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大智慧現前

趣向菩提心淸淨하며 功德廣大不可說이라 爲利衆生故稱述하노니 汝等諸賢應善聽이어다

無量世界盡爲塵하야 一一塵中無量刹이어든 其中諸佛皆無量을 悉能明見無所取로다

善知衆生無生想하며 善知言語無語想하고 於諸世界心無礙하야 悉善了知無所着이로다

其心廣大如虛空하야 於三世事悉明達하고 一切疑惑皆除滅하야 正觀佛法無所取로다

十方無量諸國土에 一念往詣心無着하야 了達世間衆苦法이 悉住無生眞實際로다

無量難思諸佛所에 悉往彼會而覲謁하고 常爲上首問如來 菩薩所修諸願行이로다

心常憶念十方佛호대 而無所依無所取로다

 

趣向菩提心淸淨(취향보리심청정)하며,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 청정하며

[보리심= 보리에 趣向한ㆍ깨달음ㆍ지혜와 자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趣向한, 향한 그 마음이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다. 淸淨= 텅 비었다. 공하다. 아주 훌륭하다. 아름답다. 근사하다 등의 의미]

功德廣大不可說(공덕광대불가설)이라. 공덕이 말할 수 없이 광대하고 

[보리에 趣向한 그 마음 너무 훌륭하여서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광대해서 不可說이라가히 설명할 길이 없다.] 

爲利衆生故稱述(위리중생고칭술)하노니,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기에 稱述= 일컬어 설명하는 것이니

汝等諸賢應善聽(여등제현응선청)이어다. 그대들 제현들은 마땅히 잘 들으소서  

[그대들=諸賢들=여러 현인=여러 어진 이들께서는 응당히 잘 들을지어다. 이렇게 중간에서 열심히 듣기를 강조합니다.] 

 

無量世界 盡爲塵(무량세계진위진)하야, 한량없는 세계를 티끌로 만들고

一一塵中 無量刹(일일진중무량찰)이어든, 낱낱 티끌 속에 있는 무량한 세계

[그 낱낱 먼지 속에 無量刹= 한량없는 세계가 있다. 사람을 하나의 세계로 봐도 한량없는 세계가 있고, 하나의 은하계도 사실은 더 많은 은하계로 비교하면 우리가 사는 은하계도 하나의 먼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도 더 많고 많은 대우주에다가 비교하면 역시 또 하나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또 우리 한 사람ㆍ한 사람의 인생에 수많은 사연과 감동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세월이 지나 잊어버려서 그렇지, 숱한 사연과 숱한 감동들, 숱한 웃음과 숱한 눈물들,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것 또한 一微塵中含十方입니다. 

한 인생 속에 무수한 사연과 감동과 웃음과 눈물이 점철되어있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其中諸佛皆無量(기중제불개무량), 그 안에 부처님들이 한량없는데 

悉能明見無所取(실능명견무소취)로다. 모두 다 환히 보되 취함이 없고,  

 

善知衆生無生想(선지중생무생상)하며, 중생을 잘 알지만 중생이란 생각 없고

[중생의 속사정을 우리가 잘 알되,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다 본래 부처다.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화엄경을 푸는 아주 중요한 열쇠. 그러면 중생이 중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부처입니다. 그대로 마음이고, 마음이부처요. 부처가 중생이요, 중생이 부처입니다. 이렇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딱 고정지어서 생각 해서는 안 됩니다. 無生想=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善知言語無語想(선지언어무어상)하고, 말을 잘 알지만 말이란 생각 없으며

[언어의 무상함. 말을 뱉어서 지나가면, 소리 딱 끝나면 금방 소리 끝나 없는 사실을 알지만 그러한 언어라고 하는 편견, 편협한 치우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三大禪詩라고해서 세 가지 禪詩중에 大乘讚이라고하는 禪詩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言語卽是道. 언어가 곧 도다.

한 순간 이렇게 나오면 바로 사라져 버리는 이 言語야말로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고 있는 도다.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언어에 대해서 잘 알지만 언어라고 하는 편협한 생각이 없다.]

