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說法度生 법을 설해서 중생을 제도하다.
佛子야 菩薩이 如是淸淨諸波羅蜜時와 圓滿諸波羅蜜時와 不捨諸波羅蜜時에 住大莊嚴菩薩乘中하고
隨其所念一切衆生하야 皆爲說法하야 令增淨業하야 而得度脫호대 墮惡道者를 敎使發心하며
在難中者를 令勤精進하며 多貪衆生에 示無貪法하며 多瞋衆生에 令行平等하며 着見衆生에 爲說緣起하며
欲界衆生에 敎離欲恚惡不善法하며 色界衆生에 爲其宣說毘鉢舍那하며 無色界衆生에 爲其宣說 微妙智慧하며
二乘之人에 敎寂靜行하며 樂大乘者에 爲說十力廣大莊嚴이니라
如其往昔初發心時에 見無量衆生이 墮諸惡道하고 大師子吼로 作如是言호대 我當以種種法門으로
隨其所應하야 而度脫之라하니 菩薩이 具足如是智慧하야 廣能度脫一切衆生이니라
佛子야 菩薩이 불자여, 보살은 如是淸淨諸波羅蜜時(여시청정제바라밀시)와, 이와 같이 모든 바라밀을 청정히 할 때나
圓滿諸波羅蜜時(원만제바라밀시)와, 원만히 할 때나 不捨諸波羅蜜時(불사제바라밀시)에, 버리지 않을 때에
住大莊嚴菩薩乘中(주대장엄보살승중)하고, 대장엄 보살승 안에 머물러서
隨其所念一切衆生(수기소념일체중생)하야, 그가 생각한 대로 일체중생에게[장엄한 보살의 삶을 사는 것]
皆爲說法(개위설법)하야, 법을 설하고 令增淨業(영증정업)하야, 청정한 업을 키워내서
而得度脫(이득도탈)호대, 제도해서 해탈을 얻게 하는데,
墮惡道者(타악도자)를, 악도에 떨어진 자는 敎使發心(교사발심)하며, 발심하도록 가르치고
[惡道= 생활의 곤란ㆍ생활의 어려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요즘은 생활에 어려움이 없어서 도 닦는 마음이 참 약합니다. 옛말에 飢寒에 發道心(기한발도심)이라. 배고프고 추워야 도 닦을 마음이 난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어려울 때, 신심이 훨씬 더 장했습니다. 사실 이 도는 생활이 ‘넉넉하다ㆍ가난하다.’ 상관없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개 그래요]
在難中者(재난중자)를, 팔난(八難)에 있는 자는 令勤精進(령근정진)하며,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며
[勤精進 쇠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더 강해지고, 사람도 상황이 안 좋을수록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多貪衆生(다탐중생)에, 탐욕이 많은 중생에게는 示無貪法(시무탐법)하며, 탐욕 없는 법을 가르치고
多瞋衆生(다진중생)에는 令行平等(령행평등)하며, 성을 잘 내는 중생은 평등히 행동하게 하며
着見衆生(착견중생)에 爲說緣起(위설연기)하며, 견해에 빠진 중생에게는 연기법을 말하여 주고
[견해에 집착한 사람ㆍ자기 소견에 집착한 중생을 위해서는 연기의 이치,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모든 것은 緣起ㆍ緣滅.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는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이 인연소치라고 설명하는 것이 오직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뛰어난 안목입니다]
欲界衆生(욕계중생)에 욕계의 중생에게는 恚 성낼 에
敎離欲恚惡不善法(교리욕애악불선법)하며, 탐욕과 진에와 악하고 불선한 법을 떠나도록 가르치며
色界衆生(색계중생)에, 색계중생에게는
爲其宣說毘鉢舍那(위기선설비발사나)하며, 그들을 위해 비발사나(우빠사나=관법)를 설해 주고
無色界衆生에, 무색계의 중생에게는 爲其宣說微妙智慧하며, 미묘한 지혜를 설해 주며,
二乘之人(이승지인)에, 이승의 사람들에게는 敎寂靜行(교적정행)하며, 적정행을 가르치고
樂大乘者(락대승자)에, 대승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爲說十力廣大莊嚴(위설십력광대장엄)이니라. 십력의 광대한 장엄을 설해 줍니다.
