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등 지음
三藏法師 玄奘 奉 詔譯 현장(玄奘) 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 권 11
如是處處說唯一心。此一心言亦攝心所。故識行相卽是了別,了別卽是識之見分。
이와 같이 여러 곳에서 오직 한마음 뿐인, 유일심(唯一心)이라고 말하나니, 이 일심(一心)이라는 말에는 심소 또한 포함되는 것으로, 따라서 식의 행상(行相, 인식작용)은 요별이고, 요별은 곧 식의 견분(見分)인 것이다.
所言處者謂異熟識,由共相種成熟力故,變似色等器世閒相,卽外大種及所造色。
'삼십송'의 제3게송에서 말하는 ‘처(處)’는 이숙식이 공상(共相)의 종자를 성숙시킨 힘에 의해서 색법 등 기세간의 상으로 변현된 것을 말하는 것이니, 곧 외부세계, 즉 심외(心外,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의 외부가 아니다.)의 네 가지 요소인 사대종(四大種)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색법인 것이다.
雖諸有情所變各別,而相相似處所無異。如衆燈明各遍似一。
비록 모든 유정의 전변된 소변(所變)이 각각 다르지만 상(相)은 서로 비슷하고 처소가 다르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많은 등불의 밝음이 각각 두루한 것으로서 하나의 등불과 비슷한 이치와 같은 것이다.
誰異熟識,變爲此相?有義。一切。所以者何?如契經說,一切有情業,增上力共所起故。
누구의 이숙식이 이러한 상(相)을 변현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그것은 범(凡)ㆍ성(聖)ㆍ5취(趣)의 유정ㆍ자타(自他)의 계지(界地)ㆍ내신(內身) 등의 일체이니, 무슨 까닭에서인가?
'불설입세아비담론(佛說立世阿毘曇論)' 제10권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모든 유정의 업이 증상력(增上力)에서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有義。若爾,諸佛菩薩應實變爲此雜穢土。諸異生等應實變爲他方、此界諸淨妙土。又諸聖者厭離有色,生無色界,必不下生,變爲此土,復何所用?是故現居,及當生者,彼異熟識變爲此界。經依少分說一切言,諸業同者皆共變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만약 그렇다면 모든 8지 이상의 불보살은 실로 이 잡염되어서 더러운 잡염토(雜穢土)를 변현해야 하며, 중생들은 실제로 삼천세계 밖의 극락세계 등과 같은 다른 세계와 이 세계의 모든 청정ㆍ승묘한 사바세계의 영산(靈山) 등의 국토를 변현해야 하며, 또한 모든 성자는 물질(色)을 싫어하여서 떠나 무색계에 태어나서는 반드시 하계에 태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거늘, 이 국토를 변현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따라서 현재 거주하는 자와 장차 태어날 자의 이숙식이 이 세계를 변현하는 것이니,
경전에서는 일부분에 의거해서 일체라 말한 것이고, 업이 같은 동업자(同業者)는 모두 함께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有義。若爾,器將壞時,旣無現居及當生者,誰異熟識變爲此界?又諸異生厭離有色,生無色界,現無色身,預變爲土此復何用?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만약 그러하다면 기세간이 무너지려 할 때에는 이미 현재 거주하는 자와 장차 태어날 자가 없을 것이거늘, 누구의 이숙식이 이 세계를 변현시킨다는 것인가?
또한 모든 중생이 물질(色)을 싫어해서 떠나 무색계에 태어난다면, 현재의 색신(色身, 몸)이가 없는 것으로 미래의 국토를 변현시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교에서는 세계의 성립으로부터 공무(空無)에 이르기까지를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의 네 가지의 사겁(四劫)으로 나누며, 이 문의 내용은 그 중에서 괴겁를 말하는 것이다.
設有色身與異地器,麤細懸隔,不相依持。此變爲彼,亦何所益?