 

[[三大禪詩; 시詩와 선禪을 하나로 아우르는 깨달음의 미학 선불교의 최고 정수를 담은 삼대 선시三大禪詩 〈신심명信心銘〉, 〈증도가證道歌〉, 〈대승찬大乘讚〉

<신심명>은 중국 선종의 삼조 승찬스님이 지 은 것으로 146구 584자로 된 짧은 글이다. 하지 만 그 안에 팔만대장경과 1700공안의 요지가 모두 함축한 선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도가>는 영가스님이 깨달음을 얻고 지은 시구. 천태종을 계승할 인물로 촉망받던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영가스님은 희열을 주체할 수 없어 증도가를 지었다.

<대승찬>은 중국 위진 남북조 시대를 살았던 지공스님이 황제에게 바친 글로, 대승의 가르침을 시로 찬탄한 내용이다.]]

 

於諸世界 心無碍(어제세계심무애)하야, 모든 세계에 마음이 걸림이 없어서

[모든 세계. 중생의 세계나 언어의 세계나, 현상적인 세계에 마음이 걸림이 없다. 치우치면 걸리거든요. 우리가  ‘어떤 것이다.’고 고정되게 설정해놓고 생각하면,  ‘아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할 때 그 사람은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그렇게 규정하지 아니하고, 한정지우지 아니하면 자유로워요. 마음이 걸림이 없습니다. 규정지어 놓고 한정지어 놓으니까 마음이 계속 거기에 걸립니다.

상대는 별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규정짓는 내가 문제지요. 

늘 그 모습으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늘 변화하고 늘 달라지는, 내가 달라지고 대상도 달라지고요.

우리는 가만히 한 자리에 있어도 끊임없는 시간 여행을 하는 겁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1분1초 계속 새로운 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시간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끊임없이 다가 오고ㆍ스쳐지나가고, 다가 오고ㆍ스쳐지나가지 않습니까?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해는 떴다지고, 구름이 스쳐 지나가고, 비가 내리기도 하는 이 모든 것이 사실 아주 큰 여행입니다. 그러면서 또 장소를 옮겨가는 우리가 보통 흔히 말하는 그런 여행을 하면 이것은 2중 여행이 되는 겁니다. 공간여행과 시간여행이 같이 씨줄 날줄처럼 짜져서 더 아주 근사한 시간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인식 않으면 공간여행만 알게 되는 겁니다.] 

悉善了知無所着(실선요지무소착)이로다. 모두 다 잘 알지만 집착함이 없으며, 

 

其心廣大如虛空(기심광대여허공)하야, 그 마음 광대하기 허공과 같아서

於三世事悉明達(어삼세사실명달)하고,삼세의 일들에 밝게 통달하고 

一切疑惑 皆除滅(일체의혹개제멸)하야, 일체의 의혹들을 다 없애서 

正觀佛法無所取(정관불법무소취)로다. 불법을 바로 보지만 취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正觀= 바르게 관찰한다. 그야말로 불법을 正觀= 바르게 보아야 이익이 돌아옵니다.

은해사에 학인이 한분 있었는데 어느날 사석에서 ‘딴 데는 병 치료하는 것도 가르쳐주는데 불교는 왜 치료하는 걸 안 가르쳐주느냐?’ 그러더니 어느 날 없어져 버렸어요. 그것이 불법의 전체로 알면 正觀이 아니라 邪觀=삿되게 보는 것이다.

뭐든지 바르게 보는 것이 첫째 내가 이익해요. 그래서 하는 바가 없음이로다.]

 

十方無量諸國土(시방무량제국토)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국토를 

一念往詣心無着(일념왕예심무착)하야, 한 순간에 나아가지만 집착함이 없고 

了達世間衆苦法(요달세간중고법), 세간의 온갖 고통의 법에 요달하여[衆苦法= 무수한 고통들, 많고 많은 고통들]

悉住無生眞實際(실주무생진실제)로다. 무생의 진실한 경계에 모두 머물며,

[無生眞實際생멸이 없는, 생사가 없는 진리의 세계에 모두 머물더라.

