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第一 歡喜行 布施波羅密
[[환희행은 檀바라밀(보시바라밀)로 체를 삼고 있는데, 경문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면,
첫째로 단바라밀을 행해서 부처님께서 수행한 바를 배움을 밝히며
둘째로 이 지위의 보살이 궁핍한 곳을 보고 맹세코 부귀로운 집안에 태어나기를 염원해서 재물과 身命을 다 버려서 요익하게 함을 밝히며.
넷째로 眞을 알아서 상념이 없음을 밝힌 분으로 補特伽羅의 상념은 '자자주 趣를 취한다'는 뜻이며, 摩納婆의 상념이란 少年이며 또한 유동(儒童)이니, 선악과 노소를 분별하지 않고 모두 베풂을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중생이 견고한 몸이 아님을 관하고 견고한 몸을 구해 영원히 안온하게 함을 밝힌다.]]
(1) 大施主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歡喜行고
佛子야 此菩薩이 爲大施主하야 凡所有物을 悉能惠施호대 其心平等하야 無有悔吝하며
不望果報하며 不求名稱하며 不貪利養하니라
[第一 歡喜行 布施波羅密(檀바라밀)모든 수행에는 主바라밀이 있고, 助바라밀이 있습니다.
10행의 처음이 歡喜行인데, 환희행은 主라밀은 보시 바라밀이고 그 나머지 아홉 바라밀은 助바라밀입니다.]
佛子야 何等(하등)이 불자여, 어떤 것이 爲菩薩摩訶薩歡喜行(위보살마하살환희행)고? 보살마하살의 환희행이겠는가?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차보살)이 爲大施主(위대시주)하야, 이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부처님도 법화경에서 나는 대 시주라고 하셨습니다]
凡所有物(범소유물)을, 가진 물건을 悉能惠施(실능혜시)호대, 다 보시해 베풀어도
[보살이 대 시주가 되어서 모든 인연 사물들을 모두 베푼다.]
其心(기심)이 平等(평등)하야 無有悔吝(무유회린)하며, 그 마음이 평등하여 후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고
[그 마음이 평등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가져가도 괜찮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가져가면 좀 찝찝하고 영 편치가 않고요.]
不望果報(불망과보)하며, 댓가도 바라지 않으며, [무주상 보시,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
不求名稱(불구명칭)하며. 명예를 구하지도 [名稱= 소문]
不貪利養(불탐이양)하니라. 이익이나 재물을 탐하지도 않음이라.
[[단바라밀을 행해서 부처님께서 수행한 바를 배움을 밝힌 分]]
(2) 饒益衆生 [왜 보시하는가?]
但爲救護一切衆生하며 攝受一切衆生하며 饒益一切衆生하며 爲學習諸佛本所修行하며 憶念諸佛本所修行하며
愛樂諸佛本所修行하며 淸淨諸佛本所修行하며 增長諸佛本所修行하며 住持諸佛本所修行하며
顯現諸佛本所修行하며 演說諸佛本所修行하야 令諸衆生으로 離苦得樂이니라
但爲救護一切衆生(단위구호일체중생)하며, 다만 일체중생을 구호하고,
攝受一切衆生(섭수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거두어 보살피며,
饒益一切衆生(요익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爲學習諸佛本所修行(위학습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배워 익히고,
[모든 부처님의 本所修行=본래 수행한 바를 학습하기 위해서]
憶念諸佛本所修行(억념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회상하며,
[모든 부처님이 본래 수행한 바를 憶念= 기억하기 위해서.]
愛樂諸佛本所修行(애락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즐거히 사랑하고,
淸淨諸佛本所修行(청정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청정히 하며,
[제불의 本所修行을, 본래 수행한 바를 淸淨= 훌륭하게 여긴다, 더 빛나도록 한다.]
增長諸佛本所修行(증장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키워나가고, [발전시킨다]
住持諸佛本所修行(주지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머물러 지키며,
顯現諸佛本所修行(현현제불본소수행)하며,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밝게 나타내고,
[顯現= 자꾸 드러내서 많이 알리고, 알림으로써 감동받고, 감동받음으로 해서 그런 사람이 또 나오는 바로 그 겁니다.]