[이것이 중생제도 하는데 이러한 대상ㆍ근기ㆍ성질 따라서 설해준다.]
如其往昔初發心時(여기왕석초발심시)에, 그가 지난 옛날 초발심할 때와 같이
見無量衆生(견무량중생)이, 한량없는 중생들이
墮諸惡道(타제악도)하고, 여러 악도에 떨어진 것을 보고
大師子吼(대사자후)로, 큰 사자후로써 作如是言(작여시언)호대, 이와 같은 말을 하되,
我當以種種法門(아당이종종법문)으로, 내 마땅히 갖가지 법문으로
隨其所應(수기소응)하야 而度脫之(이도탈지)라하니, 그들에게 합당한 대로 제도하리라. 외쳤던 대로
[옛날 발심할 때 我當以種種法門으로 隨其所應하야 而度脫之지라.
내가 마땅히 근기 따라서 가지가지 법문으로 다 이야기하겠다고 원력 세웠다는 말입니다.]
菩薩이 具足如是智慧(구족여시지혜)하야, 보살이 이러한 지혜를 구족하여
廣能度脫一切衆生(광능도탈일체중생)이니라. 능히 일체중생을 널리 제도합니다.
[[불교의 우주론에서 欲界 · 色界 · 無色界의 三界.
色界= 산스크리트어: rūpa-dhātu)에서 色, 산스크리트어: rūpa)은 물질을 뜻하는데, 물질은 변하고 허물어지는 성질[變壞性]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동일 유형의 다른 사물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장애하는 성질[對礙性대애성]을 가진 사물이라고 정의된다. 대애성은 質礙性(질애성)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색계는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를 뜻한다. 그런데, 3계 가운데 욕계도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이런 점에서 색계와 욕계를 구분할 경우 색계는 욕계의 물질보다 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즉 器世間과 이러한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소의신을 가지고서 이 세계에서 거주하고 있는 유정들을 통칭한다.
欲界는 食欲 · 睡眠欲 · 淫欲의 欲界三欲과 외적 대상인 5경에 대한 탐욕인 五欲 등을 비롯한 각종 욕구[欲] 혹은 탐욕[欲]이 지배적인 세계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리고, 색계와 마찬가지로 욕계도 욕계의 물질로 이루어진 소의신을 가지고서 욕계의 기세간에 거주하고 있는 유정들도 통칭하는 개념이다.
色界는 欲有·色有·無色有의 三有 가운데 '색계의존재[有]' 라는 뜻의 색유(色有)와 동의어이다.
다만 '有'라고 할 때는 '윤회하는 존재' 즉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해 이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윤회하면서 배움[學: 특히, 8정도, 계정혜 3학, 6바라밀]을 완성시켜야 하는 경지 또는 상태에 처해 있는 존재'라는 뜻이 강하다.
색계는 흔히 三界九地의 관점, 즉 禪定의 관점, 수행의 관점에서 세분되어 初禪 · 二禪 · 三禪 · 四禪의 4가지 하늘[天], 즉 四禪天 또는 四禪으로 나뉘어 다루어진다. 또한, 색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세계들 또는 처소[處]인 하늘 즉 天이 몇 개인가의 관점에서 色界十七天 · 色界十八天 · 色界二十二天 등으로도 불리는데, 색계를 이루고 있는 하늘[天]들의 개수에 대해서는 경전과 논서에 따라 차이가 있다
無色界, formless realm는 欲有· 色有 · 無色有의 三有 가운데 無色有와 동의어이다.
불교의 우주론 또는 세계관에서 3계 또는 3유는 二十八天으로 나뉘지만, 수행론과 번뇌론에서는 흔히 九地로 나뉜다.
9지 중 무색계 또는 무색유에 해당하는 것은 제6지인 空無邊處地부터 제9지인 非想非非想處地까의 4가지 地이다.