설사 색신(色身, 몸)이 있어도 다른 곳의 기세간과는 두드러짐과 미세함이 현저히 다른, 즉 상지(上地)는 미세하고 하지(下地)는 허소(虛疎)의 차이가 있어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지 않으니, 이것이 그것을 변현한다는 것이 무슨 도움 되겠는가?
然所變土本爲色身依持受用。故若於身,可有持用,便變爲彼。由是設生他方自地,彼識亦得變爲此土。
▷정의한다; 변현된 국토는 본래 색신(色身, 몸)을 의지하고 수용하기 때문에, 만약 색신(色身, 몸)에서 의지와 수용이 있을 수 있으면 문득 그것을 변현할 수 있는 것으로, 따라서 설사 다른 세계인 타삼천계(他三千界)에서의 자기 지위인 자지(自他)에 태어날 지라도 그 식(識)이 역시 이 국토를 변현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삼천계(三千界)나 떨어진 세계라 할지라도 욕계는 욕계, 색계는 색계의 모습으로 자타(自他)의 기세간을 변현하는 것으로, 욕계의 유정은 욕계 자신의 지위(地)를 변현하고, 색계와 무색계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故器世界將壞初成,雖無有情而亦現有。此說一切,共受用者。若別受用,准此應知鬼、人、天等所見異。
그러므로 기세간이 무너지려 할 때나 처음 만들어질 때에도 비록 유정이 없어도 역시 현재는 있는 것이니, 이것은 일체가 함께 수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별도로 수용하는 것은 마땅히 이것에 견주어서 알아야 하는 것이니,
아귀와 인간과 천인이 보는 것이 다른 소견이(所見異)이기 때문이다.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물에 대해서도 아귀(餓鬼)는 고름이나 피가 가득한 강으로 보고, 고기는 살아가는 장소나 통로로 보며, 천인(天人)으로 보석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곳으로 보고, 인간은 그냥 물 또는 파도로 보는 등으로 제각기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故諸種子者謂異熟識所持、一切有漏法種。此識性攝故是所緣。無漏法種雖依附此識,而非此性攝,故非所緣。雖非所緣而不相離,如眞如性,不違唯識。
앞에서 말한 모든 종자란, 이숙식이 지니는 일체 유루법의 종자이며, 이것은 식의 체성인 식성(識性)에 포함되기 때문에 소연이며,
무루법의 종자는 비록 이 식에 의탁하지만, 이것의 체성인 식성(識性)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소연이 아니며,
비록 소연이 아닐지라도 서로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니, 진여성(眞如性)과 같이 유식(唯識)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有根身者,謂異熟識不共相種成熟力故,變似色根及根依處。卽內大種及所造色。有共相種成熟力故,於他身處亦變似彼。不爾應無受用他義。
유근신(有根身)이란, 이숙식이 불공상(不共相)의 종자를 성숙시킨 힘에 의해 색근(승의근)과 부진근이 변현된 것으로, 곧 내부의 내사대종(內四大種)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색법으로, 공상의 종자를 성숙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타신처(他身處)에서도 역시 그것을 현현하나니, 그렇지 않다면 다른 것을 수용한다는 뜻이 없어야 할 것이다.