[여기서 자재공덕회 증엄스님 이야기를 여러 수백 번하다가 ‘마음에 빚이 돼서 도저히 안 되겠다.’해서 지난 가을에 갔씁니다. 누가 대만의 아주 오래된 유명한 차[茶]를 꼭 사오라고 부탁해서 차 살 돈도 준비해서 갔는데 차 사기전에 자재공덕회에 가서, 그 봉사활동에 너무 감동해서 차 사러 갔던 돈 다 보시해버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도 아무리 작은 사찰이더라도 기록실과 방한록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누가 왔다 가면 기록과 이름을 남기라고 하고, 가능하다면 행사한 불사의 사진들 걸어놓고 누가 다녀갔으면 다녀간 사진도 걸어 놓아서 작은 절이지만 이러이러한 역사를 걸어 왔다고 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만 사람들이 보통 1300년ㆍ1400년 되는 우리 한국불교의 역사를 부러워합니다. 해인사는 신라 말기의 애장왕 때 사찰로 1200년이 되고 범어사는 1300년, 통도사도 거의 140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본토에서 피난 가서 세운 절들이라 기껏해야 100년 앞뒤입니다.]
演說諸佛本所修行(연설제불본소수행)하야, 부처님들이 본래 수행하신 것을 연설하여 [본래 수행한 바를 드러내서]
令諸衆生(영제중생)으로 離苦得樂(이고득락)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낙을 얻게 합니다.
(3) 布施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修此行時에 令一切衆生으로 歡喜愛樂하며
隨諸方土의 有貧乏處하야 以願力故로 往生於彼豪貴大富의 財寶無盡하야 假使於念念中에
有無量無數衆生이 詣菩薩所하야 白言호대
仁者하 我等이 貧乏하야 靡所資贍일새 飢羸困苦하야 命將不全이로소니
惟願慈哀로 施我身肉하사 令我得食하야 以活其命하소서하면
爾時에 菩薩이 卽便施之하야 令其歡喜하야 心得滿足케하며
如是無量百千衆生이 而來乞求라도 菩薩이 於彼에 曾無退怯하고 但更增長慈悲之心일새
以是衆生이 咸來乞求에 菩薩이 見之하고 倍復歡喜하야 作如是念호대
我得善利니 此等衆生이 是我福田이며 是我善友라 不求不請호대 而來敎我入佛法中하니
我今應當如是修學하야 不違一切衆生之心이라하나니라
又作是念호대 願我已作現作當作所有善根으로 令我未來에 於一切世界一切衆生中에 受廣大身하야
以是身肉으로 充足一切飢苦衆生호대 乃至若有一小衆生이 未得飽足이라도
願不捨命하고 所割身肉도 亦無有盡하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修此行時(수차행시)에, 이러한 수행을 할 때
令一切衆生(여일체중생)으로 歡喜愛樂(환희애락)하며, 일체중생이 기뻐하고 좋아하게 하는데,
隨諸方土(수제방토)의 有貧乏處(유빈핍처)하야, 여러 지방에 따라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곳에
以願力故(이원력고)로, 원력으로 가서
往生於彼豪貴大富(왕생어피호귀대부)의, 호화롭고 귀한 큰 부자로 태어나 [원력으로 아주 부잣집에 태어나서.]
財寶無盡(재보무진)하야, 재물과 보화가 무진하여 [豪貴大富의 財寶無盡한데 태어나서 보시를 마음껏 한다.]
假使於念念中(가사어념념중)에 有無量無數衆生(유무량무수중생)이, 순간순간마다 한량없는 중생들이
詣菩薩所(예보살소)하야, 그 보살의 처소에 와서 白言= 말하기를, 仁者(인자)하, 어진이시여,
我等(아등)이 貧乏(빈핍)하야, 저희들이 가난하고 궁핍하여
靡所資贍(미소자섬)일새, 資贍= 살아갈 생활도구들, 재물이 넉넉치 못하기에, 일용양식이 넉넉치 못하여서
飢羸困苦(기영곤고)하야, 굶주림에 지치고 곤고하여 [아주 주리고 파리하고 아주 곤하고 괴롭게 살아서]
命將不全(명장부전)이로소니, 장차 목숨을 보전키 어려우니 [목숨이 장차 온전하지 못하여 곧 죽을 것 같다.]
