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第六 善現行 般若波羅密 [善現行=잘 나타내는 행]
[[善現行은 반야바라밀을 體로 삼고 있는데, 경문을 네 단락으로 나누면
첫째로 “불자야” 이하 “방편으로 나타내는 生의 相이다”까지는 보살이 마음과 경계의 일체법이 자체성 없고 의지함이 없음을 요달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함께 의지처를 지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로 “보살이 이때” 이하 “정도를 행하지 않는다"까지는 중생을 제도하기를 생각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로 “보살이 이처럼 모든 중생을 관하니” 이하 “선현행”까지는 중생을 제도함이 미진하니, 스스로 열반을 증득함을 취하지 않음을 밝힌 분이다.]]
(1) 般若波羅密의 行 [般若= 지혜]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善現行此菩薩이 身業淸淨하며 語業淸淨하며 意業淸淨하며
住無所得하며 示無所得身語意業하야 能知三業이 皆無所有하며 無虛妄故로 無有繫縛하며
凡所示現이 無性無依니라
佛子야 불자여, 何等이, 어떤 것이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의 善現行(선현행)고? 보살마하살의 선현행=잘 나타내는 행인가
此菩薩이, 이 보살은 身業(신업)이 淸淨(청정)하며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語業(어업)이 淸淨하며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意業(의업)이 淸淨하며 뜻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며,
住無所得(주무소득)하며, 얻을 것 없는 데에 머물고
示無所得身語意業(시무소득신어의업)하야, 얻을 것 없는 신어의의 업을 보여서
能知三業(능지삼업)이 皆無所有(개무소유)하며, 세 가지 업이 모두 있지 아니하고 없으니
無虛妄故(무허망고)로, 허망하여 無有繫縛(무유계박)하며, 속박도 없고
凡所示現(범소시현)이, 무릇 나타내 보이는 것들은
無性無依(무성무의)니라. 성품도 의지한 데도 없음이니라.
(2) 三業
住如實心하야 知無量心自性하고 知一切法自性이 無得無相하야 甚深難入하며
住於正位眞如法性하야 方便出生호대 而無業報하야 不生不滅하며 住涅槃界하고 住寂靜性하고
住於眞實無性之性하야 言語道斷하니 超諸世間하야 無有所依니라
入離分別無縛着法하며 入最勝智眞實之法하며 入非諸世間所能了知出世間法하나니
此是菩薩의 善巧方便으로 示現生相이니라
住如實心(주여실심)하야, 여실한 마음에 머물러, 사실과 같은 마음에 머물러서
知無量心自性(지무량심자성)하고, 무량심= 한량없는 마음자성을 알고,
知一切法自性(지일체법자성)이 일체법의 자성이 無得無相(무득무상)하야, 얻을 것도 모양도 없고
甚深難入(심심난입)하며, 심히 깊어 들어가기 어려움을 알며
住於正位眞如法性(주어정위진여법성)하야, 정위= 바른 지위의 진여법성에 머물러
方便으로 出生호대 방편을 내기 때문에 而無業報(이무업보)하야, 업보가 없고
不生不滅(불생불멸)하며 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住涅槃界(주열반계)하고, 열반계에 머물고
住寂靜性(주적정성)하고, 적정한 성품에 머물며
住於眞實無性之性(주어진실무성지성)하야, 진실한 성품 없는 성품에 머무니
言語道斷(언어도단)하니, 언어의 길이 끊기고 모든 超諸世間(초제세간)하야, 세간을 초월하여
無有所依(무유소의)니라. 의지한 바가 없으며,
入離分別無縛着法(입리분별무박착법)하며, 분별을 떠난 속박과 집착이 없는 법에 들어가고
入最勝智眞實之法(입최승지진실지법)하며, 가장 수승한 지혜의 진실한 법에 들어가며,
入非諸世間所能了知(입비제세간소능료지)인 모든 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出世間法(출세간법)하나니, 출세간법에 들어가나니 此是菩薩(차시보살)의 이것이 보살의
善巧方便(선교방편)으로 示現生相(시현생상)이니라. 생의 모양을[生相]을 시현하는 선교한 방편입니다.