세간의 법이, 住法位하야 世間相 常住. 세간의 모양이 항상 주한다는 것이 眞實際거든요.

결국은 세간의 온갖 고통=世間衆苦法을 철저히 잘 알면 그것이 바로 진리의 세계= 無生眞實際.

생멸을 떠난 진리의 세계가 바로 세상사다. 세상사 떠나서 달리 다른 眞實際=진리의 세계는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어중간하게 공부하면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 떠나서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으로 막연하게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바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삶이 그대로 無生眞實際생멸이 없는ㆍ생멸을 떠난 진실한 세계ㆍ진리의 세계라는 뜻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無量難思諸佛所(무량난사제불소), 부사의토록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

悉往彼會而覲謁(실왕피회이근알)하고, 그 회상에 다 나아가 모두 문안드리고 [  알]

常爲上首問如來(상위상수문여래) 언제나 상수가 되어 여래께 

菩薩所修諸願行(보살소수제원행)이로다. 보살이 닦아야 할 행원을 여쭈며,

[보살이 닦아야 할 願行= 보살의 길은 서원의 길= 보현행원의 길입니다. 그것을 부처님께 묻는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할 때마다 한결같이 묻는 말이 무엇이 보살행입니까?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닦습니까? 

바람직한 불교는 세상의 아픔과 더불어 함께 아파하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心常憶念十方佛(심상억념시방불)호대, 마음으로 늘 시방의 부처님들을 생각하나 

而無所依無所取(이무소의무소취)로다. 의지함도 없고 취함도 없으며 

[부처님을 기억한다고해서 거기에 매달리고 의지해서도 안 되고, 또 부처님을 취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의지할 바도 없고, 또한 취할 바도 없다.

누구보다도 부처님의 정신. 願解如來眞實意= 여래의 진실한 뜻 알기를 원한다고 하듯이, 알기는 알아야 되지만 거기에 의지하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하는 것입니다.] 

 

(25) 諸佛護念

恒勤衆生種善根하야 莊嚴國土令淸淨하며 一切趣生三有處에 以無礙眼咸觀察이로다

所有習性諸根解의 無量無邊悉明見하며 衆生心樂悉了知하야 如是隨宜爲說法이로다

於諸染淨皆通達하야 令彼修治入於道하며 無量無數諸三昧에 菩薩一念皆能入이로다

於中想智及所緣을 悉善了知得自在로다 

 

衆生種善根(항권중생종선근)하야, 항상 중생들에게 선근을 심고

莊嚴國土令淸淨(장엄국토영청정)하며, 국토를 장엄하여 청정히 하라 勸=권합니다.

[‘좋은 것을 배우기만하고 하나도 실천 못하면 뭐하느냐?’  배우는 그 자체가 일차적인 실천입니다. 그것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우러 오지도 않고, 법회에 동참하지도 않는 신도들은 뒤에서 “저 사람은 부처님한테 맨 날 쫓아다니면서 하나도 실천 못한다.”고, 물론 실천하면 더욱 좋지만, 쫓아다니는 그 사실만으로도 일차적인 실천인데, 자기 그것도 못하면서 하는 것을 비방하는 그것 참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一切趣生三有處(일체취생삼유처)일체 중생의 삼유처

以無碍眼으로 咸觀察(이무애안함관찰)이로다. 무애의 눈으로 모두 살펴서 

[一切趣生=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三有= 욕계ㆍ색계ㆍ무색계. 이 모든 곳에 無碍眼= 걸림이 없는 , 치우치지 않는 안목. 선입관이 없는.

제가 그 전에 신부하고 수도사들 생활이 스님들 생활과 같다고 해서, 거기에 가서 수도생활 좀 경험해보려고, 왜관에 베네짓또 수도원에 연결을해서 절차를 밟아서 거기서 한 일주일 있었습니다. 제가 또 강의도 해주고, 그 사람들 미사드릴 때 참석도 하고 했는데 어떤 수사가 성당에서 불교성전을 가지고 명상을 하더라고요.] 