三界九地와 무색계:
1欲界 또는 欲有 → 1五趣雜居地
2色界 또는 色有 → 2離生喜樂地 3定生喜樂地 4離喜妙樂地 5捨念淸淨地
3無色界 또는 無色有 → 6空無邊處地 7識無邊處地 8無所有處地 9非想非非想處地]]
(13) 三寶의 種性不斷絶
佛子야 菩薩이 具足如是智慧하야 令三寶種으로 永不斷絶하나니
所以者何오 菩薩摩訶薩이 敎諸衆生하야 發菩提心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常爲衆生하야 開闡法藏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善持敎法하야 無所乖違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復次悉能稱讚一切大願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分別演說因緣之門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常勤修習六和敬法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復次於衆生田中에 下佛種子일새
是故로 能令佛種不斷이며 護持正法호대 不惜身命일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이며 統理大衆호대 無有疲倦일새
是故로 能令僧種不斷이니라 復次於去來今佛의 所說之法과 所制之戒를 皆悉奉持하야 心不捨離일새
是故로 能令佛法僧種으로 永不斷絶이니라
佛子야 菩薩이 불자여, 보살은 具足如是智慧(구족여시지혜)하야, 이러한 지혜를 구족하여
令三寶種(령삼보종)으로 永不斷絶(영부단절)하나니, 삼보(불법승)의 종성이 영원히 끊기지 않게 하는데,
[삼보종자가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되는데, 출가 수행자가 숫자가 자꾸 줄어서 큰 걱정입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어째서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敎諸衆生(교제중생)하야 發菩提心(발보리심)일새. 모든 중생에게 보리심을 내도록 가르치기에
是故로, 그래서 能令佛種不斷(능령불종부단)이며, 불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常爲衆生(상위중생)하야, 항상 중생들에게 開闡法藏(개천법장)일새. 법장을 열어 펼치기 때문에
[법장= 진리. 부처님이 설하신 것은 진리, 모든 존재에 그 나름대로의 법= 진리를 가지고 있는 이치를 열어 보이신겁니다. 연기도 그 연기의 이치를 열어 보이신겁니다. 이러한 진리를 자꾸 開闡= 열어보여야 됩니다. ]
是故로, 그러므로 能令法種不斷이며, 법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善持敎法(선지교법)하야, 교법을 잘 지켜서 [敎法= 이것은 부처님이 주로 경계하신 내용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살면 복이 된다. 저렇게 살면 악이 된다하는 것을 잘 알아서]
無所乖違(무소괴위)일새. 어긋지거나 위배됨이 없게 하기에
[어기거나 잘못되지 않도록 해준다. 지킬 것 다 지키게 해주는 것.]
是故로, 그럼으로써 能令僧種不斷(능령승종부단)이니라. 승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復次悉能稱讚一切大願(부차실능칭찬일체대원)일새. 또 일체의 대원을 다 칭찬할 수 있기에 [讚 기릴 찬]
是故로, 이러한 까닭에 能令佛種不斷(능령불종부단)이며, 불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불교가 이렇게 있게된 부처님의 원력을 이야기해서 佛種不斷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
分別演說因緣之門(분별연설인연지문)일새. 인연의 문을 분별해 연설하니
是故로 能令法種不斷(능령법종부단)이며, 그래서 법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常勤修習六和敬法(상근수습육화경법)일새.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六和敬法]을 늘 힘써 닦기 때문에
是故로 能令僧種不斷(능령승종부단)이니라. 승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六和敬= 六和敬法입니다. 身 口 意 戒 見 利.
①身和同住(신화동주). 몸은 서로 존경해서 함께 머물고,
②口和無諍(구화무쟁)이라. 입은 화합해서 다투지 않아야 됩니다.
③意和同悅(의화동열). 뜻은 화합해서 서로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④戒和同修(계화동수). 계= 규율은 같이 지켜야 됩니다.
⑤見和同解(견화동해). 견해, 소견, 의견을 같이 해야 됩니다. 사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한방에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⑥利和同均(이화동균). 이익은 동등하게ㆍ균등하게 수용해야 되는 것.
부처님이 내놓은 법으로 대중생활 하는데 六和敬이 기가 막힌 도리입니다. 군대생활, 승려생활, 형무소생활 세 곳에 꼭 필요한 법입니다.]