此中有義。亦變似根。辯中邊說似自他身五根現故。有義。唯能變似依處。他根於己非所用故。
이에 대해서 안혜 등이 주장하는 견해는 다만 타신(他身)의 부진근(扶塵根)만이 아니라 역시 승의근(勝義根)도 변현한다는 것으로, '변중변론(辯中邊論)'의 상권에서 자신과 타인의 다섯 감각기관을 변현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호법 등이 주장하는 견해로써는 오직 부진근인 의처(依處)만을 변현할 수 있으니, 타인의 감각기관은 자신에게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似自他身五根現者,說自他識各自變義。故生他地或般涅槃,彼餘尸骸猶見相續。前來且說業力所變外器,內身界地差別。
자신과 타인의 오근(五根)을 변현한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식이 각가 스스로 전변한다는 의미로써, '변중변론'에서 자신과 남의 5근(根)으로 사현(似現)한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식(識)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타인의 식은 타인의 감각기관을 각각 스스로 변현한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것이니,
따라서 다른 곳에 태어나거나 또는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도, 그 남은 시체는 오히려 남의 눈, 즉 견(見,타인의 부진근인 의처依處)에 상속하게 되며,
이상의 내용은 우선 업력이 전변한 자연계와 신체의 계(界)와 지(地)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若定等力所變器、身,界地自他則不決定。所變身、器多恒相續。變聲光等多分暫時,隨現緣力擊發起故。略說此識所變境者,謂有漏種、十有色處,及墮法處所現實色。
만약 선정 등의 힘으로 전변한 자연계와 몸(身)이라면 자신과 타인의 세계(界)와 지(地)에 있어서 결정적이지 않은 것이니, 전변한 몸(身)과 기세간은 대부분 항상 상속하는 것이며,
소리나 빛 등을 변현하면 대부분 잠시만 존재할 뿐이니, 현재의 연력(緣力)의 격발에 따라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식의 인식대상의 경계인 아뢰야식의 소연경(所緣境)을 총체적으로 간략히 말한다면, 유루종자인 유루종(有漏種), 열 가지 색법인 십유색처(十有色處), 법처(法處)에 이르기까지에 포함되며 현현된 참다운 색법의 소현실색(所現實色, 기세간)인 것이다.
何故此識,不能變似心、心所等爲所緣耶?
▷묻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식(識)은 심왕과 심소 등을 변현하여 소연으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까?
有漏識變略有二種:一隨因、緣勢力故變。二隨分別勢力故變。初必有用後但爲境。
▷답한다; 유루식(有漏識)의 전변에 간략히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인연세력(因緣勢力)에 따르기 때문에 전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분별세력(分別勢力)에 따르기 때문에 전변하는 것이니,
앞의 것은 반드시 작용이 있고, 후자는 다만 대상을 삼을 뿐이다.
*인연세력(因緣勢力)에 따르기 때문에 전변하는 것; 여기서 열 가지 색법인 유색처(有色處)는 유근신(有根身)을 가리키며, 열 가지는 내오근(內五根)과 내외에 통하는 5진(塵)으로서 총체적으로 유근신이다.
*분별세력(分別勢力)에 따르기 때문에 전변하는 것; 유루식(有漏識)의 전변에 인연변(因緣變)과 분별변(分別變)의 두 가지가 있으며, 인연변에서 인연이라는 참된 세력이 있는 종자를 가리키며,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사물을 인연변이라고 한다. 즉 제8심왕과 5식의 심왕ㆍ심소, 5구의식(俱意識)의 심왕ㆍ심소, 선정에 들어 있을 때의 정심(定心)과 소연(所緣)의 실제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을 말하며,
여기서 분별(分別)은 심왕과 심소의 다른 명칭으로서, 능연(能緣)의 분별력으로부터 전변된 상분(相分)을 분별변(分別變)의 상분이라고 한다. 이 상분을 일으키는 능생(能生)의 종자에 실제 종자가 없는 것도 있고 또한 생겨난 상분에 작용이 없는 것도 있다. 즉 독두의식(獨頭意識)의 심왕ㆍ심소의 상분, 제7식의 심왕ㆍ심소의 상분, 제8식의 심소의 상분 등은 다만 임시적인 종자인 가종(假種)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지 실제 종자가 아니며, 다만 대상으로 할 뿐으로서 실제의 작용이 없는 것이다.
異熟識變但隨因緣,所變色等必有實用。若變心等,便無實用。相分心等不能緣故。須彼實用別從此生。
이숙식이 전변하는 것은 다만 인연에 따르고, 변현된 색법 등은 반드시 실제의 작용이 있으니,
만약 심왕 등을 변현한다면 문득 실제의 작용이 없으니, 상분의 심왕 등은 능히 반연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제 7식)은 실제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제 8식)으로부터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變無爲等亦無實用。故異熟識不緣心等。至無漏位,勝慧相應。雖無分別而澄淨故。設無實用亦現彼影。不爾,諸佛應非遍知。
무위법 등을 변현하면, 역시 실제의 작용이 없으니, 따라서 이숙식은 심왕 등을 반연하지 않으나, 무루위에 이를 때에는 뛰어난 지혜와 상응하나니, 비록 분별이 없지만 맑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설사 실제의 작용은 없어도 역시 그 무위법의 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모든 부처님에게는 두루하는 편지(遍知)가 없어야 할 것이다.