惟願慈哀(유원자애)로, 바라옵건대 자비와 애민으로 施我身肉(시아신육)하사, 저에게 육신을 보시하시어
令我得食(영아득식)하야, 제가 먹고 以活其命(이활기명)하소서하면, 목숨을 보전케 하소서.' 한다면
爾時에, 그때에 菩薩이 卽便施之(즉변시지)하야, 보살은 곧바로 보시하여 [便 변 ① 편리하다② 곧③ 형편이 좋다]
令其歡喜(영기환희)하야, 그가 기뻐하고 心得滿足(심득만족)케하며, 마음에 만족을 얻게 하며,
[진정한 불자라면 오로지 중생들을 이고득락하게 하고 중생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지만, 한국 불교가 아주 소승적인이고, 특히 출가 승려들은 소승 중에 상 소승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찍이 대승불교가 들어 와서 불교 교리 자체는 대승불교이지만, 그것을 배우는 승려들은 소승이지만요. 사실 선방에서 한 철간 공부한 다음에 만행 나설 때 육환장 짚고 나서잖아요. 우리 어릴 때 육환장 짚고 다니는 스님들 많았습니다. 특히 청담스님은 오랫동안 육환장 짚고 다녔습니다.
육환장이란 해제한 3개월 동안 ‘육도만행을 베풀어라.’는 뜻입니다. 3개월은 공부하고, 3개월은 육도만행= 보시하러 다니는데, 요즘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해제 중에 또 결제 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계속 앉아 있기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참선을 한 철 했으면 나가서 참선을 줘야지요. 경전을 한 철 공부했으면 경전을 줘야지요. 염불을 한 철 했으면 염불을 베풀어야지요. 만약에 그것이 근기가 안 맞고,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노동이라도 해줘야 됩니다.
제가 그전에 관음사에 향곡스님 살아계실 때는, 결제중 저녁에 내려와서 멸치 잡는 것 거들었어요. 중이 멸치 잡는 것 거들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멸치는 어차피 죽은 멸치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고생ㆍ고생하는 것을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밤에 나가서 끌어올리는 것을 계속 거들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제가 아는 도반 호연스님은 해제 중에 초상집에 가서 哭(곡)이라도 해줬어요. 걸망지고 어디 가다가 초상집이 있는데, 보니까 아주 외로워 보여서 그래서 거기서 엉엉 울어 준겁니다. 지리산 쪽에 삽니다. 농사도 거들어주고, 큰물 났을 때 재해를 돕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는 것인데 그것 다 잊어버리고...
요즘 해림사 동림스님이 동국대학교에 26억 재산 다 바치고 또 절까지 바쳐서 주지임명을 동국대학교 총장이 하니까 교양대학 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더라는 겁니다. “동국대학교 사찰이다.” 이렇게 되어서 동국대학교에서 전부 회개가 나와서 계산 다 하니까 신도들은 ‘공명하게 잘한다.’고 아주 좋아하는 겁니다.
그 스님 辛巳生(신사생), 아직 칠십 넷 밖에 안 되었데 재산 26억 다 바치고 100억도 넘는 절을 그냥 동국대학교에 줘버렸습니다. 주지임명도 동국대학교에서 합니다.]
如是, 無量百千衆生이 而來乞求(이래걸구)라도, 그렇게 한량없는 백천 중생이 찾아 와 구걸하더라도
菩薩이 於彼(어피)에, 보살은 저들을 曾無退怯(증무퇴겁)하고, 일찍이 물러서거나 겁내는 마음이 없고,
但更增長慈悲之心(단갱증장자비지심)일새. 다만 더욱 자비심을 키워내
以是衆生(이시중생)이 그로써 중생들이 咸來乞求(함래걸구)에, 모두 와서 구걸하면
菩薩이 見之(견지)하고, 보살이 그것을 보고 倍復歡喜(배부환희)하야, 배로 더욱 기뻐하며
作如是念(작여시념)호대 我得善利(아득선리)니, '나는 좋은 이익을 얻었으니
此等衆生(차등중생)이 이 중생들이 是我福田(시아복전)이며, 바로 나의 복밭이며
是我善友(시아선우)라. 좋은 친구이라. 不求不請(불구불청)호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而來敎我入佛法中(이래교아입불법중)하니, 찾아와 내게 불법에 들도록 가르쳐주니
我今應當如是修學(아금응당여시수학)하야, 내가 이제 마땅히 이런 것을 배우고 닦아서
不違一切衆生之心(불위일체중생지심)이라하나니라. 일체중생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으리라.'
作如是念= 생각하고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또 생각하되, 願, 원컨대
我已作現作當作所有善根(아이작현작당작소유선근)으로, 나는 이미 지었거나 현재 짓거나 장차 지을 선근으로
令我未來(영아미래)에, 내가 오는 세상에 於一切世界一切衆生中(어일체세계일체중생중)에, 일체세계의 일체중생 속에
受廣大身(수광대신)하야, 거대한 육신을 받아서 [광대한 몸= 큰 영향력입니다. 사람이 아주 덕화력ㆍ복력ㆍ법화력 등이 있어서 큰 영향력 행사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귀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耳根공덕이 됩니다. 제 8 아뢰야식= 無沒識藏識(무몰장식)에 있다가 언젠가 실천할 때가 있을 겁니다.