[[여섯 가지 和敬法이란 첫째 신(身)이며, 둘째 구(句)이며, 셋째 의(意)이며, 넷째 계(戒)이며, 다섯째 시(施)이며, 여섯째 견(見)이니, 그 명칭이 6화경법이다.]]
復次於衆生田中(부차어중생전중)에, 또 중생이란 밭에
下佛種子(하불종자)일새. 부처님 종자를 심기 때문에
[[중생의 밭에다 부처님의 종자(種子)를 심는다는 것은 일체 중생의 보리이지(菩提理智)를 보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미묘한 선근(善根)이 뛰어난 연(緣)이 되기 때문이다.]]
是故로 能令佛種不斷(능령불종부단)이며, 불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중생한테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 그 즉시 그 중생은 바로 부처인겁니다. 그러면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부처인 줄 알 때 부처의 종자가 안 끊어지지는 겁니다.]
護持正法(호지정법)호대, 바른 법을 호지하는 데에
不惜身命(불석신명)일새.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是故로, 그런 까닭에 能令法種不斷(능령법종부단)이며, 법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統理大衆(통리대중)호대, 대중을 통솔하는 데에
無有疲倦(무유피권)일새. 고달픈 줄 모르기 때문에
[자기소임 잘하면 대중 다스리는 것이 되는 겁니다. 윗사람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밑의 사람은 밑의 사람이 해야 할 일하고, 윗사람은 위의 사람이 해야 할 일하고,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 하는 것이 統理大衆입니다.]
是故로 能令僧種不斷(능령승종부단)이니라. 승보의 종성을 끊기지 않게 할 수 있으며,
復次於去來今佛(부차어거래금붊0의, 또 삼세의 부처님이 所說之法(소설지법)과, 설하신 바 법과
所制之戒(소제지계)를, 제정하신 계율을 皆悉奉持(개실봉지)하야, 모두 받들어 지니고
心不捨離(심불사리)일새. 버리지 않기 때문에
是故(시고)로 能令佛法僧種(능령불붑승종)으로 永不斷絶(영불단절)이니라.
그래서 불 법 승의 종성이 영원히 끊기지 않게 합니다
[[佛法僧三寶삼보= 불자가 귀의해야 한다는 불보·법보·승보의 3가지를 가리키는 불교교리.
불교를 달리 불·법·승 삼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삼보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불교도는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시작되며 최후까지 삼보에 귀의해야만 한다. 따라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에게는 불가결한 요건이며,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막론하고 삼보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삼보의 성립은 석가모니불의 성도(成道)로부터 시작된다. 석가는 35세가 되던 해 12월 8일의 이른 새벽에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정(絶對寂靜)인 열반의 세계를 실현한 것이며,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자, 즉 불(佛)이 되었다는 자기혁신의 일대 전환으로써 불보가 성립되었다.
성도한 뒤 석가모니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뒤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지난날 같이 고행(苦行)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를 찾아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갔다. 이때 석가모니는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배재하는 중도(中道)와 사제(四諦)·팔정도(八定道)·십이연기(十二緣起) 등의 법(法)을 설한 이것이 법보이다.
이 설법을 듣고 최초의 제자인 5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승보를 이룬다.
삼보는 현전삼보(現前三寶)·주지삼보(住持三寶)·일체삼보(一切三寶)의 세 종류로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들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현전삼보는 별상삼보(別相三寶)라고도 하며, 부처의 생존 당시의 삼보를 뜻한다. 석가모니 자신이 불보이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이 법보이며, 부처의 제자로서의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의 출가교단(出家敎團)이 승보이다.
*주지삼보는 불멸(佛滅) 후의 각 시대를 통해 그 시대의 불교에서 삼보라 불렀던 것으로, 불멸 후의 시대에 불보로 숭배된 것은 금속이나 나무·돌 등으로 만든 불상 또는 종이 등에 그려진 불상 등이다. 법보는 나뭇잎·나무껍질·직물·종이 등에 쓰인 경전 또는 인쇄된 경권서책(經卷書冊) 등의 불교성전이며, 승보는 비구·비구니 등으로 구성된 출가교단이 되었다.