故有漏位,此異熟識但緣器、身及有漏種。在欲、色界,具三所緣。無色界中緣有漏種。厭離色故,無業果色。有定果色,於理無違。彼識亦緣此色爲境。
따라서 유루위에서 이 이숙식은 다만 자연계ㆍ유근신(有根身, 몸)ㆍ유루종자를 인식대상으로 하며,
욕계와 색계에 있을 때에는 세 가지 대상인 종자ㆍ유근신ㆍ기세간을 갖추며,
무색계에서는 유루종자만을 반연하고 물질(色)을 싫어해서 떠난 때문에 업과(業果)로서의 색법은 없는 것이다.
선정의 과보로서의 색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에 위배되지 않으며, 그 식(識) 역시도 이 색법을 반연하여 대상으로 삼는다.
不可知者,謂此行相極微細故,難可了知。或此所緣,內執受境,亦微細故,外器世閒,量難測故,名不可知。
'삼십송'의 제3게송에서 ‘감지하기 어렵다는 불가지(不可知)’라는 것은 바로 이것의 인식작용이 매우 미세하므로 감지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거나, 또는 이것의 인식대상인 내부세계의 집수대상인 집수경(執受境)이 역시 미세하기 때문이고, 외부세계의 자연계도 크기가 광대해서 측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지하기 어렵다는 불가지(不可知)’고 하는 것이다.
즉, 보고 듣는 등 6식의 작용은 쉽게 느낄 수 있으나, 아뢰야식의 경우는 감지(感知)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왜냐하면 이 식의 인식작용은 일반인들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미세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세(微細, sūkṣma)’라고 한 것은 웬만큼 총명한 사람도 알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인 종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몸의 유근신(有根身)의 경우도 알기 어려우니, 여기서 ‘근(根)’은 미세하고 투명한 물질인 승의근(勝義根)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측량하기 어려우므로 ―색경(色境)이나 성경(聲境)과 같이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이 자연계를 인식대상으로 하여서 끊임없이 미세한 인식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일반인에게는 감지되기 어려운 것이다.
云何是識取所緣境,行相難知?如滅定中不離身識,應信爲有。
어찌하여 이 식의 대상을 취하는 소연경(所緣境)의 인식작용인 행상(行相,견분)이 알기 어렵다는 것인가?
멸진정 중에서 몸을 떠나지 않는 신식(身識)이 있는 것과 같이, 존재(有)한다고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이다.
상좌부와 경량부 말파(末派)의 주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에 의하면 멸진정은 무심(無心)이지만, 미세한 의식이 있어서 몸을 떠나지 않고 상속한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서 그것을 예로 들어서, 그대들이 멸진정에서 미세한 의식이 있고 유정에 소속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제8식도 비록 그대들의 분별지혜가 미치지는 않지만, 세존께서 매우 심오하고 미세한 식이 있어서 유전(流轉)과 장애를 끊는 것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대들도 역시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然必應許滅定有識。有情攝故,如有心時,無想等位當知亦爾。
멸진정에는 반드시 식이 존재하는 유식(有識)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니, 멸진정에 든 자 역시도 유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제6식이 활동하는 지위인 유심위(有心位)에서와 같이 무상정 등의 지위에서도 역시 그러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른 논리인 정리(正理)로써 설일체유부에 대해 답변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두 가지 무심정에는 식(識)이 존재하지 않지만, 명근(命根)과 중동분(衆同分)을 유지하므로 유정이라고 부르며, 따라서 여기서 멸진정 중에 식(識)이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成唯識論卷第二 終 성유식론 제2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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