제가 옛날에 객지로 다닐 때는 전국구도 없었는데 쫓겨난 곳이 두 곳쯤 됩니다. 어느 사찰이라고 이름대기가 곤란합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 승려들의 아주 소승적인, 정말 바늘 끝 하나도 용납 못하는 좁은 마음이 아주 소승 중에 상 소승의 마음 상태의 실상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만...]
以是身肉(이시신육)으로, 그 육신으로
充足一切飢苦衆生(충족일체기고중생)호대, 모든 굶주림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충족시키고
乃至若有一小衆生(내지약유일소중생)이, 나아가 어느 한 작은 중생이라도
未得飽足(미득포족)이라도, 아직 만족을 얻지 못했다면 [飽足= 배부름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願不捨命(원부사명)하고, 목숨도 버려지지 않고,
所割身肉(소할신육)도 亦無有盡(역무유진)하니라. 베어내는 육신도 다함이 없기 원하며,
[끝도 없이 살아나서 또 베어 줄 것이 있고, 또 베어 줄 것이 있도록 되기를 원한다.]
[앞에 願我 已作 現作 當作 所有善根으로 令我未來에, 미래에, 내가 앞으로 일체중생들에게 큰 몸이 되어서 그 몸뚱이 고기라도, 몸뚱이 살이라도 베어주고ㆍ베어주고해서 모든 굶주린 중생들에게 다 베어주고 조그마한 중생이 설사 배를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원컨대 내 몸이 생명이 없어지지 않고, 不捨命하고, 생명을 버리지 아니하고, 죽어버리면 끝이니까, 안 죽고 계속 살이 살아나야 베어 줄 것이 있지요. 所割身肉도, 베어주는 바 몸의 살점도 亦無有盡이니라. 또한 다함이 없도록 하기를 원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 귓전으로 한번 스치고 지나가야 되고, 우리 아뢰야식에 씨앗으로 잠재되어 남아 있어야 되는 선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계합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우리 마음, 차별 없는 참 사람의 그 위대한 진여자성에는 사실은 본래 그럴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럴수록 되어있는데 우리의 자기만을 생각하는 그 자아의식.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 이런 의식들에 꽉 절여서 미처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렇지, 이것이 어느 날 그냥 확~~ 터져서 마음껏 ‘화엄경 그것 별 것 아니 구만, 그 보다 나는 더한 것도 하는데...’ 사실은 이렇게까지 되어야 되는 것이지요.]
(4) 廻向菩提 보리에 회향
以此善根으로 願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證大涅槃하고
願諸衆生이 食我肉者도 亦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獲平等智하야 具諸佛法하야 廣作佛事하며
乃至入於無餘涅槃이니 若一衆生이라도 心不滿足이면 我終不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니라
[回向三處悉圓滿(회향삼처실원만)의 三處가 菩提ㆍ衆生ㆍ實際입니다.
선근을 닦아 좋은 일해서, 그 좋은 일이 좀 더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일 기도를 했다면 그 다음에 회향으로, 100일 기도를 한 번 더 한다든지, 선행을 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上求菩堤 下化衆生 위로는 보리=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보리에 회향한다.”
實際회향 진리 화되는 것. 實際= 진리, 이치 화되는 것. 참 이치와 同化되는 것도 회향의 한 뜻으로 표현합니다.
불교란 한 마디로 말하면 “회향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화엄경은 80권 중에 열권 반이 회향, 10회향 품이니까 “회향” 한마디 설명하는데 열권 반이나 됩니다.
회향의 이치라는 것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廻 돌이킬 회, 向은 밖으로 향하는 것, 내 뿜는 것입니다. 호흡이 회향이고요. 먹는 것은 廻이고, 배설하는 것은 向입니다
여기는 불교 공부의 叢林(총림)이라 생각하고 총림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것은 廻이고, 個찰로 돌아가서 개인 수행하는 것은 向입니다. 자기 공부하는 것은 廻이고 공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向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廻, 죽는 것은 向으로 일체가 廻向으로 되어있는 회향의 이치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돈 버는 사람은 돈 벌어서 베풀어야 되고, 버는 것은 회고 베푸는 것은 향이니까요.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 한철해서 한철은 참선을 베풀어야 됩니다.
