ선과 악은 반연하여 생각하는 마음이고, 무기는 혼미하게 머무는 마음이니, 의중(意中)에 반연하는 것이 이 삼성을 벗어나지 못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반연하는 법진(法塵)을 일으키므로 '법칙을 생성한다'고 한 것이다.
*법진(法塵), 육진의 하나이며, 일체의 정식(精識)을 물들게 하는 것이므로 진(塵)이라 한다.
阿難!若卽心者,法則非塵,非心所緣,云何成處?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은 경계의 진(塵)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대상이 아닐 것이거늘, 어떻게 처소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ㅡ법(法)이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진(塵)에 속하지 않는 것이므로 반연하는 대상이 아니라서 법처(法處)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若離於心別有方所,則法自性爲知?非知?知則名心,異汝非塵,同他心量卽汝卽心,云何汝心更二於汝?
若非知者,此塵旣非色、聲、香、味、離合冷煖及虛空相,當何爲在?
今於色空都無表示,不應人閒更有空外,心非所緣,處從誰立。
만약 마음을 벗어나서 따로 장소(方所)가 있는 것이라면 법의 자성(自性)은 앎이 있는 것인가? 앎이 없는 것인가?
만약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만, 너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대상 물질(塵)도 아닌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인 심량(心量)과 같을 것이니,
너에 의한 것이며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네 마음이 너에게서 다시 둘이 되는 것인가?
만약 앎이 없다면, 이 대상 물질(塵)은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와
떨어지고 합하는 이합(離合)과 차고 따뜻한 냉온(冷煖)과 허공의 상(相)도 아닐 것이니,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색(色)과 공(空)에 전혀 표시할 수가 없으니, 당연히 인간은 다시 허공밖에 있지 않느니라.
마음이 반연하는 것이 아니라면 법처(法處)가 무엇을 좇아서 이루어지겠는가?
ㅡ법진(法塵)은 상(相)이 없는 것이며, 의식의 느낌으로 인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앎이 있는가? 앎이 없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앎이 있다면 마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따로 그 처소가 있어서 그 체가 너와는 다른 것이고, 또 대상 물질(塵)도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심량과 같다'고 한 것이다.
가령 느낌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 법진(法塵)은 표현할 대상이 없는, 곧 마음의 반연인 것이나 법진의 처소는 없는 것이다.
법진(法塵)은 색성향미촉의 오진(五塵)과 다른 것으로, 오진(五塵)과 허공은 모두 양(量)으로 대상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자연히 오근에 속하는 것이고 이합(離合)과 냉온(冷煖)도 촉진(觸塵)인 것이다.
능상(能想)의 의지근(意知根, 주체)과 소상(所想)의 법진(法塵, 객체)도 단지 허망한 인연을 따라 생긴 것으로 여래장의 체성(體性)을 벗어나지 못함을 가르친다.
*오진(五塵), 빛깔(色)ㆍ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닿임(觸)의 오경(五境)으로, 이것이 진성(眞性)을 더럽혀서 번뇌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므로 진(塵)이라 한다.
是故當知法則與心俱無處所,則意與法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법과 마음은 모두 처소가 없는 것이니, 마음과 법,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18계(十八界)가 여래장임을 밝힘.
復次,阿難!云何十八界本如來藏妙眞如性?
또한 아난아, 어찌하여 18계(界)를 본래 여래장의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 하는 것인가?
ㅡ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진六塵) 육식(六識)에서 안과 밖 그리고 중간으로 나누어서 계(界)라 한다
*계(界), 인(因)한다는 뜻으로, 근(根) 경(境, 진塵) 식(識)의 셋은 서로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계(界)는 피차(彼此)의 사물이 차별되어 이루어지는 체성의 구별을 뜻한다.
*인(因)은 사물을 성립시키는 근원, 즉 어떤 사물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이루어지는 원인을 뜻한다.
▷18계(十八界)의 안식계(眼識界)
阿難!如汝所明,眼色爲緣生於眼識,此識爲復因眼所生,以眼爲界?因色所生,以色爲界?