 

所有習性諸根解(소유습성제근해), 지닌 습성, 근기, 지혜들이 [所有習性= 그들이 익힌 성품]

無量無邊 悉明見(무량무변실명견)하며, 무량 무변함을 다 환히 보고 

衆生心樂 悉了知(중생심락실요지)하야, 중생들이 바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서 

如是隨宜爲說法(여시수의위설법)이로다 거기에 합당한 대로 법을 설하며 [宜爲= 편의를 따라서, 그 사람 근기와 수준을 따르고, 좋아하는 것 따르고, 그 사람 성향 따라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는 도다.] 

[이 화엄경을 읽고 기뻐하고 환희심 내고  ‘야~! 참 좋다.’고 무릎한번 치는 그 순간에 그 마음이 많이 정화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크게 정화됩니다. 그 다음에 사는 것도 자연스럽게 바뀌어 지는 것이지요.]

 

於諸染淨皆通達(어제염정개통달)하야, 물들고 깨끗함을 다 통달하여

[ , 染= 물든 것, 인간적인 삶. 좁은 마음도 낼 수가 있고, 시기 질투도 할 수가 있고, 심지어 남에게 해코지도 할 수가 있고, 그러면서 한편 또 화엄경도 읽고 부처님께 염불도 하고 예불도 올리고, 참회도 하고 참선도 하는 것]

令彼修治入於道(영피수치입어도)하며, 저들이 도에 들도록 닦아 익히게 합니다. 

[  늘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결국은 도로 향하는 것이지, 수행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 고속도로 달리듯이 쭉~~ 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隨宜爲說法하고  을 다 통달한다. 

 . 정 반대의 상황들을 다 수용하는 그것이 通達입니다.

無量無數諸三昧(무량무수제삼매), 무량 무수한 모든 삼매에

菩薩一念皆能入(보살일념개능입)이로다. 보살은 한 순간에 들어갈 수 있어서 

 

於中 想智及所緣(어중상지급소연), 그 안에서 생각, 지혜, 반연을  

悉善了知得自在(실선요지득자재)로다. 잘 요지하여 자재하게 되고,

[보살은 한 순간에ㆍ한 순간에 다 능히 삼매에 들어가는 도다.

그 삼매 속에서 想=중생상, 智= 깨달은 사람의 지혜 그리고 거기에 반연 되는 바 온갖 바깥에서 일어나는 인연들을 悉善了知得自在(실선요지득자재)로다. 了知= 깨달아 알아서 자재를 얻는다. 

참선한다고 딱 앉아 있으면 화두가 일사천리로 나가는 법이 있나요? 없어요. 생각이 왔다ㆍ갔다 하다가 한번 씩 들리기도 하고 기도를 한다고 법당에 목탁치고 서 있으면 그저  ‘왜 시간 빨리 안 가는가? 웬 다리는 이렇게 아픈가? 누가 뒤에서 내가 제대로 하는가? 못 하는가? 쳐다보고는 있지 않은가?’  온갖 망상 다 부리지요.

쓸데없는 망상이 그렇게 떠오르는 걸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 누구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지요. 

想智及所緣 누가 뭐라고 떠든다든지 하는 조건들을 所緣= 반연 되는 바. 반연 되는 것들을 다 了知해서 自在를 얻어야 됩니다. 거기에 내가 끄달리지 말아야 됩니다.] 

 

(26) 得菩提

菩薩獲此廣大智하야 疾向菩提無所礙하며

 

菩薩이 獲此廣大智(보살획차광대지)하야, 보살이 그 광대한 지혜를 얻으면

[광대한 지혜를 얻는다.  초발심입니다.]

疾向菩提無所碍(질향보리무소애)하며, 빠른 보리(깨달음)에 나아가는 데 장애가 없어서 

 

(27) 宣揚大法

爲欲利益諸群生하야 處處宣揚大人法이로다

 

爲欲利益諸群生(위욕이익제군생)하야,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여

處處宣揚大人法(처처선양대인법)이로다. 곳곳에서 대인법을 드높이 펼칩니다.