(3) 理致와事相 [이치= 본질과 사상= 현실ㆍ현상]
佛子야 此菩薩이 作如是念호대 一切衆生이 無性爲性이며 一切諸法이 無爲爲性이며
一切國土가 無相爲相이며 一切三世가 唯是言說이며 一切言說이 於諸法中에 無有依處며
一切諸法이 於言說中에 亦無依處라하나니라
[理致와 事相 우리는 항상 이치인연과 현상인연, 현상인연과 이치인연의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이, 이 보살은 作如是念호대, 생각하기를,
一切衆生이 모든 중생이 無性爲性이며, 성품없음[無性]을 성품으로 삼고,
[사실 “성품ㆍ성품”하지만 딱히 내놓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또 성품이 전체입니다. 아주 이율배반적인 상이성적 이론밖에 안 되는 그것이 언어의 한계입니다.]
一切諸法이 일체의 모든 법이 無爲爲性이며, 무위를 성품으로 삼으며,
一切國土가 모든 국토가 無相爲相이며, 무상으로 상을 삼고
一切三世가 모든 삼세가 唯是言說이며, 오직 언설일 뿐이며,
[오직 말= 생각 뿐이다. 사람도 말이고 생각입니다. 사실은 말과 생각의 한계 안에 존재 하는 겁니다.]
一切言說이 일체의 언설이 於諸法中에 모든 법 안에 無有依處며, 의지할 곳이 없고
一切諸法이 일체의 모든 법이 於言說中에 언설 안에
亦無依處라하나니라. 또한 의지할 곳이 없도다.' 합니다.
[우리가 생각, 개념과 말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전부 표현되어지는 것이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4) 理致와 事相無碍
菩薩이 如是解一切法이 皆悉甚深하며 一切世間이 皆悉寂靜하며 一切佛法이 無所增益하며
佛法이 不異世間法하고 世間法이 不異佛法하며 佛法世間法이 無有雜亂하고 亦無差別하며
了知法界가 體性平等하야 普入三世하니라
菩薩이 보살은 如是解一切法이 이와 같이 일체법이 皆悉甚深(개실심심)하며, 모두 심오하고
一切世間이 일체세간이 皆悉寂靜(개실적정)하며 모두 적정하며,
一切佛法이 일체의 불법이 無所增益(무소증익)하며, 늘어남이 없고
佛法이 불법이 不異世間法(불이세간법)하고,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世間法이 세간법이 不異佛法(불이불법)하며, 불법과 다르지 않으며,
佛法世間法이 불법과 세간법이 無有雜亂(무유잡란)하고, 뒤섞이지도 않고
亦無差別(역무차별)하며, 또한 차별함도 없음을 解= 이해하고
了知法界가 법계의 體性平等(체성평등)하야, 체성이 평등함을 了知= 분명히 알아
普入三世(보입삼세)하니라. 삼세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세간의 법은 부처님의 법과 일치하며 부처님의 법은 세간의 법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부처님의 법과 세간의 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說 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집단의 도덕적 규범과 법률은 중생을 바르게 이끌고자 하는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비록 六識의 중생에겐 불합리하고 불평등해 보인다 해도 그것은 고귀한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세상은 어떤 사람의 시각으론 참으로 불평등하고 불합리 하지만 진여의 입장에선 그 불평등과 불합리가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바르게 이끌기위한 최고의 교육 재료입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1) 특정 정치인, 자본가, 권력자.. 의 이익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이 달라지는 듯이 느껴지는 법률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법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有錢無罪(무전유죄) 無錢有罪(무전유죄)를 부르짓기도 합니다.
2) 신호등에서 여러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였는데,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고 교통법규 위반한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고 도망가지 않은 사람만 교통경찰에게 붙집힙니다. 그 붙잡힌 사람은 경찰에게 따집니다. 이보시오, 저 도망간 사람들은 다 놔주고 왜 나만 잡소? 이럴바엔 나도 도망갈걸 그랬소.