이 좋은 불법을 배우는 것은 회이고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은 향입니다.
많이 다 배워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일찍이 경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유를 매일 짜니까 자기 식구들 밖에 못 먹겠거든요. 그래서 한 달을 모아서 한꺼번에 짜서 동네사람들에게 다 한 번씩 돌아가도록 해야 되겠다해서 한 달을 기다렸다가 짜니까 우유가 다 말라서 하나도 없더라. 부처님이 이런 비유를 들었잖아요. 그날 배운 것은 그날 회향=가르쳐야 됩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도 ‘회향이다.’ 저는 그렇게 정리가 됐습니다.
모든 것이 회향의 원리 속에서 이미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이나 지구나 춘하추동 사시절, 일체가 회향의 원리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추어서 보살행으로, 선근으로써 회향하자는 것입니다.
불교 공부는 내 자신을 위해서ㆍ내 자신에게 대접하기위해서ㆍ내 자신의 인격 향상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공부만 하고 향 안하면, 회향하지 않으면 이것은 크게 빚지는 겁니다. 열심히 베풀어야 됩니다.]
以此善根(이차선근)으로, 그 선근으로 (보시행으로) 願 원컨대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證大涅槃(증대열반)하고, 대열반을 증득하기 원하며,
願諸衆生(원제중생)이 食我肉者(식아육자)도, 나의 살을 먹은 중생들도
亦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獲平等智(획평등지)야, 평등한 지혜를 얻고 具諸佛法(구제불법)하야, 모든 불법을 구족하여
廣作佛事(광작불사)하며, 널리 불사를 짓고
乃至入於無餘涅槃(내지입어무여열반)이니, 나아가 남음없는 열반에 들어가기 원하며,
若一衆生(약일중생)이라도 心不滿足(심불만족)이면, 만일 한 중생이라도 마음에 만족치 못하면
我終不證阿(아종불증) 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니라. 나는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않으리라.' 합니다.
[지장보살의 사상이 我不入地獄하면 誰入地獄(아불입지옥 수입지옥)가?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누가 지옥에 들어갈 것인가? 衆生未道 誓不成佛(중생미도 서불성불)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나는 맹세코 성불하지 아니할 것이다.]
(5) 人法俱空 人과 法이 함께 공하다.
菩薩이 如是利益衆生호대 而無我想과 衆生想과 有想과 命想과 種種想과 補伽羅想과
人想과 摩納婆想과 作者想과 受者想하고 但觀法界衆生界無邊際法과 空法과 無所有法과
無相法과 無體法과 無處法과 無依法과 無作法하나니라
菩薩이 보살이 如是利益衆生(여시이익중생)호대, 이렇듯 중생을 유익하게 하되
而無我想(이무아상)과 衆生想(중생상)과 아상, 중생상, 有想(유상)과, 있다고 하는 상과 命想(명상)과, 수명 상과
種種想(종종상)과, 가지가지 생각과 補伽羅想(보가라상)과, 보특가라상과
人想과,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 摩納婆想(마랍파상)과, 幼童(유동)= 어리고 아직 부족하고 못났다고 하는 생각과
作者想과, 짓는다고 하는 생각. 受者想하고, 받는다고 하는 생각 등이 而無= 없고, 但觀(단관), 다만 살펴 보기를
法界와 衆生界의 無邊際法(무변제법)과, 법계와 중생계의 가이없는 법과 空法과 공법과, 無所有法과,무소유법과,
無相法과, 무상법(無相法), 無體法과 무체법(無體法), 無處法과무처법(無處法), 無依法(무의법)과, 의지함이 없는 법과,
無作法하나니라. 지음이 없는 법을 觀= 관찰하느니라.
(6) 俱空利益 함께 공하는이익
作是觀時에 不見自身하며 不見施物하며 不見受者하며 不見福田하며 不見業하며 不見報하며
不見果하며 不見大果하며 不見小果니라
作是觀時(작시관시)에, 이러한 관찰을 할 때에는 不見自身(불견자신)하며, 자기의 몸도 보지 않고
不見施物(불견시물)하며, 보시하는 물건도 보지 않고 不見受者(불견수자)하며, 받는 자도 보지 않으며,
[觀三輪淸淨하여 不違道用(불위도용) 초발심자 경문에 三輪이 淸淨 받는 사람ㆍ주는 사람ㆍ사물. 보시物, 이 세 가지가 텅 비어 空한 줄 알고 받고ㆍ 주고ㆍ空한 줄 알고 그 물건을 수용하는 것이 3륜이 청정함을 觀하는 것입니다]
不見福田 不見業하며, 복밭도 업도 보지 않고 不見報 不見果하며, 보답도 결과도 보지 않으며,
不見大果 不見小果니라. 작은 결과도 큰 결과도 보지 않습니다. [다 함께 공한 입장에서의 이익 觀三輪淸淨입니다.]