[大人法= 화엄경의이치이고 大心중생의 공부입니다.]

 

(28) 時處平等

善知世間長短劫과 一月半月及晝夜와 國土各別性平等하야 常勤觀察不放逸이로다

 

善知世間長短劫(선지세간장단겁)과, 세간의 길고 짧은 겁이나

一月半月及晝夜(일월반월급주야)와, 한 달, 반 달, 그리고 밤낮을 모두 善知=잘 알고 

國土各別性平等(국토각별성평등)하야, 국토는 각각 달라도 성품은 평등함을

[국토가 각각 차별, 별이 차별하고, 나라가 차별하고 5대양 6대주가 다 차별하고, 은하계 많고 많은 별들이 다 차별하지만, 그 차별 속에 평등한 도리. 평등성=空性을 善知= 잘 안다.  

아파트가 크다.ㆍ작다는 것도 空性에서 보면 똑 같습니다.

시간도 길다.ㆍ짧다. 나이가 많다.ㆍ적다 하는 것도 공성의 입장= 본래의 자리= 공성의 자리에서 보면 똑 같이 평등합니다. 공간도 평등하고 시간도 평등한 양면을 우리가 동시에 가지고 두 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입니다. 그러니 차별적인 면에만 집착해서 따지말고, 평등한 면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됩니다.] 

常勤觀察不放逸(상근관찰불방일)이로다. 늘 힘써 관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항상 부지런히 관찰해서 방일하지 않도다. 

평등성을 잘 관찰하면 첫째 내 자신이 평화롭고, 그 다음에 여러분 사찰, 여러분 집안, 내 환경이 모두 편안해집니다. 

차별에 끄달려서 속이 상하고 기분이 언짢아 지면 평등 쪽으로 눈을 돌려 버리면 다 풀려버립니다.]

 

29) 修行助道法

普詣十方諸世界호대 而於方處無所取하며 嚴淨國土悉無餘호대 亦不曾生淨分別이로다

 

普詣十方諸世界(보예시방제세계)호대, 시방 모든 세계에 普詣=두루 나아가지만

而於方處無所取(이어방처무소취)하며, 어느 방향이나 처소를 취함이 없고

[우리가 본래 共刹입니다. 4년마다 임기가 바뀌니까 언제든지 내놓고 떠날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되는데, 無所取= 취하는 바가 없어야 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은가 봐요....] 

嚴淨國土悉無餘(엄정국토실무여)호대, 모든 국토를 빠짐없이 다 엄정히 하지만

[국토를 嚴淨= 깨끗이, 청정하게 장엄한다.]

亦不曾生淨分別(역불증생정분별)이로다. 역시 엄정히 한다는 분별을 낸 적이 없으며,

[또한 일찍이 嚴淨= 청정하게 장엄했다고 하는 분별을 내지 않는다.

자기가 공을 많이 들였어도 공을 들였다는 생각을 안 낼 수만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공이 진짜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중생인 이상은 공들이고 자기의 피땀이 들어가면 그것이 아주 참 어려운가 봐요.]

 

(30) 力과無所畏 [力=10無所畏= 4무소외]

衆生是處若非處와 及以諸業感報別이여 隨順思惟入佛力하야 於此一切悉了知로다

一切世間種種性과 種種所行住三有와 利根及與中下根이여 如是一切咸觀察이로다

淨與不淨種種解와 勝劣及中悉明見하며 一切衆生至處行과 三有相續皆能說이로다

禪定解脫諸三昧와 染淨因起各不同과 及以先世苦樂殊를 淨修佛力咸能見이로다

衆生業惑續諸趣와 斷此諸趣得寂滅과 種種漏法永不生과 幷其習種悉了知로다

如來煩惱皆除盡하사 大智光明照於世하시니 菩薩於佛十力中에 雖未證得亦無疑로다

 

衆生是處 若非處(중생시처약비처), 중생의 옳고 그른 곳과 [(1)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是處도리와 이치에 맞는 것, 

非處= 도리와 이치에 안 맞는 것, 10력 가운데 첫번 째인 是處 非處.