우리의 작은 의식체계인 六識으로 보면 너무도 억울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불평등하고 억울한 법규라도 나의 의식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에 인과율은 그러한 억울해 보이는 상황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생에 어떠한 큰 죄를 지었더라도 현재의 내 마음이 바르고 올바르다면 절대로, 단연코 그런 나쁜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화엄경 초발심 공덕품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기 위해 이세상에 나온것이 아니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오직 중생을 성숙시켜 모든 중생들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러 한없는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고 불법을 모든걸 체념하고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살아야 된다는 사상이라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권력자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시민의식 역시 인과율의 의지 이니까요.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가장 논란이 될수도 있고, 악용될수도 있는 사상입니다. 또한 제가 두말하는 사람으로 비춰질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인도에서는 윤회와 인과율의 편중된 시각으로 받아들여 악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악용하는 사례 역시 그 중생들을 바르게 교화하고 필경엔 모두가 사랑으로 가득찬 보살이 되게 하기위한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세상에 이유없는 고통은 없기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의 영향으로 귀족은 영원히 다시 환생해도 귀족, 천민은 다시 환생해도 천민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천민들이 환생하면 대부분 귀족이나 왕족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귀한자로 환생해서는 다시 전생에 고귀한자였던 자들(지금은 천민)을 학대하며 내세에 또 천한자의 삶을 겪는 인과를 짓고야 맙니다. 이러한 이치는 제 ‘새로운 시각의 인과율’ 과 ‘윤회와 업보의 비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천민으로 태어났다고 천민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을 반성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인과율의 의지이며,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 역시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인과율의 의지는 참으로 자비롭고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혹시라도 제 말을 비약하시거나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몰라 말씀드립니다. 이 경우는 어디까지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것입니다. 윤회와 인과율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어서 일개 중생의 눈으론 다 헤아릴수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잘못된 마음가짐을 반성하고 긍정의 사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는 원치 않아도 자신의 삶을 개척하게 됩니다. 곧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천민은 운명을 저주하며 불만세력이 되거나 혹은 衆生相을 가지게 되어 열등감과 연민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몰아갑니다. 어찌 보면 갖다 맞추는 듯이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의 제글을 보면 제 마음의 일부에선 그런 느낌이 드니까요. 하지만 이 글을 그냥 信心으로 믿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생에 와서는 그러한 벌을 받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나를 구속하고 내 자유를 억압하느냐고 따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대 성인중 하나인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이야기 했는지도 모릅니다. 세간의 법이 바로 불법입니다. 왜냐하면 세간의 법칙은 인과율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과율의 율법은 때론 너무도 가혹하고, 억울한 시련을 주는듯 하지만 그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살펴보면 전혀 억울할것도 가혹할 것도 없습니다. 그의 현재의 부정한 마음이 그러한 억울한 일들을 부른 것이니 말입니다.
천하게 태어났다해도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을 갖는다면(두려워 겁먹은 소심함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겁많고 소심한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들 생각하더군요.) 그는 언제든 바로 운명이 바뀌고 고귀한 자가 될수 있습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 들이는 마음 가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말이 비록 내 감성에 안맞는 말이더라도 지금 이순간 인과율(관세음보살의 화신, 지장보살의 화신, 혹은 주님이나 성모마리아님, 신이라고 하셔도 됩니다.)께서 그의 입을 빌어 했다고 생각하여 그냥받아들이는것이 바른 수행자의 태도입니다.
지금 누군가가 저를 향해 깨닫지도 못해놓고 깨달은 체하는 사기꾼이라고 한다면 그말 역시 맞습니다. 왜냐하면 전 정말 티끌만도 못한 깨달음을 얻어놓고 선생놀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큰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버이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삶을 통해 겪은 것을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않기 바라기 때문입니디. 그 어버이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아이는 사회에서 크게 성공할 것이고 어버이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아이는 크나큰 좌절을 하게됩니다. 비록 어버이의 교육이 바르지 못한 경험에서 나온것이라 해도 받아들이는 아이가 바르게 받아들인다면 그 아이는 위대한 사람이 될것 입니다.
그 누가 비꼬는 말을 해도, 나무라는 말을 해도, 혹은 이유없이 비난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자는 진정한 보살도를 닦아나가는 자이고 거부하고 상대를 공격하는자는 인과율의 회초리를 맞게 됩니다. 받아 들였을 때의 불이익을 생각하는자는 정말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냥받아들이는 보살은 한없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하 직원이 자신을 배신할까 두려워 끝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큰배신을 당하고 망하게 됩니다. 혹은 자신은 믿었는데 배신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타인을 믿었을까요? 믿는척 혹은 믿음 코스프레만 한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알것 입니다. 코스프레가 아닌 진정한 바른 믿음은 절대 나쁜일을 부르지 않습니다.- 작성자 상불경]]
(5) 理致와 慈悲
永不捨離大菩提心하며 恒不退轉化衆生心하며 轉更增長大慈悲心하야 與一切衆生으로 作所依處니라
永不捨離大菩提心(영불사리대보리심)하며, 큰 보리심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恒不退轉化衆生心(항불퇴전화중생심)하며, 중생교화의 마음이 항상 퇴전치 않으며,
轉更增長大慈悲心(전갱증장대자비심)하야, 큰 자비심을 더욱 키워 내
與一切衆生(여일체중생)으로, 일체중생에게 作所依處(소작의처)니라. 의지처를 만들어 줍니다.