이 주지삼보에는 특수한 불보가 있다. 불멸 후 불상이 제작되기 이전에 불보로서 숭배된 것으로는 석가모니의 4대기념처인 탄생지 룸비니동산과 성도지(聖道地)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등과 불족적(佛足蹟)·보리수(菩提樹)·법륜(法輪)·불탑(佛塔) 등이 그 상징으로서 경배되었다.
그리고 부처의 사리(舍利)가 불보로서 참배됨에 따라 여러 지방에 불사리탑이 건립되어, 불탑숭배(佛塔崇拜)가 행하여졌다. 부처의 유신(遺身) 중 불치(佛齒)와 유발(遺髮) 등도 불보의 일종으로 보았다.
*일체삼보는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도 하는데, 삼보를 철학이론상으로 보아 셋을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법은 부처에 의해 발견되고 실시됨으로써 비로소 교법(敎法)이 되는 것이고, 부처는 법을 발견하고 법을 깨닫고 법을 터득함으로써 부처가 된 것이므로, 법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승려는 부처를 대신하여 부처의 대리자로서 민중에게 법을 설하는 자이므로, 불과 법을 떠나서는 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처와 법은 승려에 의해 그 가치와 의의가 나타나고, 승려로 인해 부처와 법의 기능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승려는 부처와 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 삼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체삼보라 한다.
보통, 삼보라 할 때는 이 세 종류 중 역사상의 현전삼보를 가리킨다. 이 현전삼보에 의해 삼보를 정의할 때
*불(佛)은 불교의 개조(開祖)이며 교주로서의 석가모니불이다. 그러나 역사상의 석가뿐 아니라 법신으로서의 석가모니불, 정토교(淨土敎)의 아미타불(阿彌陀佛), 밀교(密敎)의 대일여래(大日如來) 등, 교법의 설주(說主)이고 구제자이며 신도의 귀의 대상이 되는 모든 부처님을 불로 보고 있다.
*법은 중생들로 하여금 현실의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이상경에 도달하게 하는 가르침이며, 사회 전체를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다. 즉, 법으로써 불교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설해지고 사회와 인생은 어떻게 있으며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가 설해지며, 거기서부터 불교의 신앙과 실천이 전개된다. 이와 같은 교법을 총칭하여 법보라 한다. *승이란 부처를 대신하여 민중을 교화, 지도하는 출가자의 단체이다.
그러나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삼보가 신봉하고 따라야 할 객체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화(主體化)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중생의 육근(六根)은 일심(一心)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 스스로 근원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져 육진(六塵)을 일으킨다. 이제 목숨을 다하여 번뇌의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그 본래의 원천인 일심으로 되돌아가는 까닭에 이를 귀명(歸命)이라 하며, 그 일심이 바로 삼보인 것이다.” 하여 일심을 삼보라고 정의하였고, 일심에로의 환원이 불교수행의 목표라고 보았다.]]
(14) 菩薩의 善根方便
① 略明
菩薩이 如是紹隆三寶일새 一切所行이 無有過失하며 隨有所作하야 皆以廻向一切智門일새
是故三業이 皆無瑕玷이니 無瑕玷故로 所作衆善과 所行諸行으로 敎化衆生하야 隨應說法호대
乃至一念도 無有錯謬하고 皆與方便智慧相應하야 悉以向於一切智智하야 無空過者니라
菩薩이 如是紹隆三寶(여시소륭삼보)일새. 보살은 이와 같이 삼보의 대를 이어 융성케 하기에
一切所行(일체소행)이 無有過失(무유과실)하며, 모든 소행에 허물이 없으며
隨有所作(수유소작)하야, 지은 것들을 좇아서
皆以廻向一切智門(개어회향일체지문)일새. 모두 일체지혜의 문에 회향하기 때문에
是故로 三業이 皆無瑕玷(개무하점)이니, 신어의 삼업에 모두 허물이 없으니 瑕 티 하, 허물 하 玷 이지러질 점, 헤아릴 점
無瑕玷故(무하점고)로, 허물이 없는 까닭에 所作衆善(소작중선)과, 지은 모든 선근과
所行諸行(소행제행)으로, 행한 여러 수행[諸行]으로 敎化衆生(교화중생)하야, 중생을 교화하고
隨應說法(수응설법)호대, 마땅한 대로 법을 설하되
乃至一念(내지일념)도 無有錯謬(무유착유)하고, 한 순간에도 착오가 없고
皆與方便智慧相應(개여방편지혜상응)하야, 모두 방편 지혜와 상응하게 하여
悉以向於一切智智(실이향어일체지지)하야, 그 모든 것을 일체 지지에 회향하여
無空過者(무공과자)니라. 헛되이 지내는 일이 없습니다.