부처님은 着이 생기니까 한 나무 밑에 세 밤을 거듭 자지 말라. 두 밤만 자고 떠나라. 그랬습니다. 세 밤을 거듭 자면 벌써 거기에 着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부처님말씀 참 구구절절 이치에 맞고 옳은 말씀입니다.] 

及以諸業感報別(급이제업감보별)이여업혹과 그에 따른 과보가 차별함을 [(2)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중생의 여러 가지 업들. 그리고 업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것을 감득한다= 내가 받는 것입니다. 

보호를 받는 것이 각각 다른 것도 부처님은 환하게 아시지만, 우리는 자기가 지은 것도 모르고,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도 몰라요. 부처님도 定業難免= 결정된 업은 면하기 어렵다. 하셨는데 定業=결정된 업도 소멸하는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은 滅業障眞言입니다. 그래서 지장기도는 아주 뜨거운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면서 해야 업장이 술술 잘 녹는 겁니다.]

隨順思惟入佛力(수순사유입불력)하야, 수순하여 생각하고 부처님의 십력에 들어가

[그런 도리를 들으면 수순해서 사유해서 佛力= 부처님의 힘에 들어간다. 是處 非處도리와 도리 아닌 것. 이치와 이치가 아닌 것. 그 다음에 무슨 업을 지어서 무슨 과보를 받는 것이 각각 다르다. 각각 달라서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소위 蛇飮水하면 成毒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牛飮水하면 成乳.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참 정말 기가 막히게 이치에 똑 떨어집니다.] 

於此一切悉了知(어차일체실요지)로다. 거기서 일체의 모든 것들을 분명히 알아내며, 

[於此= 여기에서= 보리심을 발한데서 그 일체= 부처님의 십력을 다 了知한다.] 

[[십력 (1)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이치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분명히 구별하는 능력.

(2)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선악의 행위와 그 과보를 아는 능력.

(3)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모든 선정(禪定)에 능숙함.

(4)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의 우열을 아는 능력.

(5)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중생의 여러 가지 뛰어난 판단을 아는 능력.

(6)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중생의 여러 가지 근성을 아는 능력.

(7)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어떠한 수행으로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아는 능력.

(8)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중생의 전생을 기억하는 능력.

(9) 사생지력(死生智力). 중생이 죽어 어디에 태어나는지를 아는 능력.

(10) 누진지력(漏盡智力). 번뇌를 모두 소멸시키는 능력.]]

 

一切世間種種性(일체세간종종성), 일체 세간의 갖가지 성품과    (6)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種種所行住三有(종종소행주삼유), 갖가지 행과 어떤 삼유에 머물렀는지, [三有 = 欲界ㆍ色界ㆍ無色界, 3계]

利根及與中下根(이근급여중하근)이여, 근기가 날카로운지 중간인지 낮은지,(4)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영리한 근기ㆍ중간근기ㆍ하 근기. 소질 따라서 근기가 다 있습니다.

공부에는 하근기인데, 노는 데는 상근기가 있고,? 노는 데 하 근기인데, 공부에 상근기 있고요. 상ㆍ중ㆍ하근기가 다 다르니까 어디 한 가지를 잘못해도 다른 데는 아주 뛰어난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지요.]

如是一切咸觀察(여시일체함관찰)이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다 관찰하고 

 

淨與不淨種種解(정여부정종종해), 청정함과 부정함에 대한 여러 이해가  (5)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勝劣及中悉明見(승렬급중실명견)하며, 수승한지 열등한지 중간인지 분명히 보기에  

[모든 사람들이 업을 짓는 것도 그렇고, 분야 따라서 수승한 면도 있고, 하열한 면도 있고, 중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利根ㆍ중근ㆍ하근.= . = 상ㆍ중ㆍ하.

또 세분하면 9품九品 = 하지 하ㆍ하지 중ㆍ하지 상.

                              중지 하ㆍ중지 중ㆍ중지 상.