[앞에서는 이치로써 어떤 현상을 볼 때,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있으나, 중생을 제도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大慈가 있어서 그 자비의 힘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입니다.]
(6) 衆生敎化의 念願
菩薩이 爾時에 復作是念호대 我不成熟衆生이면 誰當成熟이며 我不調伏衆生이면 誰當調伏이며
我不敎化衆生이면 誰當敎化며 我不覺悟衆生이면 誰當覺悟며 我不淸淨衆生이면 誰當淸淨이리오
此我所宜요 我所應作이라하니라
菩薩이 보살은 爾時에, 이때에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또 다시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不成熟衆生(아불성숙중생)이면, 내가 중생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誰當成熟(수당성숙)이며, 누가 성숙시킬 것이며,
我不調伏衆生(아불조복중생)이면, 내가 중생을 조복하지 않으면 誰當調伏(수당조복)이며, 누가 조복할 것이며,
我不敎化衆生(아불교화중생)이면,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誰當敎化(수당교화)며, 누가 교화할 것이며,
我不覺悟衆生(아불각오중생)이면, 내가 중생을 깨우치지 않으면 誰當覺悟(수당각요)며, 누가 깨우칠 것이며,
我不淸淨衆生(아불청정중생)이면, 내가 중생을 청정히 하지 않으면
誰當淸淨(수당청정)이리오? 누가 중생을 청정히 하리오? 此我所宜(차아소의)요.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요
我所應作(아소응작)이라하니라. 내가 응당 지을 바다.' 라고 作是念=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바고, 내가 응당히 지어야 할 일이다. 꼭 해야 할 일이다.]
(7) 衆生受苦에對한心慮 중생이 고통 받는 것에 대한 심려
復作是念호대 若我自解此甚深法인댄 唯我一人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獨得解脫이요
而諸衆生은 盲冥無目하야 入大險道하며 爲諸煩惱之所纏縛하며 如重病人하야 恒受苦痛하며
處貪愛獄하야 不能自出하며 不離地獄餓鬼畜生閻羅王界하며 不能滅苦하고 不捨惡業하며 常處癡闇하야
不見眞實하며 輪廻生死하야 無得出離하며 住於八難하야 衆垢所着이며
種種煩惱가 覆障其心하며 邪見所迷로 不行正道니라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또 생각하기를,
若我自解此甚深法(약아자해차심심법)인댄, 만약 내 자신이 이 심오한 법을 알아서(이해해서)
唯我一人(유아일인)이, 오직 나 한 사람 만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獨得解脫(독득해탈)이요. 홀로 해탈을 얻는다면
[[중생의 덕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나홀로 위없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우선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며 한없는 겁동안 보살행을 수행하여 중생의 덕을 완성시키자
→說 보살의 경지는 不二로 대변됩니다.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깨달은 자로 볼수 없고, 실로 깨달음을 얻을수도 없습니다. - 상불경]]
而諸衆生(이제중생)은, 모든 중생들은 盲冥無目(맹명무목)하야, 눈 멀고 캄캄하여
入大險道(입대험도)하며, 큰 험한 길에 들어가고 爲諸煩惱之所纏縛(위제번뇌지소전박)하며, 온갖 번뇌에 속박되어
如重病人(여중병인)하야, 중병 걸린 사람처럼 恒受苦痛(항수고통)하며, 늘 고통을 받으면서
處貪愛獄(처탐애옥)하야, 탐애의 옥에 갇쳐 不能自出(불능자출)하며,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고
不離地獄餓鬼畜生閻羅王界(불리지옥아귀축생염라왕계)하며, 지옥, 아귀, 축생의 염라대왕 세계를 떠나지 못하며,
不能滅苦(불능멸고)하고, 고통을 없애지 못하고 不捨惡業(불사악업)하며, 악업을 버리지도 못하며,
常處癡闇(상처치암)하야, 항상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빠져 不見眞實(불견진실)하며, 진실을 보지 못하고
輪廻生死(윤회생사)하야, 생사를 윤회하여 無得出離(무득출리)하며, 벗어나지 못하며,
住於八難(주어팔난)하야, 팔난에 머물러
[八難=부처를 보지 못하고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 곤란한 상황. 곧 지옥(地獄), 축생(畜生), 아귀(餓鬼), 장수천(長壽天), 맹롱음아(盲聾瘖瘂), 울단월(鬱單越),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佛前佛後)]
衆垢所着(중구소착)이며, 온갖 때가 달라붙고 種種煩惱(종종번뇌)가 갖가지 번뇌가
覆障其心(부장기심)하며, 그 마음을 가리어 邪見所迷(사견소미)로, 미혹한 삿된 견해로
不行正道(불행정도)니라. 바른 길을 가지 못하리라.' 합니다.