아난아, 네가 밝힌 바대로, 눈(眼)과 물질(色)이 연(緣)이 되어서 눈의 안식(眼識)이 생긴다면,
이 식(識)은 눈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써 경계(界)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색(色)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색진으로써 경계(界)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ㅡ안색(眼色)이란, 눈(眼)과 물질(色)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에 대해 묻기에 이르기까지 '식(識)이 그 가운데에서 생기는 것이 곧 마음이 있는 곳이다' 라고 한 것을 말미암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라고 하였다.
'네가 밝힌 바와 같이'이란 소승에서 해석한 것으로, 인연을 따라 법이 생기는 것 모두가 실상으로서 진공을 요달하지 뭇한 까닭이다.
阿難!若因眼生,旣無色空無可分別,縱有汝識欲將何用?汝見又非靑黃赤白,無所表示從何立界?
아난아, 만약 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이미 물질(色)과 허공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너의 식(識)이 있다고 하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의 보는 주체가 또한 청(靑) 황(黃) 적(赤) 백(白)이 아니라서 표시할 수가 없거늘, 무엇을 좇아서 계(界)가 성립되겠는가?
ㅡ만약 눈에만 원인(因)한 것이라면, 물질(色)과 허공이 없으면, 식(識)이 반연할 곳이 없고, 보는 주체도 표시할 수 없으며, 계가 성립될 수 없으니, 눈을 원인(因)한 것도 아니다.
若因色生,空無色時汝識應滅,云何識知是虛空性?若色變時,汝亦識其色相遷變,汝識不遷,界從何立?
만약 물질(色)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물질(色)이 아닌 허공일 떼에는 너의 식(識)도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니, 어떻게 그것이 허공의 성품인 허공성(虛空性)이라는 것을 알 것이며, 만약 물질이 변할 때, 너 또한 그 물질의 색상(色相)이 변하는 것을 안다면, 너의 식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계(界)가 어디를 따라 성립될 수 있겠는가?
ㅡ만약 물질(色)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마땅히 그 물질(色)을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 해야 할 것이니,
물질(色)이 없어지고 허공이 나타날지라도 당연히 분명하게 알지 못해야 할 것이나, 만약 분명하게 안다고 한다면 이는 곧 물질의 색상(色相)은 변하여도 너의 식(識)은 홀로 남아있는 것이다.
만약 홀로 남아 있다면, 이웃이 없는 것인데, 계(界)가 무엇을 따라 성립 되겠는가? 라고 힐난하신 것이다.
從變則變,界相自無;不變則恒。旣從色生,應不識知虛空所在。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곧 변하기 때문에 경계의 계상(界相)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곧 항상하다 할지라도 이미 물질을 따라 생겼으므로 당연히 허공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해야 할 것이다.
ㅡ변하는 것은 본체가 없기 때문에 경계의 계상(界相)이 없는 것이며,
만약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식성(識性)이 마땅히 빛(色)에만 한결 같아서 당연히 허공을 알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치가 그렇지 않은 것이므로, 물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것이다.
若兼二種眼色共生,合則中離,離則兩合,體性雜亂云何成界?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眼)과 물질(色)이 함께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합하였을 때에는 그 중간이 나누어질 것이고,
만약 서로 나누어진 것이라면, 둘이 합해지는 것으로, 그 체성(體性)이 섞여서 혼란할 것이니, 어떻게 계(界)를 이루겠는가?
ㅡ만약 눈(眼)과 물질(色), 두 가지가 합해서 식계(識界)를 생기게 한 것이라면 당연히 반은 알겠지만, 반은 모를 것이기 때문에 '그 중간이 나누어 진다'고 하신 것이다.
만약 가운데가 나뉘어진다면 반은 안근(眼根)과 합할 것이고, 반은 색진(色塵)과 합할 것이기 때문에 '둘이 합해진다'고 하신 것이니, 이 두 가지의 이치 모두 계(界)를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是故當知眼色爲緣生眼識界,三處都無,則眼與色及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눈(眼)과 물질(色)이 인연이 되어서, 눈으로 모아 아는 경계인 안식계(眼識界)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 모두는 처소가 없는 것이라서,
눈(眼)과 물질(色) 그리고 색계(色界),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ㅡ이게 계(界)가 눈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물질로 인한 것도 아니니, 이러한 모든 허망함이 모두 제거되어야 장성(藏性)이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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