(7) 法布施
爾時에 菩薩이 觀去來今一切衆生의 所受之身이 尋卽壞滅하고 便作是念호대 奇哉라
衆生이여 愚癡無智하야 於生死內에 受無數身하야 危脆不停하야 速歸壞滅이 若已壞滅하며 若今壞滅하며 若當壞滅호대
而不能以不堅固身으로 求堅固身일새 我當盡學諸佛所學하야 證一切智하며 知一切法하고 爲諸衆生하야
說三世平等隨順寂靜不壞法性하야 令其永得安隱快樂이라하나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一歡喜行이니라
爾時(이시)에, 그때에 菩薩이 觀去來今一切衆生의, 보살은 과거 미래 현재에 모든 중생들이
所受之身(소수지신)이, 받은 바 몸이 尋卽壞滅(심즉괴멸)하고, 곧 무너져 없어짐을 觀=관찰하고
便作是念(변작시념)호대, 문득 생각하기를, 奇哉라 衆生이여, 이상하도다, 중생들은, 신기 하여라 중생들이여,
愚癡無智(우치무지)하야, 어리석고 무지하여 於生死內(어생사내)에, 생사 속에서
受無數身(수무수신)하야, 무수한 몸을 받아 危脆不停(위취부정)하야, 위태롭고 취약하여 머물지 못하고
[약하디 약하여, 바늘에도 찔리고, 차에 받히면 사정없이 깨져버리고, 음식물 잘못 먹으면 바로 탈나고 찬바람 잘못 쏘이면 감기 걸리는 등 약하고 또 금방금방 변하는 危脆不停입니다.]
速歸壞滅(속귀괴멸)이, 속히 무너져 없어지거니와 若已壞滅(약이괴멸)하며, 이미 괴멸했거나
若今壞滅(약금괴멸)하며, 지금 괴멸하거나 若當壞滅(약당괴멸)호대, 장차 괴멸할 것이라
[已ㆍ今ㆍ當= 과거ㆍ현재ㆍ미래, 어디를 돌아봐도 괴멸하는 것만 있다는 뜻]
而不能以不堅固身(이불능이불견고신)으로, 견고할 수 없는 몸으로 求堅固身(구견고신)일새. 견고한 몸을 구하고 있으니
我當盡學諸佛所學(아당진학제불소학)하야, 내가 마땅히 부처님 배우신 것들을 다 배워
證一切智(증일체지)하며, 일체지혜를 증득하고 知一切法(지일체법)하고, 일체법을 알아서
爲諸衆生(위제중생)하야, 모든 중생들을 위해
說三世平等隨順寂靜不壞法性(설삼세평등수순적정불괴법성)하야,
삼세에 평등하고 적정에 수순하는 무너지지 않는 법[不壞法]의 성품을 설하여
令其永得安隱快樂(영기영득안온쾌락)이라하나니, 그들을 영원히 안은하고 쾌락하게 하리라.'하나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시명보살마하살)의, 불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第一 歡喜行(환희행)이니라. 제 1의 환희행이라 합니다.
[우리 몸뚱이는 견고하지 못해서, 아무리 해봐야 견고한 몸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我當盡學諸佛所學 證一切智하야, 일체지혜를 구하고 일체 법을 알고 모든 중생을 위해서 三世平等 隨順寂靜하는 不壞法性. 자성, 진여자성. 차별 없는 참 사람, 무너지지 아니하는 법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초발심자경문에 萬般將不去(만반장불거)요, 唯有業隨身(유유업수신)이라. 우리 죽을 때 천만 가지가 있다 해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 따라갑니다. 업만 따라간다고요. 거부장자ㆍ명예ㆍ권세ㆍ부귀공명 누렸던 숱한 사람들 하나도 못 가져가고, 唯有業隨身이라. 악업을 쌓으면 악업이 따라가고, 선업을 쌓으면 선업이 따라가는 겁니다.
아옹다옹해서 좋은 것, 좋은 자리 차지하려하고, 모함하는 것은 업만 자꾸 쌓는 것이지요.
이왕이면 선업을 많이 가져가야 하는 것을 이끄는 것이 선근회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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