[삿된 소견이 제일 문제입니다. 잘못 된 견해에 집착해서, 자기 생각에 매여 놓으면 어떻게 할 바가 없습니다.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스스로 갖춰지지 아니하면 남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건들면 건들수록 자기 집착에 더 굳어져버립니다. 그러니까 늘 마음을 열고 다른 소견을 받아들여서 취할 줄도 알고, 걸러 낼 것은 걸러 내고, 좋은 것은 취하여서 내 생각ㆍ내 가치관을 바꿀 때는 바꾸여 되는 것입니다.
탄허스님이나 성철스님 같은 이들이 늘 말씀하시기를 “내가 알고 있는 불법보다 더 훌륭한 법이 만약에 있다면, 당장에 쫓아갈 수 있다." 이것 대단한 이야기 아닙니까? 불교공부 하는 사람이라야 그런 소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만치 불법에 대한 자기 소신이 확고 부동하다는 뜻이지요.]
(8) 衆生敎化의 優先
菩薩이 如是觀諸衆生하고 作是念言호대 若此衆生이 未成熟未調伏이어늘
捨而取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인댄 是所不應이니 我當先化衆生하야 於不可說不可說劫에 行菩薩行하야
未成熟者를 先令成熟하며 未調伏者를 先令調伏이라하나니라
菩薩이 보살은 如是觀諸衆生하고, 이렇게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서
作是念言호대,이러한 생각을 하되, 若此衆生이, 만약 중생이
未成熟未調伏이어늘,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조복하지 못하였는데
捨而取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인댄, 이를 버려두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여 증득한다면
是所不應이니, 이는 마땅치 못한 것이니 我當先化衆生하야, 나는 마땅히 중생교화를 우선하여
於不可說不可說劫에 불가설 불가설의 겁 동안 行菩薩行하야, 보살행을 행하여
未成熟者를 성숙치 못한 이들 先令成熟하며, 먼저 성숙케 하고
未調伏者를 조복하지 못한 이들 先令調伏이라하나니라. 먼저 조복케 하리라.'
(9) 必成菩提 반드시 보리를 이루다
是菩薩이 住此行時에 諸天魔梵沙門婆羅門과 一切世間乾達婆阿修羅等이 若有得見이어나 暫同住止어나
恭敬尊重이어나 承事供養이어나 及暫耳聞하야 一經心者라도 如是所作이 悉不唐捐하야
必定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六善現行이니라
[지혜바라밀이 중요하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是菩薩이, 이 보살이 住此行時(주차행시)에, 이러한 행에 머물렀을 때
諸天(제천)과 모든 하늘, 魔(마)와 마군, 梵(범), 범천, 沙門(사문)과 사문, 婆羅門(바라문)과 바라문과
一切世間乾達婆阿修羅等(일체세간건달바아수라등)이 일체세간의 건달바, 아수라 등이
若有得見(약유득견)이어나, 만약 그 보살을 보거나 暫同住止(잠동주지)어나, 잠시 함께 머물거나
恭敬尊重(공경존중)이어나, 공경 존중하거나 承事供養(승사공양)이어나,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거나
及暫耳聞(급잠이문)하야, 또 잠깐이라도 귀로 듣고 一經心者(일경심자)라도, 마음에 한 번 스치기만 했더라도
如是所作이, 그것이 모두 헛되지 않아서 悉不唐捐(실불당연)하야, 다 헛되지 않아서
必定當成(필정당성)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나니, 결정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될 것이니
是名菩薩摩訶薩의,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第六 善現行(선현행)이니라. 제 6 선현행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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