[[일체지지(一切智智)
*佛智는 一切智(모든 것을 다 아는 智)중에서 가장 뛰어난 智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다.
一切智는 聲聞·緣覺의 智와 佛의 智와 共通하기 때문에, 특히 聲聞·緣覺의 一切智에서 佛의 一切智를 구별해서 하는 말.
불지(佛智), 부처님의 지혜란 범어 anu-ttarasamyaksambodhi 곧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번역인 無上正等正覺을 일컫는 말이며 공간적으로는 十方, 시간적으로는 三世를 다한 全知全能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지(智) : 若那(약나) · 闍那(도나)라 음역한다. 일체의 事象 · 道理에 대해서 분명하게 是非正邪를 결정하고 斷定, 辨別了知를 잘하여 究竟에는 번뇌를 끊는 主因이 되는 정신작용을 智라 한다. 엄밀히 구별하면 智는 慧의 작용 가운데 포함되지만 智와 慧는 일반적으로 同義로 사용되고 혹은 합해서 智慧라고도 한다.
또 見도 忍도 慧의 작용이지만, 見은 미루어 헤아리는 것(推求 · 推度), 忍은 옳다고 認許하는 것(忍可)인데 대해 智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심 없이 명료하게 斷定하는 것을 의미한다.
① 智를 분류해서 有漏智(번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혜)와 無漏智(번뇌와는 관계를 끊어버린 지혜)의 二智로 나누어진다. 有部등의 部派佛敎에서는 무루지 가운데 法智 · 類智의 두 가지를 세운다.
*법지는 欲界의 四諦를 관찰하는 智,
*류지는 법지에 유사한 지혜로 上二界(色界 · 無色界)의 四諦를 관찰하는 지혜이며
四諦의 하나하나에 이러한 二智가 있으므로 합하면 八智가 된다. 또 법지와 류지의 구별을 함에 있어서 四諦의 하나하나에 대해서 이것을 말하면 苦智 · 集智 · 滅智 · 道智의 4종으로 된다.
見道에 있어서는 八智 가운데 前七智를 일으킨다고 하며, 第八智(道類智)는 修道에 속한다.
無學의 聖者의 八智를 盡智 · 無生智라고 한다.
*盡智란 我는 四諦를 體現해서 남김없이 다 알았다고 하는 지혜이니, 곧「나는 이미 苦를 알았고 그 원인인 集을 끊었으며 열반인 滅을 증득했으며 道를 닦아 마쳤다고」아는 지혜,
*無生智는, 나는 이미 四諦를 體現해 마쳤으므로 다시 더 깨달아 체현해야 할 것이 없다고 아는 지혜로서 곧「나는 이미 苦를 알았다. 다시 더 알아야 할 苦는 없다」등으로 아는 지혜이다.
*世俗智는 흔히 世俗(世間通俗)에 대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지혜로서 곧 有漏智이며,
*他心智는 他人의 현재의 心 · 心所(마음의 작용)를 아는 지혜로서 유루지와 무루지를 겸한 지혜이다.
이상의 세속지 · 법지 · 류지 · 고지 · 집지 · 멸지 · 도지 · 타심지 · 盡智 · 무생지를 十智라고 한다.
般若經에서는 佛陀가 가지고 있는 지혜로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如實)의 모습을 아는 如實智 또는 如說智를 이 십지에 더하여 十一智라고도 한다.