                              상지 하ㆍ상지 중ㆍ상지 상. 그런 것을 悉明見하며,]

一切衆生至處行(일체중생지처행), 일체 중생의 이를 곳으로 가고 있는 행이 (9) 사생지력(死生智力).

[‘중생이 죽어서 어디 가서 태어나는가?’

금생에 열심히 지은대로 귀착이 된다는 것 밖에 믿을 것이 없는 겁니다. 또 그것이 정법인겁니다. 

欲知來生인댄(산댄)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作者是금생에 짓는바가 바로 그것이니라.]

三有相續皆能說(삼유상속개능설)이로다. 삼유에 이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설할 수 있으며, (7)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欲界ㆍ色界ㆍ無色界, 三有에 相續하는 것을 다 능히 설함이로다.]  

 

禪定解脫諸三昧(선정해탈제삼매), 선정, 해탈과 모든 삼매와    (3)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染淨因起各不同(염정인기각부동), 물들고 깨끗한 인()으로 일어남이 각각 다르기에(8)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因으로 일어나는 것이 각각 不同하다. 중생이 물든 업을 지었으면 그것이 씨앗이 돼서 물든 작용이 일어나고, 청정한 업을 지었으면 청정한 것이 因=씨앗이 되어서 청정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각각 不同한데, 부처님은 환히 꿰뚫으신다.]

[欲知來生事인댄 今生作者是전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受者是. 금생에 받고 있는 것이, 지금하고 있는 것이 전생에 지은 것이다. 누구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맞는 이치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아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 부처님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처님은 아실뿐입니다.

  으로 일어나는 것이 각각 不同하다.]

 

及以先世苦樂殊(급이선세고락수), 그로써 先世= 전생의 고락이 다름을 

淨修佛力咸能見(정수불력함능견)이로다. 청정히 닦은 부처님 힘으로 다 볼 수 있으며,

[먼저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살았는가? 을 받고 살았는가? 이것이 다른 것을

청정하게 부처님의 힘, 佛力을 닦아서 다 능히 보는 도다.] 

 

衆生業惑續諸趣(중생업혹속제취), 중생의 업혹으로 육취가 이어지기에

[諸趣諸有=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이것은 죽어서도 가지만, 바로 오늘 하루 생활과 금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 그 업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斷此諸趣得寂滅(단차제취득적멸), 끊으면 모든 갈래가 적멸하여 [ 모든 갈래를 끊어서 得寂滅=적멸을 얻는 것과] 

種種漏法永不生(종종루법영불생), 갖가지 漏法= 새는 번뇌법, 영원한 불생 

[漏法은 생 법, 永不生은 생멸이 없는 법 → 種種法 永不生 2가지 법] 

幷其習種悉了知(병기습종실요지)로다. 아울러 습기와 종자를 다 분명히 압니다.(10) 누진지력(漏盡智力). 

[습기와 종자. 우리가 익힌 습기가 종자가 되어서 싹을 틔우는 것이 현행입니다. 습기→ 종자→ 현행  습기→ 종자→ 현행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힌 것이 종자가 되고, 종자는 다시 현행,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 어떻게 가꾸었느냐에 따라 그 종자가 실할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럼 그 종자 따라서 현행=싹을 틔우는 것이 달라집니다. 동물도 種豚. 種馬. 種牛를 만들려면 잘 키웁니다.

아주 잘 키우는 것이 이고, 좋은 새끼가 나오는 것이 현행입니다. 습기→ 종자→ 현행. 습기→ 종자→ 현행.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현상, 그런 것을 悉了知한다.] 

 

如來煩惱皆除盡(여래번뇌개제진)하사, 여래는 모든 번뇌를 다 없애시고 

大智光明照於世(대지광명조어세)하시니, 큰 지혜 광명을 세간에 비추심에  [大智光明초파일에 등을 밝히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 부처님을, 부처님의 깨달음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菩薩於佛十力中(보살어불십력중), 보살이 부처님의 십력을

雖未證得이나 亦無疑(수미증득역무의)로다. 아직 증득하지 못했더라도 의심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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