또 十住 가운데 第十권頂住의 보살이 성취하는 悉能震動無量世界智등의 十智, 똑같이 그 勝進分(다시 더 향상하여 다음의 階位에 나아가는 分位)에서 배우는 三世智 등의 十智가 있다.
② 유루지와 무루지의 二智에 다른 종종의 二智가 있다.
(1) 實智와 權智.
實智는 眞實智, 如實智라고도 하며 絶對 · 眞實 · 平等 · 無差別의 도리(眞如)를 照見하는 智로서 眞智 · 如理智 · 根本智 · 無分別智라고 함과 같다. 이에 대해서
權智는 方便智라고도 하고 상대 차별의 方便敎나 現象界에 관한 智로서 俗智 · 如量智라고 함과 같으니 後得智는 근본지 다음에 일으키는 세간통속의 事象의 세계를 돌이켜서 反照하는 경우의 지혜이다.
(2) 根本智(무분별지)와 後得智〔또 加行智(준비적 階位에서 일어나는 智)와 근본지와 후득지를 三智라고도 한다.〕
(3) 如理智와 如量智.
(4) 眞智와 俗智.
(5) 盡智와 無生智.
(6) 一切智와 道種智.(여기에 一切種智를 더해서 三智라고 한다).
③ 유식종에서는 四智를 세운다. 四智는 佛果에 이르러 有漏心 곧 八識을 轉回(뒤집어)하여 얻는 4종의 무루지이다.
유루의 제8아뢰야식을 전회(轉依)하여 얻는 무루지는 마치 맑은 거울에 물건을 비추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여실히 나타나므로 大圓鏡智라 하며 줄여서 鏡智라고도 한다.
유루의 제七末那意識을 전회하여 얻는 무루지는 我他彼此가 평등한 진리를 깨달아서 大慈悲와 상응하므로 平等性智 또는 略하여 平等智라고 하며,
유루의 제六意識을 전회하여 얻는 무루지는 일체의 對境을 걸림없이 사무쳐 관찰하고 자재하게 설법을 하여 온갖 疑斷을 다 끊어 주므로 妙觀察智 또는 觀智라고도 하며,
유루의 前五識을 전회하여 얻는 무루지는 모든 중생을 饒益하는데 필요한 온갖 변화의 事業 · 動作을 두루 갖추어 자재하게 성취완성했으므로 成所作智, 또는 약해서 作事智라고도 한다.
이상 四智 가운데 대원경지는 마치 금강이 견고하여 어떤 물질이든 깨뜨리지 못할 것이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떤 頑迷한 번뇌라도 다 깨뜨리지 못할 번뇌가 없으므로 밀교에서는 이것을 또 金剛智라고도 한다.
밀교에서는 또 法界體性智에 이 四智를 더해서 五智라고 하며 대일여래의 원만한 지혜를 따로따로 전개한 것이라고 하며, 또 중생의 九識을 전회하여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제九阿摩羅識을 전회하여 얻은 것이 법계체성지로 이것을 五智의 제일로 친다. 이 五智를 五大(空 · 지 · 수 · 화 · 풍) · 五佛(大日 · 阿閦 · 寶生 · 阿彌陀 · 不空成就) · 五部(佛部 · 金剛部 · 寶部 · 蓮華部 · 羯磨部)에 배속한다.
또 무량수경卷下에는 佛陀의 지혜에 佛智 · 不思議智 · 不可稱智 · 大乘廣智 · 無等無倫最上勝智의 5종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五智라고 한다. 이 가운데 佛智는 전체에 공통되는 總名으로써 다른 넷은 특수성을 나타내는 別名이다. 이 四智를 차례로 성소작지 · 묘관찰지 · 평등성지 · 대원경지의 四智에 배당하기도 한다.
智, 類智는 法智에 유사한 지혜로 上二界(욕계 · 무색계)의 四諦를 관찰하는 지혜로서 四諦의 하나하나에 이 二智가 있으므로 합하면 八智가 된다. 또 法智에는 고지 · 집지 · 멸지 · 도지의 4종이 있다. 見道에 있어서는 이러한 八智 가운데 前七智를 일으킨다고 하고 제八智(道類智)는 修道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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